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만능 수도사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완결

공장성소
작품등록일 :
2023.11.30 09:20
최근연재일 :
2024.04.07 18:50
연재수 :
76 회
조회수 :
6,212
추천수 :
315
글자수 :
416,508

작성
24.01.24 18:00
조회
17
추천
3
글자
11쪽

안티오키아에서 예루살렘까지(4)

DUMMY

고드프리는 진정한 진실을 들었다. 주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 한들, 주께서는 우리의 방종을 내버려두신다. 어째서인가?


양을 기를 때에 방목을 시키지 않는다면 양치기 개는 필요가 없다.


하지만 주께서는 양치기 개를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신다. 그래서 그 강아지의 쓸모를 위해 양을 풀어두신다.


그렇다면, 나는 그 자유를 만끽함이 주의 뜻을 따르는 것인가? 아니면 자유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적으신 경전에 맞는 행동을 해야만 함인가.


“어찌해야 합니까···.”


롱기누스의 창, 로마의 군단병이 주의 성체를 찌른 창 앞에 꿇어 앉아 주의 광채를 받아들이면서 기도한다. 혹시라도 그 광휘가 무엇인가를 말해줄까 싶어서···.


“공작 각하. 아무리 성유물이고, 주의 광휘가 함께한다 한들, 이 창은 주님이 아닙니다. 그 앞에서 무릎을 꿇지 말고, 주께 직접 기도함이 오롯이 주를 섬기는 방법입니다.”


“토마스 수사. 내 머리가 복잡하여 그렇소, 베드로 수사가 했던 말이 내 뇌리에서 벗어나지를 않네···.”


고드프리는 고개를 숙이고, 창에 대고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는 수도사에게 묻는다. 토마스라고 불린 수도사는 익숙하지는 않은 듯 했지만, 다른 길 잃은 양에게 하듯, 그에게 묻는다.


“어떤 말을 들으셨습니까, 각하.”



“해야할 일을 하라고 들었다.”


유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했다는 말에 토마스는 침음성을 흘렸다. 과연 배신을 종용하는 말을 각하에게만 한 이유가 무엇일까?


“유다, 유다에게 했던 말을 각하께 했던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토마스 수도사는 다른 양들에게 하듯, 그에게 되물었다. 아무리 귀족이고, 교육을 받았다 한들, 인간은 같은 이유로 고뇌하고 죄를 짓는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확실히 물어봐야한다. 그리고 공작은 마치 양민들이 그러하듯, 자신의 자세를 무너뜨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한다.


“모르겠소, 처음 들었을 때에는 내게 유다가 되라는 뜻으로 알고 결심했었소, 하지만 생각해보니 나에게 유다가 되라고 말할 위인이 아니라는 것을 떠올리고 다시 생각을 다시하게 되었소. 그리하여 다시 생각해보니 어떻게 해야할지···.”


“너무 길게 생각하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유다에 빗대어 그런 일을 하지 말라고 말한 것이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본인을 선지자라고 생각하지도 않을 그가 어떻게 예수께서 하신 말씀 그대로 자신이 같은 의미로 사용하겠습니까?”


그 말에 고드프리는 고뇌하는 한편 힘겹게 말을 뱉는다.


“그대의 말에 일리가 있소, 다만 그가 말하는 투가 마치 누군가 더 위대한 분께서 말씀하시는 것 같았기에···.”


그 말을 들은 토마스 수도사는 잠시, 그가 아는 베드로 수사에 대해 생각해본다. 신학에 해박한 모습, 연금술에도 해박하고, 죽었다고 생각한 병자들을 다시 살리고, 어디선가 만들어 온 듯한 보급들···.


“그런 착각을 할만큼 유능한 자인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그렇다고 하여 그의 능력이 주께 비견할 정도는 절대 아니지 않습니까? 단지 금언을 통해 주께 부끄러운 일을 하지 말라는 당부일 뿐입니다.”


고드프리 공작은 잠시간 그가 한말을 생각하다가 그게 맞겠다면서 동의한다. 그 후에야, 창이 흘리는 광휘에서 눈을 떼고 진짜 하늘을 본다.


“그렇겠지. 그렇겠어. 부디 부탁하네만, 자네가 이제 이 창을 가지고 있어주게. 내게는 너무 버거운 짐이야. 그동안 주만을 생각해오면서 마음을 닦고, 주께 가까워지기 위해 순결을 맹세한 자네 같은 이에게 필요한 것이겠지.”


그렇게 천 위에 올린 창을 토마스 수도사에게 건네자 뭐에라도 홀린 것처럼 창을 들어올리려던 그가 정신을 퍼뜩 차리고 말한다.


“저, 저에게 이런 것은 과분합니다. 저는 수도원장도 아니고, 주에게 기도는 매일같이 합니다만, 주와 가까운 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보다는 다른 수도사가 어울립니다.”


처음으로 떠오른 건 베드로 수사였으나, 그는 이미 그가 직접 벼렸다고 알려진 검을 들고 있지 않은가. 사슬갑옷을 몇번 갈라도 이 하나 나가지 않고, 바위와 부딛혀도 부러지지 않는 검을 가지고 있는데, 창을 줘도 애매할 것이다.


그렇다면 수도사 중에서 창을 잘 다루는 다른 이를 떠올려봐야한다. 그게 누구인가. 피에르 수사. 그래. 피에르 수사가 있다. 그것도 이 창을 직접 찾은 그니까, 더욱 알맞을 것이다.


“저 말고 피에르 수사에게 준다면 그가 더 제대로 쓸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제게 오만을 내리지 말아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가, 그러한가. 겸손이란 이런 것인가. 그대의 경건함에 경의를 표하네. 내 직접, 피에르 수사에게 이 창을 돌려주겠네.”


처음에 얻은 이였던 피에르 수사에게 돌아갈 창을 바라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킨 토마스 수사가 성호를 긋는다.


이렇게 욕심이 들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것이 과연 주의 물건일까 하는 의심까지 하여 다시 성호를 긋고 기도까지 한다. 실상은 사실 주의 성체를 찌른 불경한 물건 아닌가.


다만 주의 성스러운 피가 닿았으니, 그것이 이 불경한 물건을 용서하고 그 신성함을 가져다준다. 사라진 광채에 대고 용서를 구하던 토마스 수사는 정신을 차리고 주께 직접 기도한다.


“우리의 하나님, 그리고 주 예수그리스도시여, 성모와···.”


꿈속에서 한 죄와, 생각으로 한 죄, 모두 아직 진실한 죄는 아닐지 모를 지언정, 그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도한다. 기도가 길어지고, 고드프리는 피에르 수도사가 있을 천막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그에게 일갈했던 베드로 수사도 있었다. 모두가 깃털로 만든 펜을 들고 사각거리는 소리만 나는 가운데, 몇몇이 눈을 들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고드프리는 느낀다. 다만 베드로 수사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양피지를 신경질적으로 분류하고만 있다.


“크흠.”


아무래도 충격을 받았던 대상이니만큼 자신을 봐줬으면 해서인지 헛기침까지 내봤지만, 베드로수사는 뒤조차 돌아보지 않았다.


그도 포기하고 피에르 수사를 찾아 천에 감싼 창을 내밀었다. 글을 적으면서 충혈된 눈으로 양피지를 노려보던 그가 빛나는 창을 보고 화들짝 놀라 일어난다. 천막 위에 달린 등과, 각각의 책상에 놓인 등에 의지해서 글을 적고 있던 수도사들이 갑작스런 빛에 짜증을 내다가 직접 그 창을 목도하고 경외심에 말을 잃는다.


“피에르 수사. 그대가 내게 이 창을 바쳤다고는 하나, 내게 그 자격이 없소, 그러니 주께서 처음에 점지한 자네에게 이 창을 돌려주겠소. 그 뒤에 어떻게 할지는 주께서 결정하겠지···.”


피에르 수사는 영광스럽다는 듯이 창의 몸체를 감싸인 천 밑으로 받아들고 창을 바닥에 꽂는다.


“?”


무엇을 하는가 고드프리가 보고 있었지만, 이제 양 옆에서 밝혀진 양피지를 보면서 희희낙락 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하는 피에르에게는 그런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와 조금 거리가 있던 수도사들 역시 그 창을 가운데에 두고 빙 둘러 앉는다.


“탁월하군! 역시 공작님이야!”


수행이 조금 낮은 수도사는 입을 열어 말했고, 다른 이들은 미소조차 짓지 않고, 고맙다는 눈빛만을 담아 공작에게 눈인사를 한다.


도대체 뭘 하는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던 고드프리는 헛웃음을 지으면서 그 촌극을 바라봤고, 베드로 수사도 수도사들까지 시끄럽게 하자 무슨 일인가 싶어 바라보더니, 성스러운 물건의 광채를 등불삼아 문서를 작성하는 수도사들을 보고 입을 씰룩 거린다.


그걸 본 고드프리가 어찌 불경한 일이냐고 말할 베드로 수사의 말을 기다리면서 그의 입을 바라봤자만, 나온 말은 전혀 다른 말이었다.


“주께서 도우시니, 우리의 서류 작업에 효율이 더해지겠구나!”


이제는 더 이상 생각을 이어나갈 힘조차 없어진 고드프리는 다리에 힘을 빼고 천막 밖으로 나선다.


“우리의 눈까지 보우하시는 주께 찬사를!”


하고 환호성을 지르는 천막 속에 광기를 고드프리 공작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거기에 질문을 하다가는 한번 해보겠습니까? 하는 말을 들을까 두려워 밖으로 나갔다.


부상자가 적을 때에는 부상자를 싣는 수레에 수도사들이 흔들리는 것을 인지조차 못하고 죽은 듯이 자면서 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촌극인가. 나이가 차니 더 이상 제대로 된 하루를 보낼 수 조차 없는 것인가 했지만, 펜을 놀리는 속도와, 이미 쌓인 양피지의 양을 보니 그런 말을 못하겠다.


“저들은 미쳤다.”


토마스 수사는 입을 다문다. 그는 나이가 너무 많아 서류 작업을 돕기에는 무리가 있다기에 왜 그런가 싶었더니 그 모습을 보아하니 이제야 알았다.


확실히 죽는다. 내가 하다간 확실히 죽는다. 그러니 말해야한다.


“하지만, 그 광기는 주를 향한 헌신 아니겠습니까. 어떤 광기는 성스럽기까지 하고, 악마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였는데,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이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말의 시야를 가리면 앞으로 달려가는 데에 망설임이 없듯이, 바깥과 그 어떤 교류조차 없던 그 천막은 생각한 것보다 더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늙은 말은 그런 달리기를 하는 것만으로 고꾸라질 수 있다. 베드로 수사를 제외하고는 40살을 넘긴 수도사가 한명도 없고, 가슴이 답답한 것과 같은 증상이 있는 이들을 오지 말라고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확실히 그러하겠지···. 단지 그 압도적인 업무에 머리가 이상해져버리고, 헛소리를 내게 한 것 아닐까 생각하네. 그렇다면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겠지···.”


고드프리는 자신이 그렇게 깊게도 고민하던 것이 단지 베드로 수사가 너무도 많은 책임에 눌려 이상한 소리를 한 것이라는 결론으로 귀결된 것이 허무하기도 했고,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히 그 창은 무기지만, 어떻게 보면 주의 피를 받아 그 흉한 성질을 버리고 모두를 위한 등불로 변했네. 그 모든 것이 주의 피가 그것에 닿았기 때문이겠지···. 용이 악함을 버리고, 무기가 사람을 살리고, 악마가 인간을 위하는 그러한 기적들은 모두 주께서 주관하신 기적으로 인해 오는 것 아니겠나. 이 역시 어떠한 징조라고 생각하네.”


고드프리가 하늘 바라보면서 성호를 긋는다.


“주께서 이렇게 내게 방황하지 말라고 하시고, 성전군이 앞으로 벌어질 아픈 전쟁을 막기 위해 나섰으니, 이를 의미하시는 것 아니겠나?”


토마스 수사가 고개를 숙이고 새로운 이치를 깨달은 귀족에게 예를 표한다.


“영광보다, 미래보다, 가문보다 값진 무언가가 있는지를 아셨으니, 앞으로의 여정에서 당신의 여정을 따르기로 한 제 결정이 참으로 값집니다. 앞으로도 이런 모습을 버리지 말아주시기를 바랍니다.”


고드프리는 그에게 대답하듯, 자신에게 말했다.


“그래야지. 그래야만 하고 말고···.”



작가의말

매일 오후 6시 연재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중세 만능 수도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1월 31일 오늘은 휴재입니다. 24.01.31 8 0 -
공지 제목 변경하기로 했습니다. 23.12.17 67 0 -
공지 성전 서약자 목록 23.12.16 49 0 -
공지 웨일스, 잉글랜드를 샤이어와 공국 단위로 나눈 지도입니다.(지명 추가) +1 23.12.14 192 0 -
공지 자료 출처(23.12.12.수정) 23.12.11 49 0 -
공지 매일 오후 6시 연재입니다. 23.11.30 50 0 -
76 후기 +2 24.04.07 54 4 2쪽
75 수도사, 종(完) +2 24.02.04 73 3 11쪽
74 예루살렘 공성전(8) 24.02.03 19 3 12쪽
73 예루살렘 공성전(7) 24.02.02 16 3 11쪽
72 예루살렘 공성전(6) 24.02.01 16 3 12쪽
71 예루살렘 공성전(5) +1 24.01.30 26 2 12쪽
70 예루살렘 공성전(4) 24.01.29 19 3 11쪽
69 예루살렘 공성전(3) 24.01.28 21 3 12쪽
68 예루살렘 공성전(2) 24.01.27 18 2 11쪽
67 예루살렘 공성전(1) +1 24.01.26 20 3 11쪽
66 안티오키아에서 예루살렘까지(5) 24.01.25 19 2 11쪽
» 안티오키아에서 예루살렘까지(4) 24.01.24 18 3 11쪽
64 안티오키아에서 예루살렘까지(3) 24.01.23 20 3 11쪽
63 안티오키아에서 예루살렘까지(2) 24.01.22 18 3 11쪽
62 안티오키아에서 예루살렘까지(1) +1 24.01.21 24 3 11쪽
61 안티오크 공작 24.01.20 23 3 11쪽
60 안티오키아 공성전(7) 24.01.19 23 3 12쪽
59 안티오키아 공성전(6) 24.01.18 24 3 11쪽
58 안티오키아 공성전(5) 24.01.17 23 3 11쪽
57 안티오키아 공성전(4) 24.01.16 22 2 11쪽
56 안티오키아 공성전 (3) 24.01.15 23 3 12쪽
55 안티오키아 공성전(2) 24.01.14 24 3 12쪽
54 안티오키아 공성전(1) 24.01.13 31 3 11쪽
53 소아시아 행군(3) +1 24.01.12 31 3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