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급 무한재생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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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작품등록일 :
2023.11.26 04:32
최근연재일 :
2024.09.20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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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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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화

DUMMY

소은 누나는 쓰러진 채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박지연 헌터의 시신을 한참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뭐,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죽었으니까.

죽은 사람이 일어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


그렇게 한참 넋을 놓고 있던 소은 누나는 문뜩 뭔가 떠올랐는지 살포시 무릎을 꿇고 아직도 부릅뜨고 있는 박지연 헌터의 눈을 감겨 주고 널브러진 팔과 다리를 다소곳이 모아주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많은 생각과 감정이 교차했다.

슬프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후회되기도 했다.

그중 가장 두드러지는 감정은 다름 아닌 수치스러움이었다.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말로 꺼내진 않았지만 나는 언제부턴가 속으로 탑을 만만하게 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별일 없기도 했고 나도 상당히 강해진데다 무엇보다 S급이 6명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S급들이 알아서 해주겠지,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안일함이 무의식중에 깃들어 있었다.

그러다 이렇게 누군가 죽고 나서야 여기가 만만한 곳이 아니구나, 방심해서는 안 되는구나, 라고 처음부터 자각하고 끝까지 지켰어야 할 마음을 다시 먹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내 꼴이 스스로 너무 부끄러웠다.


“⋯다들 잠시만 기다려줄 수 있을까요. 시신을 이대로 두긴 그렇고⋯ 화장이라도 해주고 싶은데.”


밖에서처럼 삼일장까지는 치러주진 못하더라도 화장은 해주고 싶다는 소은 누나의 의견에 이견을 제시하는 이는 없었다.

그것이 자신과 함께 싸운 동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만일 자신의 차례가 왔을 때 같은 예우를 받을 자격을 얻는 것이니까.


- 타닥, 타닥.


소은 누나는 박지연 헌터의 가족에게 전달할 반지나 목걸이와 같은 유품을 몇 가지 챙긴 뒤 마법으로 그녀의 몸을 태우고 멍하니 불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옆에 서 있는 나를 향해 대뜸 그런 질문을 했다.


“믿는 종교 있니?”

“아니요, 없어요.”

“그럼 영혼이나 사후세계 같은 건 어떻게 생각해?”

“그건⋯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어떤 고뇌나 증명을 거쳐 내린 결론은 아니다.

그냥 남들이 다 있다니까, 특히 최근 다른 세계의 존재들이 있다고 하니까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맞아, 아마 있을 거야.”


소은 누나의 뜬금없는 말에 호기심이 확 솟았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믿어 먼저 세상을 떠난 박지연 헌터가 어딘가에서 계속 존재한다고 믿고 싶은 건지 진짜 마법적으로 영혼과 사후세계의 존재를 발견한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 그걸 캐묻기는 어려웠다.


- 스윽, 스윽, 후두둑.


잠시 후, 화장이 끝났다.

마력이 빠져나가 평범한 인간의 신체가 된 박지연 헌터의 육체는 마법에 의한 고온의 불길에 금세 재가 되어 흩어졌고 소은 누나는 새하얗게 남은 뼛가루를 작은 주머니에 한 줌 챙겨 넣었다.


참⋯ 허무했다.

방금까지 살아 숨 쉬던 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끝나고 이제 남은 육신이라곤 손바닥보다도 작은 주머니 속 한 줌의 뼛가루라니.

죽음이란 내 인지와 지식으로는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일이었다.


“자아⋯ 뭐⋯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지만 그렇다고 온 정신이 여기에 매몰돼 할 일을 못 하면 안 되겠지. 더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충분히 주의하면서 계속 가보자.”


모두가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는 분위기를 읽은 소은 누나는 애써 밝은 말투로 그렇게 말하며 앞장서 탑의 상층을 향해 나아갔다.

아직도 경황없고 마음도 다 추스르지 못했을 테지만 때론 어떤 것에 대해 일부러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감정과 생각을 붙잡지 않고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다.

소은 누나가 지금 그렇게 하고 있었다.




***




57, 58, 59층을 지나며 힘든 싸움이 계속 이어졌다.

56층에서의 일 때문에 우린 적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해치우는 것보다 누구도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데 크게 주목했고 힘과 노력과 시간은 더 많이 들었지만 그 덕에 누군가의 목숨이 위험해진다거나 하는 위기 없이 60층에 도달할 수 있었다.


“뭐지, 여긴?”

“음⋯.”


그냥 몬스터랑 싸우는 게 제일 속 편한데, 이렇게 한 번씩 뭘 하라는 건지 의문인 층이 나올 때면 가슴이 철렁였다.

60층은 그냥 광장이었다.

앞으로 향하는 길이 막혀 되돌아가는 길밖에 없는 텅 빈 광장.


“응? 저기, 여기 좀 보세요!”


그때 무언가를 발견한 아린이가 모두를 불러 모았다.

아린이가 발견한 것은 작은 안내판이었다.


[만남의 광장]

이곳은 안전합니다,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가지세요.


그리고 그 안내판에는 간단명료하게 쉬어가라고 적혀 있었다.


“또 쉬어가는 층인가? 50층에서 10층밖에 안 올라오긴 했지만⋯ 뭐, 피로감은 비슷하긴 하네⋯.”


안내판을 읽은 형은 혼잣말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뭐, 확실히 1층에서 50층까지 올라가는 건 우리가 너무 단숨에 오른 탓에 제풀에 지쳐버린 느낌도 있었지만 50층에서 60층은⋯ 치열한 전투 탓에 점점 체력을 빼앗겼다.


“⋯그런데 이렇게 대놓고 안전하다고 못 박아 놓으니까 괜히 더 의심스러운 건 나만 그런가?”

“그래도 지금까지 경험한 걸로 봐서 여기 거짓말은 안 하는 것 같아요.”


그라고스 때처럼 완전히 배경이 바뀌기라도 하던가, 그냥 던전처럼 생겼는데 안전하다니 석혁 형님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길이 막혀 더 이동할 수도 없고 확실히 재현이의 말대로 탑이 거짓말을 한 적은 없기에 결국은 이곳에 캠프를 차리고 좀 쉬었다 가기로 했다.


- 탁탁탁탁!

- 치이이익!


벌써 며칠째 전투식량으로 연명했으니 우린 안전 공간이 나온 김에 조리도구를 전부 꺼내 제대로 된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요리 당번은 자연스럽게 내가 됐다.

나 말고는 다들 한평생 헌터만 해본 양반들이라 내가 도맡아 하는 게 나았다.


“준호야~ 밥은 다 됐어~.”

“아, 그래! 나도 거의 다 됐으니까 미리 좀 퍼줄래?”


그래도 테이블 세팅이나 전기밥솥으로 밥 짓기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니 그 정도는 아린이도 도와줬다.


“준호야.”

“어어, 왜!”


20인분의 반찬을 혼자 만들기 위해 정신없이 고기를 볶고 있는데 국을 맡겨뒀던 서연이가 다가와 물었다.


“근데 저거 언제까지 보고 있어야 해?”

“야 이 멍청아! 보고 있으라는 게 진짜 그냥 보기만 하고 있으라는 게 아니잖아! 아이고, 다 넘쳤네!”


아⋯ 김서연한테 확실하게 지시를 내리지 않은 내 잘못이다.

나는 펄펄 끓어 넘치고 있는 국의 불을 끄고 고기가 타지 않게 서둘러 돌아와 팬을 잡았다.

넉넉하게 25인분 정도로 양을 잡아서 다행이지 잘못 하면 누군가는 국을 못 먹을 뻔했다.


“그거 다 됐으니까 그릇에 담아서 테이블로 옮겨놔! 너 안 쏟게 조심해라?!”

“응, 안 쏟게 조심⋯.”


- 와장창창!


“미즈키! 미즈키!!!”


얘한테 계속 맡겼다가는 국은 아무도 못 먹게 생겼다.

나는 급히 미즈키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누나, 밥 준비 다 됐어요, 와서 드세요.”

“응? 아, 응! 혼자 준비하느라 고생했어!”


매일 수백인 분의 음식을 만들어 파는 게 내 일이었는데 고작 20인분 쯤이야.

나보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캠프를 중심으로 방어 마법진을 그리고 있는 소은 누나가 더 고생이었다.


“키야~ 갓 지은 쌀밥에 파릇파릇한 배추쌈이라니! 신선한 게 그립던 참인데 잘 됐군!”

“우리 준호 완전 일등신랑감이네~ 누구한테 장가갈진 몰라도 부럽다~.”


간만에 음식다운 음식을 먹은 석혁 형님과 소은 누나는 매우 만족스러워했고 다른 사람들도 잘 먹는 모습을 보니 요리사⋯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만든 사람으로서 흡족했다.


“크흠⋯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또 요리에 소질이 있는 줄은 몰랐군.”

“넌 말만 조금 예쁘게 해도 인기 많을 거 같은데 말이야.”

“인기 따위엔 관심 없다.”

“아, 그치! 나도 그 생각하거든! 우리 미즈키가 얼굴은 참 예쁜데 성격이 좀 그래! 같이 살면 피곤한 스타일!”

“닥쳐라, 유스케.”


뭐⋯ 그래도 시간이 약이라는 게 이런 뜻일까, 박지연 헌터의 죽음으로부터 며칠이 지난 지금의 분위기는 이런 느낌이었다.

물론 소은 누나는 아직도 혼자 조용히 그녀의 반지를 바라보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그 당시 정말 모두가 주저앉아버릴 것만 같은 초상집 분위기에서는 벗어난 느낌이었다.


- 드드드!


먹고, 마시고, 즐겁고 편안한 한때를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그런 진동이 일었다.

그 진동에 당연히 식사는 즉시 중단되었고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무기를 집어 들고 사방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뭐, 뭐지? 안전하다는 건 거짓말이었나?

이런 식의 페이크도 쓸 수 있는 거였어?


- 드르르륵!


기습이 당황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불리하진 않다.

아니, 오히려 유리하다.

이곳은 소은 누나의 방어 마법진까지 갖춰진 이미 요새나 다름없는 우리의 홈그라운드였다.


“⋯온다!”


벽 한쪽의 통로가 열렸고 그곳으로부터 다가오는 마력을 느낀 아린이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곧 통로 안쪽으로부터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 콰지지지직!!!


그 순간 마법진이 작동하며 허용되지 않은 침입자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그런데.


- 지지직! 지지지직⋯ 파아앗!


선명하게 빛을 뿜어내며 잘 작동하던 마법진이 흐릿해지더니 한 번 크게 출렁이며 작동을 멈췄다.


“뭐, 뭐야?! 마법진이 깨졌어!”

“예?!”


그에 소은 누나는 크게 당황하며 그렇게 외쳤고 당연히 나도 많이 놀랐다.

아니, 언제나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소은 누나의 방어 마법진이 깨졌다니, 대체 얼마나 대단한 적이 나타난 건지 감도 오지 않았다.


“#%&±×*$!”

“▽@∋↑▲^!”


방어 마법진이 깨지는 순간, 통로 안쪽에서 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몬스터가 아닌⋯ 한 무리의 인간이었다.

우리처럼 갑옷과 각종 무기로 무장한 한 무리의 인간.

그들은 무어라 알 수 없는 언어를 외치며 순식간에 광장 안으로 뛰어 들어와 우리와 대치했다.


“뭐, 뭐야⋯ 이세계인이나 뭐 그런 건가?!”

“마력이 장난 아니야, 다들 긴장해!”

“빠르게 진영 꾸리는 거 보니까 오합지졸도 아닌 것 같은데?”


마네티와 엘라도 겉모습은 영락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번에도 이세계의 존재를 적으로 상대해야 하는 건가 하고 예상했는데⋯.


“자, 잠깐! 잠깐만! 다들 조용히 해봐, 다들 조용! 조용!!!”


갑자기 소은 누나가 그렇게 소리를 치며 모두를 침묵시켰다.


“⋯⋯⋯⋯.”

“⋯⋯⋯⋯.”


소은 누나의 강력한 요구에 우린 입을 다물고 고요함 속에 신경만 잔뜩 곤두세우고 경계를 유지했다.

그런데 그 순간.


“@^%&$%$%?”

“엑?”


소은 누나가 저들의 말을 사용했고.


“%@! ±♤▣!”


저들도 소은 누나를 향해 대답했다.

이거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지?

설마 무라고스한테 배운 이세계의 언어를⋯?


“박준혁!”


혼자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데 갑자기 저쪽 무리에서 또렷한 한국어로 형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엥?!”


그리고 탑에서 들이닥친 적들 사이에서 난데없이 자신의 이름을 불린 형은 누가 자신의 이름을 부른 건지 확인하기 위해 쭈뼛쭈뼛 앞으로 나섰다.


“뭐, 뭐야! 네가 왜 여기에⋯!”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부른 이를 확인한 형은 크게 놀랐고 나도, 아린이도, 하은이도, 여기 있는 모두가 놀랐다.


“너야말로 B급밖에 안 되는 게 여기서 뭐 해!”


형의 이름을 부른 이는 다름 아닌 형의 여자친구, 요한나였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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