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
이 땅 위에 믿을 사람은 오직 나 하나. 나에게 다가오지 마.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 그냥 그렇게 이해해.
날씨가 매섭다. 하지만 눈송이가 날씨의 심술에 굴복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 따뜻한 세상을 위해 열심히 냉기를 삼킨 후 온기를 내뿜고 있는 것 같다. 송이 송이 서로가 서로를 돕고 있다. 그런 모습이 예뻐 마음이 따뜻해진다.
은우가 내 손을 잡는다. 그의 손을 잡은 채 몇 발자국 걷는다.
"잠시만."
그의 손을 놓은 뒤 두 팔을 벌려 하늘을 올려다본다. 눈송이가 얼굴에 앉는다. 얼굴 온기에 금세 녹는다. 눈물이 난다. 녹은 눈이 눈물과 만난다. 얼굴을 타고 흐른다. 그리고 나는 웃는다. 울며 웃는다. 그런 나를 서은우가 가만히 기다려준다. 그와 눈이 마주친다. 그에게 미소를 건넨다. 그를 위해 흘리는 한 방울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다시 올려보는 하늘. 내리는 눈송이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왠지 한방이가 있을 것 같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처음으로 한방이의 기일을 은우에게 알려주었고 건강한 이별을 시작했다. 한방이가 다행이라며 웃고 있을 것 같다.
하늘을 향해 크게 외친다.
"한방아, 하늘나라에서는 잘 지내고 있는 거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10년 동안 힘들게 해서 미안해. 못난! 엄마가! 정말로!"
서은우가 어깨를 감싸고 함께 외친다.
"한방아! 안녕! 아빠야! 너무 늦어서 미안해. 하늘에서 엄마, 많이 응원해줘. 사랑해!"
차가운 겨울 속 뜨거운 순간을 맞으며 나는 이별을 준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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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한강으로 향했다. 차디찬 새벽 공기가 코를 찌르고 정신을 맑게 깨워준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사뿐사뿐 걷는다. 오랫동안 걷지 못하다가 다시 걷는 법을 깨우친 것 마냥 걸음이 신기하고 새롭다.
시간이 벌써 5시 반 아니 6시쯤 된 건가? 저 먼 한강 지평선 속에 숨어있던 해가 조금씩 얼굴을 보이고 있다. 새벽과 아침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일출과 함께 어두웠던 밤하늘이 조금씩 지워지고 밝은 햇살이 그 자리를 채워주고 있다. 맑은 아침 공기가 코끝을 스쳐 몸 속을 가득 채운다.
새로운 인생과 사랑의 챕터가 시작되는 기분이다. 그리고 실제로 시작 되었다.
결국은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다. 상처는 결국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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