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급 무한재생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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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작품등록일 :
2023.11.26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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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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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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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화

DUMMY

“지⋯ 지연아⋯.”


소은 누나는 맥없이 축 늘어진 박지연 헌터의 몸을 부여안고 이름을 불렀지만 박지연 헌터가 대답하는 일은 없었다.


“으⋯ 으으⋯ 크으으⋯.”


감당할 수 없는 충격에 소은 누나는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지만 이내 무언가를 집어삼키듯 숨을 꾹 참더니 한순간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싹 바뀐 표정으로 벌떡 일어났다.


“부족한 마법 지원은 제가 조금 더 신경 써 드리겠습니다. 하던 대로 계속 진영을 유지해 주세요.”

“예⋯ 예.”


그리고 차가우리만치 담백한 지시를 내린 소은 누나는 다시 하늘로 날아올라 하던 일을 계속했다.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자신의 절친한 지인이 죽었다.

하지만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눈앞엔 여전히 하이오크의 대군이 남은 사람도 죽이기 위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었고 전투는 계속되어야 한다.

이곳에선 육체적인 고통뿐 아니라 정신적 고통 역시 전사로서 마땅히 마실 줄 알아야 하는 고배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이다.


- 크아아아!


“엄마야!”

“힉!”


그런 소은 누나의 냉정한 태도를 본 나도 일단은 죽은 박지연 헌터가 아닌 우리 진영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하이오크의 고위전사 하나가 진영 중앙으로 파고들어 돌파에 성공한 기병과 함께 형과 하은이를 집중적으로 노려 공격하고 있었다.

계속 박지연 헌터의 죽음만 신경 쓰고 있다가는 조만간 이쪽에서도 사망자가 나올 판이었다.


“주, 준호야?!”


그리고 진작에 그런 상황을 인지하고 있던 아린이는 다급히 내 이름을 불렀다.

내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건 고작 몇 초지만 그 몇 초의 차이로 생사와 승패가 갈리는 게 전장이다.

아린이는 자리를 비우는 순간 전방의 병력이 물 밀듯 밀고 들어올 테니 움직일 수 없다.

그렇다면 뒤를 보조하기로 한 내가 알아서 전황을 읽고 당연히 형과 하은이를 보호하기 위해 움직였어야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움직이질 않으니 대체 뭘 하고 자빠진 건지 마음이 급해진 것이다.


“아, 알았어! 서연아, 나 잠시 저쪽 좀 다녀올 테니까 무리하지 말고 버티는 데까지만 버티다가 안 되겠다 싶으면 아예 확 빠져서 내 쪽으로 합류해, 알았지?!”

“응.”


이 혼란스럽고 정신없는 전장에서도 서연은 태평하기 그지없었다.

대체 어떻게 저렇게 평정을 유지하는 건지 지금 보니까 좀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아무튼 덕분에 허둥지둥거리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은 나는 침착하게 진영 중앙에서 날뛰고 있는 고위전사를 향해 덤벼들었다.


- 까앙!


메이스로 고위전사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는데 투구에 막혀 둔탁한 소리만 날 뿐 그다지 충분한 데미지가 들어갔다는 느낌은 없었다.

얘들이 착용하고 있는 갑옷⋯ 그냥 평범한 갑옷이 아니라 우리가 흔히 아이템이라 부르는 마력이 깃든 물건이었다.


“다들 괜찮아?!”

“빨리도 온다! 궁수랑 마법사 똑바로 안 지켜?!”


뭐, 하은이도 그렇고 특히 형 같은 경우엔 전투에 매우 숙련된 사람이라 다행히 내가 없는 동안에도 알아서들 잘 버틴 것 같았다.


“이제 저기 저놈은 내가 맡을게! 형은 진영 안으로 쳐들어온 기병들 좀 처리해줘!”

“안 그래도 그러고 있어! 야, 너 온 김에 화살이나 더 만들어 주고 가라!”


얼마나 빠르게 쏴 재낀 건지 형의 화살은 벌써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우리 세계의 기병은 기수만 무력화 시키면 남는 건 그냥 평범한 말뿐이지만 하이오크들이 타고 다니는 건 몬스터라 기수와 몬스터 양쪽을 모두 죽여야 해서 화살이 두 배로 소모되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나는 형의 요청대로 나중에 주워 쓰든가 말든가 뭐가 닳는 것도 아니고 그냥 무식하게 많은 화살을 대량으로 제작해 마구잡이로 바닥에 흩뿌린 뒤 고위전사를 향해 눈을 돌렸다.


“그르르!”


내가 놈의 앞을 막아서자 분노와 흥분에 가득 차 앞뒤 재지 않고 일단 들이박고 보는 보통의 오크와 달리 고위전사는 그 거대한 검을 앞세워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고 탐색전에 나섰다.

오크가 탐색전을 한다는 것은 종족 특유의 본능을 통제할 만큼의 지능이 있다는 것이고 지능이 있다는 것은 기술과 전술이 있다는 뜻이니⋯ 절대 만만하게 볼 상대는 아닌 것 같았다.


“하은아, 잠깐 나 좀 도와줄래?”

“어?! 뭐 하면 되는데?!”


형과 함께 휘몰아치는 기병의 공격을 피하고 또 정밀 조준해 하나씩 요격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는 하은이 대꾸했다.


“나랑 같이 저 강해 보이는 하이오크 좀 같이 후딱 해치우자! 저거 빨리 치워버리는 게 좋을 것 같아!”

“미안하지만 아저씨 혼자 어떻게든 해보면 안 될까?! 저 하이오크가 입고 있는 갑옷에 마법 저항 효과가 엄청 붙어있는 것 같아! 마법을 써도 마력이 다 흩어져버려서 마법 공격은 너무 비효율적이야!”

“아오! 또 그런 게 있어?! 알았어, 볼일 봐!”


저거 보통 좋은 아이템이 아니구나.

거기다 고위전사는 판세를 제대로 읽어 먼저 덤비지 않고 계속 방어 자세만 굳히고 가만히 있었다.

시간 끌면 지가 유리한 걸 안다는 거지, 아주 잘 알고 있네.

나는 얄미울 정도로 자신의 상황을 잘 이용하는 고위전사의 방어에 먼저 맞부딪히며 기울어져 있는 불리한 싸움의 막을 열었다.


- 후웅!

- 까앙!


내가 막힐 것이 뻔한 메이스를 휘두르며 접근하자 고위전사는 보기와 다르게 날렵하게 검을 휘둘러 반격했다.


- 까가각!


“으윽⋯!”


내가 아무리 힘이 세졌다고 해도 상대는 힘으론 절대 뒤지지 않는 종족인 오크.

이런 단순 무식한 힘 싸움으로 상대해서는 불리하기만 한 싸움⋯.


- 후웅, 콰아악!

- 촤아악!


“윽?!”


힘 싸움이 아닌 기술 싸움으로 몰아가 우위를 점하려 머리를 쓰고 있는데 고위전사가 내 메이스에서 검을 잠시 뗀 뒤 다시 힘껏 내려쳤다.

그런데 그 순간, 분명 검의 날은 완벽히 막았는데 어째선지 내 팔이, 가슴이, 어깨가 얼굴이, 날카로운 것에 할퀴어진 듯 쫙 베였다.


“뭐야, 씨발! 이거 검기야?!”


검기였다.

미약하지만 고위전사의 검에는 붉은빛의 마력이 깃들어 있었다.


“꾸루루룩!”


아니 오크 새끼가 나도 못 쓰는 검기를 다루다니, 그 사실에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고 순간 내 얼굴을 본 오크가 요상한 소리를 냈다.

오크 말을 알아듣는 건 아니지만 이거 무조건 비웃는 소리다.


“쯧! 이제 나도 모르겠다!”


완전히 이성적인 판단은 아니다, 분명 어느 정도 감정도 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틀린 판단도 아니다.

현황을 봤을 때 이 고위전사는 처치 대상 1순위가 분명하다.


- 텁.


나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충격파가 하늘 위로 향하도록 고위전사의 턱밑에 대고 데미지 뱅크를 발동했다.


- 쩌엉!


순식간에 터져나온 엄청난 마력파가 공기를 가르며 일순 주변을 진공상태로 만들었다.

천장을 뚫을 기세로 솟구친 마력파는 고위전사의 머리통은 물론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모조리 하늘로 끌고 올라가 나는 깔끔하게 고위전사를 해치울 수 있었다.

만일을 위해 아껴두고 있었는데⋯ 뭐, 그래도 쿨타임이 1시간밖에 되지 않아서 부담이 많이 줄었다.

이젠 쿨타임보다 충전하는 게 더 큰 문제지만 어쨌든 손쉽게 당장의 골칫거리를 치운 나는 눈썹이 휘날리도록 다시 진영의 후방으로 향했다.

서연이에게 버티는 데까지 버텨보라곤 했지만 말이 그런 거지 사실 서연이가 전혀 혼자 버텨볼 만하지 않았다.

그래서 뚫리면 아예 내가 있는 곳까지 쭉 빼라고 했는데 애가 오지를 않으니 설마 도망도 못 치고 기병 돌격에 깔려 죽은 건 아닌지 아주 오만가지 걱정이 다 들었다.


“으⋯ 내 팔⋯ 이거 다시 꺾으면 돌아오나?”


하지만 놀랍게도 서연은 아직도 꿋꿋이 서 후방의 전선을 유지해 주고 있었다.

물론 슬슬 한계였는지 부러진 오른팔이 기괴하게 꺾여있었고 칼과 창에 찔려 피를 줄줄 흘리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내 걱정에 비하면 비교적 멀쩡한 모습으로 살아있었다.


“기다려봐, 내가 맞춰줄게!”

“응? 아, 응.”

“자, 한 방에 간다? 몸에 힘 풀고⋯!”


- 우드득!


“으익.”


나는 돌아간 팔을 혼자 맞추려는 서연을 대신해 팔뼈를 돌려주었다.

뭐, 제대로 맞춘 건 아니지만 적당히 원래 모양에 가져다 놓기만 하면 나머지는 피를 흡수시키면 알아서 제자리를 찾아갈 테니 상관없었다.


“너 내 생각보다 잘 싸운다? 못 버틸 줄 알았는데.”


나는 서연에게 물 흐르듯, 아니 말 그대로 피 흐르듯 자연스럽게 손목을 따 피를 흘려주었고 서연도 당연하다는 듯 그 피를 받아 흡수시키며 몸을 회복했다.


“응, 여기 오기 전에 받은 훈련이 효과가 컸어, 그런데 그것보다 네 스킬이 엄청나. 잘 안 죽어. 그게 아니었다면 못 버텼을 거야.”

“스킬? 아, 수호자의 의지 말하는 거구나?”


굳이 의식하지는 않고 있었는데 상시 발동해놓은 수호자의 의지와 성역은 아주 크게 활약하고 있었다.

지금도 누군가가 받는 데미지를 내가 상쇄시켜주는 덕에 여기저기서 많은 이들이 고비를 넘기고 있었다.


“박준호! 너 괜찮아?!”

“오? 나는 괜찮지, 여긴 어떻게 왔어?”


뭐랄까, 직접 세본 건 아니지만 감각적으로 적의 공세가 조금 수그러졌다 싶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을 때 미즈키가 일본 헌터들을 이끌고 이쪽으로 합세했다.


“틈이 보여서 뚫고 왔지! 각개격파 당하지 않게 조금이라도 뭉치는 게 유리하니까!”


- 휘리릭! 촤아악!


가볍게 검을 쥔 미즈키는 부드러움과 사나움이 공존하는 신비한 움직임으로 기병을 정리하는 걸 도와줬다.

그리고 형과 같은 궁수인 유스케가 안전한 가운데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화살을 쏘아대며 지속적인 원거리 공격을 제공했고 그런 유스케의 주변에 아이리와 켄토가 서 서로를 보조했다.

역시 이쪽도 함께 해온 짬이 있어서 그런지 호흡이 척척 맞는구만.


“미즈키! 뭔가 슬슬 싸움이 막바지에 접어든 느낌인데 이거 나만 그렇게 느껴?!”

“아니! 그 느낌이 맞아! 적은 얼마 안 남았어! 그러니까 더는 피해가 발생하지 않게 이대로 조금만 더 버텨!”


미즈키까지 합세하며 조금 숨통이 트인 나는 전투를 돌아보고 또 돌이켜볼 여유가 생겼다.

그러고 보니 한 번의 고비를 넘긴 뒤로 하이오크 군단의 공세가 계속 잦아들었다.

그 이유를 이제 와서 살펴보니 우선 소은 누나의 무지막지한 공습으로 하이오크 군단은 뒷심을 책임져줄 후발대가 괴멸해버렸고 또 최유준, 최유나 헌터의 활약으로 병력을 통제할 지휘관이 죄다 암살당해 지휘체계를 잃었다.

이제 작전도, 병력도 없는 하이오크 군단이 전멸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 그오오오오!!!


그때, 군단의 뒤편에서 우렁한 함성과 함께 유난히 거대하고 또 강력해 보이는 보스가 기세 좋게 등장했다.

보스까지 등장한 걸 보니 진짜 끝이라는 느낌이었다.


“준호야! 네가 전방을 맡아줘! 난 잠깐 저것 좀 해치우고 올게!”

“오케이, 다녀와!”


수적 열세가 두드려졌던 전투 초반과 달리 이제 그림자 병사 덕분에 우리 쪽의 숫자가 크게 부족하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나는 이제 거의 없다시피 한 후방의 적을 뒤로하고 아린이와 자리를 바꿔 진영의 전방을 맡았고.


- 쾅! 콰아앙!

- 퍼어억! 펑! 퍼억!

- 촤라락! 푸화악!


- 크어어엉!


그곳에서 6명의 S급 헌터의 협공에 의해 하이오크 보스의 몸뚱이가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것을 구경했다.


“흐앗!”


- 빠악!


“쿠오오⋯!”


내 눈앞에 보이는 마지막 하이오크의 머리통을 메이스로 깨고 주변을 둘러보자 다른 사람들과 눈이 맞았다.

그 사람들도 자신의 앞에 있던 마지막 하이오크를 죽이고 아직 남은 곳 있나 둘러보던 것이다.

하지만 없었다.

이제 이 넓은 공간에는 단 한 마리의 하이오크도 서 있지 않았다.

우리의 승리인 것이다.


“⋯끝났다.”

“⋯끝났군.”


힘겨운 전투가 끝났고 또 승리했다.

하지만 함성을 지르거나 기뻐하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그저 잠시 미뤄뒀을 뿐, 진짜 힘든 시간은 지금부터라는 걸 모두가 알기 때문이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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