머캅탄은 악취를 풍긴다 - 썩은 곳은 결국 냄새를 만들고야 만다
*****
“여.. 여기서요?”
“네, 여기에도 저쪽에 PC가 있습니다. 그러니 여기서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LLS 분석 찍고 있는 것도 있어서 자리를 벗어나기 곤란합니다.”
“아, 그... 그렇네요. 저는 제 자리에 마침 결과 파일을 전부 켜놔서 보여드리려고...”
백훈은 LLS기기 옆에 놓인 PC 앞에 앉았다.
당황한 듯 멀뚱멀뚱 서 있는 김예린.
“예린씨 뭐해? 옆에 앉아서 백훈씨 결과 설명해줘”
“네? 네...!”
그들을 뒤로하고 박인호 주임과 곽성은 책임이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온다.
백훈과 김예린은 PC가 부팅될 동안 말 없이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아, 거기 주치호 선임 발령 났더라?”
“맞아요. 며칠 전부터 얘기 나와서 알고 있긴 했었는데... 오늘일 줄은 몰랐네요"
“그래? 난 오늘 알았네. 요 며칠 장찬구 얼굴을 못봤어. 나 잘 때 들어오고, 운동한다고 아침 일찍 나가고. 어디서 뭘 하고 다니는지, 집에서 애좀 보라니까...”
“제가 가서 살짝 물어볼까요? 끝나고 뭐 하시는지?”
“어머, 됐어 얘! 퍽이나 말 해주겠다. 아무튼, 주치호 온다고 다들 난리 났겠네?"
“네, 난리죠. 특히 한성이가 죽을상이예요. 이제 마음대로...”
박인호 주임의 고개가 잠시 김예린 쪽으로 향했다.
“마음대로 사라지는게 불가능할테니...”
“잘됐다, 잘됐네! 한성이 걔가 요새 분석실 뺀질나게 드나들어. 그치, 예린씨?”
“아, 하하하... 그러게요. 오늘부터는 좀 뜸해 지겠네요...? 하하하...”
그 순간, 부팅이 끝나며 바탕화면이 등장했다.
김예린이 ERP(회사에서 전사적 자원 관리에 사용하는 소프트웨어)에 본인 계정으로 로그인을 했다.
“백훈씨, 일단 NMR 분석 결과부터 알려드릴게요”
“네"
“기존 결과랑 크게 다른건 없는 것 같았어요. 여기 보시면 1ppm에서 5ppm 사이에 폴리올이 보이고, 4ppm에서 6ppm 사이에 우레탄 결합이 보이네요”
“그렇군요. 그게 끝입니까?”
“네, NMR은 여기까지구요. 그리고..."
“......빠뜨리신게 있습니다. 그게 다가 아닙니다. 이번에 사용한 이소시아네이트는 자사의 톨루엔 다이이소시아네이트에요. 그렇기 때문에 여기 7ppm에 미약하게 벤젠고리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백훈의 말에 곽성은 책임이 대화를 멈추고 다가왔다.
“음...? 그러네. 예린씨가 놓쳤나 보네 이건"
당황한 얼굴의 김예린.
“아... 저는 분석 목적이 자사 폴리우레탄 합성이 잘 마무리 되었는지의 여부니까, 그 부분은 신경 쓰지 않았어요. 저, 저도 보긴 했는데..."
“그렇다면 분석 결과서에도 명시해 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보니 결과서에는 적혀 있지 않네요. 저희가 알고 싶은건 합성 중에 부반응이 일어났거나, 오염된 물질이 사입 되어 반응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는 지의 여부니까요”
흥미롭다는 눈빛의 곽성은 책임. 그녀의 옆에 앉아 있는 김예린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다.
“그건... 그렇다면 그건 분석 요청을 하실 때 미리 언급해 주셨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어떤걸 말입니까?“
”이소시아네이트 제품이 바뀌었으니 그 부분을 주의해서 봐달라든가... 아니면 자세한 분석이 필요 하다든가요?“
김예린이 또 다시 입을 떼려는 순간, 곽성은 책임의 목소리가 먼저 나왔다.
”음... 이부분은 내가 중재할게. 먼저 백훈씨, 분석 요청을 할 때 담당자가 모든 조건을 알지는 못해. 그러니까 되도록 실험 조건을 세세하게 알려주는게 좋아. 그렇지 않으면 이번처럼 빠뜨리고 지나갈 수 있으니까. 이건... 한성이가 맡긴 거니까, 정확히는 김한성 주임이 했어야 맞는 거고“
”......그렇군요“
”그리고 예린씨, 분석하면서 발견한 모든 사항들을 빠짐없이 결과서에 명시해 줘요. 종합분석의 목적이 그런 거니까요“
”네...“
”자, 그럼 NMR 결과 설명은 끝난것 같으니, 나머지는 내가 백훈씨한테 설명할게“
”책임님이요? 그렇지만...“
”아냐, 원래 내가 설명하려고 했던 거니까 걱정마. 수용성 수지팀 사람들 만난김에 남편 흉도 좀 보고 싶으니까. 예린씨는 가서 분석 결과서 수정좀 해줘“
곽성은 책임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김예린이 백훈을 쏘아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문을 열고 방을 나섰다.
“어? LLS 측정 끝났네. 백훈씨, 하던 거 먼저 마무리 해요. 난 뒤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백훈과 박인호 주임은 결과 그래프를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
“오, 분포가 꽤 고른데요? 사이즈도 평균값에 들어가고. 합성 잘 된 것 같네요"
“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럼 파일좀 제 계정으로 보내겠습니다.”
그 때, 박인호가 작은 USB 하나를 내밀었다.
“이 PC는 보안상 인터넷 연결이 안돼요. 백훈씨, 여기에 옮겨요”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곽성은 책임이 고개를 내밀어 모니터를 들여다 보았다.
“음, 괜찮네? 한성이 혼자 할 때는 이런 분포가 안나왔었는데... 안기동이 실무를 할 리는 없고... 이게 다 백훈씨가 한거였구나? 안기동 계탔네!”
“그렇군요"
“LLS 끝나지? 그럼 이쪽으로 와볼래? 결과 설명해 줄테니”
박인호 주임은 먼저 실험실로 돌아가고, 곽성은 책임이 못다한 분석 결과를 이어갔다.
IR, GC, GPC 결과까지.
그녀는 모든 결과가 머릿속에 있는듯 줄줄이 읊었다.
“아, 그런데 이소시아네이트를 바꾼 이유는 뭐야? 톨루엔 다이이소시아네이트를 선택한걸 보니 유연성, 내구성을 높이기 위한 것 같은데.”
“맞습니다. 내구성을 높이기 위함입니다. 지난번 코팅팀에서 저희가 합성한 수지로 테스트를 했을 때, 내구성이 떨어진다고 전해 왔습니다. 장기 보관했던 제품을 최근 꺼냈는데 눈에 띄게 부식이 일어났다고 들었습니다”
“음, 그렇구나. 그럼, IPDI 대비 톨루엔 다이이소시아네이트를 사용하면 어떤 특징이 있길래 내구성이 높아지는 거지?”
“톨루엔 다이이소시아네이트 즉, TDI는 방향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IPDI에 비해 분자 간 상호작용이 더 강화되어 견고함이 향상됩니다. 그리고 높은 교차 연결 밀도를 갖습니다. 이는 TDI의 반응성과 분자 구조 때문입니다.”
곽성은 책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테스트였어. 내가 백훈씨 테스트 한 거야"
“......네?”
“지아름 선임한테 들은 대로네. 기대가 커요. 그리고, 곧 다시 보게 될 거예요 우리"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안경 사이로 보이는 그녀의 눈.
물분자와 콜라겐, 그리고 멜라닌 사이로 비치는 그녀의 눈빛이 또렷하다.
*****
오후 5시 반. 수용성 수지 연구팀 직원들은 오늘 회식에 참여 한다.
반면, 지아름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구노트를 작성하는 중이었다.
타다다닥-
멀리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회식 갑시다-!”
“변주임, 물성 정리한거 메일로 보내줘요"
변진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방금 막 측정을 전부 끝낸걸 지금 정리해서 달라고?
심지어 지금은 퇴근 시간도 넘은 시간인데?
회식도 가야 하는데?
자리에서 일어났던 변진희 주임은 곧바로 다시 앉았다.
꼼짝없이 정리나 하고 있게 생겼다.
변진희는 사실 술이 너무 먹고 싶었다.
회식은 싫지만, 최근 친구도 못만나고 하루종일 회사에만 붙어 있었기 때문에 그녀에게는 오늘이 잠깐의 휴식이나 다름 없었다.
회식이 휴식이라니. 나 직장인 다 됐네.
“지선임님... 휴식... 아니 회식 안가세요?”
변진희가 모니터 속으로 들어갈 것 같은 지아름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맞다. 오늘이 회식이죠? 저는 조금 이따가 갈게요."
“아, 네... 그런데... 지금 다들 나가는 분위긴데... 메일 내일 보내드려도 될까요?”
“후...”
“아, 아니에요! 얼른 보내 놓을게요!”
또 다시 깍뚜기가 되고 싶진 않다.
그녀는 후다닥 엑셀 파일을 열어 정리를 시작했다.
“변주임?”
물성 측정 내역을 정리하던 변진희.
그녀는 지아름이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나 뭐 실수했나? 뭐 정리 제대로 안했나?
그녀의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지아름은 자신의 모니터를 가리켰다.
“이거 말이에요, 이 부분"
“네...?”
“결과가 아주 좋...”
그 때, 팀장 육원탁이 지아름을 불렀다.
“지선임!”
지아름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았다.
“니, 아 괴롭히지 말고 얼른 온나! 오늘 전무님도 오신다 카이. 오늘은 예외 없다!”
“알았어요. 원가절감 건 때문에 그래요. 저 조금만 이따 갈게요”
“니 오늘 실험 다 끝난거 아이가? 니 일 잘하는거 누가 모리나. 후딱 온나이. 진희, 진희 니는 퍼뜩 따라 온나!”
육팀장이 변진희를 향해 손을 휘둘렀다.
빨리 따라오라는 뜻이다.
“변주임, 빨리와! 지선임도 빨리!”
안된다, 이 사람들아! 오늘 처음으로 지선임 입에서 칭찬 같은 말이 나오고 있다고!
“지선임님, 말씀하시던 거 마저...”
“변주임, 얼른 가요”
“네...? 아니, 메일 보내야 하니까 남아 있을게요..."
“내일 해요. 나 나쁜 사람 만들지 말고 얼른 가요”
뒤를 돌아 보니, 안기동 선임이 변진희를 향해 열심히 팔을 흔들고 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진희야, 내가 구해줬다?”
“네에... 감사해요, 안선임님...”
“얘 봐, 기운이 없어 기운이. 지선임이 또 쿠사리 줬냐?”
“아뇨... 그냥...”
도움이 안되는 사람들.
술이나 잔뜩 마셔야겠다.
한편, 백훈에게는 오늘이 입사 이후 첫 회식이다.
그는 팀 사람들을 따라 밖으로 향했다.
“햄요! 어디 가십니까!”
윤태희다.
“나 회식”
“오? 나도 오늘 회식인데! 은주 누나도 회식이라 그러던데. 여기 시내가 하나 뿐이라 다 만나는 거 아니야? 오늘 나우 화학 정모네 그냥”
“아...”
“근데 행님, 건배사 준비 하셨음?”
“건배사?”
“뭐야, 준비 안했어? 하, 이거이거. 빠져 가지고 진짜. 내가 괜찮은 거 하나 알려줄게”
“뭔데?”
“톡으로 보냈어 봐봐"
멀리서 김한성 주임이 얼른 오라며 백훈을 불렀다.
그들은 안기동 선임의 차를 타고 시내의 회식 장소로 향할 예정이다.
“이따 확인해 볼게. 고맙다...”
회식 장소인 고깃집은 사람들로 이미 바글바글 했다.
백훈의 눈에 보이는 폴리사이클릭 아로마틱 탄화수소, 알데하이드, 카르복실산, 그리고 암모니아. 고기를 구울 때 나오는 연기속 물질들이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사람들의 입에 보이는 알코올, 물분자, 그리고 각종 이온들.
너무 많은 분자들을 한꺼번에 마주하게 된 그는 어지럼증을 느꼈다.
백훈은 자리에 앉자마자 다시 일어났다.
“백훈, 어디가?”
“화장실좀 다녀오겠습니다"
음식점 안쪽에 위치한 남녀 공용의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처음으로 눈보다 코가 먼저 반응했다.
“윽, 지린내...!”
암모니아, 메틸 머캅탄, 황화수소... 머캅탄류는 특히 냄새가 독하다.
황화수소는 아마도 하수구에서 올라온 것일 터다.
백훈은 곧바로 나가 화장실 문을 닫았다.
“차백훈...?”
익숙한 목소리. 이제는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검은색의 긴 머리, 눈가에 위치한 수많은 화장품 원료들.
“김은주?”
이미 볼이 발그레한 얼굴의 그녀.
백훈의 팀보다 먼저 와서 회식을 시작한 듯 했다.
“너네도 회식이야?”
“응"
“우리는 4시부터 와서 마셨어! 그런데 너, 안들어가?”
“아... 먼저 들어가"
그녀는 백훈을 한 번 쳐다 보더니 문 손잡이를 잡았다.
“우윽... 냄새... 토할 것 같아!”
그녀는 문을 열다 말고 헛구역질을 했다.
문 사이로 황화수소가 빠져 나오는 것이 보인다.
백훈은 김은주가 잡고 있던 문 손잡이를 붙잡고 내부의 분자들이 빠져 나오지 못하게 꽉 닫았다.
김은주가 백훈을 올려다 보았다.
“저기... 차백훈... 같이 나갈래?”
“응, 좋지"
얼른 바깥 바람을 쐬야 할 것 같다.
비록 미세먼지가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보다는 청정구역일 것이다.
- 작가의말
머캅탄(mercaptan)은 유황을 함유한 화합물로, 매우 강한 냄새를 가지 있다. 이 물질은 보통 천연 가스나 천연 가스로 동작하는 기기(가스 오븐, 가스 난방 시스템 등)에서 첨가되어 사용 된다.
머캅탄은 사람이 작은 양에서도 쉽게 감지할 수 있는 매우 강한 악취를 발산한다. 냄새는 일반적으로 독한 똥냄새, 가스 냄새 또는 부패된 계란 냄새와 같이 비유된다. 이 냄새는 사람들이 가스 유출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 가스 누출로 인한 화재 또는 폭발 사고를 예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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