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하추풍검 - 5분 후 갈라져 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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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렉스
작품등록일 :
2023.05.10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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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30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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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천논검 3

DUMMY

"타갈이 사고를 쳤군."


바다에 떠다니는 시체를 보던 한수가 꺼낸 말이다.


"저 친구가 타갈의 심기를 건드린 거야."


"심기를 건드렸다고요?"


내가 물었다.


"타갈이 왜 타갈대제打喝大帝인지 생각해 봐라.


칠 타打에 꾸짖을 갈喝. 타갈은 때리고 꾸짖는 왕이다.


자기 심기를 거스르는 인간을 보면 주먹부터 나가는 녀석이지."


"요컨대 폭군이라는 말이군요."


"그렇지."


철존의 기질에 대해 언급하는 한수의 표정은 어두웠다.


"으으···."


그의 곁에 있던 민영은 콧물을 질질 흘리며 벌벌 떨고 있었다. 철존이 어지간히 두려운 모양이었다.


그즈음 배는 방파제에 다다르고, 우리는 차귀도에 상륙했다.


대기 중이던 신하 하나가 우리를 위쪽으로 안내했다.


"목사자 한수 도착했습니다!"


신하의 목소리에는 기가 담겨 있었고, 중간에 소실되지 않고 바람을 타며 섬 안쪽으로 멀리 날아갔다.


섬에는 강렬한 면면들이 모여 있었다.


개중에는 한수를 반기는 사람이 몇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이 무겁게 내려앉은 분위기가 그 원인인 듯했다.


나와 루아, 송하의 존재는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철존과 만나기도 전에 주목받기는 싫었으니 오히려 다행이었다.


"무슨 일이지?"


한수가 어느 무림인에게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무슨 일이긴, 철존께서 평소대로 행동하신 거겠지. 멀어서 잘 안 보이긴 하는데 뻔하지."


"가까이 가기도 싫어."


"워낙에 화가 많은 분이시니까."


옆에 있던 다른 무림인들도 거들었다.


철존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한수, 자네가 부럽네. 다른 사람들은 논검에 참가하지 않으면 철존께서 불같이 화를 내시는데, 자네는 안 와도 뭐라 안 하시지 않나?"


"오히려 오면 싫어하시지."


"맞아, 그런데 왜 굳이 계속 이렇게 찾아오는 건가?"


"엉?"


한수가 어이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벗이 나를 부르는데 마다할 이유가 어디 있나?"


그 말에 무림인들이 웃었다.


"벗이라니, 큭큭, 역시 자네는 재밌어."


"철존을 벗이라 생각하는 건 강호에 자네뿐일 걸세."


하지만 그들의 말에 한수는 반대로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건 좀 슬픈 일이로군."


그들을 지나치며 한수는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섬은 가로로 1km가량 되었고, 사람이 빽빽하게 들어선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무림인들은 철존이 있을 안쪽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그들이 철존을 두려워하는 것이 외지인인 내게도 똑똑히 느껴졌다.


"한수가 왔다."


"목사자, 또 미친 소리나 늘어놓으러 왔나?"


주위의 무림인들이 한수를 두고 한마디씩 했다.


10분 정도 걸었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분위기는 더욱 경직되었고, 더 이상 한수를 보고 반응해주는 이들도 없었다.


차귀도의 서쪽 끝에는 인파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이 인파 너머에 철존이 있겠지.


바로 그때였다.


안쪽에서 또 한 번 폭발음이 들려오고,


"크아아악!"


고통에 찬 비명도 들려왔다. 무림인들이 술렁거렸다.


"실례하지. 지나가겠네!"


한수의 걸음이 더욱 급해졌고, 그가 서둘러 인파를 헤쳐 나아갔다.


그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가 인파를 완전히 열어젖혔을 때, 그 너머에 광활한 초원이 펼쳐졌다.


"타갈!"


초원 위에 고독하게 서 있는 존재를 향해, 한수가 우렁차게 소리쳤다. 초원을 둘러싼 무림인들이 일제히 한수를 돌아보았다.


광활하게 펼쳐진 녹지. 녹지 위로 뚝뚝 떨어지는 붉은 피.


무림인 하나가 멱살을 잡힌 채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눈에는 이미 초점이 없었다.


그런 그의 멱살을 잡은 고독한 존재.


묵직한 갑옷을 입고, 희고 기다란 머리칼과 수염을 고고하게 휘날리며, 권위가 느껴지는 노란색의 장포를 어깨에 걸친 존재.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철존鐵尊 금사자金獅子 타갈대제打喝大帝.


바로 저 사내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는 팔목이 길고 징이 박힌 철제 장갑을 끼고 있었는데, 붉은 피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저 주먹을 휘둘러 무림인을 피떡으로 만든 것이리라.


"멈춰라, 타갈!"


한수가 녹색의 장포를 휘날리며 철존을 향해 거침없이 걸어갔다.


나는 더 이상 그를 따라가지 않고 인파에 섞여 지켜보았다.


"이미 죽었어! 놓아줘라!"


한수의 부탁에도 철존은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 대신 쥐고 있던 주검을 말없이 놓아주었다.


바다에 던져서 말이다.


"타갈!"


한수가 버럭 소리치는데, 철존은 흰 수염을 휘날리며 그를 서서히 돌아보았다.


이마에 흉터가 살벌하게 나 있었다.


"···목사자, 감히 본좌를 가르치는 것이냐?"


철존이 입을 열었다. 거칠고 육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놈들은 본좌가 지켜보는 앞에서 감히 전력을 다하지 않고 짜고 치는 싸움을 했다.


본좌는 아는 척, 하는 척하는 놈들이 가장 싫다!"


"그렇다고 죽일 것까진 없지 않나!"


"논검으로 지존의 좌에 오른 본좌가 논검을 더럽히는 놈들을 살려두어야 할 이유가 있나?"


"생명이란 존엄한 것이다!"


"겁쟁이 같은 소리 하지 마라! 무武의 증명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내던져야 할 무림인이 생명을 논하는 것이냐!"


둘의 언쟁이 점점 심해졌다.


다소 이야기를 따라가기 힘들었던 터라 곁에 있던 민영에게 물었다.


"대체 왜 저러는 거야?"


민영은 콧물을 훌쩍이며 대답했다.


"두 분은 원래 예전부터 저랬어. 철존께서 불처럼 화내시면 목사자는 그런 철존을 달래고 바로잡으려고 했지."


"철존은 생일인데도 저렇게 화를 내나?"


"자기만의 신념이 확고하셔서 그래.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자기 뜻을 거스르는 자가 나타나면 저렇게 화를 내셔. 그래서 이상주의자인 목사자와는 항상 다투시지."


"철존의 신념이 뭔데?"


"무림인에게 무武 이외에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백살존 나동찰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놈이군.'


나동찰에게서 물려받은 굳셀 강强의 진명이 내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철존 또한 강함을 숭상하는 자로 보이니, 그의 마음에 들고자 하면 그에 걸맞은 증명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 섬에 온 자들은 힘의 최소조건은 만족하면서도 철존의 마음에 들기 위한 선은 쉽사리 넘기지 못하는 듯했다.


그 선이란 아마도, 전력을 다한 사투 끝에 상대를 죽일 각오, 그리고 자기 자신 또한 싸우다 죽을 각오일 것이다.


구무림은 좁다. 대부분 서로 아는 얼굴일 테지.


아무리 싸움에 살고 싸움에 죽는 무림인이라 하더라도, 지인을 자기 손으로 죽인다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경우에 따라선 인의나 충의를 저버리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


결국 철존은 그런 것들마저 무림인에게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라면 보여줄 수 있다.


지금껏 피의 길을 걸어왔고 가족마저 죽인 나라면, 이 자리의 무림인 한둘쯤은 눈도 깜빡 안 하고 죽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건 철존 이외엔 아무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이, 이봐."


갑자기 앞으로 걸어 나가는 나를 민영이 잡으려 했다. 나는 그 손길을 떨쳐내고 거침없이 나아갔다.


광활한 초원에서 대립하는 철존과 한수. 그들을 향해 나아가는 나.


관중의 시선이 내게 모이는 것이 느껴졌다.


철존과 한수도 인기척을 느끼고 나를 돌아보았다. 한수의 표정은 당황으로 일그러졌다.


나는 한수는 놔두고 철존 앞에 대령했다.


그리고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예를 표했다.


"신무림 소속 추풍검 이월이 구무림맹주 철존을 뵙습니다."


"···뭐라고?"


철존의 목소리 또한 일그러졌다.


"방금 신무림이라고 하였느냐?"


"예, 그렇습니다."


"일어서라."


나는 일어서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나를 잠시 살펴보더니 말했다.


"웬 머리에 피도 덜 마른 아해兒孩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냐?"


"아해라 하더라도 무공은 논할 수 있는 것으로 압니다."


"아해야, 무림맹주인 본좌의 앞에서 구무림이니 신무림이니 운운하는 게 어떤 의미인 줄은 아느냐?"


무림맹주, 그 단어에서 나는 그의 의중을 단숨에 파악했다.


'무림은 오직 하나뿐이라고 생각하고 있군.'


"죄송합니다. 제 기개를 보여드리기 위해 다소 불편하실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내가 이어서 말했다.


"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또한 죽이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걸 철존께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너처럼 어린것이 정말로 그 두 가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살수의 삶을 살아왔던 터라 그런 것은 두렵지 않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말이냐."


철존은 가만히 있다가 내게 손바닥을 내밀어 보였다.


공력수의 신청이었다.


"그럼 증명해 보거라."


한수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소협! 그 손을 잡지 마라!"


힘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음을 증명하라는 철존의 말.


철존과 공력수로 겨루면 무시무시한 일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철존과 한수는 말하는 것이다.


나는 기꺼이 손을 내밀어 철존과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그와 내가 일시에 내공을 주입했다.


땅이 크게 패고 공기가 터져 나갔다.


명윤에게 했던 것보다 더욱더 강하게, 더 많은 내공을 통으로 쏟아부었다.


철존은 조금도 꿈쩍하지 않았고, 마찬가지로 내공을 쏟아서 대응했다.


땅이 더욱 크게 패고, 나와 철존의 몸이 서서히 내려앉았다.


이미 명윤과 했던 공력수의 수준은 뛰어넘었는데, 철존은 여유로웠다.


'역시 지존의 좌에 오른 자는 다르군.'


철존의 힘을 헤아린다면 세존 노요한의 힘 또한 어느 정도는 헤아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철존이 내공을 강하게 쏟아부었다.


"!"


내 자세가 흐트러졌다.


무거웠다. 마치 바위를 어깨에 얹은 듯했다.


'강하다!'


그렇지만 아직 한 번은 더 여유가 있었다.


남은 내공의 대부분을 손으로 옮겼다.


다시 평정을 되찾는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내가 거의 전력을 다한 이 상황에서도 철존의 자세와 표정에는 미동도 없었다.


'···이런.'


철존이 더욱 힘을 주었다.


나는 단숨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으윽!"


내 어깨에 얹어진 바위 위에, 바위 하나가 더 얹어졌다.


목과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팠다.


고통스러웠지만, 여기서 내공을 거두면 곧바로 압사당해 죽는다.


이미 승부는 났다.


그런데, 철존은 멈추지 않고 더욱 내공을 때려 박았다.


"크억!"


각혈했다. 바위 하나가 더 얹어졌다.


두 무릎을 모두 꿇고 엎드린 채로 손만 들어 올린 모양새가 되었다.


고개를 드는 것조차 불가능했으며 철존의 발만을 바라볼 수 있었다.


'젠장.'


죽을 각오를 시험한다는 게 이런 뜻이었군.


철존은 나더러 아해니 뭐니 했지만, 나이를 불문하고 이대로 눌러 죽일 생각이었다.


내가 먼저 언급했다. 아이라도 무공은 논할 수 있다고.


그러니 그는 나를 아이가 아니라 한 명의 무림인으로 봐준 것이다. 또한 그는 묻고 있다. 말한 것을 행동으로 증명할 수 있냐고.


기꺼이 죽거나, 죽일 수 있냐고.


가장 은밀하며 빠른 검.


3호검 초풍 발도.


엎드린 상태에서 초풍을 단숨에 뽑아 그를 베어 올렸다.


초풍은 그의 몸을 세로로 가르고 지나갔다.


초풍의 낌새를 느낀 것인지, 내 손을 잡은 철존의 손이 움찔거렸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죽음은 불시에 찾아오며,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철존, 내공을 거두시지요."


나는 말했다.


"거두지 않는다면, 5분 뒤에 갈라져 죽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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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벽력전야霹靂前夜 2 23.07.07 64 3 13쪽
44 벽력전야霹靂前夜 1 23.07.06 76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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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천논검 3 +2 23.06.30 97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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