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만능 수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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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공장성소
작품등록일 :
2023.11.30 09:20
최근연재일 :
2024.04.07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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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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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오키아 공성전(6)

DUMMY

몇달 간의 공성병기가 두드렸음에도 무너지지 않은 단단한 성벽이 쇠로 덧댄 군화 아래로 밟힌다. 기사는 아니지만 기사 검을 들고, 내가 직접 제련한 강철로 만든 판금갑옷으로 적의 화살을 퉁겨내고 앞으로 나아간다.


망루가 무너지고, 공성탑을 보내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고 판단했던 곳에는 숨겨진 발리스타가 있었다. 아무리 내가 판금 갑옷을 입고 있다 한들, 저것에 맞으면 그대로 뚫려 죽는다.


그런 끔찍한 죽음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고 배짱을 부릴 수는 없다. 눈 앞의 병사들을 하나하나 죽이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계속해서 싸움을 이어나가는 도중 한 수도사가 자신이 배합해서 만든 녹슬지 않는 쇠로 만든 통에 넣은 무즙과 생강, 꿀을 섞은 끈적한 액체를 싸우던 이들에게 조금씩 나눠서 건넨다.


발리스타가 있는 망루를 점령한 우리는 이곳에서 먼 곳에 있는 다른 적의 발리스타 망루를 두고 쏴보지만 유의미한 피해를 주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사정거리를 계산해서 다른 망루가 떨어진다 한들 한쪽이 무너지는 일을 막은 듯 했다.


“그만하게. 적의 병사들을 조준하는 게 좋을 듯하군.”


병사 세명이 운용하던 발리스타에 명령을 내리고 나도 호리병에 넣었던 소금과 당근을 끓인 수프를 한입 마시고 다시 달려나간다.


단순한 병사가 아닌 적의 장군이 앞을 막아선다. 투구 위에 터번을 둘러쓰고, 찰갑을 입고 있다. 내가 입고 있는 갑옷의 종류를 처음 본 것인지, 아니면 공성전에서 몇번이고 왔다갔다 하던 나를 봤던 것인지, 그가 이상하게 휘어있는 검 끝을 내게 가리킨다.


“네놈. 우리 병사들에게 공포를 뿌리던 악마의 군세의 강철 악마. 드디어 네가 올바른 신앙의 전사 앞에 만났구나. 오늘이 너의 악행의 끝이 될 날임을 알아라!”


어디의 에미르일까? 아니면 이름 높은 전사일까? 저들에게는 기사나 다름없는 이겠지. 하지만 나는 그의 이름을 모른다.


“그대의 이름이 무엇이오? 명예로운 싸움에 앞서 이름을 듣고 싶소!”


“허! 그대들의 기사들과는 다르게 우리 말을 아는 군. 내 이름은···.”


그 말은 내가 등진 발리스타에서 날아온 통나무 앞에서 끊겼다. 바라던 바는 아니었지만, 서로 단단히 갑주를 입은 상태로 검으로 싸운다면 오랫동안 시간이 끌릴 것이 확실했기에, 지휘관된 입장으로는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니었는데 잘됐다고 생각했다.


물론 투구의 부분이 얼굴이 뚫려 있었으니, 잘 노렸다면 몇합 지나지 않아서 죽일 수 있었겠지만, 성벽 위에서 싸우는데 1대1로 싸울 것이라고 생각할만큼 순진하지는 않았다. 숨어들어서 단검을 찌르려는 이가 없겠나. 슬쩍 뒤에서 화살을 쏠 이가 한명도 없겠나. 이미 그 전에 증명하듯 우리 쪽에서 발리스타를 쏴 죽여버리지 않았나.


물론 이 말은 상대도 내게 공성무기를 쏴서라도 죽일 생각을 할만 하다는 것이다. 적의 망루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검을 휘두른다.


내게 다가오려 할때마다 적을 밀어내고 오히려 적진 한가운데에 달려든다. 그래도 적과 나를 한번에 죽일 각오까지는 없는지 아직까지는 이 방법이 통한다. 그러다가도 저들이 어느정도 밀리면 독한 마음을 먹고 쏠 수도 있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나와 함께 뚫릴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건 직접 눈으로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검에 피가 흥건해지고, 결국 적은 제대로 된 사선을 찾았는지 발리스타를 쏘았다, 거리가 있어 최대한 피해봤지만 견갑이 터져나가고 어깨가 탈골된다. 그리고 성벽 안쪽과 이어지는 길에서 계속해서 징집병인지 그냥 양민한테 막대기를 들려줬는지 모를 병사들이 계속 와서 죽는 통에, 어깨를 맞추지도 못하고 한손으로 계속해서 검을 휘두른다.


제대로된 장비가 없는 이들은 한손으로도 죽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정예병들은 힘들다. 약간이라도 몸을 보호하는 갑옷을 가진 이들은 아무리 검이 단단하다 한들 베어넘길 수 없다. 찌르는 행동을 해야하는데, 휘적휘적 흔들다보니, 내 몸에는 조금씩 작은 상처가 누적되기 시작한다.


주께서 말씀하신 것과는 달리 나는 이곳에서 죽는가 싶다. 주의 믿음을 저버리는 것은 아니지만, 상황이 그렇다. 내 여정은 안티오키아를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마치 강 건너에서 가나안 땅을 보던 아론이 그랬던 것처럼 나는 성지에 다다르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을 것 같다.


설령 이곳에서 죽는다 한들, 내게 여한은 없다.


피가 어깨를 타고 흐르고, 적의 피와 내 피가 섞여 이제는 검게 물든 갑옷으로 아직 성한 견갑으로 내 앞에 있는 이를 민다. 그리고 미친 사람처럼 검을 휘두른다. 분명 원래 휘두를 때처럼 적을 한번에 하나씩 죽이지는 못하지만 적은 뒤로 물러나기 시작한다.


이전에는 공포를 심어주지 않던 우리의 구호도 이제 적의 마음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구호를 계속해서 외치면서 검을 휘두르고 있다.


“도, 도망쳐야 해···.”


그동안은 믿지 않았던 검은 갑옷의 악마가 정말 눈앞에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분명 죽었을 것이 분명한 양의 피를 흘린 남자가 계속해서 싸우고 있으니 이들은 의심하게 된다.


“저, 저들의 믿음이 옳은 것 아닌가···?”


그렇게 느낀 지휘관들은 성문을 열고 도망간다. 마치 자신이 저 악마를 불러온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겁에 질려 도망간다. 그들의 부하들도 함께 도망간다. 남쪽의 성문이 열리고 적이 도망간다.


그리고 나와 함께 항복을 논했던 안티오키아의 총독의 깃발 역시 보인다. 적의 주력이 남쪽 성문을 필두로 도망치고 있다.


과연 남쪽에 성채를 만든 공작들이 그들을 보내줄까는 의문이지만, 확실히 지금 공성전이 가장 치열한 북쪽보다는 어느 정도 방법이 있지 않을까.

내 예상은 적들이 생각보다 거센 저항을 맞고 항복을 할것으로 보인다. 식솔이 안티오키아에 있는 총독은 전투를 하면서 포위망을 뚫기에는 잃을 것이 너무 많다. 만약 그렇게 포위망을 뚫는다 한들, 중요한 식솔들 중 한명도 버리지 않고 갈 수 있을까?


그렇게 도망치는 병사들을 보고 적들도 온힘을 다해 도망치기 시작한다.


가벼운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도망가는 것을 쫓을 만큼 내 기력이 남지도 않았고, 그래서 적들이 다시 사기를 되찾지 못하게 하기 위해 가만히 검을 앞으로 든 채로 서서 말했다.


“돌격.”


나지막히 말했지만, 나를 따라다니던 나팔수는 명령을 이해했고, 나팔을 불어올린다. 그리고 거기에 맞추어 십인장들이 자신들의 부하들을 독려하면서 달려나간다. 제대로 손질된 번쩍이는 창날에 적이 죽어간다.


나는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최대한 판금 갑옷이 맞물리는 것을 이용해 서있었지만, 힘이 점점 풀린다.


“괜찮으십니까?”


기사 중 한명이 발견하고 묻는다. 피를 많이 흘린게 보이는 지 걱정스러운 투로 물어본다.


“괜찮네.”


하늘이 허옇게 보이고 앞이 침침해지고 있지만, 나를 구하기 위해서 전투를 멈추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렇게 조금 서서 있으면 금방 나아질 거네.”


심장박동도 조금씩 느려지는 것이 느껴진다. 분명, 나는 이곳에서 죽는다. 너무 앞에서 죽여달라는 듯이 눈에 띄게 움직였다. 이상한 별명이 생겼을 때부터 몸을 사렸어야 했는데. 이렇게 죽으면 올리버는 누가 돕겠는가.


그야 폐하가 돕겠지. 그건 해결이다. 그렇다면 바야드는 누가 돕는가? 이미 갑옷도 맞춰주고 방패도 만들어 줬는데 상관 없지 않겠나?


그렇다면 존은? 가엾은 존은 어떻게 하는가. 이제야 속죄를 향한 첫걸음을 내딛은 아이가 내가 윌리엄 말렛이 내가 죽은 이후에도 존을 중하게 쓸까.


나로써는 모르겠다. 이제 죽는 이가 그런 생각을 해봐야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을 하면서도, 이제야 주께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환희까지 느낀다.


이제야 삶이 끝난다. 끝없는 책임감과, 내 작은 머릿속에 갇혀있던 주께서 내려주신 무한한 지식이 풀려난다.


아. 나는 두눈, 두귀, 코를 막고 살고 있었구나.

이렇게나 방대한 지식을 고작 나의 안위를 위해 묶어두신 주의 은혜를 찬양하라. 덕분에 나는 인간의 삶을 살 수 있었다.


이제는 주께로 돌아가 주의 왕국으로···.


갈 수 없다. 주께서 선언하신 모든 것은 현실이 된다. 그것이 비유든, 비유가 아니든. 주께서 필멸자에게 듣게 하신 모든 것은 아무리 법칙을 어긴다 한들 현실이 된다.


믿으라고 말하던 주의 말씀은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의 주께서는 거짓을 말하지 않으신다. 나는 주의 왕국에 들 자격을 얻지 못하였다. 영원히.


“정말 괜찮아지시는군요!”


옆에서 끝까지 기다리던 헝가리 기사가 눈을 뜬 내 옆에서 말한다. 아픔은 있다. 하지만 출혈은 멎었고, 병장기에 찔려 아프던 곳은 아프지 않다. 단지 관절만이 아프다.


“그러게나 말이오. 그냥 돌격하라고 했던 말인데. 그대는 아직도 내 옆을 지키고 있구려. 이름이 뭐요?”


내가 힐난하듯이 말하자, 그는 굳이 대답하지 않고 투구의 면갑도 올리지 않은 채 구호를 외치며 뛰어간다.


“Deus vult!”


얼굴도 두껍다고 생각하면서 몸을 풀고 다시 달려나갈 생각을 하고 있자니, 이미 내성에도 올라간 폐하의 깃발이 보인다.


저 기사도 조금 뛰다가 눈치를 보듯이 나를 바라본다. 한숨을 내쉬고 손짓을 한다. 함성소리에 바로 옆에서 하는 말 이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겠지. 그가 쪼르르 뛰어와서 묻는다.


“처, 처벌이 있거나 하지는 않겠지요?”


참으로 약았다. 그냥 도망간 것에 이것 저것 더해서 나중에 돈이라도 조금 뜯어낼까하는 마음을 가지기가 무섭게 그가 물어보기에 눈물을 머금고 그런일 없을 거라 하고 묻는다.


“뭐라 안할테니 오게나. 지금 전황이 어떻게 된거요?”


“하하···. 사실 그렇게 도망가기가 무섭게 물자가 너무 모자르던 안티오키아의 모든 시민들이 성문을 열고 항복했습니다. 자신들의 총독이 당부했다고 말하기는 했습니다만 진위 여부는 모르지요. 그래서 전후 처리를 하기도 할겸, 수사께서 숨이 넘어가는 것 같기도 해서 가만히 보고 있었습니다.”


“전후처리를 도울 생각은 안해봤는가?”


“베드로 수사님을 구하는 것 또한 중요한 전후처리 중 하나 아니겠습니까?”


“아니고, 할말도 많고, 처음에 한말을 곧장 듣지 않은 것에도 불만도 많네만, 알겠네. 굳이 문제 삼지 않기로 했으니. 그리할 것은 당연하지. 아무튼 우리가 승리한 것 맞는가?”


“그렇습니다. 이제 도시를 수습하고, 항복한 시민들을 분류하고, 도망간 적들이 어디로 합류하려 하는지도 확인해야합니다. 할일이 많지요.”


“그렇지. 그게 전부 내가 해야하는 일이지, 자네가 걱정할 일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아두고. 너무 기어오르지 말게나. 그래서 이름이 무엇인가?”


그는 면갑을 들어올리고 웃으면서 말한다.


“직접 맞춰준 갑옷도 기억 못하시나요?”


바야드였나. 조금 기분이 풀려 웃으면서 면갑을 올려서 드러난 얼굴에 주먹을 내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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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후기 +2 24.04.07 54 4 2쪽
75 수도사, 종(完) +2 24.02.04 73 3 11쪽
74 예루살렘 공성전(8) 24.02.03 19 3 12쪽
73 예루살렘 공성전(7) 24.02.02 16 3 11쪽
72 예루살렘 공성전(6) 24.02.01 16 3 12쪽
71 예루살렘 공성전(5) +1 24.01.30 26 2 12쪽
70 예루살렘 공성전(4) 24.01.29 19 3 11쪽
69 예루살렘 공성전(3) 24.01.28 21 3 12쪽
68 예루살렘 공성전(2) 24.01.27 18 2 11쪽
67 예루살렘 공성전(1) +1 24.01.26 20 3 11쪽
66 안티오키아에서 예루살렘까지(5) 24.01.25 19 2 11쪽
65 안티오키아에서 예루살렘까지(4) 24.01.24 17 3 11쪽
64 안티오키아에서 예루살렘까지(3) 24.01.23 20 3 11쪽
63 안티오키아에서 예루살렘까지(2) 24.01.22 18 3 11쪽
62 안티오키아에서 예루살렘까지(1) +1 24.01.21 24 3 11쪽
61 안티오크 공작 24.01.20 23 3 11쪽
60 안티오키아 공성전(7) 24.01.19 23 3 12쪽
» 안티오키아 공성전(6) 24.01.18 24 3 11쪽
58 안티오키아 공성전(5) 24.01.17 23 3 11쪽
57 안티오키아 공성전(4) 24.01.16 22 2 11쪽
56 안티오키아 공성전 (3) 24.01.15 23 3 12쪽
55 안티오키아 공성전(2) 24.01.14 24 3 12쪽
54 안티오키아 공성전(1) 24.01.13 31 3 11쪽
53 소아시아 행군(3) +1 24.01.12 31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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