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무사가 회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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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31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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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31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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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2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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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에 오르다 (3)

DUMMY

一.




“저는······.”


조휘가 주저했다. 곽영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강호삼기로 불리지만, 내가 그 정도까지 막가파는 아니야.”


“······.”


“그저 해본 제안이니 한 번 고심해보거라.”


“예에,”


조휘는 그저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서로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몇 마디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한, 세 사내는 함께 담소를 나눴다. 그러길 잠시 곽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스으으읍!


곽영이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화산이 쩌렁쩌렁 울릴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오늘 술은 이몸이 사겠소! 마음껏 드시오!”


“우오오오오오! 대협. 대협이다!”


“잘 먹겠소이다!”


곽영이 킬킬 웃었다.


“너도 어서 들거라.”


“아, 예.”


곽영은 자신 앞의 술잔에 술을 따라서 조휘에게 건넸다. 조휘는 그것을 잠시고 바라보다가 한 번에 들이켰다.


츄릅.


어디선가 침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두 사람은 애써 무시했다.


“거······ 선생님. 저도 한 잔 주시면 안됩니까?”


“아니, 이 새끼가! 화산 밖이면 모를까, 안에서는 진짜 안 된단 말이다.”


“아, 한 잔만······. 한 잔. 아니 한 병······ 만!”


청하가 곽영이 쥔 술병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놈이!”


곽영의 손이 이러저리 휘어졌다. 마치 사자의 갈기가 바람에 휘날리는 듯한 광경이었다. 두주불사 곽영의 성명절기, 흑사자권이었다.


보법과 권법, 금나수법과 각법, 그것을 아우르는 심법까지.


외가 공부와 내가 공부를 총망라한 절세의 신공이 강호삼기, 곽영의 손에서 펼쳐졌다. 그러나 그것을 따라가는 청하의 손놀림도 예사롭지 않았다.


‘죽엽수(竹葉手)!’


은은한 푸른빛이 도는 손의 움직임은 잎을 흔드는 바람의 움직임과도 같았다. 만약 청하가 죽엽수를 극성으로 펼쳐냈다면, 주위의 반경 십 장이 장심에서 뿜어진 장력으로 뒤집혔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힘이 청하의 손가락에 집중되어 있었다. 본디 장법이었던 죽엽수를 금나수처럼 펼쳐낸 것이다.


본디, 장법은 적을 타격하는 데에 치중하고 금나수법은 적을 제압하는 데에 치중한다. 때문에 장법과 금나수법은 그 구결과 무공 자체의 본질이 다르다.


그러나 청하의 손에서 펼쳐진 죽엽수는 장법의 묘리를 그대로 머금고 있되 금나수의 성질도 머금고 있었다.


만약 이 자리에 화산파의 장문인, 용문이 있었다면 청하의 손놀림을 보며 박수를 쳤으리라.


“주십시오!”


휘리리릭!


두 사람의 손이 어지럽게 뒤섞였다.


“안 된다! 이놈아!”


뒤섞이는 손 사이에 기이한 와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손과 손이 부딪히며 터지는 기파가 두 손의 흐름을 따라 일렁이기 시작한 것이다.


둘 사이의 와류를 가장 먼저 눈치챈 것은 당사자들이 아닌 조휘였다.


“실례들 하겠습니다.”


나지막이 울려 퍼지는 목소리보다 그의 손이 몇 배는 더 빨랐다. 순식간에 흐름을 읽고 두 사람 가운데에 손을 집어넣은 조휘가 거세게 주먹을 쥐었다.


파칭! 후우우우웅!


그러자 두 사람을 중심으로 강한 바람이 퍼져나갔다. 곽영과 청하의 머리칼이 하늘로 솟구쳤다.


청하는 이미 한 번 본 수법이라 크게 놀라지 않았지만, 곽영은 아니었다.


무언가가 번쩍이는 순간 손이 자신과 청하 사이에 껴 있었다. 터무니없는 속도는 물론이거니와, 그 흐름을 읽고 일말의 동요도 없이 손을 집어넣은 배포가 무척이나 기꺼웠다.


“말려줘서 고맙습니다.”


“큼큼. 추태를 보였구먼.”


조휘가 살짝 웃었다.


“아닙니다.”


청하가 투덜거렸다.


“그니까, 한 잔만 주십시오.”


“아니······.”


조휘가 곽영에게 말했다.


“그 술병, 저에게 주시지요.”


“아?”


멍청한 표정을 지은 곽영이 조휘에게 술병을 건넸다.


“이러면 되는구먼. 나이가 드니, 생각이 점점 짧아져.”


“그냥 주기 싫은 거면서. 나이 자시고 잔꾀만 늘어.”


곽영이 청하의 뒤통수를 후렸다.


빠악!


“아아악! 왜 때리십니까?”


“그냥 처 맞아, 이놈새끼야. 아니. 죽어. 죽어!”


빠악! 빠아악!


청하는 맞는 와중에도 손을 뻗어 피해를 최소화했다.


“어쭈. 선생님이 가르침을 내리는데, 막아? 막아아?!”


“그, 그만.”


곽영이 청하를 한동안 두들겨 팼다.


“쿨럭. 내, 내상 입었어. 내상 입었다고옥!”


“허억. 허억. 고놈새끼. 나이 처먹더만 더럽게 강해졌네. 나 몰래 만년화리라도 처먹었냐? 뭔놈의 반탄력이 이리 강해. 못 본 사이에 일취월장했구먼.”


곽영의 손에서 벗어난 청하가 조휘에게 술잔을 흔들었다.


“빨리. 빨리!”


쪼르르륵. 꿀꺽.


“캬하아아아!”


극상의 쾌락이 묻어나오는 신음이었다.


“거······ 도사가 그래도 되는 겁니까?”


“도사는 뭐, 감각이 없답니까?”


세 사람이 껄껄 웃었다.


“자. 이번에는 내가 자랑하는 빙주(氷酒)를 맛보여주마.”


“오오오. 오오오오!”


청하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곽영을 바라봤다.


스슷. 스스스슷.


순식간에 술병에 서리가 맺혔다.


“자, 다들 들지.”


곽영의 내공으로 술은 속이 뒤집어질 정도로 차가웠지만, 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럼 다음에는 제가 따숩게 덥혀 드리겠습니다.”


먼저 나선 것은 조휘였다.


“한참 신나게 칼춤 추다가 이거 한잔 들이키면 뻐근한 속이 싹 풀리더군요.”


경험담이었다.




“이번에는 제가!”


청하가 품에서 작은 병 하나를 꺼냈다. 갑자기 실실 웃기 시작한 그가 조휘와 곽영의 머리를 가까이 모았다.


“이건 비밀인데······ 장문인 처소에서 하나 꿍쳐온 겁니다.”


곽영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청하를 바라봤다.


“이, 이······ 미친 새끼.”


조휘만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매화주정(梅花酒精)! 그걸 훔쳐!”


아는 사람들만 아는 용문진인의 은밀한 취미였다. 매실로 술을 담는 것인데, 그의 솜씨가 일류 조주사(造酒士)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다는 소문이 은밀하게 돌았다.


용문진인은 그가 만든 술에 매화수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그것을 만드는 원료가 바로 매화주정이었다. 오래 묵힌 것은 그 속에 영성이 깃들어 영약이 되기도 한다나 뭐라나.


“하하하. 언젠간 걸리겠죠.”


청하가 비릿하게 웃었다.


“걸리기 전에 먹어 치우면 완전범죄입니다.”


곽영의 얼굴에 흥분이 감돌았다.


“어서 내놓거라. 어서!”


세 사람의 술자리는 밤이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모두 무인들이라 쉽사리 취하지 않았다. 내공으로 주정을 뽑아내지도 않았는데도 세 시진은 넘도록 술판을 벌였다.


가장 먼저 쓰러진 것은 청하였다.


“거······ 시발. 더럽게도 잘 처먹네. 돼지새끼들.”


쿠웅.


곽영이 혀를 찼다.


“저저. 싸가지 없는 스애끼.”


두주불사라는 이름이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곽영의 혀가 꼬였다. 그것은 그들의 술자리가 무척이나 빨랐기 때문이다. 일 분이 지나기도 전에 짠을 하고, 다시 일 분이 지나기도 전에 짠을 했다.


그렇다고 깔끔하고 고급진 술을 진득하게 마셨나? 그것도 아니었다. 싸구려 백주랑 죽엽청을 섞어 먹기도 했고, 그냥 독주를 퍼먹기도 했다.


그리 마시니 제아무리 두주불사의 곽영이더라도 취기가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앞에 앉아 있는 조휘는 무척이나 평온했다.


“너. 왜 안 취하냐?”


“취했습니다.”


“말짱해보이는데?”


“취했습니다.”


“흠······.”


“취했습니다.”


다만 티가 나지 않을 뿐, 조휘도 무척이나 취한 상태였다. 다행히 심원공의 신묘한 공능이 그의 정신을 강제로 붙들어놨을 뿐이다.


어쩔 수 없었다. 설령, 약에 취한 상황이더라도 살기를 느끼면 정신을 일깨워야 했던 살벌한 전장에서 수십 년을 살았다. 고작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을 수준은 한참 전에 벗어났다.


몸과 정신은 하나.


그렇기에 조휘의 몸은 취하되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곽영은 조휘의 상태를 훤히 내다볼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놈아. 가끔은 그냥 내려놓을 필요도 있어.”


“······.”


“뭐. 얼굴 곱상하게 생긴 놈이······ 속에 뭐 그리 무시무시한 살기를 품고 살아가는 지는 모르겠다만, 너도 어지간히 험한 인생을 살았지 싶다.”


곽영이 홀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가끔은. 기댈 곳도 필요한 법이야. 강호에서 마음 맞는 사내들끼리 만나 술잔을 기울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멋진 사내들끼리 술을 마시는 날에는 코가 삐뚤어질 때까지 처먹고 다같이 뒈져버리는 거야.”


“쿠울.”


곽영이 입맛을 다셨다.


“쩝. 기절했구먼.”


그가 기지개를 켰다.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잠든 두 사람을 보던 곽영이 홀로 술잔을 기울였다.


밤이 깊어가고.


모두가 잠들 시간.


곽영은 두 사람 앞에 술을 따르고는 병나발을 불었다.


‘참······ 신기한 놈들이야.’


두주불사(斗酒不辭).


‘오늘따라 보고 싶은 사람이 참 많아.’


쪼르르륵.


“떼잉. 쯧. 나도 나이를 처먹었나.”


사나이가 마신 술은 술이 아니라 눈물이었다.





二.




‘꿈?’


현실이 아님을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진법이라고 하기엔 너무 생생하고, 현실이라고 하기엔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기억인가.’


기억이 꿈으로 나타난 것이다.


언젠가의 혈전. 참 많은 수하를 잃었던 그때로 돌아가 있었다.


‘······.’


시체가 이곳저곳에 아무렇지도 않게 널브러져 있었다. 생존자는 끽 해봐야 백 안팎이다. 천이 넘는 인원이 때거지로 몰려갔지만, 살아남은 생존자는 그 자신을 포함해서 백도 되지 않은 것이다.


생존자는 말 그대로 살아남은 자들이었다. 이겨낸 자들이 아니란 말이다.


분명히 그들은 전투에서 이겼다. 그러나 졌다. 눈동자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어딘가 공허한 눈동자가 허공을 맴돌았다.


무언가를 찾는 애처로운 손짓이 허공을 갈랐다. 아무것도 부여잡지 못한 손은 허무한 궤적을 그리며 스러졌다.


툭.


떨어진 팔이 떨려왔다.


“왜.”


목이 잔뜩 쉰 사내가 안간힘을 다해 목소리를 쥐어 짜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이리 싸운단 말입니까.”


“······.”


대답해줄 수 있는 아무도 없었다. 단 한 명, 그들을 이끌던 대장을 제외하면.


“대장. 저놈들은 왜 죽어야만 했습니까.”


꿈속의 조휘는 이렇게 말했다.


“그것이 전쟁이니까.”


“······.”


조휘 역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다른 여구(麗句)는 필요가 없었다. 어떤 행동보다도 그의 진심이 묻어나는 것은 목소리였다.


절절한 목소리는 그 누구보다도 쉬어있었다. 그들 앞에서 한 번도 울지 않았던 대자의 목소리에는 항상 물기가 가득했다.


전투가 끝나고 나면.


“그게 전쟁이니까.”


“······.”


애처롭게 떨리는 사시나무보다도 그의 목소리가 더 애처로웠다. 이 자리의 어느 누구도 조휘의 책임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부채감을 덜어줄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대장. 나는 모르겠습니다. 저놈들이 이곳에서 의미 없이 뒤져도 기억해주는 이가 있답니까? 한창 꽃을 피울 나이 아닙니까. 무인으로서 절정인 나이가 아닙니까! 여기서 죽어선 안 될 놈들 아닙니까!!”


사내가 흐느꼈다.


“이렇게 죽을 놈들이었으면······ 어제 밥이라도 맛있는 걸 먹여줄 걸 그랬습니다. 제 몫의 술이라도 좀 더 덜어줄 걸 그랬습니다. 저놈들 불쌍해서 어떡합니까······. 가문의, 사문의 미래를 등에 지고 살아가던 놈들인데!”


절규.


그래, 절규였다.


조휘는 사내를 보는 ‘나’를 바라봤다. ‘나’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절규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저놈들의 책임감을 기억해주지 않을 겁니다. 이런 광야에서 죽은 놈들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단 말입니다!”


조휘가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있다.”


“······!”


사내의 숨이 턱 막혔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전부 기억하고 있으니. 죽어서도 잊지 않을 것이니까.”


실제로 그렇게 됐다.

나는 죽어서도 모두를 기억하고 있으니.

죽었지만 다시 과거로 돌아와서 미래를 바꾸기 위해 달려 나가고 있으니.


“모두가 기억해주지 않는다 한들. 나만은 너희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조휘가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너희 이전의 모두 역시 전부 내가 기억하고 있다. 살아남은 사람은 나 뿐이었으니. 나는 죽을 수 없다. 죽을 수 없어.”


나를 살게 하는 것은 무에 대한 열망도, 삶에 대한 집착도 아닌. 자신을 믿고 따랐던 전우들에 대한 부채감이었다. 그들을 향한 속죄였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러니.”


꿈속의 ‘나’가 나를 바라봤다.


“이만 깨어나라. 조휘.”





三.




“······!”


머리가 깨질듯한 통증을 느끼며 조휘가 눈을 떴다. 그의 옆에는 아직도 기절해있는 청하가 있었다.


“음냠.”


청하는 꿈속에서도 무언가를 먹는 듯했다. 입맛을 다시는 꼴이 참 웃겼다. 순간 살짝 벌린 입에 주먹을 꽂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조휘는 가까스로 참아냈다.


“끄으응.”


가까스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를 시작했다. 심원공의 순후한 진기가 전신을 한 바퀴 휘돌자, 머리가 맑아졌다.


조휘의 몸에서 허연 아지랑이 일렁이더니 순식간에 방 안이 꿉꿉해졌다. 주정과 탁기의 배출이었다.


일각이 채 지나기도 전에 완전한 몸 상태로 되돌린 조휘가 크게 기지개를 켰다.


조심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조휘를 떠오르기 시작한 태양이 맞아줬다. 아직은 이른 아침. 화종지회를 준비하는 무인들이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하며 인기척들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거기서 뭐하십니까?”


조휘가 웃통을 까고 숨을 헐떡이는 곽영에게 말했다. 방금 전까지 고된 수련을 했던 것인지, 그의 몸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가슴과 등의 근육에 혈류가 쏠린 것이다.


“보면 모르냐. 외공 수련 중이었다.”


곽영이 다시 자세를 잡았다. 팔로만 자신의 온몸을 지탱하는 물구나무서기 자세였다.


쿠구구궁!


곽영이 천근추를 펼치자 땅이 진동했다.


“끄으으으.”


그의 얼굴이 터질 듯이 달아올랐다.


“끄아아아아!”


숫제 괴수의 울음소리 같은 신음이었다. 그렇게 횟수로 백 번을 채운 곽영이 땅에 널브러졌다.


“으어어어.”


“그거 좋습니까?”


“말, 말 걸지 말아봐. 진짜 뒤질 거 같으니까.”


곽영의 가슴이 오르내리기를 반복했다. 가만히 그를 바라보던 조휘가 곽영과 똑같은 자세를 잡았다.


물구나무를 섰지만, 발끝이 흔들리지 않았다. 이것은 조휘가 자신의 전신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꼿꼿이 핀 허리, 그의 둔부에 힘이 조금 들어갔고, 조휘의 몸이 천천히 아래로 향했다.


‘호오.’


조휘를 바라보는 곽영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완벽한데?’


처음 해보는 자세임은 확실했다. 그러나 아직 몸에 익지 않은 자세를 완벽하게 펼쳐냈다


곽영이 신기해하며 조휘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점차 조휘의 팔이 땅을 파고들었다. 내력을 이용해서 몸을 무겁게 만든 것이다.


‘허어. 대단하구먼.’


조휘의 얼굴 역시도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나도 신나는데?’


곽영이 자리에서 풀쩍 뛰어서 조휘의 발 위에 올라섰다. 화들짝 놀란 조휘가 자세 그대로 곽영을 바라보니 그가 킬킬 웃었다.


“자. 갑니다.”


곽영의 몸이 단단해졌다.


“끄읍!”


팔이 부러질 뻔한 조휘가 내력을 이용해서 근육을 지탱했다.


“호오. 이놈 보게?”


곽영이 점차 무게를 늘려갔다.


“해보자······ 이겁니까!”


조휘가 이를 악물었다. 곽영이 기세를 끌어 올렸고 이에 질세라 조휘도 기세를 끌어 올렸다.


쿠구구구.


둘을 중심으로 대기가 떨려왔다. 그 순간부터 지금 이 상황은 조휘의 외공을 시험하는 범주를 벗어났다.


조휘와 곽영의 내공 싸움.


누가 더 빠르고 날카롭게 상대의 빈틈을 읽고 공격해 들어갈 수 있는가.


고도의 심리전과 경악스러운 진기 통제 능력이 요구되는 ‘진짜’들의 싸움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 녀석, 뭐야?’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경악하는 것은 곽영이었다.


“······.”


조휘는 몸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지만, 이것은 엄연히 육체의 피로감 때문이었다. 물구나무서기 자세로 곽영과 내공 싸움을 벌이는 일은 누구라서 쉬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침착하군. 별로 힘 들어 하지 않고 있어. 믿기 어렵지만, 이거······ 기공의 영역에선 나보다 몇 수 위일지도 모르겠군.’


조휘와 전면에서 싸우고 있는 곽영은 그의 내면을 읽을 수 있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고요한 호수와도 같은 마음가짐. 어떠한 빈틈도 용납하지 않은 철저한 내공의 방벽에서 곽영은 패배감을 느꼈다.


“이렇게 허무하게 끝낼 수는 없지!”


곽영이 순식간에 흑사자기를 끌어 올렸다. 조휘의 내공 방벽이 가장 약한 곳으로 향해 끌어 올린 흑사자기를 단 번에 보냈다.


조휘의 용천혈이었다.


곽영의 발바닥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조휘의 발바닥 한 가운데의 혈자리. 그를 밀어내기 위해 팔방으로 진기를 발산하고 있지만, 그렇기에 뚫고 들어가기 수월했다.


‘······!’


조휘의 용천혈을 타고 흘러 들어간 곽영의 흑사자기가 순식간에 조휘의 내부를 휘감았다. 죽일 상대는 아니었기에 상처를 입힌다거나 위협을 가하지는 않았지만, 이왕 내부에 들어온 거, 한 바퀴 휘돌고 나갈 생각이었다.


이변이 일어난 것은 곽영의 흑사자기가 조휘의 중단전에 도달한 그 순간이었다.


“······으악!”


화들짝 놀란 곽영이 조휘의 몸속에 남은 흑사자기를 되돌리지도 못하고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쿠웅!


“허억.”


“괜찮으십니까?”


자세를 푼 조휘가 땀을 뻘뻘 흘리며 곽영의 어깨를 붙잡았다.


“······너 뭐야?”


곽영의 두 눈이 떨리고 있었다.


‘공포?’


조휘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 일렁이는 것은 분명히 공포였다.


“너 사람이 맞긴 한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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