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무사가 회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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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31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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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31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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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30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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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매화검 (8)

DUMMY

一.




“그래. 너는 이전에도 봐줄 만했지만, 지금은 더 봐줄 만하구나. 조 소협에게 화산이 큰 은혜를 입었어.”


청하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립의 나이에 조화경이라······ 강호 전체를 뒤져보아도 너만큼 빠른 성취는 없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용문이 눈을 가늘게 좁히고는 청하를 바라봤다.


“무엇이 이리도 오래 걸리는가 싶었거늘, 그 수준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모두 다 얻고 나온 것이었나.”


청하가 지긋이 웃었다.


“그렇습니다. 조휘 소협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비무를 하는 와중에도 제 전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그것으로 모자라서 저의 부족한 부분도 매워 주셨지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깨달음은 검으로 전달해주셨으니, 이 어찌 큰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가만히 듣고만 있던 곽영이 둘 사이에 껴들었다.


“그래서, 이놈아. 네가 깨우친 조화는 무엇이더냐.”


청하가 더없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화산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자고 나란. 그리고 앞으로 함께 커갈, 우리의 화산을요.”



二.




“허어.”


용문이 오랜만에 찾아온 조휘를 보며 탄식을 터트렸다.


‘고작 사흘만에 기도를 완벽하게 정리해서 돌아오다니. 그때는 무척 불안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도다. 그러나 경지가 엄청나게 상승했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실로 대단한 깨달음을 얻었나 보군,’


경악한 것은 용문만이 아니었다. 곽영도, 어느덧 정신을 차린 청하도, 그 옆에서 조용히 차를 우리던 백표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다 장문인의 배려 덕입니다.”


“아닐세. 나와 제자가 빚을 졌으니, 마땅히 갚아야 하는 것이었네.”


“강호에는 그 마땅한 도리를 지키지 않는 자들이 너무 많아서 말이지요.”


“······그것도 맞지.”


조휘가 품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잘 읽고 돌려드립니다.”


“깨달을 건 다 깨달았는가?”


조휘가 덤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멀었습니다.”


“마음에 별을 품었군. 그 멋진 심공의 이름이 무엇인가?”


한참을 고민하던 조휘는 용문을 돌아보며 작게 웃었다.


“성광만천공(星光滿天功). 온 하늘을 뒤덮는 별빛이라는 뜻입니다.”






三.




더는 화산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조휘는 빠르게 짐을 싸서 떠나고자 했다. 두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앞으로 열흘 뒤 면 무림맹 입맹 시험이 있었다.


다행히도 화산과 한중은 가까웠다. 그리 힘들이지 않고도 여유롭게 가고도 남을 거리였다.


‘예로부터 유비무환이라 하였다.’


미리 준비되어 있으면 근심할 것이 없다. 오랜만에 찾는 한중의 거리를 살피고, 무림맹 내부의 동태를 살펴둔다면 입맹 시험에서 꽤나 큰 이점을 가질 수 있을 터였다.


조휘는 그가 약관일 때의 상황은 몰랐다. 그에게도 처음 걸어보는 길인 것이다. 긴장되는 것이 당연했다.


오히려 회귀한 무림맹주 였기에 더욱더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영웅들이 지금도 있을 것인가. 아무도 없는 무림맹에서 홀로 모든 것을 이뤄내야 할 것인가.


도와줄 조력자도. 믿고 등을 밀어주는 동료도 없다.


이제부터 조휘는 모든 것을 혼자 해야만 했다.


물론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지만, 앞으로는 조금 달라져야만 했다. 등을 믿고 맡길 동료. 함께 달려나갈 전우를 고르기 위해서라도 조휘는 입맹 시험에 허투루 임할 생각이 없었다.


“가시는 겁니까.”


조휘는 화산의 산문에서 익숙한 얼굴과 마주했다.


“청하 도장.”


“진짜 가시렵니까.”


“너무 늦었습니다. 무림맹 입맹 시험을 봐야 해서요. 지금쯤 출발하지 않으면 좋은 자리는 다 뺏길 겁니다.”


“좋은 자리라······. 이미 알고 계시는 군요.”


“아무런 정보도 없이 갈만큼 멍청한 놈은 아니라서요. 제게 이것저것 알려주는 발빠른 놈이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가시는 길을 막을 수 없다면······ 부탁 하나 드리겠습니다.”


스르릉.


청하가 검을 꺼내 조휘에게 겨눴다.


“일전에 제 패배로 끝난 승부, 다시 한번 겨뤄주십시오.”


“······.”


자신을 유심히 바라보는 청하의 눈에는 어떠한 감정도 엿볼 수 없었다. 이것도 일종의 반박귀진이다. 청하의 무공이 경지에 달했다는 방증이었다.


조휘는 호기심이 들었다.


이전보다 훨씬 빨리 꺼내든 매화검과 자신이 전해준 깨달음이 있다. 그것을 바탕으로 조화의 경지를 돌파한 천재 검수는 과연 나에게서 무엇을 얻어갈 수 있을 것인가.


과연 나의 성광류는 이전보다 발전했을까, 아님 퇴보했을까.


“소협의 무공이 이전과는 격이 다르게 성장했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을 풀어보고 싶은 욕심도 있을 터. 저라면 소협의 모든 것을 받아주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조휘가 고개를 저었다.


“도장으로도 부족합니다.”


지극히 오만한 발언이었지만, 청하는 내심 인정했다. 불가해한 모습을 보여주는 저 사내라면 지금의 자신으로선 턱없이 부족할 수도 있었다.


“아직 깨달음을 다 수습하지 못하신 것 같습니다. 더 무리하다간 찾아올 대오(大悟)마저도 놓칠 수 있습니다.”


“대오가 따로 있어서 대오인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검을 겨루고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간 것이 쌓이고 쌓여 대오가 되는 것이지요.”


조휘가 피식 웃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럼 자리를 한 번 옮겨볼까요?”


조휘는 청하를 따라갔다.


높은 절벽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화산파 전체가 다 눈에 들어왔다.


“아름답지 않습니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입니다.”


“화산파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군요. 사형제들이 수련하는 연무장이 가장 잘 보이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기억 속의 청하는 화산을 그리워했다. 사형제들에게 못 해준 것이 너무 마음에 걸린다며 밤마다 술을 마시고 찾아와 눈물을 쏟아내던 못난 사부였더라지.


“하하······.”


“뭐, 좋습니다. 실전으로 하시렵니까. 아니면 비무로 하시렵니까.”


“싸움에 비무가 어딨고 실전이 어딨습니까. 나는 소협과 싸우려고 찾아왔습니다.”


“그렇다면.”


휙!


조휘가 품에서 비수를 던졌다. 하나처럼 보이던 비수는 허공에서 세 개로 나뉘었다. 날아가는 속도가 다 제각기라 방어하기 힘들 법도 한데, 청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손을 털어서 비수를 수거했다.


비수를 쏘아낸 조휘는 곧바로 몸을 움직였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는 걸음은 성광일보였으며, 용천혈에 기운을 집중, 터트림으로써 시선을 뺏는 것은 성광삼보였다.


순식간에 일보에서 삼보로 전환한 조휘는 다시 성광사보를 밟았다.


거리를 좁히고 시야를 앗아갔으면, 다음 차례는 공격이다. 별빛의 네 번째 걸음은 끊임없이 흐르는 강줄기와 같은 움직임을 그렸다.


움직이는 방향을 읽을 수 없었다. 매 발걸음이 진각이었기에, 땅의 진동을 이용해서 상대의 균형을 빼앗았다.


순식간에 팔방을 점한 조휘가 하늘 위로 솟구쳤다. 팔괘의 정가운데 일점을 향해 검을 찔러 넣으니, 아홉명의 조휘가 나타난 것 같았다.


순간 청하는 조휘의 움직임을 보고 소림의 전설, 연대구품을 떠올렸다.


‘그럴 리가.’


청하는 어떻게든 대처하고자 했지만, 구방을 점하고 다가오는 조휘를 막아낼 방도가 보이지 않았다. 공격을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는 검이라니, 이런 불공평한 검이 있나 싶었다. 그러나 동요하지 않고 스스로의 깨달음을 풀어냈다.


“하아압!”


청하의 몸에서 붉은 파동이 퍼졌다. 왼손과 오른손의 장심에 자하기를 압축, 두 손을 부딪치자 응축된 기운이 터져 나왔다.


‘음이 양이되고 양이 음이 된다는 것이 저런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었군.’


청하의 왼손과 오른손의 진기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에는 양이었다가 또 어느 순간에는 음이 되었다. 양과 양, 음과 음이 만날때는 미친듯한 척력이 발생했고, 양과 음이 만날때는 인력이 발생했다.


끊임없는 인력과 척력의 대조는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균형을 이뤘다.


“이건 조금 위험할 겁니다.”


“들어오십시오.”


조휘가 껄껄껄 웃었다. 그러나 속으로 내심 긴장한 그였다.


‘미친!’


경악스러운 진기 운용이었다. 균형을 이룬 보랏빛 기운은 구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내부에서 얇은 실 같은 것이 회전을 거듭하고 있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 하나하나가 검사(劍絲)임을 알 수 있었다.


저것이 터지기라도 한다면, 반경 수십 장은 그대로 소멸할 것이었다.


“천광일월(天光日月).”


청하가 나지막이 말한 그 순간, 장력이 조휘에게 날아갔다. 엄청나게 느린 속도로 날아갔지만, 조휘는 구체가 날아가는 공간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엄청난 흡인력이 구체에서 발생해서 조휘를 끌어당기고 있는 것이다.


으득!


이를 악문 조휘가 힘들게 검을 올렸다. 검을 든 왼손은 뒤로 쭉 당겼으며 검 끝을 앞을 보게 하고 오른손 검결지를 검 위에 올려둔 상태.


일전에 흑사문을 멸문시킬 때 사용했던 만상개벽세의 준비 자세였다.


청하는 조휘의 자세를 보자마자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만상개벽세.”


조휘가 거칠게 읊조리며 검결지를 앞으로 쭉 뻗었다. 검결지가 훑은 검신은 백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촤아아아아아앙!


검결지와 검의 공명에서 비롯된 검명이 청하의 고막을 강타했다. 그 탓에 순간적으로 진기 운용을 실수할 뻔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고통을 참은 청하였다.


그리고 그 순간 조휘의 검이 내질러졌다.


이전과는 다르게 백색의 소용돌이는 없었다. 모든 힘이 얇은 검 한 자루에 응축되어 있었다. 그 힘의 밀도가 어찌나 대단한지, 검이 천근보다도 무거워졌다.


번쩍! 콰과과과과과─


빛이 터져나옴과 동시에 상고 시대의 거인, 반고의 검격이 휘둘러졌다. 만상을 일깨우는 전설의 검격이 다시 한 번 현현한 것이다.


천광일월과 만상개벽세가 중간에서 충돌했다. 둘 사이에 기묘한 역장이 생기더니, 서로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으아아아압!”


“흡!”


역장 속에서 천광일월과 만상개벽세가 계속해서 부딪혔다. 누구 하나라도 의지를 가지고 조종하지 않았다면, 이미 두 사람이 서 있는 절벽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터였다.


“허억.”


“후우.”


청하의 천광일월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물론 조휘의 만상개벽세 역시 마찬가지였다.


잠시 소강상태로 들어간 둘은 서로를 탐색했다.


“굉장합니다. 그것이 이번에 깨달은 것입니까?”


조휘가 묻자 청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능력이 부족해 사용하지 못했던 자하신공의 절초입니다.”


“조화경을 돌파한 무인은 심상세계를 현현시킬 수 있는데 말입니다. 제가 수련하는 두 달동안 청하 도장은 심상의 현현을 이뤄내셨는지가 궁금합니다.”


조휘가 껄껄 웃으며 검을 겨눴다.


“그거 안 꺼내면, 이번에 죽을지도 모릅니다.”








四.




심원공이 아니었다. 성화만천공으로 펼쳐낸 만상개벽세는 가공할 정도의 위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만상개벽세는 어디까지나 유성검의 절초일 뿐,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조휘의 장기는 일격필살의 절초를 끊임없이 난발하는 데에 있었다. 한마디로 조휘의 진가는 일격필살이 아닌 연환식에서 나타났다.


“가오.”


다시 조휘가 성광일보를 밟았다. 유성이 꼬리를 늘어뜨리듯, 조휘의 신형이 주욱 늘어났다.


잘못 보면 이형환위로 착각할 정도로 엄청난 속도였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조휘가 청하와 비무하며 처음으로 썼던 수법을 펼쳤다.



유성개벽검(流星開闢劍) 제일초(第一招). 종각(縱刻).



청하는 어디서 본 듯한 검결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때의 그!’


극성의 매화신수를 일격에 파괴한 검격이었다. 가까스로 검화를 피워서 태울 수 있었던 검격인데, 이전과는 그 깊이가 차원이 다른 것 같았다.


‘검화로 대처하면 잡아 먹힌다.’


그러나 조휘의 검은 한 번이 끝이 아니었다.


“죽는다고.”


순식간에 청하의 뒤에서 나타난 조휘. 성광오보(星光五步)였다. 음습한 뱀이 기어가듯, 상대의 사각으로 움직인 조휘가 연달아 검을 세 번 휘둘렀다.


쒜에에에엑!


종각의 검격이 네 갈래에서 날아왔다.


“방심하지 마시오.”


네 갈래의 검격은 한 줄기의 검뢰(劍雷)로 화(化)했다.


유성검의 삼초, 육전일검의 묘리를 이용한 것이었다.


순식간에 하나가 된 종각의 파괴력은 이전과 비 할 바가 아니었다.


‘어떡하지. 검강? 아니면 매화만리향? 절초를 꺼내야하나?’


청하의 고민을 부순 것은 조휘의 한 마디였다.


“꺼내시오. 당신의 세계를.”


청하는 주저하지 않고 목소리를 뱉었다. 목소리에 실린 진기는 상단전의 영력을 자극했다. 상단전이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청하의 심상 속에 거대한 산이 나타났다. 천천히 기지개를 켠 상단전이 자신의 법칙을 세계에 관철했다.


“심상구현(心想具現).”


그 순간, 세상이 멈췄다.


종각의 네 줄기 검격이 공중에서 찢겨나가며 사라졌다.


“화산도경(花山圖鏡).”


어디선가 불어온 매화향을 머금은 바람이 조휘를 부드럽게 밀어냈다.


바람은 매화향만 품고 온 것이 아니었다. 무수히 많은 꽃잎이 강을 이뤘다. 세상이 온통 붉었다.


그리고 붉게 물든 하늘 아래, 거대한 산이 우뚝 솟았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산이었다. 조휘는 그곳이 화산임을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


조휘가 주변을 둘러봤다. 매화가 만개한 숲. 그곳의 하늘에 노을이 지고 있었다. 분명 태양이 짱짱한 대낮이었건만, 노을이라니.


‘제대로 전개했군.’


하늘을 수놓은 것은 별이 아니라 매화였다. 세상을 뒤덮은 꽃잎은 그 자체로 청하의 영역이 되었다.


그 속에서 청하는 오롯한 세상의 주인이 되었다.



심상구현(心想具現), 화산도경(花山圖鏡).



기실, 초절정의 극을 달리는 고수와 조화경의 초입을 밟은 고수의 차이는 크지 않다. 내공을 운용하는 능력도 고만고만하고, 그 수준도 고만고만하다.


조화경의 무인이 초절정의 무인과 구분되는 것은 다른 게 아니었다. 오로지 이것 하나 때문에 초절정의 무인은 조화경의 무인을 이길 수 없었다.


자신의 영역 안에서만큼은 신선의 위용을 뽐낸다. 그것은 절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이 세계에서만큼은 청하는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만들 능력이 있었다.


“후우······.”


달콤한 쾌락이 숨소리에서 묻어났다. 심상을 현실로 현현시키는 과정에서 엄청난 고양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청하가 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자 그곳에 매화잎이 날아왔다. 그것은 이내 검의 형상이 되었다.



“화산도경, 매화검란휘(梅花劍亂揮).”



꽃잎으로 이뤄진 무형검 세 자루가 청하의 등 뒤에 나타났다. 청하가 매화검법을 펼쳐내니 허공의 검이 유유히 움직여 또 다른 매화검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하나의 검에는 하나의 매화검이 담겼다.


조휘는 다가오는 매화검을 보며 생각에 빠졌다.


‘어디서 본 적이 있는데 말이야.’


첫 번째 매화검의 초식은 화산파 장로 매화일절의 그것을 닮아있었다.


두 번째 매화검의 초식은 그의 사제, 백표의 철매검을 닮아 있었다.


세 번째 매화검의 초식은 그의 스승, 용문의 자하검을 닮아 있었다.




“허!”


무언가를 깨달은 조휘가 대경실색했다.


화산도경. 화산을 거울로 비춘 듯한 그림이라는 뜻이었다. 그것은 다른 게 아니었다. 청하가 애정을 갖고 살피던 화산의 모든 게 이곳에 있었다.


청하의 심상은 곧, 당대의 화산이었다.


“······화산.”


조휘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화산이 이곳에 있구나.”


조휘는 아주 작게 입을 달싹였다.


무수히 많은 매화의 난격이 조휘를 휩쓸었다.


서걱!



.

.

.

.

.



매화검란휘의 폭풍이 조휘를 뒤덮기 직전.


갑자기 느려진 시간 속에서, 조휘는 과거의 언젠가로 돌아가 있었다. 그의 앞에는 등을 돌린 청하가 있었다. 그는 무척이나 밝게 빛나는 하나의 별을 구경하고 있었다.


조휘는 잠시 주저하다가 작게 웃으며 청하를 불렀다.



사부.



그러자 과거의 청하가 뒤를 돌아봤다. 어딘가 나이를 많이 먹은 것 같은 그의 얼굴. 피부는 여전히 탱탱했지만, 눈가가 깊어지고 현기가 느껴졌다.


조휘는 과거의 청하에게 술잔을 건넸다.



드시오.



청하는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잔을 받았다. 조휘를 물끄러미 보던 청하는 병을 뺏어 조휘에게도 술을 따랐다.



어떠셨소? 당신의 화산은.



청하는 말 없이 빙그레 웃었다. 그러고는 단숨에 잔을 비워냈다.


그 한 잔에 미련을 털어 넘긴 청하는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 그 미소는 한이 풀린 자의 속이 후련한 미소였다. 그가 조휘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사랑했던 화산이 이곳에 있구나. 칼끝에 화산을 묻었으니. 죽어도 화산을 잊지 않을 수 있겠어.



조휘의 심상은 어두운 밤하늘.



잘 가시오. 사부.



청하와 함께 보고 있던 밝은 별 하나가 졌다. 눈앞에 남아 있던 과거의 청하는 온데간데없었다. 조휘는 속이 후련해짐을 느낌과 동시에 아쉬움을 느꼈다. 더는 사부를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가슴을 가득 채우는 고양감을 느꼈다. 조휘가 바라보는 밤하늘 저편에서 붉디 붉은 별 하나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어서 오시게. 청하 도장.


그 무엇보다 찬란하게 빛나는 붉은 별이 빈자리를 채웠다. 조휘는 이제 아쉽지 않았다.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 했던가?


오래된 옛 친구가 떠나감과 동시에.

조휘에게 새로운 별이 찾아왔다.


무척이나 밝고. 따듯한 붉은 별이.


밤하늘이 조금이나마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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