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하추풍검 - 5분 후 갈라져 죽다 -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현대판타지

창렉스
작품등록일 :
2023.05.10 18:38
최근연재일 :
2023.10.12 00:33
연재수 :
113 회
조회수 :
15,256
추천수 :
659
글자수 :
671,804

작성
23.07.24 19:18
조회
74
추천
2
글자
18쪽

인왕작열권 용총 6

DUMMY

초풍에 베인 그 순간,


용총은 일도양단에 의한 죽음을 직감했다.


그러나 분명히 죽음에 이를 일격을 받았는데도, 아직 의식이 있고 몸도 멀쩡한 상황.


그는 단지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산 건지 죽은 건지.


베였음을 직감했을 뿐, 실제로 상처가 난 건지 확신할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한 일격이었다.


다만, 검격이 지나간 부위에서 희미한 이물감이 느껴졌다.


마치 전기가 통과한 듯이, 쥐가 난 듯이 저릿한 느낌.


아의 자세를 취하고는 있지만, 이물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뇌단, 이월은 검을 휘두를 적에 그렇게 소리쳤다.


그는 세존의 검법으로 자신을 베었다.


세존은 인왕권의 파훼법이 뇌단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아의 자세를 취할 수 없도록 세로로 일도양단하여 죽여야 한다고 말했을 뿐,


그걸 위해서 뇌단을 써야 한다고는 하지 않았다.


다만 용총은 불안했다.


이월이 남긴 이물감이.


도저히 사라지지 않는 이물감이.


정말로 5분 뒤에 죽을지도 모르는 이 위화감이.


한편 이월은 자신을 베어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동료들과 함께 자신을 지켜만 볼 뿐.


그 태연자약한 모습에 용총은 초조해졌다.


이대로 인왕권을 믿고 5분 동안 죽은 듯이 버텨도 되는 걸까.


그러다가 정말로 죽어도 괜찮은 걸까.


***


1년 전, 세존의 후계자 항쟁 선언 직후,


봉금조가 창설된 날.


"이것 봐!"


루미가 봉금조원 4인을 모아놓고 비석을 보여주었다.


미선당주美仙堂主 루미.


휘하 봉금조奉金組.


북열北烈 용총.

서침西沈 영힐.

동광東狂 란저.

남음南淫 음후.


루미, 그리고 그녀를 섬기는 봉금조로 선정된 네 사람의 이름을 새긴 비석이었다.


"주문 제작한 거야. 이걸로 우리 5명은 봉금조라는 운명공동체가 된 거지!"


루미가 해맑게 웃었다.


"용총, 네 별호는 원래 별호인 열인왕에서 따왔어. 멋지지?"


진명은 열인왕이 아니었지만, 별호는 그렇게 칭하고 다녔었다.


"···당주님."


그녀의 미소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는 않았지만, 용총은 말했다.


"제 원래 별호인 열인왕의 열은 세찰 열烈이 아니라 더울 열熱입니다."


"아."


바로 그 순간, 루미의 표정이 굳었다.


싸늘한 공기가 루미와 용총의 사이를 지나갔다.


누가 봐도 실수한 분위기였다.


때때로 이럴 때가 있다.


기분 가는 대로 행동하다가 무심코 실수를 저질러 버리는 일이.


용총이 아는 루미는 그런 사람이었다.


"끄응~."


루미는 눈을 질끈 감고서 고뇌에 빠졌다.


용총은 괜찮다는 말을 루미에게 건네려는데,


"근데 그건 아버지가 준 글자잖아?"


루미가 영감을 받은 듯이 눈을 번쩍 떴다.


"그럼 나는 네게 세찰 열烈을 줄게!"


그녀가 용총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래, 그러면 되겠다. 용총, 뜨겁고 세차게 살아가자구!"


그리고 또 해맑게 웃었다.


언제나 이렇게 넘어가 버린다.


어떤 실수든 쉽게 넘어가 버리는 천상의 미소.


그 티 없는 미소에는 용총마저도 무심코 웃고 만다.


"···네."


별호는 열인왕熱仁王이었으나, 진명은 열부인왕熱不仁王이었고, 인왕의 힘도 쓸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날 이후 용총은 봉금조의 북열北烈로서 루미의 곁에서 싸우기로 결심했고,


세존에게 거두어지기 전부터 썼으며, 어린 루미를 지키기 위해 썼던 작열권灼熱拳으로, 이제는 루미와 함께 싸웠다.


루미의 말대로 용총은 뜨겁고 세차게 살았다.


그때 그 시절, 세존에게 충성하고 천하제일인이 되기 위해 포기해야 했던 친구들과의 우정.


용총은 루미, 그리고 봉금조원들과 함께하며 그것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


'안 된다.'


용총은 아의 자세를 거두었다.


'나는 곧 죽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두 주먹을 앞뒤로 들어 싸울 태세를 취했다.


그는 이월, 철존, 한수 셋을 번갈아 보았다.


'당주님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그렇다면, 적어도 셋 중 하나는 길동무 삼아 데려가야 한다.'


인왕 용총의 자세가 아닌 인간 용총의 자세.


북열 용총의 자세.


'5분, 단 5분이다.


확실하지 않다면··· 그동안은 용총으로서 뜨겁고 세차게 싸우자.'


그는 검지에 주황빛을 붙이고 자기 관자놀이에 대었다.


그의 몸에서 김이 솟아올랐다.


"활열단."


사람 자체가 바뀌었다.


인왕이 되기 전, 북열 용총의 모습.


그러나 진명은 여전히 열인왕熱仁王이었고, 공력의 수준은 기존의 북열 용총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한편 그 모습을 본 한수. 그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인왕이여, 성역의 수호는 포기했는가?"


"나는 이제 인왕이 아니다. 북열 용총이다."


"그런가?"


한수가 합장했다.


"그럼. 이제 마음껏 때려눕힐 수 있겠군."


그의 주위에 하얀 경계가 둘러쳐졌다.


"서백 참도편재!"


그가 눈 깜빡할 새에 용총을 후려치며 날아갔다.


"윽!"


용총은 그에게 맞아 비틀거리는데, 뒤에서 또 한수가 날아와 그의 뒤통수를 때리며 지나갔다.


용총은 충격에 넘어졌다.


"흐음!"


철존이 멀리서 그를 공간째로 붙잡고, 끌어당겼다.


"대열폭렬퇴!"


그리고 주먹에 막대한 내공을 담아 그에게 날렸다.


"열파탄!"


용총 역시 끌려가면서도 주먹에 내공을 모아 내질렀다.


두 사람의 주먹이 부딪치고, 기의 덩어리가 주변을 휩쓸었다.


위력은 거의 호각.


용총과 철존, 두 사람 다 뒤로 밀려났다.


그런데 용총을 가만히 바라보던 철존이 말했다.


"약해졌군."


"뭣이?"


"약해졌다고 했다."


그의 도발에 용총이 발끈하여 덤비려 하는데,


"북현北玄 빙귀지침氷龜止侵."


근처에 있던 한수가 경계를 펼쳐 용총의 발에 드리웠다.


그러자 용총은 철존에게 헛손질을 날렸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철존이 그의 배에 무릎을 꽂았다.


그리고 두 주먹을 깍지 쥐어 그의 뒤통수에 내리쳤다.


용총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바닥에 처박혔다.


"하나, 지금이 더 재미있군."


철존이 이죽거리며 쓰러진 용총에게 진각을 날렸다.


바닥이 갈라지며 깊게 패는데, 용총은 그 전에 재빨리 피했다.


그러나 그가 도망쳐 온 곳은 한수의 곁이었으니,


"몸이 마음대로 안 움직이지?"


한수가 용총의 머리채를 붙잡았다.


"아까 당한 것들, 그대로 돌려줌세."


한수가 머리채를 끌어당기며 용총의 척추에 무릎을 꽂고, 고통에 주춤거리는 그에게 달려들어 주먹으로 후속타를 날렸다.


원치 않는 방향의 생각을 주입하는 빙귀지침.


그 효과에 의해, 용총은 헛손질 헛발질만 하면서 한수에게 잔뜩 얻어맞았다.


일방적인 싸움에 즐겁게 웃는 한수. 그가 기합을 내지르며 용총의 안면에 주먹을 날리는데,


용총은 어느샌가 맞아주지 않았다.


그는 한수의 주먹을 팔로 흘리고, 반대쪽 주먹을 한수의 안면에 꽂았다.


그리고 뛰어올라 한수의 가슴을 발로 차서 쓰러뜨렸다.


한수는 각혈하며 코에서 피를 흘렸다.


용총은 전방만을 보고 한수를 똑바로 보지 않았다.


"하핫··· 끼워 넣은 생각을 본능으로 극복한 건가."


재미있군! 하고 소리치며 한수가 합장했다.


"동청東靑 본진통천本辰統天!"


한수의 주변에 파란 경계가 나타났다.


경계 내부의 기후를 조종하는 초식.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바닥이 물 범벅이 되었다.


갑작스러운 날씨의 변화와 끈적거리는 진흙에 용총이 당황하는데,


콰르릉! 느닷없이 번개가 쳐 용총을 때렸다.


"크아악!"


용총은 온몸에서 김을 뿜으며 쓰러졌다.


그러나 그는 곧장 일어섰다. 온몸이 번개의 열에 그슬렸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또 싸울 태세를 취했다.


"오호라!"


그 체력과 집념에 한수는 탄복했다.


"실로 대단하군! 인왕의 흉내를 그만두었는데도 그 정도로 튼튼하다니. 부두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흥미로워!"


한수가 합장했다.


"남주 작봉착화!"


불꽃을 사용하고자 그가 주변에 붉은 경계를 치는데,


"!?"


갑자기 그의 몸뚱이가 공중에 붕 뜨더니, 멀리 날아가 흙바닥에 처박혔다.


한수를 날린 것은 철존.


한수 때문에 온몸이 비에 축축하게 젖은 철존이었다.


"목사자! 민폐 끼치지 말고 그냥 구석에 처박혀 있어라!"


그는 인상을 잔뜩 구기며 한수에게 일갈했다.


그런 철존을 바라보던 용총.


"대단하군."


그가 무심코 감탄했다.


"훔의 일격에 그렇게나 맞고도 멀쩡하게 싸우다니."


그 말에 철존이 용총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야, 본좌는 천하제일인이니까."


"천하제일인···!"


그 말을 들은 순간 용총은 옛날 일을 떠올렸다.


설마 그 단어를 여기서 또 듣게 될 줄이야.


용총이 눈을 번쩍 뜨고 웃었다.


"하하하···."


"뭐가 웃기는 거냐?"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는지 철존은 불쾌한 듯이 묻는데,


"나도, 나도 한때 천하제일인이 되고 싶었다."


용총은 북받친 듯이 말했다.


"···그러냐."


짧은 대답이었지만, 그 순간 철존은 용총의 반응을 이해했다.


철존 역시 강해지기 위해 인생을 쏟아온 무림인, 그렇기에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혼쾌하게 말했다.


"그럼 본좌를 쓰러뜨리고 지존의 좌를 취해보거라."


"그거 좋군!"


용총은 마다하지 않았고, 기뻐하며 철존에게 덤벼들었다.


철존은 꿈이 담긴 그의 주먹을 그대로 맞아주었다.


주춤거리며 물러나는 철존, 그의 코에서 피가 흘렀다.


그는 엄지로 코피를 닦아내고, 검지를 까딱였다.


"역시 철존, 소문대로 튼튼하군!"


용총은 다시 그에게 덤벼들며 주먹을 휘둘렀고, 철존은 이번엔 주먹으로 맞받아쳤다.


충격과 함께 뒷걸음질하는 용총. 그의 오른쪽 주먹에서 피가 흘렀다.


용총은 자신의 망가진 주먹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내륙 무림의 객이여."


그에게 철존이 근엄하게 말했다.


"더 상대해주고 싶지만, 본좌에겐 시간이 없다."


"···나 또한."


"그러니 전력으로 오거라. 본좌도 전력으로 맞이해주마."


"좋다!"


용총이 반가운 듯 펄쩍 일어났다.


그는 곧장 왼쪽 주먹에 온 내공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주먹에서 막대한 빛과 열이 일어났다.


"흐읍!"


그리고 거기서 한 차례 더 힘을 주자, 주먹에 둘린 열의 덩어리가 더욱 커졌다.


마치 작은 태양을 주먹에 두른 듯했으니,


이는 작열권의 절초, 태열광양권太熱光陽拳.


기쁠 때도 뜨거웠고, 노여울 때도 뜨거웠으며, 슬플 때도 뜨거웠고, 즐거울 때도 뜨거웠던 19년.


루미와 함께한 19년을 담은 절초였다.


"아직이다."


용총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빛나는 왼쪽 주먹을 뒤로 당기고, 오른손은 펼쳐서 앞으로 내밀었다.


훔吽의 자세였다.


요 19년 만이 소중한 시간은 아니었다.


천하제일인이 되기 위해 날뛰었던 20년.


천하제일인이 되기 위해 수행했던 6년.


26년의 세월 역시 그에겐 소중했다.


총합 45년에 이르는 인생, 모든 희로애락을,


용총은 한 주먹에 담았다.


인왕권仁王拳과 작열권灼熱拳의 융합.


인왕작열권仁王灼熱拳의 유일식唯一式이자 절초.


인왕태열광양권仁王太熱光陽拳이었다.


"···대단하군."


철존 역시 무심코 감탄했다.


그는 원래 대열폭렬퇴를 준비하려 했다.


그 역시 마찬가지로 주먹에 내공을 무식하게 담아 때려 박는 초식이었고, 용총이 펼치려 하는 절초와 이치 자체는 같았다.


그러나 인왕태열광양권을 본 철존은 자신의 경솔함을 후회했다.


한 남자의 인생을 담은 주먹에 성의 없는 초식으로 맞서는 건 너무나도 장난스러운 짓거리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철존도 지존으로서, 젊을 적부터 갈고 닦은 절초를 펼치기로 마음먹었다.


대열폭렬퇴는 단순한 힘자랑일 뿐, 무武와 공功, 양쪽에서 오묘함의 극치를 보여야 할 천하제일인의 무공이라고는 할 수 없다.


철존의 진가는 따로 있다.


또한 그것은 단순히 공간 그 자체를 다루는 것이 아니다.


공空과 허虛.


존재하는 공간과 존재하지 않는 공간.


두 가지의 이치를 철존은 각각 다룰 수 있다.


이름하여 공허이원신공空虛二元神功.


지금부터 그가 발하려 하는 것은, 그러한 상반된 두 가지 힘을 강제로 한데 합쳐 출수하는 절초.


공허이원신공의 절초, 무변공허처정無邊空虛處定.


철존은 두 주먹을 허리춤까지 당겨 내공을 모았다.


그러자 그의 좌우로 각각 허虛과 공空의 기운이 모여들었다.


왼손의 허와 오른손의 공.


철존은 그것을 한데 합쳤다.


막대한 충격과 함께, 무량無量한 공허의 힘이 그의 주먹을 둘러쌌다.


용총과 철존은 각자 준비한 절초를 쥐고 서로 마주 보았다.


"간다."


용총이 미소 지었다.


"오너라."


철존도 미소 지었다.


용총은 기나긴 기합을 내지르며, 철존에게 달려들었다.


두 사람의 절초가, 당산봉의 정상에서 맞부딪쳤다.


***


빛 속에서, 용총은 전음을 날렸다.


영힐에게였다.


용총은 영힐에게 묻고 싶었던 것을 물었다.


그렇게 잠시 둘이 대화를 나누는데,


용총은 기쁨에 웃었다.


"그래, 내가 당주님의 벗들은 지켜내었구나."


그 말에 영힐이 순간 이해를 못 했는지 침묵하는데,


"신경 쓰지 마라, 혼잣말이다."


용총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것보다 영힐, 전할 말이 있다."


그는 진중한 목소리로 자기 뜻을 영힐에게 전했다.


"나는 오늘부로 봉금조를 그만두겠다.


그러니 당주님께는 상심하지 말고 나를 찾지도 말라고 전해 드려라.


퇴직금도 필요 없다."


영힐은 역시 침묵했고, 짧게 알겠다는 대답만 전할 뿐이었다.


용총은 역시 영힐, 무인武人의 귀감이라며 그를 칭찬했다.


"그럼, 당주님을 부탁한다."


그리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전음을 끊었다.


철존과의 충돌, 인왕작열권의 반동으로 용총은 왼팔이 어깨째로 완전히 사라졌다.


인왕권은 당연히 못 쓰고, 전투도 지속할 수 없었다.


그렇게 엉망진창이 된 몸으로, 그는 누워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이 지경이 일어났는데도 하늘은 여전히 푸르렀다.


'루미 아씨···.'


결국 셋 중 하나도 저지하지 못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 5분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무심코 즐겨 버리고 말았다.


젊을 적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반각 동안 충분히 즐겼나요?"


그때, 누군가가 그의 시야에 끼어들었다.


이월, 그가 용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추풍검···."


"이제 여한은 없나요?"


용총은 껄껄 웃었다.


"그래, 천하제일인은 되지 못했지만, 후회 없는 5분이었다."


용총은 힘없이 이월의 다리를 토닥였다.


"이월, 한 가지만 묻고 싶다."


"뭐죠?"


"정말로 나를 죽였나?"


"몰라요."


"···뭐라고?"


"전 그냥 최선을 다했을 뿐이에요.


당신을 죽이기 위해 온 마음을 다하겠노라고."


"그런가···."


용총은 한숨을 쉬었다.


후회스럽지는 않았다.


즐길 만큼 즐기기도 했고,


5분 뒤에 죽는다던 이월의 선언이 완전히 허망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때 세존의 호법이었기에,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뇌단법은 바라는 대로 성장하는 무공이며, 그 가능성은 무한하다는 것을.


용총은 체념한 듯이 웃었다.


"만약 내가 죽는다면, 네가 인왕마저 베는 절초를 완성한 셈이 되겠구나."


"그렇네요."


"절초의 이름은 뭐로 정할 거냐?"


"모르겠어요. 당신이 정말로 죽으면 생각하려고요."


그 말에 용총이 웃었다.


19년 전 세존은 예언했다.


루미를 지키기 위해 인왕의 힘을 해방하는 날, 너의 여정은 끝날 것이라고.


세존은 여래. 뇌제여래雷帝如來다.


그의 예언은 절대로 빗나가지 않는다.


자신은 오늘 인왕의 힘을 해방했으니, 그 운명대로 이월에게 베일 것이다.


"이월, 걱정하지 마라."


용총이 말했다.


"너는 나를 반드시 죽인다.


여래가 관측한 미래는 절대 바뀌지 않는다.


여래 자신이 손을 대거나, 또 다른 여래가 간섭하지 않는 한은.


19년 전, 세존은 오늘 내가 이곳에서 죽으리라는 미래를 관측했고,


그렇기에 중생에, 필멸자에 불과한 나는 오늘 찾아온 필멸의 미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세존이 미래를 관측했다고요?"


"세존은 여래의 진명을 가지고 있다."


"···!"


이월은 금시초문이었는지 놀란 표정을 짓고서 말을 잇지 못했다.


"너도 여래의 진명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


용총은 이어서 말했다.


"만일 네가 파멸의 미래를 관측하고, 극복하고자 한다면 여래의 힘을 사용해라."


이월이 물었다.


"왜 그걸 저에게 알려주는 거죠?"


용총은 웃었다.


"왜, 죽어가는 마당에 지식 자랑 좀 하면 안 되나?"


"그런 건 아니지만···."


"네가 루아 아씨를 구원했듯이, 루미 아씨도 구원해 주었으면 한다."


용총의 말을 듣자마자, 이월의 표정이 굳었다.


"이 고통스러운 항쟁을 네가 끝내주었으면 한다."


용총은 계속 말했다.


"나는 내심 이 항쟁을 끝내고 싶었다.


네 인생보다 긴 세월 동안 루미 아씨를 아꼈으니까.


하지만 나는 세존을 이길 수 없었다.


애초에 덤비지도 못했다.


인왕의 무공을 배운 순간, 여래인 그에게 평생 굴복하겠노라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었지.


그러니 네가 진정으로 자유를 원한다면··· 강해져라.


세존을 쓰러뜨리고, 항쟁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라."


"···."


이월은 또 침묵했다.


역시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부탁인 듯했다.


"···됐다."


하지만 용총은 그걸로 되었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루미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죽는다.


그러니 이제 모든 미련을 내려놓아야 한다.


용총은 눈을 감고, 검은 우주 속에서 생각했다.


거시적으로 보자면 결국 모든 인간은 죽게 된다.


언젠가 이월도 죽고, 루미도 죽는다.


그리고 다시 태어나고, 다시 죽고···


그런 삶을 몇 번이나 반복하게 된다.


그러니 한때의 실패에 미련을 가질 필요는 없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현재를 열심히 살았으니 그걸로 되었다고.


"이제 떠나련다···."


그 말을 끝으로, 용총은 호흡을 그만두었다.


그의 주위로 붉은 석산꽃이 무성히 피어났다.


"···."


모든 것을 받아들였고, 모든 것을 정리했다.


그런 용총이었지만,


단 한 가지.


단 한 가지 미련만은 끝내 버리지 못했다.


'바라건대···


다음 생에도 루미와 만나, 뜨겁고 세차게 살아가기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79 서부D4C
    작성일
    23.07.24 19:39
    No. 1

    세존 풀진명은 그럼 뇌제석천여래거나 뇌제여래석천인가? 스스로 작명공도 익혀서 원할때마다 가끔 뇌제여래랑 제석천이랑 갈아끼고 그러나?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81 늘보술보
    작성일
    23.07.25 02:23
    No. 2

    여자인건가 사랑인건가
    너무어렵습니다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월하추풍검 - 5분 후 갈라져 죽다 -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인왕작열권 용총 6 +2 23.07.24 75 2 18쪽
56 인왕작열권 용총 5 +2 23.07.21 67 5 13쪽
55 인왕작열권 용총 4 +1 23.07.20 66 3 13쪽
54 인왕작열권 용총 3 +1 23.07.19 70 4 11쪽
53 인왕작열권 용총 2 +1 23.07.18 66 2 12쪽
52 인왕작열권 용총 1 23.07.17 65 2 15쪽
51 진眞 패천논검 4 +1 23.07.14 84 3 14쪽
50 진眞 패천논검 3 +1 23.07.13 71 4 14쪽
49 진眞 패천논검 2 23.07.12 71 2 14쪽
48 진眞 패천논검 1 +1 23.07.11 79 4 12쪽
47 벽력전야霹靂前夜 4 23.07.10 72 3 13쪽
46 벽력전야霹靂前夜 3 23.07.07 70 3 14쪽
45 벽력전야霹靂前夜 2 23.07.07 65 3 13쪽
44 벽력전야霹靂前夜 1 23.07.06 76 6 12쪽
43 패천논검 6 - 이십사수매화검 관윤 1 +1 23.07.05 89 5 12쪽
42 패천논검 5 - 흡성검 종혁 2 +2 23.07.04 84 3 14쪽
41 패천논검 4 - 흡성검 종혁 1 +1 23.07.03 93 6 13쪽
40 패천논검 3 +2 23.06.30 97 3 12쪽
39 패천논검 2 +1 23.06.29 89 3 13쪽
38 패천논검 1 +1 23.06.28 94 4 14쪽
37 유몽공 몽현 2 +1 23.06.27 98 3 13쪽
36 유몽공 몽현 1 +1 23.06.26 102 3 13쪽
35 재정비, 그리고 구무림으로 +3 23.06.23 117 4 12쪽
34 윤회輪廻 +1 23.06.22 118 4 13쪽
33 천상천하 유아독존 6 +3 23.06.21 124 5 14쪽
32 천상천하 유아독존 5 +1 23.06.20 113 6 16쪽
31 천상천하 유아독존 4 23.06.19 112 4 11쪽
30 천상천하 유아독존 3 +2 23.06.16 151 5 12쪽
29 천상천하 유아독존 2 23.06.15 121 5 12쪽
28 천상천하 유아독존 1 23.06.14 132 5 1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