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급 무한재생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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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작품등록일 :
2023.11.26 04:32
최근연재일 :
2024.09.20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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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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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20화

DUMMY

“몸은 좀 괜찮니?” “네, 괜찮아요.”

“괜히 분위기에 떠밀려서 괜찮다고 할 필요 없어, 피곤하면 더 쉬어도 돼.”

“아니에요, 정말 괜찮아요.”

“그래, 알았어.”


혼자 쉬고 있는데 소은 누나가 살며시 찾아와 조용히 그렇게 묻고는 다른 사람에게로 향했다.

유럽과 미국 쪽에서도 대표자 한 명이 자기 그룹 소속의 헌터들을 찾아다니며 아마도 비슷한 질문을 하고 있는 듯했다.

아마도, 라고 하는 건 잠시 통역 마법이 해제돼 무슨 대화를 나누는 건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슬슬 진행해도 괜찮을까요?”

“네, 문제없습니다.”

“저희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각국의 대표인 소은 누나와 요한나, 엠마는 합의를 이루었다.

놀 만큼 놀았으니 슬슬 일을 시작하자는 것이었다.

다만 모두의 앞에서 더 쉬고 싶은 사람 손 들라고 하면 쉽게 들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기에 모두의 목숨이 걸린 일인 만큼 비밀투표의 방식으로 의견을 물어 최대한 개개인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


“좋아요, 만장일치네요. 그럼 우선 깔끔하게 정리하고 다시 모이도록 하죠.”

““네.””


다시 위로 오르기로 결정이 났다.

우린 각종 물건을 다시 아공간에 차곡차곡 쌓아 넣어 정리한 뒤 61층으로 향하는 계단 앞에 섰다.

잘 쉬었으면 의욕이 나야 하는데 참 올라가기 싫었다.


“⋯뭔가 다들 발걸음이 느리네.”

“사람 생각 다 똑같나 봐.”


계단을 오르는데 아린이가 그렇게 말했다.

특별히 몸이 힘든 건 아니지만 또 그 지옥 같은 전쟁터로 나아가기 싫은 건 모두가 마찬가지인지 무리의 발걸음이 묘하게 끈적였다.


“그런데 지금부터는 다른 나라 헌터들이랑 같이 다니는 건가?”

“일단 분위기상으로는 그런 것 같은데?”

“쓰읍~ 이거 불안한데.”


사람도 많아진만큼 든든하면 더 든든하지 불안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데 형은 대뜸 그렇게 말했다.


“뭐가 불안한데? 덕분에 S급도 세 배는 늘었는데.”


- 두웅! 두웅!


내가 그런 질문을 하는 순간 갑자기 저 멀리서 북소리 같은 게 들려왔다.

평범한 북소리는 아니고 엄청나게 많은 수의 무언가가 엄청나게 큰 북을 쳐 땅이 진동할 정도였다.


“으음⋯ 대충 저런 거?”


그리고 잠시 후, 형은 길고 넓은 통로 끝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몬스터 무리를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 부우우!


수많은 몬스터들은 뭔지 모를 생물의 뼈로 만든 나팔을 불며 대열을 갖추고 발을 맞춰 우리를 향해 진군했다.

뿔과 비늘이 나고 날개 달린 도마뱀 같기도, 사람 같기도 한 형체의 몬스터.


“저건 설마⋯.”


악마였다.

그것도 그냥 대충 생겨 먹은 하급 악마가 아니라 바깥에서의 표현을 쓰자면 하나하나가 B~A급 던전의 보스 수준의 힘을 가진 상위종, 즉 그라고스와 무라고스 급은 되는 최정예 전사로 구성된 악마 군단이었다.


“앞으로!”


몬스터의 모습이 육안으로 확인되는 순간 요한나가 그렇게 외치자 요한나의 길드인 드라헨부르크의 헌터 5명이 앞으로 뛰어나가 방패를 들어 방패벽을 세웠다.

아직 한 번도 전투에서 합을 맞춰본 적이 없는 우린 누가 뭘 해야 하나 살짝 우왕좌왕하는 감이 있었지만 드라헨부르크에서 먼저 전위를 서주니 근접 무기를 든 헌터들이 알아서 방패 뒤에 섰고 원거리 무기를 가진 헌터들과 마법사와 힐러들이 그 뒤를 이었다.


“⋯⋯⋯⋯.”

“⋯⋯⋯⋯.”


그렇게 대열을 갖춘 양 진영이 대치하고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


“데우토엘나 타 칸!”

“““데우토엘나 타 칸!”””


악마 쪽에서 무어라 외치며 먼저 돌진해오며 전투에 불이 붙었다.


“저거 뭐라는 걸까?”


내가 화살을 만들어 주기 위해 잠시 다가온 사이, 형은 반쯤 긴장을 풀기 위해, 그리고 반쯤은 진짜 호기심에 그렇게 중얼거렸다.


“글쎄, 악마 말은 잘 모르겠는데.”

“위대한 데우토시여, 우리의 전투를 지켜봐 주소서, 대충 그런 뜻?”


그런데 뒤에서 하은이가 악마들의 외침을 해석해주었다.


“너 악마어도 알아?”

“악마어 아니야, 지금은 멸망한 세계의 영어 같은 일종의 공용어야, 악마족의 기원과 연관이 있는 일인데 자세히 말하면 기니까 나중에 하고⋯.”

“?”


하은이는 말을 깔끔히 끝내지 않고 뭔가 망설였다.


“왜, 더 할 말 있어?”

“아니, 그게 실은⋯ 마나 거의 다 떨어졌어.”

“어?”

“아직 완전히 떨어진 건 아닌데 이제 예전처럼 막 쓰지는 못해, 그러니까 그⋯ 호위 좀 부탁해. 기습 같은 걸 당하면 대처하지 못할 수도 있어.”


하은이는 이런 부탁을 해야한다는 현실이 굉장히 불쾌한 듯 말하는 내내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니, 불쾌할 것이 확실하다.


원인도 할 수 없는 모종의 이유로 자신이 평생 갈고 닦아온 힘을 완전히 잃어야 한다니, 그런 현실을 어떻게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혼자 속이 아주 검게 타들어 갔을 텐데 그럼에도 크게 내색하지 않던 하은이를 두고 평생 검을 못 쓴다는 것도 아니고 검기 좀 못 쓸 거라는 이야기 들었다고 혼자 질질 짠 내가 더 한심한 인간으로 느껴졌다.


“알았어, 맡겨두고 적당히 조절하면서 해, 아니, 웬만하면 마력 아예 쓰지 마.”


전에 나왔던 층처럼 앞으로 또 혼자서 클리어해야 하는 더 이상 없다는 보장이 없다.

그런데 그 전에 마력을 다 써버리면 그땐 아이리가 문제가 아니다.

나는 하은이에게 최대한 마력을 아낄 것을 당부했다.


- 콰아앙!


전열에 선 드라헨부르크 헌터들의 방패에 악마 군단이 격돌하며 큰 충격이 일었다.

공격의 사정권에 들어온 헌터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고 전투가 치열해지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


다른 사람들은 죽어라 싸우는 와중에 하은이는 멀뚱멀뚱 서 있었다.

멀뚱멀뚱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아.”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본 하은은 한숨을 푹 쉬었다.

지금 하은이 느끼고 있는 무력감과 자괴감이 얼마나 클지 상상도 가지 않았지만 이럴 땐 어설프게 위로하기보단 그냥 모른 척하는 게 약이다.

나는 전투가 어떻게 진행되나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하하하! 쇼타임!”


그중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사람은 제이든이었다.

그는 총을 무기로 쓰지만 후방에서 싸우지 않고 앞으로 튀어 나가 악마 무리 속으로 다이빙했다.

저거 뭐 자살인가 싶었지만 미국 헌터들은 그런 그의 모습이 익숙한지 딱히 신경도 쓰지 않았고.


- 타다다다다다다다다당!!!


제이든은 피스키퍼와 호크아이를 난사하며 악마의 대가리를 터트려 시원하게 쓸어버렸다.

내 만년빙을 쏠 때는 좀 살살 쏜 건지 두 리볼버의 위력은 총이 아니라 대포 수준으로 아주 살벌했다.

하긴,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S급 헌터를 왜 내가 걱정해.


- 스으윽.


“후우우⋯.”


그다음으로 눈을 돌린 곳엔 전위에 선 요한나였다.

그녀는 외모에 어울리는 경건한 표정과 자세로 악마가 들이닥치길 평온히 기다렸고.


“수가! 브리나!”


- 촤악!


검의 사거리에 들어오는 순간 악마의 몸이 반토막 났다.


- 촤악! 촤악! 촤악!


요한나의 전투는 S급 헌터가 펼쳐지는 전투치곤 다소 투박한 맛이 있었다.

물론 잘 싸우긴 하지만 S급의 전투는 보면 와~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화려하고 어마어마한, 이게 S급이구나 하는 격이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기 마련인데 요한나는 상당히 심심하고 싱거웠다.

⋯아마 보통 사람이 봤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와⋯.”


하지만 요한나의 검술을 본 나는 입을 벌리고 놀랐다.

요한나는 아린이나 미즈키와는 또 다른 스타일의 검술을 선보였다.

태산과 같이 묵직한 스텝, 딱 맞아떨어지는 검의 힘과 속도와 궤적, 빈틈이라곤 없는 철통같은 방어.

마치 거대한 성 한 채가 통째로 움직이며 적과 싸우는 듯했다.


“⋯응?”


그렇게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세계 각국 S급들의 힘을 직관하는 귀한 경험을 하는 중에 갑자기 어떤 악마 하나와 눈이 맞았다.

그 악마는 아까부터 전투 중에 힐끗힐끗 나를 보고 있었고 나와 눈이 마주친 뒤로는 아예 대놓고 내 행색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쭉 살폈다.


- 타앗! 쿵!


그리곤 갑자기 공중으로 뛰어올라 내 앞에 착지했다.

⋯컸다.

키가 한 6미터는 돼 보였다.

악마는 그 높은 시선에서 나를 내려다보며 다시 한번 내 모습을 슥 살피더니 씩 웃으며 땅이 꺼질 듯한 저음의 목소리로 말했다.


“크큭⋯ 재밌군.”

“어, 뭐야. 너 사람 말 하네?”

“크하핫! 재밌어, 재밌어!”


아닌가? 못 하나?

악마는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계속 혼자 웃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메이스. 그라고스의 것이지?”

“어, 이거? 알아보네?”


그라고스 나름 고위 전사라는 게 마냥 허풍은 아니었던 건가.

메이스만 보고 그 주인을 알아보는 악마가 있었다.


“그 병신같은 새끼⋯ 전투에서 패하고 목숨을 구걸해 추방됐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이런 쓰레기 같은 인간에게 진 것이었다니, 악마의 수치도 그런 수치가 없군.”


놈은 그라고스가 내게 졌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기쁜지 아주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뭔가 원한 관계라도 있는 건가?

흠, 보통 이런 경우에는⋯.


“네가 그라고스한테 치여서 이제야 겨우 한자리 받았다는 그 약해빠진 악마구나? 생긴 거 보니까 알겠네.”

“뭐, 뭣⋯! 그라고스 그 자식⋯ 추방당한 몸 주제에 감히 이 몸을 그렇게 이야기 한 것이냐?!”


어머, 그냥 대충 찍어본 건데 이게 진짜네.

이름 모를 악마는 안 그래도 빨간 피부가 더 빨개지도록 흥분해 콧김을 뿜어댔다.


“그것만 얘기한 건 아니야, 혹시 만나면 좆밥도 그런 좆밥이 없으니까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죽이라고 하더라.”


내가 괜히 왜 이러는 걸까.

날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고 해서?

아니, 나는 놈이 그라고스를 욕한 게 기분이 나빴다.

안 그래도 미운 정 정도는 있던 놈인데 50층에서 지낸 일주일 사이에 정이 더 든 모양이다.


“군단장님의 총애를 받는 이 몸에서 그런 모욕이라니!”

“뭐, 꼬우면 입 그만 털고 덤벼, 시끄럽게 하지 말라고 힘으로 증명하라고.”

“크아아!”


분노한 악마는 크게 발톱을 휘둘렀다.

크고 두꺼운 손톱 자체에 마력이 실려 별다른 무기가 필요 없어 보였다.


- 카앙!


피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일부러 놈의 공격을 메이스로 막았다.


- 촤아악!


뭐, 왜 그라고스한테 밀렸는지 알만하네.

악마의 공격은 손톱을 막아도 손톱에 실린 마력이 작렬해 갑옷이 막아주지 않는 부분을 찢어 놨지만 표정 관리만 하면 맞을만한 정도였다.


“이제 내 차례지?”

“뭐, 뭣⋯?!”


한 방 먹였다고 생각했을 텐데, 내 상처가 순식간에 재생되자 놈은 당황한 눈치를 보였다.

나는 그 순간을 노려 메이스로 막고 있는 손톱을 밀쳐내고 확 달려들어 놈의 무릎을 메이스로 내려 찍었다.


“이건 그라고스가 넘겨준 메이스!”


- 빠각!


“그어어어!”


있는 힘껏 악마의 무릎을 내려찍자 역시 상위종 악마인지 뽀각하고 부서지진 않았고 살~짝 금이 가는 느낌 정도였지만 무릎같이 민감한 부위에 그 정도 부상은 치명적이다.

뭐, 그래도 곧 회복되긴 하겠지만 나는 한쪽 무릎을 꿇어 눈높이가 조금은 낮아진 악마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히트비전을 먹였다.


“이건 그라고스가 안정화 시켜준 불씨!”


- 파지지지직!


“우어어어!”


히트비전의 고압, 고열의 불길 세례에 악마의 비늘이 깔끔하게 소각되며 얼굴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타버렸다.


“내 말 들리나? 들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들어.”


나는 쓰러져 고통에 몸부림 치는 악마를 향해 정확한 팩트를 말했다.


“그라고스가 당한 건 나한테 당한 게 아니야, 나보다 더 강한 다른 사람한테 당했고 그라고스는 적어도 나 정도는 가지고 놀았어.”


물론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차이가 있지만 지금도 아린이가 나보다 강한 건 사실이니까 거짓말은 하나도 섞지 않았다.


“그런데 넌 이게 뭐야, 네가 그라고스한테 뭐라고 할 입장이 아닌데?”

“그아아! 그아아아아!”


이름도 모를 악마는 아직도 그라고스의 벽을 넘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 분한지 얼굴이 다 타버린 와중에도 분노에 가득 찬 괴성을 질렀다.


“아, 아저씨!”


내가 악마와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전투가 심화되며 슬슬 전위를 뚫고 진영 안쪽으로 침범하는 악마도 몇 생기고 있었다.

하은은 자신이 마력을 쓸 일이 없도록 내게 미리 경고해 주었다.


“응, 알았어.”


나는 고개를 끄덕여 그런 악마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하은에게 알렸고 아직도 괴성을 지르며 신체의 고통이든, 심적인 고통이든, 어떤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악마를 돌아보았다.


- 파지지지직!


그리고, 놈의 머리를 향해 최고 출력의 히트비전을 쭉 갈겨 머리에 구멍을 뚫어주며 고통을 끝내주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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