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하지 못한 결정
이 땅 위에 믿을 사람은 오직 나 하나. 나에게 다가오지 마.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 그냥 그렇게 이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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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 연기 캐스팅은 뚝 끊겼다. 보지 않으려고 했지만 신경이 쓰여 괜찮을 거란 허망한 주문을 걸며 확인한 저번 촬영 기사 댓글에는
'한 물 갔다.'
'많이 늙은 것 같다.'
'이번에도 갑질하면서 촬영했나?'
등의 부정적이고 나를 절망으로 빠뜨리는 글들로 가득하다.
예전 같았으면 같잖다고 무시해버렸을 글들이 약해져버린 가슴 틈틈이 박힌다.
난 이제 정말 다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한 물 가버린 건가?
앞으로 더 기똥차게 연기 잘할 수 있고, 아직 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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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전화벨이 울린다. 이 새벽에 대체 누구인가? 장난 전화인가?
"차배우. 그 소문 진짜야?"
대표 목소리다.
"뭐가 진짜라는 말씀이세요? 한밤 중에 전화하실 만큼 중요한 거예요?"
"중요하다 마다. 차배우! 스캔들 터졌어!"
"스캔들이요?"
"그래! TP 전자 상무하고! 식당이랑 차에서 둘이 함께 있는 사진이 찍혔어. 아직 보도 되지는 않았는데 '당당우먼'에서 그 사진을 갖고 있나 봐. 곧 기사 터뜨린다고 나한테 연락 왔어. 진짜 그 사람하고 깊은 관계인거야? 재벌집 아들하고?"
"아직은 그냥 친구예요."
"아직? 그럼 사귈 수도 있다는 얘기잖아! 차배우 잘 생각해봐. 차배우 지금 퇴물이다 한 물 갔다라는 얘기가 들려오는데 이런 대형 스캔들 하나 빵 터지면 다시 주목 받게 될거고, 무려 'TP 전자' 며느리 될 기대감에 여기저기서 부를 거고, 몸값도 높아지고! 이건 기회야 기회!"
내가 다시 재기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순수하지 못한 유혹이 내 머릿속을 지배한다. 가만히 조용히 생각해보자.
"어... 대표님... 배터리가... 다 닳으려고 해요... 이만 끊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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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서은우에게 전화를 건다. 어제 새벽 내내 생각했고 나는 결심했다.
"은우야, 나 미지야. 혹시 내가 너무 일찍 전화했나?"
"아니야. 나 일어난 지 꽤 됐어. 그리고 네가 전화한 건데 한밤중이어도 정신 바짝 차리고 받아야지. 근데 이른 아침부터 전화하고... 혹시 무슨 일 있어?"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고, 너한테 중요하게 할 말이 있어."
결국은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다. 상처는 결국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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