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체온
이 땅 위에 믿을 사람은 오직 나 하나. 나에게 다가오지 마.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 그냥 그렇게 이해해.
은우와 만나기로 했다. 보지 못한 지 한 3주는 된 것 같다. 너무 오랫동안 보지 못해 속상할만도하지만 생각보다 그렇지는 않다. 버틸만하다. 서로 너무 바쁘고 그 부분을 이해한다. 다정한 은우는 시간을 쪼개 나를 보러오겠다고 하지만 나는 극구 사양한다. 바쁜 그의 시간과 에너지를 뺏고 싶지 않아 서다. 그리고 굳이 찾아 온 고마운 은우를 반겨주고 함께 얘기하기에는 그만한 육체적, 심리적 여유가 없다. 굳이 그와 직접 만나 나쁜 여자친구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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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빵'
자동차 클락션 소리가 들린다. 운전자석 유리 창문이 스르르 내려가고 은우의 얼굴이 보인다. 나를 보며 환하게 웃는다. 오랜만에 직접 얼굴을 봐서 한없이 반갑다는 표정이다. 나도 활짝 웃어본다.
"어서 타시죠, 배우님."
그의 차 안은 오늘도 고급스러운 향으로 가득 베어 있다. 처음에는 좋았지만 향이 강해 이따금 머리가 아플 때가 있다. 하지만 그 정도는 별거 아니니 굳이 그에게 향에 대해 따지고 싶지 않다.
"매일 화면으로만 보다가 오랜만에 얼굴 보니까 너무 좋다. 역시 자기는 실물이 훨씬 예뻐."
"나 듣기 좋으라고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지?"
"당연하지."
"배 많이 고프지? 빨리 밥 먹으로 가자!"
"응."
서은우가 살며시 내 손을 잡는다. 지금 우리는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있다. 그의 손이 따뜻하다.
아무래도 내 손이 그의 손보다 더 찬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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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지 모르는 클래식 음악이 잔잔히 흐르는 이 공간의 레스토랑을 나는 좋아한다. 고기를 썰며 서은우가 나를 보며 웃는다. 나도 미소에 대한 화답으로 살짝 입꼬리를 올린다. 만약 그가 먼저 나를 보며 웃어주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그에게 미소를 건넬 수 있을까?
"미지야. 요즘 너 너무 힘든 거 아니야? 살이 점점 더 빠지는 것 같아."
"그래? 그럼 좋지 뭐. 화면에 더 예쁘게 나올 테니까."
"그보다 네 건강을 먼저 생각해야지. 19살 통통하고 귀여웠던 차미지는 어디 갔냐고... 이렇게 점점 야위어가고 말라가는 너를 보는 내 가슴이 너무 아파."
결국은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다. 상처는 결국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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