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상자와 거울과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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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왕국
작품등록일 :
2023.09.12 13:38
최근연재일 :
2024.09.20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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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3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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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인생에서 마침내 사라지는 사람들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추구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길들




DUMMY

바늘은 날카롭고 길쭉해서

위험하고 불길한 욕망이 가지게 마련인

온당치 않은 요구나 차가운 불만을

불안한 빛으로 반짝이면서

희미하면서도 차갑게 드러내고 있었다.

크고 굵은 기둥들이 열주(列柱)처럼 곳곳에서 늘어서서 기다리고 있는

큰 대청은 크고 널찍한 방답게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그만큼 너무 신이 나서 대단히 시끄럽고 무척 유쾌했다.

일주일의 마지막 날인 빈 틈이자 일상의 활동에서

그렇게 닿아있는 새로운 벽에 바로 근접해 있어서

연회는 흥겨울 대로 흥겨워져 있었다.

수없이 많은 촛불들이 빛나고 있었고

그 빛들을 반사시키는 은접시나 금제 접시와 금제 그릇과

금으로 만든 수저나 포크가 찬연하고도 아련하게

번쩍거려서 눈이 부시면서도 동시에 애틋하게

무슨 환상이나 어떤 추억처럼

섬세하면서도 어렴풋하게 가물거리는

선명하면서도 희미한 아름다움이 실내에는 가득 있었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대화를 하느라

너무 즐겁고 유쾌해 보였고

어떤 근심도 보이지 않으며

오직 그 순간 순간들을 즐기고만 있었다.

화려한 무늬와 너무도 아름다운 장식들이

사방의 모든 벽들마다 갖은 기교로

오로지 쾌락과 만족만을 위한 목적처럼

예술로서 벽들과 공간들을 치장을 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영광스럽고 환희에 가득 찬

주인공들과 당사자들로만 보였다.

그곳에는 어떤 하찮은 삶도 그런 애처롭고 시시한

사람들도 존재하지 않는 걸로 보였다.




그러나 단순하게 모든 것이 그렇게 좋을 수만은 없었다.

세상에서 더 이상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나이는 각자가 다 다르다고 하더라도

어린아이를 지나고 나면

그 다음부터의 인생이라는 과정에서는

언제나 그 사실을 냉철하게 자각하게 된다.

나는 주인공이 아니다.

나라는 사람은 한낱 조연에 그칠 뿐이고

심지어 때로는 어처구니가 없을 만큼 시시한 단역에

불과하다는 점을

싫어도 자꾸만 명심하고 싫어도 자꾸만 깨닫게 된다.

그렇게 다들 어른이 되어간다.

그렇게 다들 인생의 참혹한 진실을

아름답게 또 가련하게 당하면서 배우게 된다.

그것이 인생이었다.

그래서 그런 주변부로 밀려났다는 비참한 소외감과는 상관도 없이

현실은 대단히 냉정하게 돌아간다.

인생은 그런 의미에서 대단히 성가시고 귀찮은

물적 관념이자 물적 실체였다.

그런 생명의 활동과 그 기간이 인생이었다.



무대처럼 연회가 자꾸만 더 깊어지듯 더 흥이 무르익으면 익을수록

사람들은 더욱 흐트러지고 더욱 시끄러워졌고

더욱 취해만 갔다.

마찬가지로 그렇게 더욱 방심을 하게 되었다.

그토록 큰 연회장에 모여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한쪽 구석에서 더 돌아가서 나타나게 되는

이윽고 외진 방은 조용하고 적막감마저 감돌아서

멀지 않은 대청과는 완전히 다른 장소인 것만 같았다.

그곳에는 어떤 사람들이 두 명이 있었다.

그러나 한 명은 당당하고 거만스럽게 패기마저 넘치게

똑바로 서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엎드려서 바닥에 이마가 닿을 정도로

간절하게 애원하듯이 굽신거리며 엎드리고 있었다.









전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발 자비를 이 가련한 삶에게도 베푸소서.

그러나 그 곳에 서 있는 남자는 전하가 아니었다.

말없이 내려다보는 차가운 멸시의 감정은

싱싱하고 젊은 젊은이의 눈빛이었다.

인생에서는 무수히 많은 기회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그러나 그것을 포착하는 사람들과

반면에 포착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세상 속에서는

사람들이 나뉜다.

기회라는 단순한 기준으로만 나누게 된다면.

그리고 그 기회가 큰 기회든 작은 기회든.

사람들은 그런 걸 하찮게 여길 수도 있고

반면에 대단히 높이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을 수는, 마치 불가능처럼,

없었다.

도저히 서로 다른 상반되는 결과들끼리의 대치는

이렇게 결정되어왔었다.





많이 힘든가?

젊은 남자는 차갑고 명료하게 그렇게 짧게만 말했다.

아, 아니옵고, 그런 것은

엎드린 늙고 뚱뚱한 남자는

전신에 걸친 고가의 굉장한 옷들과는 달리

비굴하고 혐오스럽게 간신히 겨우 겨우

끊어지는 듯한 말로 대답하고 있었다.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아니면 뭘 잘했는지

그것조차도 모르고 그런 분간조차도 못하는

그런 삶이 최종적으로 도착하게 될 장소는 과연 어디일까?

그러나 엎드린 뚱뚱한 체격의 남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어쩌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는지도 몰랐다.

하기 싫었을지도 모르니까.

신분과 직책과는 상관 없이 매우 어린 놈에게

엎드려서 그것도 구걸이나 하고 있으니까.

생명에 대한 구걸, 기회에 대한 구걸, 여러 상황 등에 대한 구걸...

그러나 젊은 남자는 차갑고도 간결했다.

대답하기가 과연 싫은가?

늙고 뚱뚱하고 굉장한 옷을 걸친 남자는 아무 말도

역시 이번에도 하고 있지 않다가

간신히 대꾸했다.

이, 이, 이 몸이 하, 할 할 할 수 있느 느 느느은,

방 방법이라면, 뭐 뭐든 다다 다 다 다 하 하겠습

그러나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국왕 전하가 보낸 사람인

젊고 차가운 인상을 가진 남자는

바늘을 그 늙은 남자의 정수리에 꽂았다.

바늘은 그러나 정수리에 닿기 전에

가는 뱀으로 변하고 다시 그 뱀은

날개를 활짝 편 아주 작고 가늘고 긴 폭의

단검으로 다시 변했다.

단검은 마치 딱딱한 금속이 아닌 한 줄기 부드러운 연기나 액체처럼

그의 엎드린 정수리에 아주 천천히 그리고 아주 고요하게

그러나 정말 순식간에 어떤 작은 소음도 없이 깊이 들어갔다.

곧 늙은 남자는 편안히 땅바닥에 두 다리와 두 팔을 뻗고

그대로 바닥에 사지를 대고는 엎드렸다.

마치 술에 취한 술주정뱅이 행려병자가 그렇게

추운 겨울 어두컴컴하고 검고 깊은 길바닥에 잠들어 있듯이.

곧 그의 몸은 바람이 보자기나 가방에서 빠져나가는 듯한

푸쉬쉬시시시식, 하는 소리를 내면서

연기처럼 변해서 옷들 속의 몸이 점점 더 줄어들었다.

왕국의 자비와 너의 사사로운 욕망은 너무 맞지 않았어.

경멸스럽다는 듯이 멸시하는 빛을 띠면서

내려다보고 있는 젊은 남자는 담담하게

바늘을 흰 손수건으로 닦으면서 말했다.

흰 손수건에는 해골 두상과 그 밑에 두 자루의 장검이

서로 엇갈려서 사선으로 겹쳐지게 수놓아져 있었다.

황금색의 실들로 치밀하게 수놓은 무늬들 말고는

어떤 글자들도 자수 장식은 더는 없었다.




새가 서쪽에서 운다면, 동쪽에서는 늑대가 쳐들어온다.

그런 속담조차도 너는 모르고 있다는 말이었더냐?

등을 돌리고 가는 젊은 남자의 체격은

평범한 키에 평범한 몸집이었다.

차갑고 싸늘하며 혐오감이 가득한 등에서

그가 임무를 완수하고 떠난다는 일종의 분위기가

알 수 없는 느낌으로 전해졌다.

왕국엔, 너 같은 신하들이 필요하지가 않다.

핑계도 그럴 듯해야만 들켰어도 참작을 해줄 수 있지.

귀찮게 들어줄 수가 없잖아? 뭐야? 그게? 그것도 변명이야?

모든 이기심은 그 끝이 좋지 않다는 걸

그 늙은 나이가 되었어도 모르고 있었다니.

젊은 남자는 곧 벽을 뚫고 들어갔다.

더 자세하게 묘사하자면 그냥 벽으로 스며들 듯이

그대로 들어갔다고 하는 편이 더 옳았다.

저절로 물이 식탁보에 검고 어두운 무늬가 되어서 흡수되듯이

그는 벽으로 들어갔다.

마저 남은 그의 다른 몸들도 다 들어가고

이윽고 방에는 옷들만이 남았다.

위아래 걸쳤던 옷들과 구두 한 켤레와 금빛 실들로

산토끼와 나뭇가지가 수 놓아진 희고 윤택한 고급스러운 양말 한 켤레.

그것이 방금 전까지 엎드려서 흐느끼며 겁에 질려있었던

늙은 남자가 남긴 모든 것들이었다.

멀리서 희미하고 떠들썩한 연회에서 벌어지는 온갖 소음들이

즐겁고 또 아련하게, 마치 꿈결에 어디선가 들리는

잠든 침실 바깥의 정원에서 지저귀고 있는

새들의 노래 소리처럼 들려왔다.

그러나 그럴 리가 도저히 없었다.

밤의 대청에서 실내에는 춤추고 술잔을 들고 술을 마시고

또 안주와 각종 가벼운 음식들을 먹으며 온갖 잡담으로 즐거운

사람들 밖에는 그 어떤 것도 없는데

새들이 있을 리가 없었다.

밤은 점점 더 깊고 멀어지고 있었고 언젠가는 새벽이 곧 당도하리라.

그리고 모든 흔적은 지워질 것이다.

곧 늙은 남자가 남긴 유일한 물품들이었던

옷들과 양말과 가죽 구두 역시 몇 줄기 연기들로 변해서

차츰차츰 희미하게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연회에서 모여서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며 서로 교제와

사회 생활을 하던 그 많은 사람들이 결국엔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것처럼.

생각이 짧거나 생각이 없어서

왕국이 기대하는 바와 다른 욕망을 추구했었던

어떤 뚱뚱한 남자는 그렇게 몇 줄기의 연기들로 변해서

결국에는 지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젊은 남자가 떠나고 그 뒤에 남은 대저택은

어쩌면 어떤 공관이었는지도 몰랐다.

그 공관일지도 모르는 아니면 그저

대귀족의 대저택이든

그, 큰 건물이 있는 거리에는

고적하고 한산한 그래서 으스스하고 음침하기까지 한

그러나 어찌 보면 정답고 다정하며 아름답기까지 한

달빛이 다시 내려 앉아서 물들은 달밤의 길거리였다.

모두가 잠들고 모든 왕래가 끊어진 어두운 밤의 거리였지만.

달은 그렇다면 몇 개의 얼굴을 가진 악녀인가.

그런 말을 중얼중얼거리며 홀로 걸어가고 있는

젊은 남자가 있었다.

그림 그리는 것이 가끔 취미인

젊은 귀족 휘케텔프였었다.

그는 지금 친척인 에팅켄퓌스를 만나고 나서

그 집에서 나오고 있었다.

굳이 마차를 타고 갈 필요가 없어서

돌아가는 길은 편안하게 혹은 느릿느릿

한참을 걸려서 가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휘케텔프가 가려고 하는 곳은

그의 저택이 아니었다.

그는 지금 누군가를 만나려고 그곳으로 가고 있었다.

휘케텔프가 만나려고 하는 사람은

만남의 시간대를 밤으로 정해서

휘케텔프에게 오라고 했었다.

주인이 그렇게 하라고 제안했으므로

방문객이 될 휘케텔프도 하라는 대로 할 수 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그런 사소한 것들이 문제가 아니었다.

오늘은 거래가 있는 날 혹은 밤이었다.

휘케텔프는 그러나 가지고 갈 물건이 없었다.

얼마 전에 도둑질을 하려고 들어간 그 저택에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심지어 그는 그 집에서

야심한 밤에 그 집과 함께 불에 타서 죽을 뻔했었다.

누가 불을 질렀는지 아니면 마법의 안배로

저절로 불이 그 시간에 타오르게 되어있었는지

어쨌든 계획은 사전에 이미 탐지되어서

그쪽에서 완벽하게 대처를 했었다.

휘케텔프가 가지고 나오려던 물건은

그 집에서는 없었다.

순순히 도둑에게 물건을 내줄 주인은

세상 어디에도 없으므로

휘케텔프는 이제는 자연스럽게 위험해졌다.

그가 그 집을 방문하리라는 예정된 계획

혹은 순서를 그 집의 주인측 혹은 그쪽 사람들은

이미 그 전부터 다 알고 심지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일까. 누구일까.

복잡한 심사에 달도 쳐다보고 또 고개를 숙여서 땅바닥에 깔린

흙도 쳐다보면서 휘케텔프는 천천히 서두를 것도 없다는 듯이

그러나 내심 고민을 하면서 걷고 있었다.

그가 이제 잠시 후에 만나게 될 사람은

굳이 분류를 하자면 그의 편이고 같은 아군이었다.

그러나 가져오기로 되어있을 물건이 없다면

거래가 당연히 성사될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아군이거나 같은 편이 아니라면

계약에 따른 결과가 이행되지 않았으므로

제대로 뭔가가 될 리가 없었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음험한 달빛과 차가운 담장들과 그 뒤에 우뚝한 검은 그림자들 같은

크고 강력한 대저택들은 밤에도 굉장히 고상하고 무척 품격이 있었다.

뭐든 다 비슷비슷한 것들끼리 어울려서 지내는 법이므로

저 차가운 달빛도 이 대저택들만 모여있는

가장 부유한 저택가에 잘 어울렸다.

휘케텔프는 물건 대신 다른 제안을 해 볼 생각이었다.

그림을 한 점 그려줄 계획은 그렇다고 생각해 본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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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이토록 간절한 슬픔의 가을 23.11.22 5 0 5쪽
28 9월의 이빨 23.11.21 8 0 5쪽
27 7월의 눈동자 23.11.20 6 0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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