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만능 수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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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공장성소
작품등록일 :
2023.11.30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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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7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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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1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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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오키아 공성전(4)

DUMMY

“더 이상 못하겠습니다.”


병사 한명이 내게 다가와 말한다. 무엇을 못하겠다는 것인가? 성전을? 전투를? 공성전을?


“계속 낚시만 하고 있지 이게 무슨 짓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생각보다 잘 잡혀서 다같이 먹고 사는 데에 문제는 없습니다만···. 저희는 이교도들을 죽이러 온 것이지, 물고기나 잡으러 온 게 아닙니다!”


그런 불만이었나. 하지만 채집과 수렵 없이는 식량이 많이 부족할 것 같다. 근처의 올리브 나무나 포도를 키우는 농장의 일을 돕고 식량을 받아오는 일까지 있으니 말 다했다. 물론 농장주나 마을 주민들 입장에서는 꼼짝없이 전부 빼앗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일을 도와주고 밥을 얻어먹고 조금 식량을 얻어가겠다고 하니 안도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느 정도 성전군을 호의적으로 보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생각해서 내린 명령은 아니고 페하가 그렇게 하면 문화를 동화시키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내린 명령이다. 이를 위해서 포로로 잡았던 튀르크인들에게 명령을 내려서 의사를 전달하게 했다.


포로들이 그들과 함께 어떤 작당이라도 벌일까 걱정되어, 아랍어나 튀르크어를 서적으로 배운 수도사들을 함께 딸려 보냈는데, 이들은 이미 우리들과 거의 완벽하게 동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례를 받고 싶다고 하던 이들도 있으니 얼마나 이들이 우리에게 감화됐는지는 알 법하다.


수도사들이 병사들이 없을 때에 세례를 받거나, 개종하고 싶은 자들을 지원받아서 마을에서 세례의식도 했다.


“세례를 하지 않는다고 하여 불이익은 없소! 우리 성전군은 그대들의 삶을 바꿔놓기 위해 온 것이 아니오!”


사실 맞다. 하지만 불이익을 주거나 세례를 하지 않으면 죽여버린다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 우리는 신사적인 다른 종교의 군대에서 이교도들의 악마같은 군대로 변모해버린다. 거기에 화살이 통하지 않는 단단한 갑옷까지. 괴물로 보기에 알맞은 조건이 너무도 많다.


“그, 그럼 무얼 위해 왔냐!”


용기 있는 어떤 마을 주민이 내게 묻는다.


“우리는 압제자가 성지를 사로잡은 것을 막기 위해 왔소. 그대들의 마을을 약탈하고 정당한 대가를 주지 않고 물자를 징발한 것들이 누구요? 그런 정의에서 벗어난 이들이 성모의 아들께서 살아 숨쉬던 땅을 지배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어 먼 서쪽땅에서 정의를 내리기 위해 왔소!”


사실 우리가 원인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누가 침략 중이고 누가 수비 중인지 모를 만큼 신사적인 군대의 행동거지는 이들에게 하여금 새로운 모순을 줬다.


과연 누가 정의에 편에 섰으며, 알라 혹은 여호와께서는 누구의 손을 들어주실 것인가? 여호와-닛시(승리의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 정의가 있다고 할 것인가. 정상적인 이맘이라면 알고 있고, 수도사 조차도 알고 있다.


당장의 정의는 우리에게 있다. 하지만 이곳까지 오는 과정에서 저지른 죄악들이 씻겨나갈까 하는 질문을 본인들에게 끊임없이 한다.


수도사들은 수도원에서 하듯이 속죄의 기도를 아침마다 올리는데, 단순히 생각과 원죄를 고백하는 것이 아닌, 진짜 죄를 고백한다.


‘오늘 죄악을 보고도 아무 말하지 못했습니다. 이교도이기는 하나 아녀자를 겁간하는 것을 막지 못했나이다. 도둑질하는 병사들을 막지 못했나이다.’


과연 우리는 정의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동안 지은 모든 죄업에 눌려 잠시나마 선하게 보이는 것을 즐기는 것인가. 땅굴을 파던 광부들이 수장된 것 역시 사실은 모두···.


하지만 입은 그런 고뇌를 담지 않는다. 저들에게는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이 전부다.


“징조는 명확하다. 주의 뜻은 우리에게 있고, 너희에 알라와 우리의 주는 같은 여호와이시니. 어찌 서로의 종교를 무시하겠는가. 하지만 진정한 선지자이신 주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 못한 너희들을 안타까이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를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왜 그러지 않느냐는 물음이 내 말을 알아듣는 수도사들의 눈에 담겨있다.


“길 잃은 어린양이 진정 그 길을 찾아서 돌아와, 울타리 안에 직접 넣는다한들 그 밖으로 나가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어린양은 결국 다시 길을 잃게 되어있다. 그래서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믿음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은 이들은 누구든 환영한다. 그게 이맘이든 랍비든, 혹은 그저 궁금한 이들이라도 물어보거라.”


그리고 손을 들어올린 남자는 그 나이와 복식으로 보아, 이맘으로 보였다. 그는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가?


“그대들은 여호와, 그러니까 알라께서 셋의 형태를 띄시고 이를 하나로 친다고 했다고 하던데, 당최 그게 무슨 뜻이오? ”


삼위일체를 모순이라 보는 겐가. 이 자는 단순히 자신의 종교만을 생각하고 모순이라 여기는 것이 아니라 확실히 우리 종교에 대해 무언가는 알고 있다 싶다.


“니카이아 공의회에서 정해진 삼위일체에 대한 의문점이 있는 것인가? 그에 대해서는 내가 잘 설명할 수 있네.”


“한번 해보게나.”


“그대들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는 바이지 않나?”


“그렇소, 다만 마호메트가 그렇듯이 그 역시도 선지자라는 입장이기는 하오.”


“하지만 예수께서는 다른 점이 있지. 하느님의 권위를 빌려오는 다른 선지자와는 다르게 자신의 권위를 내세워서 기적을 부리기도 하고, 내가 곧 아버지 주 하나님이라는 말조차 하시네. 그러다면 전지전능하신 아버지 하느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있지. 첫째로 그는 죽임을 당했고, 전지전능함을 보여주지 않았네 아닌가?”


“이 모든 게 계획이네. 우리의 원죄는 아담과 이브의 원죄에서부터 비롯되고, 아이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생기네. 그리고 우리는 결국 서로를 해치면서 살아가고, 언제든 죄를 지을 때가 있네. 이렇듯, 죄 없이 난 자는 없네. 다만 성모께서 오로지 임신의 형벌만을 지으시고 예수를 낳으셨네. 알고 있었나?”


“그 이야기는 알고 있지.”


진위는 모르지만. 하고 중얼거리는 그에게 되묻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호메트가 가브리엘에게 예언을 받았다는 것은 어떻게 믿는가!”


“가, 감히!”


검이라도 있다면 뽑을 것 같이 분기탱천한 이맘에게 손을 내젓는다.


“자네의 말도 같은 말이네. 성모님의 순결함을 의심하는 것이 그와 같은 죄악임을 알겠는가?”


지식인 답게 그 말을 듣고 가라앉은 이맘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대화를 들을 자세를 한다.


“그렇게 순수한 예수께서 짓지 않은 죄를 짊어지고 언덕을 오르셨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기적과 고통 속에서 이뤄지는 하나의 상징을 의미하오. 삶은 죄 투성이에 순수함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고 죄짓지 않은 자에게 고통을 강요하오. 하지만 그 고통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는가? 주께서는 어찌 그 모든 악을 앗아가지 않고 우리에게 고통을 느끼게 하는가?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다고···!”


전쟁에 고통받고, 자신을 지킨다는 군대에게 수탈당한 이들이 이에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주께서는 육신을 입고, 순수한 처녀에게서 나오셨네. 그 어떤 죄악에도 더럽혀질 수 없는 순수함을 가진 주이기에 성모에게서 나셨지. 그리고 삶을 걸으면서 우리의 고통을 느끼셨고, 죽으셨네.”


“어찌 전지전능한 자가 죽을 수 있냐는 말이오.”


“전지전능함을 내려놓으시고 우리와 함께 신음하시고, 아파하는 사람들과 이 땅을 거닐으며, 고통 속에서도 주를 선택한 이들을 바라보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가셨네. 모든 원죄와 우리가 저지를 죄를 위해 희생하시면서 저 십자가 위에 매달리셨네. 그리고 흉악한 죄를 지어 자신의 죄로 악을 선택한 이들이 그 위에서 마지막 선택을 했지.


그곳에서라도 선을 찾고, 부끄러움을 얻고, 고통을 떠나 주의 빛을 바란 이는 육신을 입으신 주께 천국의 자리를 약속 받았네. 이 복음이-자네 말로는 이야기가- 자네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가?”


“그래서 왜 이 모든 악들이 세상을 거닐게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는 이를 알고 싶습니다. 알라께서도 그 악한 것을 죽여 없애는 전쟁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만, 왜 악한 이들에게 곧장 징치하지 않는 지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무엇을 위해 악한 이들을 세상에 나게 하신 것입니까···.”


이제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맘의 눈을 바라보면서 내가 묻는다.


“자네는 자네의 삶이 어떤 의미를 가졌으면 하는가?”


“모, 모릅니다. 어째서 그런 대답이 하십니까···.”


왜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냐는 이맘에게 나는 다시 묻는다.


“자네는 자네의 삶이 한줌의 의미를 가지기를 바라는가? 아니면 주의 울타리 안에서 영원한 행복 속에서 뱀도, 그 무엇도 없는 동산에서 동물들의 이름을 지으면서 살아가고 싶은가.”


“저는 동산에서 살고 싶습니다. 모든 게 너무도 힘듭니다···! 왜 제 아이들이 지은 농산물을 아무런 대가없이 빼앗겨야하며, 짐을 옮기던 말들은 사람을 죽일 무기를 옮기기 위해 징발되어야 하며, 제 아들은 어째서 저 압제자의 군대에서 죽어야합니까!”


“하지만 그 사이에서 주가 바라시는 율법을 지키고, 선과 정의를 지킬 수 있다면 어찌 가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예수님 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길 잃은 어린양이 돌아온 것에 어찌 기뻐하지 않겠는가? 고통과 시험, 그리고 끊임 없는 유혹 앞에서 끝에 끝에서 주의 선과 정의를 위해 희생하기로 결정한다면···.”


말을 잠시 멈추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내 말을 기다리는 마을 주민들을 둘러보고 말을 잇는다.


“그리고 진정한 주의 뜻을 알고, 이에 귀의하여 살아갈 수 있다면 어찌 큰 축복이겠나? 이맘. 그래서 삼위일체가 우리의 종교의 모순이라고 하였던가. 내 생각은 다르네. 우리 종교의 중심이네.


진정 전지전능하신 여호와께서 우리를 가엾이 여겨, 우리가 저지른 죄를 위해 희생하심을, 성자와 성부와 성령이 모두 하나임을 알기에, 더욱 그 희생을 보고 우리의 삶을 살아야하고, 그 본질을 알아야하는 것이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십자가의 완성이네. 그대는 그대의 삶을 희생할 수 있겠는가? 죽음이라는 끝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고 오직 주만을 바라볼 수 있는가?”


이맘은 어느새 눈물을 흘리면서 내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


“두,두렵습니다. 제가 언제 주를 저버릴지. 언제 한계가 올지. 소중함을 잃을까 두려운 제가 주를 저버릴까. 결국 삶의 풍파 속에서 의지할 기둥하나 찾지 못한 채로 알라 외에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말아야할 제가. 모든 것을 잃을까 두렵습니다. 수십만의 군대가 부딛히는 이 땅에서 아이들의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하고 썩어 죽을까 두렵습니다. 저는···.”


“두려워 마십시오. 예수님과 성모께서는 버림받은 모든 영혼을 살피십니다. 그것이 설령 이교도의 영혼이라 할지라도.”


그 말을 듣고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이맘이 고개를 들고 말한다.


“세례를···. 받고 싶습니다.”


그래. 첫번째 발자국이다. 공성전보다도 중요한 이 땅에 기독교 왕국을 세우기 위한 첫번째 발자국.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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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후기 +2 24.04.07 53 4 2쪽
75 수도사, 종(完) +2 24.02.04 72 3 11쪽
74 예루살렘 공성전(8) 24.02.03 19 3 12쪽
73 예루살렘 공성전(7) 24.02.02 15 3 11쪽
72 예루살렘 공성전(6) 24.02.01 16 3 12쪽
71 예루살렘 공성전(5) +1 24.01.30 25 2 12쪽
70 예루살렘 공성전(4) 24.01.29 18 3 11쪽
69 예루살렘 공성전(3) 24.01.28 20 3 12쪽
68 예루살렘 공성전(2) 24.01.27 17 2 11쪽
67 예루살렘 공성전(1) +1 24.01.26 19 3 11쪽
66 안티오키아에서 예루살렘까지(5) 24.01.25 19 2 11쪽
65 안티오키아에서 예루살렘까지(4) 24.01.24 17 3 11쪽
64 안티오키아에서 예루살렘까지(3) 24.01.23 20 3 11쪽
63 안티오키아에서 예루살렘까지(2) 24.01.22 18 3 11쪽
62 안티오키아에서 예루살렘까지(1) +1 24.01.21 24 3 11쪽
61 안티오크 공작 24.01.20 22 3 11쪽
60 안티오키아 공성전(7) 24.01.19 22 3 12쪽
59 안티오키아 공성전(6) 24.01.18 23 3 11쪽
58 안티오키아 공성전(5) 24.01.17 23 3 11쪽
» 안티오키아 공성전(4) 24.01.16 22 2 11쪽
56 안티오키아 공성전 (3) 24.01.15 22 3 12쪽
55 안티오키아 공성전(2) 24.01.14 23 3 12쪽
54 안티오키아 공성전(1) 24.01.13 30 3 11쪽
53 소아시아 행군(3) +1 24.01.12 30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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