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날 그리고 공허
이 땅 위에 믿을 사람은 오직 나 하나. 나에게 다가오지 마.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 그냥 그렇게 이해해.
"미지야. 오늘 잡지 인터뷰 있다고 했지? 잘 끝났어?"
"응. 잘 끝났어. 근데 너 오늘 할 일 많아?"
"응... 하아... 오늘은 좀 한가할까 싶었는데 회의가 갑자기 잡혀버렸네. 빨리 네 얼굴 보고 싶은데."
"나도 보고 싶은데 바쁘니까 어쩔 수 없지. 어서 일 봐. 사실 나도 시나리오 검토 때문에 사무실 들어가야 해."
"역시 우리 스타는 게을리 시간을 보내는 일이 없어요. 근데 오늘은 스케줄 없는 편인 것 같은데 이런 날은 좀 쉬어. 많이 피곤할 것 같은데. 요즘 날도 자주 새고 진짜 바빴잖아."
"걱정은 고마운데 나 괜찮아. 별로 안 피곤해. 생각 없이 쉴 때보다 일할 때 오히려 힘이 나."
"그래도 남자친구로서 맘이 편하지 않아. 밥 꼬박꼬박 잘 챙겨 먹고 중간 중간 잘 쉬고 그래. 오늘 하루도 파이팅! 사랑해 미지야!"
"나도."
서은우는 사랑도 일도 뭐든 열심히 하는 남자다. 이런 멋진 남자와 연인이라는 사실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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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는 정말 정신 없었다. 피곤하다. 일의 소중함을 알고 난 후 난 들어오는 일 대부분을 거절하지 않고 소화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피곤하지 않은 날이 드물다. 이런 나를 보고 사람들은 독종이라고 한다. 이렇게 무리하면 언젠가 쓰러질 수 있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은우도 걱정한다.
사실, 일을 하다가 쓰러져도 크게 억울하지는 않을 것 같다. 괜찮을 것도 같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하는 게 맞지만 뭔지 모를 이 공허함을 잊어버릴 수 있다면 어떤 방식이든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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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에 들어간다. 넓고 아늑하다. 큰 돈을 정산 받자마자 바로 이 집을 계약했다. 처음 이사 오고 난 후 기뻤지만 그 기쁨은 생각보다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이 넓은 집의 텅텅 비어있는 공간이 다시 찾아온 인기, 사람들의 연고 호평, 돈, 명예, 팬, 그리고 서은우라는 행복 요소들로 가득 채워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빈 공간이 늘어난 느낌이 든다.
맥주 한 캔을 따다. 고요한 새벽에 울리는 캔 소리가 선명하다. 그리고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스마일 손거울'. 그 손거울을 보며 '스마일~' 웃어본다.
"이연우! 연우야, 잘 살고 있는 거니?"
결국은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다. 상처는 결국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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