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랑전(極狼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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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HaL
작품등록일 :
2023.10.0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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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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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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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탐랑(貪狼) (1)

DUMMY

“현실감각이 없는 거야, 아니면 덜떨어진 거야?!”

“예?”

“아냐!”


단단히 화가 난 듯한 제갈민의 대꾸에 십비는 입을 다물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아주 작은 실수에도 책잡힐 가능성이 높다.


“말이 바른 말이지, 15년 전에 한 번 쓴맛을 보고도 기어 나왔다면, 그 쓴맛을 계속 곱씹어 보기는 했을 거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잖아? 등신이야? 머저리야?”

“아, 무허자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그···.”

“아니야!”

“옙.”


제갈민은 잠시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웅얼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말했다.


“뭐, 그 자식도 좀 있지만.”


한설총을 말하는 거였군. 십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확실히, 한현보의 소가주는 너무 무모하다. 약관 전에 공력을 개방한 천재 중의 천재인 만큼, 자신감이 넘치는 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글쎄.


제갈민은 치솟는 짜증을 꾹, 눌러 삼키며 멋대로 화제를 넘겨버렸다.


“그래서, 천가방은? 움직임이 있어?”

“말씀대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정보망으로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만, 아직까진 별다른 움직임이 없습니다. 분명 송화루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 같은데, 도리어 송화루의 이용객은 평소보다 많은 편입니다.”

“어느 정도인데?”


십비는 잠시 속으로 암산을 한 후 입을 열었다.


“천가방이 송화루의 별관을 차지하기 전까지는 추정 이용객이 대략 1일 40여 명 정도였는데, 작일 이용객 수는 128명이었습니다.”

“세 배나 늘었다고? 천가방 같은 위험한 놈들이 거길 차지했는데?”

“생각보다 소문이 크게 나지는 않았습니다.”

“협박이 아니라 손을 잡았던 거네. 송화루주, 송문···!”


제갈민의 말에 십비는 민망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송구하게도, 송화루의 내부까지는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어째서?”

“작일, 천중의 반응을 살피고자 송화루에 접근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송화루에 오대호법이나 그에 버금가는 자가 잠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냥 놀고 있는 게 아니라 덫까지 쳐놓으셨다.”


제갈민은 골머리가 썩는다는 듯 관자놀이를 움켜쥐었다.


천가방이 송화루를 차지한 건 아주 뜻밖의 일은 아니다. 처음부터 예상했어야 할 일이었다. 문제는 거기까지 신경을 쓸 여력이 없다는 점이다. 하필이면 무허, 그 개자식이 돌연 무당으로 복귀하는 바람에 하오문의 촉각이 전부 그쪽으로 쏠린 탓도 크다.


‘하여간,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놈이야!’


그렇게 십비도, 하오문도 모두 무허에게 시선이 끌린 상황에서, 천중은 송화루를 날름 집어삼켰다. 기가 막히게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기회를 파악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천중의 착수는 훌륭했다.


이제, 천가방─ 아니, 백련교는 공의현의 중심부에 도사리면서 언제든 한현보의 턱밑을 찌를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무당의 봉문 해금이라니···!”


무허가 이렇게까지 일을 벌일 줄 알았더라면, 자신 또한 문으로 복귀해서 백부님께 의견을 청하는 것이 도리어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도 없는 것이, 이 한설총이란 양반은 그럴싸한 소식통조차 없다.


만약 제갈민마저 그의 곁을 비워버리면, 그는 단숨에 장님, 귀머거리로 전락해버릴 것이다.


‘이래서는 할배 오기 전까진 맘대로 움직이지도 못···! 아, 할배!’


“할배는?”

“걸협 어르신이라면, 개봉에 계십니다.”

“어째서?! 못해도 정주나 낙양에는 와 있을 거라고···!”

“그것이, 그쪽에서도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고···.”

“뭐, 덕자 할마씨야? 그 할마씨가 그래?!”

“예.”

“제기랄! 뭐 하나 맘대로 되는 게 없어, 당최!”


드디어 폭발한 제갈민은 한참 동안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십비는 제갈민의 욕설이 이성이 아니라 감정에 기반한 것으로 넘어가기 직전, 입을 열었다.


“상세한 사정까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만, 공 향주가 일부러 흘린 정보가 있습니다.”

“뭔데?”

“개봉부의 군이 움직였다는군요.”


무당의 해금 소식까지는 핏, 콧김을 낸 제갈민은 그 다음 문장에 딱, 굳어버렸다.


“정천호 진량이 개봉에 도착했다고? 설마?”

“예.”

“언제?”

“그것이···. 알 수가 없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공 향주의 말을 빌리면, 분명 사흘 전까지만 해도 완벽하게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개봉에 들어와 있었다고─”

“무슨 도술이라도 썼대?!”

“그 부분을 알 수가 없습니다. 하여, 이 전언을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뭐지?”

“어쩌면, 걸협 어르신의 가장 치명적인 적이 움직였을 수도 있겠다고···.”

“···!”


제갈민은 등골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설마, 그래서···.”


제갈민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미간을 좁혔다.


“사독파파(邪毒婆婆)가··· 움직였나?!”


사실이라면, 무당의 봉문 해금은 큰 문제가 아니다.


“···확실해?”

“공 향주는 확신하는 태도였습니다. 그 여자가 아니라면··· 하오문의 이목을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농락할 수 있는 자가 없다고 하더군요.”


십비는 뭐라 덧붙이진 않았지만, 제갈민은 그의 표정에서 그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뜻을 읽을 수 있었다. 그래, 맞다. 하오문의 이목은 사람이다. 그것도 무수하게 많은 사람. 한두 명의 시선을 피할 수는 있어도, 저잣거리에 널린 장사치들, 기녀들, 그리고 행인들의 시선을 모두 피할 수는 없다.


그게 가능한 사람이 있다면─


“그래, 사독파파 말고는 없겠지.”


어느 날 홀연히 나타난 매부리코에 곰보와 사마귀가 가득한 무서운 얼굴의 노파. 그녀는 무창현(武昌縣)으로부터 시작해, 무수한 고을과 문파의 사람들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학살했다.


칼이나 창이 아니다. 노파는 독으로 사람을 죽였다. 독에 관해선 천하제일의 절학을 보유한 사천당문조차 해독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독으로.


물론, 사독파파의 재주가 단지 매서운 독공 하나뿐인 것은 아니다. 고작 그것이 다라면, 강호를, 천하를 적으로 돌리고 살아남기란 요원한 일이다.


사독파파의 무서운 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역용술에 있었다. 심지어 피를 이은 혈육조차 다섯 보 이상 떨어지면 분별할 수 없다고 할 만큼, 정교한 역용술에 무수한 문파와 강호인들이 농락당했고, 살해당했다.


개봉의 일이 사독파파의 솜씨라면, 그녀가 정말 개봉에 있는 거라면─


“걸협 어르신은 여기 못 올 거야.”


제갈민의 검지가 턱을 두드려댔다.


‘···개봉에, 있을까?’


아니, 사독파파는 여기에 있다. 제갈민의 머릿속에서는 그 문장이 지워지지 않았다.



* * *



“무슨 농담인가 싶었더니···! 으하하핫!”

“어머, 무슨 즐거운 일이라도 있으셨는지요?”

“무허자를 놓친 일로 심히 노심초사하던 와중에, 이런 첩보가 날아들지 뭡니까?”


교랑은 광륜이 건네준 첩지를 받아 읽었다.


“무당··· 해금?”

“으하하핫! 이거, 이거. 무허자에게 크게 한 방 먹었습니다. 으하하핫!”


교랑이 가늘게 눈을 벼리고 물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무당이 봉문을 해금하였다 한다면···. 천하오대문파가 모두 움직일 터인데. 하면 천하십이본이 다시금 맹위를 떨치게 되지 아니할는지요?”

“물론입니다. 그렇게 되겠지요.”

“한데 어째서 그리 여유로우신지···!”

“후후후. 교랑.”


광륜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계묘혈사를 생각하십니까.”


그 말에 교랑이 움찔, 어깨를 떨었다. 이내 교랑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낮고, 음울한 목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어찌 떠올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아주 잘되었습니다.”

“···어째서지요?”

“사람은 과거를 기억해야만 배우고, 새로 익히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

“사람에겐 과거를 알고 과거의 실패를 안다면, 같은 것을 반복하지 않는 지혜가 있지요.”

“하면···.”


광륜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교랑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마도 잘 풀릴 겁니다. 이제 때가 된 듯합니다. 가셔서 목표하신 뜻을 이루도록 하세요.”

“···!”


교랑의 얼굴이 굳은 것도 잠시, 이내 교랑의 얼굴이 살기 어린 독소(毒笑)로 물들었다.


“명을 받들도록 하겠사옵니다.”

“아, 그리고···.”


광륜은 그 찰나에 다섯 보나 멀어진 교랑에게 말했다.


“무허자 쪽은 신경 꺼도 되겠다 전해주십시오. 조금 더 내버려 두면 아주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것 같군요.”



* * *



새벽 나절까지 공의현의 밤을 밝히는 송화루의 등롱까지 모두 꺼졌다. 저잣거리는 이제 막 온전한 어둠 속으로 가라앉은 참이었다. 뒤늦은 장마까지 겹쳐 구름이 잔뜩 낀 하늘 탓에 시야는 갑갑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그 갑갑함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목구멍에 지방이 잔뜩 낀 갑갑한 목소리가 고요한 저잣거리에 울려 퍼졌다.


“···사형. 정말 괜찮은 걸까요?”


말을 한 소년은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너무 크게 말한 것이다.


“무엇이?”


사내의 목소리보다 한참 낮은 목소리가 짜증스럽게 대꾸해오자, 소년은 덩달아 목소리를 더욱 낮추고 말했다.


“그, 그···. 천중이란 놈, 정말 위험한 놈입니다.”

“창아.”

“예, 대사형.”

“이미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게다.”


왕태하는 침을 꿀꺽 삼킨 후, 백창에게 말했다.


“천호 대인이 한현보에 전쟁을 선포한 이상, 한현보는 언제가 됐든, 반드시 멸문한다.”

“그, 그것도 말입니다. 그게 실제로 그리되겠습니까?”


천호 대인의 방문 이후, 놀랍게도 한현보는 그 이전처럼 활동을 이어 나갔다. 제자들에게 무공과 군진, 병법을 가르치며 무과 입시를 독려하는 일을 계속했다는 뜻이다.


‘한현보주가 그토록 강단 있는 인물이었는가, 하고 놀랐었지.’


천중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왕태하도 희망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천중은 균열의 뿌리가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를 알려주었다.


한현보주, 한주윤은 지금, 한현보에 없다. 한현보가 이전처럼 군문세가로서 활동을 계속하는 건 모두 진 부인이 한 일이다. 진 부인이 무사들을 다독여 이미 죽은 한현보를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있다.


남편이 도망가버린 와중에도··· 대단한 여인이다. 과연 천호 대인의 혈육이라고 할까?

백창은 손톱을 물어뜯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니, 아닌 말로, 천호 대인의 친혈육이 아직 있잖습니까.”

“···진 부인?”

“당시야 감정이 상한 탓에 심한 말도 하고, 혈육의 연도 끊을 것처럼 굴기야 했지만···. 사람 일이 그리 쉽게 되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

“차라리, 공의현의 일은 내버려 두고, 저희는 그냥 본가로 돌아가는 것이··· 컥?!”


왕태하는 백창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본가로 돌아간들, 우리에게 미래가 있겠느냐?”

“···.”

“여송은 물론이고, 상이만 해도 군문에 연줄이 있다. 하나, 너와 나는 대체 뭐가 있느냐? 우린 미관말직(微官末職)의 집안에서 태어난 몸이다.”


백창은 입을 꾹, 다문 채 진여송과 한상을 떠올렸다. 둘 다 미친개 탓에 큰 곤욕을 치렀지만, 솟아날 구멍이 없는 것은 아니다. 둘의 미래는 날 때부터 보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백창은 다르다. 백창은 이곳 공의현과 정주, 낙양이 속한 하남부(河南府)의 판관(判官)의 아들이다. 부판관(府判官)은 부(府)에 속한 현(縣)을 다스리는 정7품의 지현(知縣)과 비슷한 종7품의 벼슬이지만, 실상은 그보다 한참 못하다.


주부(主簿)의 아들인 왕태하처럼, 백창도 사실상 한현보가 동앗줄이었던 셈이다.


“···할 것이냐, 안 할 것이냐.”

“하, 하···. 하겠습니다.”

“그럼 닥치고 따라오거라.”

“···예.”


백창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왕태하의 뒤를 따라갔다. 이윽고 이 오밤중에 그들이 방문하기로 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불이···?”


안타깝게도 불이 켜져 있었다. 홍 의원은 이 오밤중까지 대체 무엇을 하느라 잠도 없이 불을 켜고 앉았단 말인가?


“아니 이 오밤중에 대체···.”

“닥치거라.”


두 사람은 조용히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한나절 같은 한 시진이 지나고, 결국 홍 의원의 낡은 장지문을 밝히던 불마저 꺼졌다.


“···들어갑니까?”

“···아직.”


백창은 모르고 있지만, 왕태하가 경계하는 사람은 홍 의원이 아니다.


애초에 홍 의원 따위를 경계할 필요가 있는가? 홍 의원은 그저 평범한 양민일 뿐이다. 무공도 모르고, 신분조차 낮은 그를, 왕태하가 경계할 이유가 없다.


지금 왕태하가 경계하는 인물은··· 남생이다.


이번 사태 이후 달라진 것이 전혀 없는 한현보지만··· 세 명, 사라진 사람들이 있다. 한현보주 한주윤, 소가주 한설총, 그리고 무사장 남생.


천중이 말해줬다. 남생은 지금 두 가지 임무 때문에 한현보를 비운 것이라고 한다. 하나는 사라진 한현보주를 찾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홍 의원 주변을 은근히 맴도는 중이라 했었지···.’


천중은 그것이 한설총 때문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한현보에서 의절 당하고, 파문까지 당한 한설총이 공의현에 머무는 건 아무래도 모양새가 좋지 못하다. 그렇다고 유일한 후계자이자 친아들을 정말로 내치는 건 더더욱 안 될 일이다.


마침 달구 패거리의 적삼인지 산삼인지 하는 녀석을 홍 의원이 돌보는 중이니, 그 녀석을 통해 연통을 주고받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홍 의원엔 전혀 의외의 인물이 숨어 있었다. 설마하니, 홍 의원 같은 돌팔이 놈에게 한현보의 금지옥엽을 맡겨 놨을 줄이야.


불이 꺼진 홍 의원의 안을 조심스럽게 살피던 왕태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단전에 힘을 주었다. 온몸에 진기가 휘돌며 왕태하의 기감이 예민해졌다.


‘확실히 없다···. 천중의 말대로다.’


천중은 남생의 시선을 확실히 돌릴 방법이 자기에게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천가방에 붙은 시선을 떼기가 어렵다고 말이다. 만약 천가방에서 사람을 보내 한성채를 납치한다면, 그 즉시 한설총과 놈에게 붙은 무리가 알아차릴 거라 했다.


무려 ‘제갈세가’의 인물이 붙어 있다고 하던가? 한현보의 소가주 따위가 어찌 그런 인맥을 얻었는가, 심히 의심 가면서도 부러운 이야기였지만, 천중의 말을 의심할 수는 없었다.


결국, 결자해지(結者解之)다. 한성채를 납치하는 건 왕태하에게 맡겨진 것이다.


‘이 일만 성공하면··· 천중이 직접, 천호 대인과의 다리를 놓아주겠다 했다. 이 일만 성공한다면, 나는··· 나는···!’


“드르렁···!”

“···백창.”

“어우브, 읍!”

“정신 차려라.”


코까지 골며 완벽하게 곯아떨어져 있던 백창의 옆구리를 푹 찔러 깨운다. 찔끔, 눈물을 닦은 백창은 왕태하를 따라 복면을 올려 쓰고 홍 의원의 담을 넘었다.


왕태하는 몸을 낮추고 천천히 기듯이 걸어 나갔다. 백창도 그 뒤를 따랐다.


덜컥!


장독의 뚜껑이 백창의 허벅지에 걸린 것이다.


“···끄읍.”


왕태하는 한 번만 더 이런 일을 벌이면 저놈의 주리를 틀리라고 다짐했다. 차라리 혼자 오는 편이 나았을 텐데. 그러나 혼자서 일을 벌이기엔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았다.


“···끄하아암.”


왕태하의 몸이 딱, 굳었다. 또 백창인가 싶었는데, 소리가 난 쪽은 뒤가 아니라 앞이었다.


“···어.”


홍 의원과 눈이 딱 마주쳐 버린 왕태하는 잠깐의 경직 후에 얼른 검을 뽑아 들었다.


스르릉!


“···그, 워, 워, 원하시는 것이 뭡니까요.”


홍 의원은 분명 놀라긴 했지만, 마치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보기보다 배짱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정말 이런 일을 예상했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왕태하는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릴 것 같다는 확신에 정신을 추슬렀다.


“···한성채.”

“좌측 세 번째 침상에 있습니다요.”


왕태하는 뒤를 돌아보았다. 백창은 여전히 엉거주춤한 자세로 눈만 끔뻑이고 있었다.


“···감시해.”


백창이 고개를 끄덕이자, 왕태하는 자신이 꼬나든 칼을 한 번 들어 보인 다음 홍 의원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섰다.


안에는 머리를 붕대로 칭칭 감싼 한성채가 잠들어 있었다. 다른 침상에 몇 놈이 더 있었던 것 같지만, 왕태하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왕태하는 한성채를 들쳐 메고 밖으로 나왔다.


“입 단속해.”

“무, 물론입니다요.”


왕태하는 얼른 홍 의원을 지나쳐 정문을 통해 빠져나왔다. 뒤에서 쿠당탕, 한바탕 구르는 소리가 났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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