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무사가 회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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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31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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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31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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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24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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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검 (2)

DUMMY

一.




화종지회 후기지수 편은 화산의 승리로 돌아갔다. 종남의 어린 제자들의 얼굴에 먹구름이 걸렸다. 돌아가면 사부들에게 혼날 것을 생각하니 절로 걱정됐다.


다만, 그런 이들 속에서 무언가를 깨달은 듯, 결연한 얼굴을 한 검수도 있었다. 이번 화종지회에 무인으로서 발전할 기회를 붙잡은 이들이었다.




후기지수 대회가 끝난 다음 날. 화산의 장로 하나와 종남의 장로 하나가 서로를 지목해서 비무를 벌였다.


강호에서 앙숙으로 유명한 이들이었는데, 어릴 적에는 그리도 미운 놈은 지금 보니까 나와 똑같은 곳을 바라보는 동지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사감을 빼고 오로지 비무에 집중할 수 있었다.


“역시 화산이로다. 용각진인의 매화검은 명불허전이로고.”


“종남도 달리 종남이 아닐세. 진류 장로의 천하삼십육검이 경지에 이르렀다는 말이 소문이 아니었나 보오.”


용각이 어기충소의 수법으로 하늘로 날아올랐다. 표표히 움직이는 그의 몸짓은 바람에 흩날리는 매화를 닮아 있었다.


이십사수매화검법, 매화토염.


그의 검에서 피어난 무수한 매화가 붉은빛을 머금었다. 순식간에 진류의 팔방을 점한 매화가 일점으로 내리꽂혔다.


물 흐르듯, 부드러운 연계. 매화토염에 이은 매화낙섬이었다.


“하아아압!”


그것을 파훼하는 진류의 천하삼십육검은 이것이 화산과 몇 대를 걸쳐 경쟁해온 종남의 검임을 몸소 증명하고 있었다.


진류의 검이 기이한 움직임을 그렸다.


천하삼십육검, 천하무궁.


하늘 아래, 끝이 없는 검격의 향연이었다. 무수히 피어나는 용각의 매화와 끝없는 빗줄기 같은 진류의 검격은 동수를 이뤘다.


먼저 초식을 거둔 것은 진류였다. 빈틈을 발견하기 무섭게 초식을 거둔 뒤, 제비가 활강하듯 몸을 움직였다.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지만, 용각은 당황하지 않았다. 무수히 상대해본 상대는 마지막을 늘 이런 식으로 끝맺었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걸세!”


용각의 몸에서 붉은색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매화검법과 가장 결이 잘 맞는다는 매화공의 진기였다.


용각이 이십사수매화검법 최후의 절초를 펼쳤다.


매화만개(梅花滿開).


하나, 둘.

용각의 검 끝에서 피어난 매화는 어느새 비무장 전체를 뒤덮었다.


흐르고 흐르는 강처럼 끊임없이 피어나는 매화.


꽃잎은 바람을 타고 하늘 높이 날아갔다.



“······졌소이다.”


진류의 패배 선언이 있고 좌중은 침묵에 잠겼다.


“훌륭한 승부였소. 이전과는 몰라볼 정도로 완벽한 검이었소이다. 진류 장로께서 마지막에 펼친 검을 조금만 더 갈고 닦는다면, 빈도 정도는 가볍게 이길 것 같소이다.”


“허허허. 얼굴에 금칠을 해주셔도 드릴 건 없소이다.”


진류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화산의 검을 보고 갑니다.”


“종남의 검을 보고 갑니다.”


서로 마주 포권한 그 순간.


“우와아아아아아아!”


관중들이 일제히 환호를 질렀다.





二.



장로 배분의 비무는 쉽사리 구경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용각과 진류의 치열한 접전 이후, 비무장에 오르는 이들은 주로 일대제자였다.


종남과 화산이 겨루기도 했고, 그들의 검을 견식하러 온 무당의 검수가 화산의 제자를 지목하기도 했다.


이처럼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그들은 우리가 되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한 대 뭉쳐 서로의 무학을 견식하고 더 높은 곳으로 향하기 위한 양식으로 삼는 것이다.


‘이런 광경이야말로 바람직한 백도의 형태다.’


조휘의 입가에 미소가 슬쩍 걸려 있었다. 그런 그를 지켜보는 이가 있었으니······.


“패협께서는 부디 이 몸의 도전을 받아주길 바라오!”


청하가 얼굴을 와락 구겼다. 조휘에게 비무 신청하려고 기회를 틈틈이 엿보고 있었는데, 웬 이름 모를 시커먼 놈이 자신에게 비무를 신청한 것이다.


“하아.”


다시 표정을 관리한 청하가 비무장 위로 풀쩍 뛰어 올랐다.


“무성문(武城門)의 평소요.”


“화산의 청하.”


“강호에서 패협으로 이름 높은 청하 도장의 소문은 저 멀리 강서에서도 듣고 있소이다.”


평소의 눈에 비친 청하는 검이 든 검집을 무언가로 칭칭 두르고 있었다.


“음. 이만하면 됐고.”


검집에서 검이 빠져나오지 않도록 고정하는 것이었다.


“······뭐 하는 짓이오?”


“비무장에 올라왔는데, 뭐가 그렇게 말이 많소?”


휘익! 콰아아아아아아앙!


가까스로 청하의 일격을 막아낸 평소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비겁하게 기습을······!”


“기습?”


이번에는 휘두르는 것을 보지도 못했다. 어느 순간 평소의 명치에 청하의 검집이 박혀 있었다.


“커읍!”


“비무장에 올라왔으면 바로 시작이지 기습이 어딨소.”


퍼어어어어엉!


청하가 검 끝으로 발경을 터트렸다. 살상력은 완전히 배제하고 오로지 밀어내기 위한 발경이었다.


북 터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평소의 신형이 비무대 끝으로 날아갔다. 땅에 떨어진 그는 이미 기절한 지 오래였다.


청하가 입맛을 다셨다.


“이 자리에서 비무를 요청할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청하가 조휘를 바라봤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조휘에게 향했다.


“조휘 소협. 올라오십시오.”


조휘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좋습니다.”


조휘가 청하를 향해 포권했다.


“강소에서 온 조휘요.”


“화산의 청하입니다.”




三.




“이놈아. 구를만큼 구른 놈이 어찌 그리 허술하누?”


“그러게나 말입니다. 혈마놈과 얽힌 일이라며 눈이 돌아가 버립니다.”


용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강호의 선배로선 썩 잘한짓은 아니라고 말하겠지만, 도인으로선 잘했다고 해주고 싶구나.”


곽영은 그답지 않게 굉장히 저자세였다. 이유는 곽영과 용문의 관계에 있었다.


화산의 제자는 아니었지만, 곽영은 용문의 제자였다. 정식적으로 사제의 연을 맺은 것은 아니고, 술자리에서 술 마시다가 어영부영 맺게 된 관계였다. 용문의 인격이 마음에 들어 스승으로 모시고 싶다는 고집을 부린 곽영이었고, 강호삼기를 제자로 두면 화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제자로 들인 용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선 진짜 스승과 제자 관계보다도 더 돈독한 사이가 되었으니, 과거는 둘 다 별로 개의치 않았다.


“짐승도 제 무리가 당하면 복수를 해준다. 한낱 짐승도 도리를 알거늘, 인간이 도리를 모르면 쓰겠느냐. 당연히 화를 내야하는 일이고 눈이 돌아가야 할 일이다.”


“······.”


“그런데 그 청년이 혈마와 비슷하다고 느껴질 정도란 말이지?”


곽영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무시무시했습니다. 전설 속의 천살성을 마주한다면 이럴까 싶더군요. 고작 이십 년을 더 산 녀석이 품을 살기는 아니었습니다. 전쟁통이면 모를까, 작금의 강호는 겉으로 보기엔 고요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마교가 준동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마 제가 아니었으면 선생님께서도 모르셨을 겁니다.”


“그것도 맞다.”


“그래서 이번 무림맹주 취임이 중요합니다. 제가 선생님과 함께 무림맹으로 향하는 이유입니다.”


‘어디 정착하는 것을 꺼리던 녀석이 무림맹에 정착하려고 하는 게 마교 때문이었나.’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다. 만약 곽영이 먼저 자신의 뜻을 밝혀오지 않았으면, 용문이 나서서 입맹을 권할 생각이었다.


“화종지회를 크게 연 것도, 섬서 주변에서 활약하는 무인들을 보기 위함이 아니셨습니까.”


“맞다. 섬서 근처뿐만이 아니지. 강 건너에서도 화종지회의 명성을 듣고 찾아올 무인들은 분명히 존재하니까. 중원 전체에 걸쳐서 아직 거취를 확실하게 정하지 못한 이들을 대규모로 천거할 생각이었지. 내겐 그 정도 권한은 있으니.”


도인답지 않은 발언이었지만, 곽영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그는 이미 용문의 인물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맹의 팔대 봉공 중 하나로서 내겐 무림맹의 힘을 키워야만 하는 책임이 있네. 맹의 힘이 강해져야 영향력이 커지고, 영향력이 커져야 큰일을 도모할 수 있으니.”


곽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면, 청하 녀석은······.”


용문이 혀를 찼다.


“화산의 진전을 잇지도 않는 녀석일세. 맹으로 데리고 가야지. 화산에 둘 필요가 없어. 녀석은 전장이 더 어울리는 녀석이야.”


“하지만, 청하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혹시 아는가. 이번 대회를 보고 뭔가 느끼는 것이 있을지.”


“예에.”


“뭐, 딱히 생각을 바꾸지 않더라도 맹으로는 데리고 갈 것이네. 내가 끼고 있어야지. 그럼.”


그때였다.


콰아아아아앙!


밖에서 무언가가 뻥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곽영은 그 소리가 심상치 않아서 창가로 향했고, 용문은 발경에 실린 진기를 읽어서 창가로 향했다.


‘청하?’


먼지가 피어오르는 비무장이지만, 고작 흙먼지로는 두 사람의 시선을 막을 수는 없었다.


콰앙! 차아앙!


검과 검이 부딪치는데 묵직한 둔기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퍼졌다.


“하나는 청하고······ 나머지 하나는 처음 보는 얼굴인데.”


내심 당황한 곽영의 표정을 본 용문이 물었다.


“아는 사람인가?”


“저 녀석이 조휘라는 놈입니다.”


“음?”


용문이 비무장을 바라봤다.




청하가 거칠게 검을 털자 조휘의 신형이 뒤로 삼장 물러났다. 절대적인 내력의 차이에서 일어난 결과였다.


다만, 밀려나는 와중에도 조휘는 검을 휘둘렀다. 검을 크게 털어내는 동작에는 필연적으로 빈틈이 생기기 마련.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청하라면, 빈틈이 생기기 무섭게 숨길 수 있었지만, 조휘는 그 틈을 기어코 비집고 들어갔다.


쒜에에엑!


용문의 눈에는 분명히 검을 세 번 찌르는 것이 보였지만, 울리는 파공성은 하나였다.


‘이 어찌?’


상대하는 청하보다 용문이 더 크게 놀랐다.


‘저토록 완벽한 검이라니?’


궤적은 불분명했지만, 그 검에 담긴 검의가 명확하기에 완벽한 검이다.


‘형태가 없는 검에 뜻을 담았다. 나 역시도 말년에 이르러서야 깨달은 것을, 저 어린 청년이 구사한단 말인가?’


순간, 자신이 착각한 것인가 싶었다. 어쩌다 한 번 성공한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럴 리가 없지.’


용문, 그 자신이 지금 구상하는 검학의 요체가 청하를 상대하는 청년의 검에 묻어났다.




“······.”


청하가 조휘를 노려봤다. 조휘는 덤덤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손이 떨리는 것을 숨길 수는 없었다.


“무지막지한 내력이군요. 무척이나 정순하지만 그 양도 방대합니다. 마치 투명한 대해를 보는 것 같습니다.”


“고맙네요.”


“대해라면 탁할 법도 하건만, 그 어찌된 정순함입니까.”


“화산의 덕이지요.”


조휘가 싱긋 웃었다.


“화산이 자랑하는 매화검은 보여주지 않으실 겁니까?”


“매화검을 손에서 놓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럴 리가요.”


조휘의 눈에 시퍼런 빛이 맺혔다.


“도장께서 휘두르는 검에 화산 검의 요체가 다 묻어나는데 이 어인 소리십니까.”


“······!”


“뭐, 좋습니다.”


조휘가 자세를 잡았다.


“유성개벽검이라는 검법입니다. 총 열초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세장의 비기가 있습니다.”


“진심으로 오실 생각이십니까?”


조휘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진심이 아니었던 적이 없습니다.”


번쩍!


조휘의 몸에서 빛무리가 터져 나왔다.


성광류(星光流), 성광삼보(星光三步).


청하의 시야를 빼앗음과 동시에 올곧은 유성의 궤적인 성광일보로 그와 거리를 좁혔다.


둘이 서로 근접한 그 순간, 청하의 손이 기이한 궤적을 그렸다. 시퍼런 장력이 조휘의 상반신 전체를 덮었다. 극에 달한 매화산수(梅花散手)였다.


지근거리에서 터진 장력은 순식간에 백 개가 넘는 분광으로 변했다. 그 모습이 마치 매화가 바람에 날려 흩어지는 광경 같았다.


청하가 위에서 아래로 곧게 검을 휘둘렀다. 얼핏 보기엔 그저 휘두른 힘없는 검처럼 보였지만, 그 속에 담긴 기의 운용은 차원이 달랐다.


유성개벽검(流星開闢劍) 제일초(第一招). 종각(縱刻).


별빛을 담은 검이 허공에 길다란 자국을 새겼다. 검에 둘러진 검기는 분명히 백색이지만, 허공에 남은 궤적은 검푸른 빛이었다. 마치 밤하늘처럼.


공간이 잘려 나간 듯한 광경에 청하는 그 검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매화산수의 장력이 검푸른 검기 앞에서 갈려 나갔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장력을 멍하니 보고만 있을 정도로 청하는 멍청이가 아니었다.


청하의 검에 붉은색 검기가 타올랐다. 단단한 검기가 아닌 불꽃의 형상이었다.


검화(劍火).


일반적으로 검화라고 하면, 검강에 이르지 못한 검수들이 더 강한 출력을 내기 위해 기를 무리하게 투입하다가 검기를 완전히 통제하지 못해 흘러나오는 것을 뜻했다.


그러나 청하의 검화는 그것과 차원이 달랐다. 일렁이는 불꽃이지만, 일점의 낭비가 없었다. 순전히 청하의 의지에서 피어난 검화란 뜻이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검강!’


조화경의 상징이라는 검강으로 향하는 길을 이미 밟고 있다.


조휘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아, 당신은.’


청하의 검화가 조휘의 검력을 정면에서 깨부쉈다. 검푸른 검기가 홍매화를 닮은 붉은색 검화에 휩싸여 불타는 것이 꽤 아름답다고 생각한 조휘가 검을 휘둘렀다.


유성개벽검의 삼초, 육검일전(六劍一電)이었다.


쒜에엑!


조휘의 검에서 출발한 여섯 개의 검기는 청하의 코앞에서 하나로 합쳐졌다. 그것이 꼭 하나의 번개 줄기를 보는 것 같았다.


하나의 검기라면 코웃음을 치며 막아냈겠지만, 여섯 개의 검기가 한 대 뒤섞이자 검력이 증폭되었다. 그렇기에 막아내기 힘들었다.


“하압!”


청하가 검을 흩뿌리자 뇌전이 움찔거렸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쒜에에엑!


다시 휘둘러진 조휘의 검에 청하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여기서 또 휘두른다고?’


콰릉!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기 무섭게 막아내고 있던 뇌전이 세 배는 무거워졌다.


‘죽는다.’


검격을 날려놓고 무심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조휘의 싸늘한 눈동자를 보자 든 생각이었다.


쒜에에엑! 콰릉! 콰르릉!


‘저자는 내공이 무한이란 말인가!’


지금 이 상황이 비무라는 것은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살아남아야겠다는 본능이 몸을 지배했다.


‘죽는다!’


조휘는 검을 거둘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막아낼 수 있잖습니까?”


청하의 눈에 비친 조휘는 분명 그리 말하고 있었다.


“막아내지 못하면 죽을 거요.”


다시 검이 휘둘러졌고 조휘의 싸늘한 목소리가 청하의 귓가에 천둥이 되어 내리꽂혔다.


“진심으로 하란 말이오!”


“으아아아압!”


청하의 몸에서 붉은색 파동이 터져 나왔다. 평소에 두르고 다니던 매화심공의 기운이 아니었다. 화산 장문의 상징이라는 자하신공의 붉은 기운이 청하의 검에 덧씌워졌다.


그리고 그 순간 청하의 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휘는 시간이 느려진 것 같다는 착각을 받았다.


느려진 시간 속에서 또렷하게 움직이는 것은 자신의 두 눈알과 청하의 검뿐이었다.


붉은색 궤적이 하늘을 수놓는다. 인간의 인지를 벗어난 속도의 검은 지치지도 않는 듯 무한정 휘둘러졌다.


‘나무.’


조휘의 눈에 비친 청하는 나무가 되었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나무가 거칠게 흔들렸다.


피어난다.

시리도록 아름다운 매화가.


“피워내라.”


쒜에엑! 콰릉!


조휘는 자신이 바람이 되어주고자 했다.


“피워내!”


바람에 나무는 매화를 털어냈다.


‘아름답다.’


시간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싸늘한 정적. 바람결에 느껴지는 관중들의 경악. 멀리서 지켜보는 절대자의 시선과 흥분으로 가득찬 상대의 숨소리. 거칠게 고동치는 내 심장. 바람결에 흩날리는 매화잎.


그 모든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조휘는 잠시 검을 내려두고 세상을 뒤덮은 꽃잎의 파도를 바라봤다.


불안한 세상 속에서 더 불안한 꽃이 펴있었다.


-세상이 불안하다고 해서 꽃이 피어나지 않던가? 기어코 도래한 봄이면, 꽃은 피기 마련이지.


늙은 도사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아름다워.’


청하가 거칠게 숨을 쉬었다.


“······.”


비무장은 붉은 꽃잎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 속에서 과거의 스승과 제자가 눈을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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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타초경사 (2) +2 23.09.12 2,364 38 14쪽
41 타초경사 (1) +3 23.09.11 2,505 44 14쪽
40 천하를 거닐며 칼춤을 추다 (2권 完) +5 23.09.09 2,682 52 25쪽
39 비와 주먹과 사나이 (5) +2 23.09.08 2,533 46 14쪽
38 비와 주먹과 사나이 (4) +2 23.09.07 2,502 4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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