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기를 빌려
이 땅 위에 믿을 사람은 오직 나 하나. 나에게 다가오지 마.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 그냥 그렇게 이해해.
"아니! 기본적으로 배우 아우라가 장착되어 있어서 완벽하게 감춰지지는 않네."
과장이 보태진 말인 줄 알면서도 유치하지만 기분이 좋다.
"쳇. 뻥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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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님! 닭발 2인분하고 오뎅탕 하나 주세요. 아! 소주 진로로 하나요."
"알겠어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미지야 무슨 일 있어? 통화할 때도 그렇고 지금 얼굴 봐서도 그렇고 힘이 없어 보여."
"쉿! 일단 소주로 목 좀 축이자."
또르륵. 또르륵. 서은우가 따라주는 소주 석 잔을 연거푸 마신다. 취기가 금세 올라온다. 아까의 또렷했던 정신과 조금씩 멀어질 준비가 되었다. 그래서 기분이 좋아진다.
"은우야."
"응, 미지야."
"나 걔랑 헤어졌다."
"걔라면... 남자친구? 네 매니저 했던 친구?"
"응. 어떻게 알았어? 전에 너랑 만났다고는 듣긴 했는데 내 남친이라고 소개하지는 않았을텐데."
"그치.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 그냥 매니저라고 소개하더라고. 근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어? 날 경계하는 눈빛, 널 아끼고 걱정하는 말들. 단번에 알아볼 수 있겠던데?"
"이씨... 널 속이지 못할 정도로 날 좋아했으면서... 그런 녀석이 날 떠났어. 그렇게 날 좋아하면서, 아끼면서."
꽁꽁 입 안에 감춰둔 이별의 사실을 밝히고 나니, 눈물이 방출된다. 쏟아지는 눈물을 감추려 계속 눈물을 닦는다. 서은우가 자신의 손수건을 건네준다. 손수건에서 편안한 향기가 난다.
"그 사람 많이 좋아했나보구나?"
"나도 그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그랬나 봐. 자꾸 생각이 나. 내가 잘 못해준 게 생각나고, 불쑥불쑥 속상하고. 진짜 이러고 싶지 않은데... 쿨하게 보내주고 싶은데."
"혹시 나 때문에 헤어진거야?"
그렇다. 엄밀하게 밝히자면 서은우 때문에 헤어진 게 맞다. 서은우만 아니었다면 내 마음이 흔들릴 이유가 없었고 연우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를 미워하고 싶지 않다. 그와 이별한 건 결국 내 탓이다. 그 탓을 서은우에게 돌릴 수 없다.
"무슨 소리야? 복합적인 이유로 그렇게 됐어."
연달아 술을 마셨더니 취기가 머리 끝까지 올라온다. 흐트러지지 않게 정신 똑바로 차리자. 응? 응!
결국은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다. 상처는 결국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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