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금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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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마츠
작품등록일 :
2023.09.1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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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3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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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5: 010524 허락

DUMMY

굳이 저 호소력 있는 어투와 말 뿐만이 아니라도, 얼굴에 씌여진 이주일간의 고통의 자국이 나에게도 어느정도 읽히긴 했다. 거친 바다의 파도에 잔뜩 상처받은 영혼이, 보리스의 눈빛을 통해 분명히 나에게 느껴졌다. 어휴.. 보리스 말대로, 출퇴근이라도 좀 하면 몰라, 그 작은 배 안에서 이주일이나 같이 지내야 하는 상황에서 선원들이 때리고 욕한다면.. 버티기가 정말 쉽지 않을테지. 아니, 난 결국 못 버티고 학교를 나왔었으니 더욱더 남말하듯이 할 수가 없었다.


뭐.. 지금에 와서 하는 말이지만,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일이기도 했다. 나름 187센치의 매우 큰 키를 가지긴 했지만, 뼈대가 상당히 얇아 비실비실해 보이고 만만해 보이는 데다가, 외모도 첫인상이 결코 호감형이라 볼 수 없는 사나운 편인 데다가, 성격도 그렇게 친화적이진 않다보니 선원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고통을 잔뜩 받고 돌아올 줄은 몰랐다. 이주일간 잘 버티며 선원 아저씨들이랑 친하게 지내며 고향에서 잘 지내길 바랬었는데..


평상시의 맹금류같은 날카로운 눈빛은 어디 가고, 뭔가 상처입은 동물같은 슬픔과 간절함이 느껴지는 눈을 계속 바라보던 나는, 슬슬 넘어가기 시작하고 있구나.. 라고 내심 느끼기 시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야, 보리스. 너 이 집안의 가장이잖아. 니가 없으면 너희 엄마랑 두 동생은 어떻게 하려고 그래? 아니, 그 이전에 엄마한테 허락은 받고 왔어? 내가 보기엔 어머니께서 너의 이 결정을 절대 받아주셨을 것 같지 않은데?


[V 보리스, 근데.. 이 일.. 어머니께선 알고 계셔?]


[N 그럴 리가. 어머님께서 항해사일 때려치우고 우리랑 함께 여행다니겠다는 말을 허락하셨을리가! 너 엄마한테 말도 하지 않고 다짜고짜 여기로 온 거지? 안봐도 눈에 선해!]


[B 아니야, 임마! 엄마한테 다 말하고 왔어. 날 뭘로 보는 거야? 내가 그렇게 무책임한 놈으로 보여?]


[N 말도 안돼. 그럼, 어머니께서, 가장으로서 성인이 되서 돈을 벌어 가족들을 부양하는 책무를 유기하고, 나랑 에르제를 따라 세계여행하러 가겠다는 너의 말을 이해해 주셨다는 거야?]


보리스는 나의 말에 제대로 정곡을 찔렸는지 반쪽이 된 표정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아무래도, 설득하는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을 거야. 억센 너희 엄마 성격을 내가 얼마나 잘 아는데!


[B 아주 잘 아는구나? 니 말대로, 항해사 일 때려치우고 몇년간 여행을 다니다 오겠다는 말을 하자, 엄마가 고래고래 소리를 치시며, 가장인 애가 어쩜 그렇게 무책임할 수가 있냐고, 여행 떠나면 바로 호적에서 파 버릴 거라고 아주 난리를 치시더라구.. 한대 제대로 맞을 뻔하기 까지 했다니까?]


[N 그럴 만 하지! 집이 가난해서 당장 고등학교 졸업한 후 돈 벌어와야 되는 장남이 고작 뱃일 이주일을 못버티고 다짜고짜 집을 나가 여행을 하겠다는데, 어느 부모님이 그걸 이해해 주겠니?]


[A 그런데, 어떻게 허락을 받아낸 거야? 보리스?]


[B 수중에 가진 돈도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여행을 떠날 거냐며 물어봐서, 내가 곧바로 너희들과 함께 다닐 거라고 말했어. 그러니까, 갑자기 그 중에서도 나틸리 너를 꼭 집어서 너랑 쭉 다닐 거냐고 물으시더라고? 그래서 당연히 <네, 거지인 제가 돈이 어디 있어요? 당연히 상대적으로 부자인 걔한테 빝붙어서 여행을 해야죠!> 라고 말했지. 그러니까, 갑자기 다행이라는 듯 얼굴이 환해지시며 너랑 같이 지내는 거면 마음이 놓인다고 말하시면서 얼른 짐싸서 가라고 말씀하시는 거야!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절대 가지 못하게 하려고 책까지 던지려 하시던 분이 마법같이 태도가 변하셔서 너무 놀랐지만, 언제 마음이 또 마법처럼 바뀔지 몰라서 곧바로 짐 싸고 도망치듯 고향을 떠나서 온 거지. 너희들 우리 엄마 성격, 잘 알지? 언제든 휙휙 바뀔 수 있는 성격이신 거.]


내 이름을 말하니 갑자기 허락을 해주셨다구? 어머니께서 날 꽤나 신뢰하고 계시는구나. 하긴.. 그럴 만하지. 부끄러워서 여기에 다 적진 않겠지만 나의 어머니대부터 정말 많은 도움을 어머님한테 드렸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날 100퍼센트 신뢰해서 아들을 나한테 보내주셨다 해도 보리스를 이 임무에 투입시키는 건 아직도 큰 거부감이 있었다. 이건 단순한 세계여행이 절대 아니란 말이야.. 얼마나 이 일이 위험한데! 미래가 전혀 보장되어 있지 않다구! 내가 그 생각을 하자마자 에르제도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그것에 대해 물어보았다.


[E 보리스군, 이 일.. 단순한 세계여행이 아니란 거, 너무도 잘 알거에요. 이 일은 가면 갈수록 정말 힘든 일이 될 거에요. 항해사일은 능숙해지면 언제든 좀 더 조건이 좋고 큰 배로 가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지금보다 편하게 일을 할 수 있을 거에요. 하지만, 이일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당장은 선원일보다 쉽고 편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가면 갈수록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든 계속 당신을 괴롭힐 테고, 어쩌면 뱃일보다도 훨씬 더 당신을 고통속으로 몰아넣을지도 몰라요. 그래도.. 정말 괜찮겠어요?]


[B 원래도 책속에서 숱하게 읽어서 어느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주일간 힘든 뱃일을 하면서 제대로 현실에서 느낀 인생의 진리가 하나 있어요. 그게 뭔지 아세요? 에르제? 그것은 바로.. 삶은 고통이란 거에요.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삶을 살든 고통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고통속에 살다가 고통속에 죽게 될 거라는 걸 이번에 아주 제대로 느끼게 됐습니다. 그래도.. 여긴, 주변 사람 좆같아서 생기는 고통은 없잖아요. 제가요.. 육체적으로 힘든 건 다 버틸 수 있는데요, 개좆버러지같은 쓰레기같은 새끼들한테 받는 스트레스는 도저히 감당이 안되더라구요.]


[N 보리스, 너의 마음은 이제 충분히 다 이해했어. 이주일간의 뱃일이 얼마나 생각한 것 이상으로 고통스러웠는지 충분히 이해했다구. 하지만, 아직도 난 널 이 일에 끼워놓는 게 잘하는 행동인지 확신을 못하겠어. 이 일.. 정말정말 힘든 일이 될 거야. 그러니 너의 결심이 얼마나 확고하고 단단한지 한번 진심을 들어봐야 겠어. 너 정말.. 이 일을 하기로 한 결심.. 변하지 않을 자신 있어?]


[B 당연히 힘들겠지! 어쩌면 뱃일이나 할걸 후회하게 만들 정도로 힘든 일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 일에 얼마나 많은 고통이 수반될 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취약한 인간으로 받는 스트레스는 너희들과 함께 할 테니 거의 없을 거 아니야.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일은 되게 보람찬 일이잖아. 고통과 인내의 싸움 이후에, 생명을 우리들 손으로 구해낼 수 있잖아. 그 성스러운 보람이 그 모든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치료해줄 것 같고, 뭔가 내가 이 세상에 살아있는 이유와 가치를 증명해줄 것 같아. 나틸리.. 난 이 일이 왠지 내 인생의 중요한 운명의 선택지처럼 느껴져. 나의 앞에 운명처럼 다가온 이 길을 놓치고 싶지 않아. 그러니 이제 좀 받아줘! 응? 도대체 얼마나 말해야 받아줄 거야? 임마!]


[N 휴.. 난 잠시 생각 좀 해볼게. 일단, 다른 사람들부터 찬성인지 아닌지 말 좀 해봐.]


[V 음.. 나는 완전 찬성! 안그래도 사람이 부족해 힘들었는데 믿을 수 있는 친구가 끼면 진짜 다행이지! 하하하! 보리스! 잘 돌아왔어!]


[B 역시! 친구야.. 넌 바로 찬성할 줄 알았지. 그럼 다른 사람은?]


[A 나도 찬성이야!]


[N 안톤, 넌 이 임무 당사자가 아니잖아. 넌 무효표야.]


[A ..진짜 너무해. 너희들 요즘 나만 너무 따돌리는 거 아니야?]


[B 자.. 무효표는 제외하고.. 에르제, 당연히 찬성이죠? 에르제 말 듣고 다 때려치우고 여기로 온 건데, 설마 마음이 바뀐 건 아니겠죠!]


보리스가 협박반 애원 반의 어투로 에르제에게 말했고, 에르제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보리스가 원하는 답을 했다. 음.. 벌써 찬성표가 2표야? 아.. 그럼 내가 반대하면 나만 악역을 해야 되는 거잖아?


[E 저도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다만, 보리스 군, 아직 부족한 게 너무 많아요. 앞으로 훈련을 열심히 해서 지금보다 더 많은 도움을 줄 전사로 성장할 수 있겠어요?]


[B 그럼요! 물론이죠! 저도 제가 지금 한참 허접한 거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나름 쟤 아버지한테, 그 혹독한 훈련을 3년이나 받은 몸입니다? 다시 훈련 재개하고 실전경험 좀 쌓고, 근육량만 좀 늘리면 생각보다 빠르게 성장할 걸요? 저 슬슬 쟤 아버지한테 배운 훈련감각 돌아오고 있습니다? 감 완전 잡으면 걷잡을 수 없어요. 빅토르 떠나도 제가 빅토르 역할을 할 수 있을 걸요?]


[V 하하하! 노력하면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을 거야.]


빅토르 역할이라고? 꿈 깨, 보리스.. 우리 둘은 1,2년간 정도론 아무리 노력을 해도 저 수준까지 갈 수 없을 걸? 그래도, 저렇게 허세넘치게 말하는 용기가 나쁘게 보이지 않는지, 에르제는 여전히 웃으며 그 말을 듣고 있었다. 참.. 아무리 봐도 이해할 수가 없다니까. 분명 우리 셋 중에 제일 끼워넣기 싫어했는데 말이야.


[B 음.. 그나저나, 셋 중 두명이 찬성한 거면 다수결로 끝난 거 아니야? 니가 반대해도 이제 아무 상관 없는 거지?]


[E 아니에요. 나틸리의 찬성이 반드시 필요해요?]


[B 네? 왜요?]


[E 빅토르는 여름방학 후에 떠날 사람이잖아요. 이 일을 계속 함께 할 우리 둘이 찬성하느냐가 제일 중요하죠. 빅토르 군, 우리들의 결정 이해하죠?]


[V 그럼요.. 두 사람의 생각이 가장 중요하죠.]


[B 뭐.. 맞는 말이긴 하네요. 얘는 어차피 조금 있으면 북쪽 대륙으로 떠날 테니. 계속 함께할 두 사람의 결정이 중요하긴 하죠.. 하아.. 쩝!]


아무래도 내가 아까전부터 쭉 일관적으로 반대의사를 표시했다보니 나를 바라보는 보리스의 눈빛이 상당히 불안정했다. 참.. 처음과 중간까지만 해도 잘 타일러서 돌려보내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했지만, 이렇게까지 결심이 확고한 걸 보니, 이젠 차마 반대할 수가 없었다. 뭔가 이 일을 자기 인생의 하나뿐이고 유일한 기회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어떻게 나의 소중한 친구의 기회를 빼앗을 수가 있겠어! 그래, 같이 이 고난의 길을 걸어가보자, 보리스. 이 운명의 길을 소꿉친구 중 한명과 걸을 수 있게 되다니.. 나로서도 전혀 나쁠 게 없었다. 정신적으로 정말 큰 도움이 되겠지.


[B 나틸리, 그럼.. 내 운명은 완전히 너의 결정에 달린 거구나? 뭐.. 니가 무슨 선택을 하든 받아들일테니까, 부담가지지 말고 한번 말해봐.]


말은 저렇게 해 놓고 눈빛이 이글거리는 게 반대하면 제대로 삐질 게 분명해 보였다. 하하하! 괜히 장난 좀 치고 싶은데, 한번 장난 좀 쳐봐?


[N 원론적으론 난 널 이 일에 받아들이는 데 매우매우 반대하는 편이야!]


[B 제기랄.. 아휴! 알겠어! 임마! 저 고집하고는! 너희들끼리 여기서 잘 지내봐라! 제기랄! 엄마한테 그렇게 멋지게 말해놓고 쪽팔리게 다시 고향으로 가야 된다니!]


[A,V 아아.. 나틸리!]


[N 좀 더 들어봐, 임마! 너.. 정말.. 이 일, 힘들어서 못해먹겠다고 때려치지 않을 자신 있어?]


[B 그럼! 야, 나 어지간한 육체적인 고통은 다 감내할 수 있어! 어릴때부터 우리 아버지한테 개처럼 쳐맞고, 쟤 아버지한테 별의별 훈련으로 눈 돌아갈 정도로 고통받고, 중학교 1학년때까지 학교 일진놈들한테 고통받고 정말 겪을 만한 고통은 다 겪어 본 몸이라구! 사도가 몇백명이 와서 날 두드려 패든 다 감내하고 버틸 자신 있어!]


[N 야, 나나 에르제도 선원 아저씨들만큼은 아니겠지만 뭐 잘못하면 충분히 너한테 화내고 혼낼 수 있어. 친구라고 미냥 봐주고 좋은 말만 해주고, 절대 그러지 않을 거라고! 그래도 정말 괜찮겠어? 생판 남도 아닌 친구들한테 혼나는 거 정말 참을 수 있겠냐구!]


[B 쳇! 중학교때부터 지금까지 내내 너한테 혼나는 게 일상이었는데 아무 상관없어! 임마! 뭐 잘못했으면 늘 그랬듯이 볼이나 귀 잡아당기며 실컷 혼내라구! 저 좆같고 개같은 아저씨들에게 이유없이 개취급 받으며 당하는 것보단, 너나 에르제한테 이유있이 혼나는 게 훨씬 나으니 전혀 걱정하지 마!]


[N 진짜야? 너 앞으로 딴말하기 없기다?]


[B 딴말 안해.. 임마. 아! 이유가 있으면 나도 충분히 너 혼내도 되지?]


[N 그래.. 이유 생기면 한번 혼내봐.. 에르제도 한번 혼내보지 그래?]


[B 음.. 그건 좀..]


그래.. 저 빈틈없고 차갑기 그지없고 고학력자인 마법사를 보리스가 어떻게 혼내겠어? 나도 전혀 엄두가 안나는데!


[N 휴..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온 줄 알았더니,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름 각오를 단단히 하고 오긴 했네?]


[B 그럼! 배를 탄 이주일 내내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가, 마지막 날에 새벽 내내 자지도 않고 한참을 밤바다 바라보다가 내린 결심이라구. 나틸리, 난 제대로 각오를 하고, 내 인생을 걸고 여기까지 온 거야. 그러니, 나 좀 받아줘, 응? 생판 처음 보는, 믿을 수 없는 놈들이랑 같이 하는 것보단, 서로 잘 알고 믿을 수 있는 친구 한명정도는 같이 하는 게 너한테도 정신적으로 훨씬 좋잖아, 안그래?]


[N 휴.. 알겠어, 보리스. 니 말이 맞아. 믿을 수 있는 친구 한명 정도 있는 거 나쁘지 않을 것 같네. 나도 찬성이야!]


보리스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B 어휴, 이 자식, 니가 무슨 경찰이야? 무슨 심문하듯이 날 몰아세우는 거야? 더럽게 까다롭네, 진짜 오는 길에 내내 에르제보다 널 어떻게 설득할지만 걱정이 됐는데 역시나 에르제보다 100배 넘게 까다롭게 구네!]


우리들과 함께 한게 그렇게 기쁜가? 갑자기 어깨춤을 추며 기뻐하는 보리스의 모습을 보니, 이 힘든 일을 보리스와 함께 하는 게 맞는 일인가 싶었다. 너 이 자식, 샤노브를 상대하지 않아서, 제대로 고생을 해보지 못해서 모르는 거야.. 한번 제대로 고생을 해봐야 될텐데..


[A 하하하! 축하해! 보리스!]


[B 그래, 고맙다, 안톤. 아까전에 멱살 잡은 건 미안하다, 내 마음 이해하지?]


[A 그럼! 걱정해서 그런 건데 뭘. 그나저나, 그럼 보리스 너도 여름방학 내내 여기에 있게 되는 거네?]


[B 물론이지! 어.. 그러고보니, 너.. 너 도대체 왜 수도가 아니라 여기에 붙어있는거야? 응? 너 정말 휴학한 거 맞아? 말해봐, 말해봐! 이 자식아! 무슨 이유로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휴학을 하고 여기에 붙어있는 거야?]


자기 문제가 끝나니까 그제서야 안톤의 일에 다시 신경이 쏠린 보리스가 서로 껴안고 춤추기가 무섭게 또다시 안톤의 귀를 잡아 댕기며 물어보았다. 안톤은 이번엔 반격을 하기 위해 보리스의 귀를 잡아당기려 해봤지만.. 키가 22센치가 차이가 나다보니 짧은 손으로 귀를 잡을 수 없어서 옆구리를 꼬집었는데, 그 모습이 참 귀여워 보였다.


[B 아야! 임마, 뭘 잘했다고 내 옆구리를 꼬집어, 응? 이 자식아, 내가 바보 멍청이인 줄 알아? 내가 고졸이라서 모를 줄 아냐구! 대학교 1학년 1학기땐 휴학할 수 없다는 것 정돈 빅토르도 알겠다!]


[V 음.. 나는 몰랐는데?]


[B 자랑이다, 자랑이야!]


[A 진짜야! 임마! 기숙사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구! 그러니까 귀좀 그만 잡아댕겨! 귀 떨어질 것 같애, 보리스!]


[B 나틸리, 기숙사는 도대체 무슨 말이야? 너희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야? 얘 정말 자퇴한 거 아니야?]


[N 자퇴한 거 아니야. 진짜 휴학한 거야. 그러니 제발 좀 놔줘라. 아파서 얼굴 빨개진 거 니눈에도 안보여?]


내가 말을 하자 그제서야 보리스는 귀를 놓아주었다.


[N 아, 왜 오자마자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멱살을 잡고 귀를 잡아당기는 거야? 니가 깡패야?]


[B 야, 나도 옆구리 진짜 아파!]


[N 참.. 저 작은 손으로 꼬집어봐야 얼마나 아프다고.]


[B 아니야! 진짜! 빨개진 거 보여주면 믿을 거냐? 한번 보여줘?]


진짜 아프긴 아팠는지 보리스가 옷을 들추려고 해서, 난 괜찮다고 말하며 옷을 내렸다. 앞에 에르제도 있는데 얘가 참..


[V 안톤, 괜찮아?]


[A 괜찮아.. 휴.. 너희들 다 이렇게 충격받을 줄 알았으면 진작에 나틸리한테라도 전보를 보낼 걸 그랬어.. 미리 알리지 않은 내가 제일 잘못이 크지.]


[V 그런데 보리스, 그러고 보니까 넌 어떻게 알고 모스토크에 오자마자 곧바로 여기까지 온 거야?]


[B 엘비라가 떠나기 직전에 나한테 말해 주던데?]


[N 맙소사, 그 얼간이 오빠 듀오가 알고 있다고? 망했다, 망했어!]


역시나.. 엘비라 때문이었구나? 난 혹시나 싶어서 보리스에게 엘비라가 다른 사람한테도 전보내용을 유출했는지 물어보았다. 다행히 엘비라는 보리스와.. 에라이, 진짜! 제미크랑 알리치한테까지만 말했다는 것이었다. 제미크랑 알리치면 주변에 친구들도 많고 아는 사람들도 많은데, 진짜! 뭐 일단, 세명한테만 말한 건 참 다행이었지만.. 보리스야 그렇다 쳐도 그 둘이 알았다는 건 정말 재앙 그 자체였다. 아무래도 한달 내로 안톤 어머님께서 울면서 기숙사로 올 모습이 미리 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B 나틸리.. 너무 걱정하지 마. 제미크 형은 그렇게 입이 싼 형이 아니야. 그리고, 알리치형은 어차피 이제 고향에 없는데, 뭘.]


[N 뭐? 그게 무슨 말이야?]


[B 야, 배타고 돌아오니까 알리치형도 고향에 없던데?]


[V 뭐? 보리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형이 고향에 없다니?]


[B 응? 너희들이 그걸 왜 모르는 거야? 오니까 옐레나랑 제미크가 곧바로 말해 주던데?]


[N 뭐, 뭘 도대체 말했다는 거야? 빨리 좀 말해봐!]


[B 어.. 알리치형이.. 모스토크로 갑자기 발령이 나서 급하게 모스토크로 올라갔다던데? 너희들, 몰랐어?]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알리치가 왜 뜬금없이 여기로 오게 된 거냐구! 너무 황당해졌던 난, 잠시 멍해졌다가 그제서야 그 무서운 취조가 이어졌던 날, 마지막 즈음에 총경님이 했던 말이 기억이 났다. 이렇게까지 아주 친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경찰이면 참 큰 도움이 되겠다고.. 말했었지! 그러고 보니!


[N 아.. 총경님이 데려왔나봐! 아! 진짜! 하지 말라고 그렇게 부탁했는데! 으악! 진짜!]


신경질적으로 머리칼을 흐트리고 거칠게 마른세수를 하는 나를, 이유를 모르는 친구들이 되게 황당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럴 수밖에.. 총경님한테 유일하게 취조를 당한 사람은 나뿐이니 전혀 내막을 모르겠지..


[A 초.. 총경? 나틸리,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B 야, 내가 없는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총경이면 경찰쪽에서도 엄청 높은 고위직인데 그런 사람을 도대체 어떻게 만난 거야? 너희들?]


[V 어.. 그게, 나랑 에르제는 그냥 나틸리한테 조금 들은 게 다라 자세히는 잘 몰라.]


[N 휴.. 아.. 머리 아파 죽겠네! 진짜! 왜 예기치도 않은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지랄이야!]


[E 진정해요, 나틸리. 원래 인생이란 게 뜻하지도 않은 일들의 연속 아니겠어요?]


[B 도대체 내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N 야, 여관가서 자세히 말해줄게. 여기서 한참 대화하다보니 벌써 깜깜해졌잖아. 여기 교장 선생님 엄청 고지식한 분이셔서 외부인이 밤늦게까지 학교내에 붙어있는게 거 되게 싫어하셔.]


[B 아, 그래? 그럼 여관으로 빨리 가자. 나도 주변에 빛 하나 없는 어두침침한 이런 곳에서 계속 있고 싶진 않아. 여긴 왜이렇게 주변에 빛 한점 없고 건물도 낡아빠졌냐? 무슨 귀신 나오는 흉가 같네.]


[A 너, 진짜 너무하다! 여기 내 기숙사란 말이야.]


[B 뭐? 이런 폐가에서 지내고 있는 거야? 귀신 안나오냐?]


[A 폐가 아니야! 기숙사야! 외부만 그렇지 내부는 나름 괜찮단 말이야! 그리고 귀신도 안나온다구! 바보야!]


[V 쉿! 애들아! 누가 여기로 오고 있어!]


빅토르가 신관으로 이어지는 길 저편에서 누굴 봤는지 깜짝 놀라며 우리한테 소리쳤다. 어둠 속, 우리한테 키가 큰 한사람이 다가오고 있었다. 누군가 싶어 공포속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던 나는, 곧 그 사람이 교장선생님인 걸 알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지, 아까전 말을 다 들었으면 어떡해? 다시 나는 눈이 동그래진 채로, 조마조마해 하며 저녁인사를 했다.


[N 아.. 조, 좋은 저녁이에요! 교장 선생님!]


[Bo 아, 이 분이 널 도와주시는 그 교장 선생님이시구나? 반갑습니다! 교장 선생님!]


[B 음.. 반갑긴 하네만.. 자네들, 왜 아직까지 학교에 있는 거지?]


[N 오랜만에 만나다보니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요! 하하하! 대화를 하다보니 벌써 밤이 와버렸네요? ...죄송합니다. 빨리 갈게요.]


[A 교장 선생님, 저한테 하실 이야기가 있으세요? 저녁에 이렇게 혼자 오시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은데..]


[B 산책 중인데 신관 근처까지 너희들 목소리가 울려 퍼지길래 혹시나 해서 와본 거야! 자네들, 여기가 어떤 고등학교인줄 아나? 남부지역 최고의 지성들이 모인 학문의 전당인 곳일세. 그런데, 이런 중요한 곳에서 신관 근처까지 다 들리게 소리를 치며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며 이렇게 밤늦게까지 놀고 있나? 응?]


아아.. 아까전에 소리를 치며 싸우고 설득하던 소리가 신관 근처까지 났나 보구나.. 하지만, 신관과 구관은 꽤나 거리가 먼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신관 산책로에서나 희미하게 들렸을 것 같고, 신관 건물 내에선 창문을 열어도 거의 들리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이러시니까 난 교장선생님이 상당히 까다로운 분이라는 생각을 확고히 하게 됐다. 참.. 알겠어요, 진짜! 앞으론 밖에선 조용히 떠들면 될 거 아니에요?


[N 죄송합니다, 교장 선생님. 앞으론 밤이 되기 전에 나가겠습니다. 또 앞으론 바깥에서도 조용히 떠들겠습니다.]


하지만 마음속 말과는 180도 다른 말이 나왔다. 조금이라도 따지듯이 말하면 저 꼬장꼬장한 교장 선생님 성격상 우리들을 곧바로 쫓아내 버릴 수도 있으니까.


[B 이번 한번만 더 봐주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내 심기를 건드리는 일이 생긴다면 자네들은 안톤을 절대 학교 내에서는 만날 수 없게 될 걸세. 내 말 이해하겠나?]


[N 네.. 그럼요.. 교장선생님. 충분히 이해합니다.]


[B 안톤. 이 친구들한테 너무 정신팔리지 말고, 공부에만 전념해라. 1학기 교육을 받은 동급생들에게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지금 열심히 공부해야 된다. 너희들도, 제대로 된 친구라면 한참 공부해야 할 아이한테 너무 자주 와서 정신을 흐트려놓지 말게.]


[N 예.. 그럼요! 공부 절대 방해하지 않을게요.]


이런 말을 할땐 어쩜 다른 애들은 다 입을 다물고 나만 말을 하게 되냐? 얄미운 녀석들! 어쨌든, 내가 저자세로 미안하다고 한참 말하자 교장선생님은 어느정도 만족했는지 그 또각또각 멋진 소리가 나는 구두소리를 내며 신관으로 다시 걸어갔다. 교장선생님이 사라지자마자 보리스가 소근거리는 소리로 불만을 토했다.


[B 참.. 드럽게 까다로운 분이시네. 수풀들이 다 방음역할을 해줘서 신관에선 거의 들리지도 않겠구만.]


[N 뭐, 교장선생님 말이 다 틀린 건 아니잖아? 밤까지 여기에 남아서 떠들지 말고, 이제 집으로 가자.]


이미 하늘위에 별빛들이 반짝거리는 완전한 밤이었다. 아이.. 교장 선생님 말대로, 너무 오래 있었잖아? 우리들은 급하게 학교를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안톤은 이 어둡고 낡은 기숙사에 또 홀로 남겨지게 되자 서글픈 얼굴로 교문 앞까지 우릴 바래다 주었는데, 볼때마다 참 딱했다. 교장 선생님만 아니면 학교 안에서 같이 지내면서 정신적으로 케어도 해주며 재밌게 지낼 수 있을 텐데! 교문을 나설 때마다 참 아쉬운 마음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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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1-117: 010601 영혼 결합 NEW 11시간 전 0 0 18쪽
117 1-116: 010601 건물 내부와 이상한 가루 NEW 11시간 전 0 0 19쪽
116 1-115: 010601 휴식 NEW 21시간 전 2 0 21쪽
115 1-114: 010601 사도와의 전투 B 24.09.09 6 0 31쪽
114 1-113: 010601 사도와의 전투 A 24.09.09 5 0 30쪽
113 1-112: 010601 다시 이공간으로 24.09.07 6 0 15쪽
112 1-111: 010601 알리치 집 24.09.07 4 0 23쪽
111 1-110: 010601 석궁 시험/교장실 24.09.05 6 0 31쪽
110 1-109: 010601 석궁 소동 24.09.04 6 0 24쪽
109 1-108: 010601 안톤의 데모 24.09.04 7 0 28쪽
108 1-107: 010601 알리치 집들이 2 24.09.01 7 0 31쪽
107 1-106: 010601 알리치 집들이 24.08.28 6 0 27쪽
106 1-105: 010601 새 기숙사와 급식 24.08.28 7 0 29쪽
105 1-104: 010530 네스터 모드니노프 24.08.28 7 0 16쪽
104 1-103: 010529 사도와의 전투 24.08.22 7 0 26쪽
103 1-102: 010529 하수구 던전 B 24.08.22 7 0 22쪽
102 1-101: 010529 하수구 던전 A 24.08.22 7 0 21쪽
101 1-100: 010529 모드니노프 가 24.08.21 8 0 25쪽
100 1-099: 010528 총경님과 만남 B 24.08.20 9 0 34쪽
99 1-098: 010528 총경님과 만남 A 24.08.20 7 0 24쪽
98 1-097: 010528 격려 24.08.13 10 0 26쪽
97 1-096: 010528 교장 선생님과 협상 24.08.13 8 0 21쪽
96 1-095: 010527 안톤의 억지 24.08.09 7 0 20쪽
95 1-094: 010527 방 배정 24.08.09 8 0 20쪽
94 1-093: 010526 종결 24.08.09 6 0 27쪽
93 1-092: 010525 사도의 기억 3 24.08.06 10 0 21쪽
92 1-091: 010525 사도의 기억 2 24.07.27 8 0 21쪽
91 1-090: 010525 사도의 기억 1 24.07.27 8 0 20쪽
90 1-089: 010525 엉망진창 추격전 24.07.17 11 0 18쪽
89 1-088: 010525 사도와의 전투 24.07.17 6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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