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랑전(極狼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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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HaL
작품등록일 :
2023.10.0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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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18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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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수면 아래는 은은하며 (3)

DUMMY

“집중해! 또 경력이 흩어진다!”

“끄읏, 으아악!”


일방적인 구타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대련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제갈민은 무허에게 넌지시 물었다.


“무당에도 저런 거 있지 않아?”

“뭐?”

“추수(推手)인가 뭔가.”

“저렇게 두들겨 패지는 않지.”


무허는 눈살을 찌푸렸다.


“뭘 하는지 알아서 뭐 하게?”

“걍, 물어보지도 못하냐? 거참 더럽게 비싸게 구네! 흥! 칫!”


여느 때와 다름없는 신경질적인 반응에 무허는 도리어 안도감을 느끼고 눈을 돌렸다.


급소에 정타를 꽂아 넣는 그 깔끔함이 어디서 나왔나 했더니, 득구란 녀석보다 한설총이 한술 더 뜬다.


“저 정도면 거의 침을 꽂아 넣는 수준이구먼.”


경력을 아주 세밀하게 꼬아서 찔러 넣는데 그 면적이 실로 바늘 끝이라고 봐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주 작았다. 실제로 득구는 주먹으로 두들겨 맞았는데도 뾰족한 가시에 찔린 것처럼 아주 작은 부위만 부어오르고 있었다. 저런 경력으로 사혈을 찌르면···.


“공력의 수발(收發)과 경력의 발출(拔出)이 거의 예술의 경지로군. 이건 배울만한데?”

“···흥. 보이는 게 많아서 좋겠다.”

“뭐, 너도 나만큼 수련하면 이렇게 돼.”

“쳇.”


제갈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봐둬. 공부가 될 텐데?”

“볼 거야!”


빽, 소리를 지르고도 제갈민이 어딘가를 향하자 무허는 입을 열다가 그만뒀다. 필시 볼 일이 생겼으리라. 아마 다른 사람이라면 생리현상을 생각해보겠지만,


‘뭐··· 그럴 리는 없겠지. 육비와 칠비를 모두 연화의 호위로 떠나보내더니만, 십비(十秘) 중 누가 남았으려나? 무슨 일인지 궁금하긴 하지만···.’


여기서 관심을 가져봐야 좋을 게 없다. 제갈민이 지금처럼 우호적일 때 이 적당한 관계의 선을 유지하는 편이 좋다.


‘적으로 삼긴 싫은 여자란 말야?’


무허는 제갈민에게서 관심을 끊고 난투극을 벌이는 설총과 득구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 * *



무허의 짐작은 정확했다.


제갈민은 처마 아래 그림자 속에 숨은 십비의 정반대 방향을 향한 채로 말했다.


“언니는?”

“정주에서 배를 타고 가셨습니다.”


제갈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늦어도 두 달 후엔 돌아온다고 했는데, 솔직한 심정으로는 백부님께서 연화 언니에게 뭔가 일을 맡겨서 돌아오지 않았으면 싶었다.


“그건 알아봤어?”

“천가방 말입니까?”

“그래.”

“본채가 상가현 안에 있는지라 그 안까지 들어가 보진 못했습니다.”

“경계가 삼엄해?”

“백호소가 본채입니다.”


제갈민은 하마터면 큰 소리로 되물을 뻔했다. 수비 패거리가 백호소를 본채로 쓴다고? 이건 병졸이 산채를 주둔지로 쓴다는 소리보다 더 황당한 소리인데?


“뭐 하는 놈들이야?”


제갈민의 질문에 십비는 대답하지 않았다. 십비들은 추정을 대답하지 않는다. 오직 확인된 사실만을 입에 담도록 훈련받은 자들이다. 즉, 천가방을 전부 파악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두 달이라 했으니, 그전까진 알아놔야겠지. 일주일 주겠어.”

“명을 받듭니다.”

“그 외에 보고할 것 있어?”

“두 가지 있습니다.”

“뭐지?”

“말씀하신 그 차크람을 쓰는 괴승에 관한 것은 아닙니다만···.”

“괜찮아. 모르는 것보단 아는 게 많은 편이 낫지.”

“한현보의 제자가 천가방 안에 체류 중입니다.”

“음? 제자?”

“이름까진 듣지 못했습니다만, 대화 내용으로는 확실합니다.”

“대화라면, 천가방의 왈패들?”

“예.”

“무슨 이야기를 했지?”

“아주 좋은 정보를 가져왔다고 하더군요.”


제갈민은 검지로 턱을 짚었다.


“그 대화 시기가 언제지?”

“자정을 전후해서였습니다.”

“그렇다면 작일(昨日) 한현보에서 일어난 일 전부를 알렸다고 봐야 맞겠네.”


제갈민은 검지로 턱을 몇 차례 두드리더니 손가락을 들었다. 계속하란 신호였다.


“그 외에는 전부터 계속 교류가 있었던 내용을 몇 가지 말했습니다. 진여송과 그 패거리의 이름이 몇 차례 반복되고, 그중 한상이란 자가 안면이 함몰되었다는 이야기를···.”

“좋아, 거기까지. 그건 쓸데없는 이야기네.”


얽힌 이가 진여송만 아니었어도 아마 이 이야기를 한설총에게 알리는 것으로 이번 일을 무마할 수 있었지 않을까 싶었다. 하필 정천호의 아들을 건드린 게 일을 키웠지.


“다른 하나는 뭐지?”

“천가방의 방주, 천중이 움직였습니다.”

“···어디로?”


십비는 대답하지 않았다. 제갈민은 질문을 바꿨다.


“어느 방향이지?”

“동문입니다.”

“동문이면··· 개봉. 아냐, 정주. 개봉에 벌써 도착할 수 있을 리가 없지. 개봉에 도착하기 전, 정주에서 따라잡을 셈인 거야. 거리로 봐선 이미 접선하고도 남았을 거야.”

“지금이라도 천중을 쫓아 볼까요?”

“···아니. 우린 우선 천가방 내부에 집중하는 게 좋겠어. 만약···.”


제갈민의 눈이 가늘어졌다.


“만약이지만, 정말 천가방이 백련교와 연관이 있는 거라면···.”


제갈민은 자신이 입에 담은 말임에도 팔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아니라고 믿고 싶다. 솔직히 그들을 다시 맞아들이기에 강호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사람이 많이 부족할 테니까.”

“명을 받듭니다.”



* * *



일주일 후.


“자, 잠깐만요. 뭐라고요?”


설총은 한숨을 내쉬었다. 문제라면 큰 문제다. 전음으로 구결을 읊어주는데, 하나도 못 알아듣는다는 게 이 얼마나 큰 문제란 말인가?


“내 분명히 네놈에게 채아와 함께 공부하도록 여러 조치를 하지 않았느냐! 내 알기로, 채아는 벌써 시경(詩經)을 홀로 읽는 것으로 알고 있거늘!”

“그, 그거야 아가씨가 똑똑하니까 글쵸!”

“웃기지 마!”


딱!


설총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보다 어려울 거라고는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런 걸로 발목을 잡을 줄이야.


“구결이란 것은 무예의 깊은 뜻을, 비유를 통해 간략하지만 섬세하게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초식에 담긴 의미와 공력의 운용을 일일이 어느 세월에 다 설명한단 말이냐?”

“그냥 해보면 아는 거 아녜요?”

“지금은 네놈의 공력이 미약한지라 운용의 미숙함이 치명적인 상해로 이어지지 않을 뿐인 게다. 앞으로 심법에 더 성취를 얻은 후엔 자칫 목숨도 위험할 수 있다.”

“음···. 그래도 이해가 안 되는 걸···.”


설총이 주먹을 들어 올리는데, 제갈민이 나섰다.


“어디가 이해가 안 된다는 거죠?”

“그게 그러니까···.”


설총은 기껏 전음까지 써서 전해준 구결을 제갈민에게 술술 일러주는 득구를 보면서─ 이걸 진짜 죽일까 살릴까를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제갈이 영악하긴 해도 남의 무공을 훔칠 아이는 아닐세.”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유명하지 않나? 한현보의 무심결. 반쪽짜리로 말이야.”

“유명하지요.”


무허는 물끄러미 설총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자네는 왜 나나 저 제갈에게 심법을 구하지 않는가?”


설총은 눈썹을 비틀었다.


“오해는 하지 말게. 내가 자네라면 그랬을 거라는 생각에 하는 말일세.”

“‘기왕에 집에서도 쫓겨났겠다. 이참에 새로운 무공을 익혀보는 것이 어떤가?’ 맞습니까?”

“정확하게 그 의미는 아니지만, 뭐 비슷하네.”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그야, 하는 걸 봐서.”

“후후, 생각 없습니다.”

“···어째서?”

“놈은 일주일을 버텼군요.”


무허는 설총이 누구를 말하는 건지 잠깐 헤아리고서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렇군. 그 덩치 말이지?”


설총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허는 한번 이야기해보라고 얼굴로 말하곤 팔짱을 꼈다.


“제가 놈보단 독해야지 놈이 절 따르지 않겠습니까?”

“그거 말이 되는 이유이긴 하군. 하나 꼽아주지.”

“···몇 개까지 꼽아야 합니까?”

“내가 만족할 때까지?”


설총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딱 하나만 더 꼽으시면 되겠군요.”

“오오, 그런 이유가. 뭔가?”


설총은 이를 드러내고 말했다.


“시우십결(時雨十結)은 무심결을 바탕으로 펼치는 무공입니다. 그리고 천검의 무공이죠.”

“···!”


무허는 잠시 굳은 채로 멍하니 설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렇군. 너무 충격적인 사실이라 그걸 또 잊고 있었군.”

“그렇지요? 아무래도 천검의 무공은 출처가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강호의 정설이니 말입니다. 사실 저나 아버님조차도 가끔 그 점을 놓치는 것 같습니다.”

“듣고 보니 욕심나는데?”

“한 번 배워보시겠습니까? 6성부터는 기껏 쌓은 공력이 흩어지는 심법?”

“···그 말을 듣고 나니 또 사양하고 싶어지는군.”

“그게 평범한 반응이지요.”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제갈민이 바닥에 글자까지 써가며 뭔가를 설명해주는 것을 득구가 고개를 까딱거리며 듣고 있는 것이 이 침묵이 정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였다.


“아시겠어요?”

“아···. 뭐, 넵. 그럭저럭.”

“뭐, 그럭저럭? 내가 이렇게 설명해줬는데 그럭저럭?! 그게 무슨 거지 같은 소리에요?!”

“아, 아니 그게, 잘 알아들었습니다.”

“웃기지 마세요! 그럼 한 번 설명해 봐요.”

“에?”

“설명을 못 하면 알아들은 게 아니잖아! 거기 정좌!”


득구는 저도 모르게 무릎을 딱 꿇어앉았다.


“허리 똑바로 세우고!”


으드득!


“이해할 때까지 할 거예요, 이해할 때까지!”

“으, 네.”

“대답이 시원찮다!”

“네, 넵!”


제갈민은 말을 화살처럼 쏘기 시작했다. 득구는 왠지 점점 고슴도치가 되어가는 자신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을 느꼈다.


“집중해요, 집중!”

“아, 네, 넵!”


차라리 도련님한테 두들겨 맞는 게 속이 편했던 것 같은데. 득구의 눈이 설총을 향했다. 설총은 매우 흡족이란 네 글자를 두 눈동자에 띄워놓고선 아주 흐뭇한 미소로 제갈민과 득구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득구는 울상을 지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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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7화. 쟁선(爭先) (1) +2 23.10.18 1,115 1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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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6화. 천검의 핏줄 (2) +3 23.10.18 1,069 17 14쪽
20 6화. 천검의 핏줄 (1) +3 23.10.17 1,163 14 15쪽
19 5화. 연화신산(蓮花神算) (4) +4 23.10.17 1,130 14 15쪽
18 5화. 연화신산(蓮花神算) (3) +4 23.10.17 1,144 15 14쪽
17 5화. 연화신산(蓮花神算) (2) +2 23.10.17 1,180 15 15쪽
16 5화. 연화신산(蓮花神算) (1) +2 23.10.17 1,255 16 14쪽
15 4화. 혈연 (3) +2 23.10.17 1,246 18 15쪽
14 4화. 혈연 (2) +2 23.10.17 1,252 19 15쪽
13 4화. 혈연 (1) +2 23.10.17 1,314 19 15쪽
12 3화. 들개도, 늑대도 (3) +2 23.10.17 1,312 18 15쪽
11 3화. 들개도, 늑대도 (2) +2 23.10.17 1,401 19 14쪽
10 3화. 들개도, 늑대도 (1) +3 23.10.16 1,498 21 14쪽
9 2화. 출기동문(出其東門) (3) +2 23.10.16 1,543 24 13쪽
8 2화. 출기동문(出其東門) (2) +2 23.10.16 1,653 25 13쪽
7 2화. 출기동문(出其東門) (1) +2 23.10.16 1,930 26 15쪽
6 1화. 미친개 (5) +2 23.10.16 1,940 33 15쪽
5 1화. 미친개 (4) +3 23.10.16 1,952 31 13쪽
4 1화. 미친개 (3) +2 23.10.16 2,178 3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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