괄시
이 땅 위에 믿을 사람은 오직 나 하나. 나에게 다가오지 마.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 그냥 그렇게 이해해.
이런,,!! 다음 대사가 생각나지 않는다!!
"컷!"
"죄송합니다. 한 번 더 가야 할 것 같아요."
이수미가 짜증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한다.
"아! 뭐예요? 촬영 시간 촉박해 죽겠는데 왜 실수를 하셔서. 이 씬 끝나고 좀 쉬려고 했는데! 아 진짜! 선배!"
아씨 저게 진짜 나 골리려고 작정을 했나! 내가 이번만 참는다. 나중에 두고 보자.
옆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를 주제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감독이 모자를 벗어 던지며 나를 째려본다.
"야! 차미지! 왜 실수를 하고 난리야? 연습 안 했어? 지가 무슨 옛날처럼 잘나가는 줄 아나."
갑자기 서러운 감정이 치밀어올라 감독을 째려본다.
"뭐? 왜? 예전 버릇 못 고치고 나한테도 갑질하게?"
"아닙니다. 미안합니다."
다음 씬은 악에 받쳐 NG 없이 한 컷에 촬영을 마쳤다. 다행이다.
'수고하셨습니다'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재빨리 촬영 현장을 빠져 나온다. 그래야만 했다. 어느 누구와 눈만 마주쳐도 어느 누가 말만 걸어도 툭하고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다.
내가 원래 이러지는 않았는데... 예전 같았으면 감독의 말에 바득바득 대들면서 난리쳤을텐데. 호기롭던 '차미지'는 어디 가고 초라하게 눈물을 삼키고 있는 '차미지'만 남은 걸까?
생각보다 나는 많이 위축되었다. 없을 줄 알았던 연기 욕심을 발견했지만 현실은 갑질 배우로 낙인 찍혀 옛날처럼 활발하게 연기하기 힘든 철 지난 배우가 됐다. 매번 나를 주목해주고 떠받쳐주던 촬영 현장에서 '나'는 하나쯤 없어도 되는 존재, 괄시 받아도 괜찮은, 그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이런 상황과 위치에 나는 아직 적응하지 못했고, 어찌하지 못하는 나약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게다가 이렇게 힘들 때 나를 다독여주고 위로해주어야 할 연우가 내 옆에 없다. 날 떠났다.
하지만! 극복해야 한다! 연기가 하고 싶으니까. 연기만 아니었다면 시원하게 욕하면서 이 바닥을 떠났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예전처럼 연기하게 위해 참아야 한다. 그렇지만 외롭고 힘든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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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 연기 캐스팅은 뚝 끊겼다.
결국은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다. 상처는 결국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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