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덤
이 땅 위에 믿을 사람은 오직 나 하나. 나에게 다가오지 마.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 그냥 그렇게 이해해.
"처음 본 19살, 그때 나 진짜 예뻤나 보네."
"그럼, 그랬으니까 내가 너한테 한 눈에 뿅 반해버렸지."
"어떡해? 지금 나는 그때랑 많이 다른데. 어쩌나."
"무슨 소리! 지금도 예뻐!"
그는 19살의 나를 얘기할 때가 많다. 때로는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겨루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결국 똑같은 '나'이기에 누가 이긴다고 해도 무의미하긴 하지만. 서은우는 지금의 '나'를, 조금은 나이 들어 버린 '나'를 정말 사랑하는 걸까?
"근데 미지야, 일하기 너무 힘들지 않아?"
"힘들지만 재밌어."
"나는 네가 힘들어하면서까지 이 일을 하지 않았으면 해. 너는 내가 책임질 수 있으니까 너무 힘들면 연예게 은퇴... 어떻게 생각해?"
"그런 소리는 하지 않았으면 해. 나는 연기할 때 행복해. 배우를 그만두라는 건 내 행복을 앗아가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야."
"미안, 그런 의도는 아니었어."
"네가 얼마나 잘나고, 돈도 잘 버는 지 알겠는데,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그래, 너는 똑부러지고, 지혜로우니까 무슨 일이든 어떤 상황이든 잘 해낼 거야. 하지만 힘들고 지쳐서 버틸 수 없을 때 기댈 곳이 있다는 걸, 내가 언제나 네 옆에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해."
그 말을 들었을 때 감동을 느껴야 하는데... 기댈 곳이 되어주겠다는 말이 든든하게 느껴져야 하는데... 실제로도 서은우는 그런 남자가 맞는데... 왜 벅차오르지 않는 걸까?
"그래. 네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아까는 내가 쓸데없이 과하게 반응했던 것 같아.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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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오늘 같이 있을까? 나 오늘 밤에 너랑 함께 있고 싶어."
오늘밤은 그와 함께 있어도 괜찮다. 내일 스케줄이 없다. 게다가 3주일 만에 만났으니 오랫동안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을 이해한다. 하지만 피곤하다.
"미안, 집에 가서 할 일도 있고, 무엇보다 컨디션이 별로야. 다음에! 다음에 우리 좋은 곳에서 함께 오랫동안 같이 있자, 응?"
"어쩔 수 없지."
아쉬워하는 그. 10년 전의 차미지는 그와 함께만 있어도 가슴이 떨리고 몸이 뜨거웠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덤덤하다.
결국은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다. 상처는 결국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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