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만능 수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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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공장성소
작품등록일 :
2023.11.30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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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7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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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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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공성전(3)

DUMMY

당연하지만 전령 따위의 이름을 기억하지는 않는다. 누구든 어떤 이유로 죽고, 내 옆에 있다보니 더 살아남기 힘든 것도 맞다. 매 전투 중에서 한 두명 정도가 살아남는다. 내가 있는 곳으로 화살이 내려오니 당연한 일이다.


번쩍이는 갑옷 때문에 모든 것이 집중되는 것도 같아 검게 칠할까 생각도 했지만, 검게 칠하면 악마라는 소문에 불이 붙어 더 크게 찾아올 것 같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다른 이들이 하는 것처럼 서코트를 위에 입고 하얀 천에 십자가를 그려넣는 것이 가장 편하겠지.


하지만 눈에 띌 필요는 항상 있다. 모두가 내 빛나는 갑옷을 보고 명령을 받는다. 사기가 떨어진 병사들도 내 갑옷이 반사하는 햇빛을 보고 힘을 얻는다. 단순하게 내 호위단이 목숨을 잃는다고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내 호위를 하고자하는 병사는 얼마 없겠지?”


그런 생각이 들어 호위병에게 물어봤지만, 호위병은 고개를 젓는다. 그는 병사 답지 않게 내가 챙겨준 사슬갑옷과, 아마포를 몇중인가 덧댄 누비갑옷까지 입고 있다. 투구는 전임자가 입던 강철 투구를 주려고 했지만 재수없다면서 자신이 챙겨온 투구를 사용한다.


이렇게까지 방비를 해도, 화살이 비처럼 내리는 전장에서는 살아남기 힘들겠지, 그래도 이 녀석은 제대로된 방패까지 가지고 있다. 두번 정도는 살아남지 않을까?


죽기 딱좋은 곳은 어느 병사에게나 기피하고 싶은 곳이겠지 싶어 물어봤지만 돌아온 대답은 전혀 다른 것이다.


“아닙니다. 당신 옆이야말로 영광이 가장 가깝다면서 모두 앞다투어 하려고 하지요.”


“영광이라?”


다시 한번 들려오는, 어떻게 보면 가증스러운 그 단어를 내 입에서 굴려본다. 영광, 명예, 지위···.


“너도 그렇게 생각하나?”


호위병은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한다. 그 자신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저는 다른 사람이 계속해서 죽어나가는 곳에 영광만을 위해 뛰어드는 바보가 아닙니다.”


이제야 들어오는 투구 아래의 그의 모습은 어느 정도 나이가 있어보인다.


“하지만, 젊은 바보들이 죽음을 자처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었을 뿐이지요.”


호위병은 있어야만한다. 전령도 있어야한다. 나팔수도 있어야한다. 그 모두를 포기하고 나 혼자서 움직이면 명령이 늦어지니까.


“그야, 아무도 안할 수는 없는 자리고, 제가 친구 아들을 같이 데려왔다보니까···. 폼나게 죽어야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호위병이 웃음짓는다. 그도 오래 살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묻는다.


“이름이 뭔가.”


“헨리입니다.”


우리쪽의 말로는 앙리인가. 기억해야겠다.


“기억하겠네. 만약 그대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다 한들 내가 반드시 그대를 위해 기도하겠네. 헨리.”


조금 분위기가 진지해지자, 호위병이 농담을 건넨다.


“여차하면 도망갈겁니다만, 괜찮습니까?”


“웃음으로 두려움을 잊고자 하는 모습은 칭찬할만 하나, 웃음은 경박한 자들이 하는 것이고 농담 또한 그렇다네. 성인이신 베네딕트님께서 하신 말이지. 기억해두게나.”


그렇게 말하니, 결국 나도 수도사라는 듯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알겠다고 대답한다.


“물론 전장에서야 그런 게 무슨 상관이 있겠나. 사는 데에 집중해라. 지금은 들어가서 쉬게. 밤에 공격할 예정이니.”


그렇게 밤이 됐다. 적의 공격도 잦아들고, 우리는 성을 만들때 만들었던 비밀문 네곳으로 흩어져 나온다. 모든 방향을 내가 직접 지휘할 수는 없다. 선임 기사와 남작들이 각각의 병력을 지휘한다. 말을 사용하면 소리가 날 수 밖에 없다.


적의 진영은 달도 뜨지 않은 하늘 아래에서 아무런 움직임도 없다. 횃불을 들고 경계를 서고 있는 것은 보이지만, 우리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대열을 갖추기 전에 발각되면 곧장 성벽 안으로 들어가라고 했는데, 당장은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듯 싶다. 병장기가 서로 부딛히는 소리가 점점 많아지는 데에도 적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적들이 움직이지 않는군.”


중얼거리면서 생각해본다. 정말로 지금까지 우리의 움직임을 확인하지 못했을까? 이제 대열을 어느 정도 갖췄다. 우리쪽 뿐만이 아니라 동서 남북으로 움직인 모두가 그렇게 됐겠지.


숙련도에 따라 조금씩 속도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대열을 이룬지도 꽤 시간이 지났다. 이제 움직여도 되겠지.


나팔수에게 명령을 내려서 공격 개시를 알리는 나팔을 불게 했다. 이제는 알겠지. 모를 수가 없는 신호다.


우리 쪽의 병사들이 구호를 외치면서 뛰어나간다.


“Deus vult!”


달려나가는 우리의 앞에 장애물이 있을까는 미리 확인했다. 적은 목책조차 세우지 못하고 땅을 팔만큼 시간을 가지지도 못했다. 기껏해야 마름쇠들을 던져놓는 정도겠지, 그 조차도 제대로된 가죽 아래에 나무와 쇠를 덧댄 우리들의 군화를 뚫을 수 없다.


파죽지세로 달려나가는 군대 앞에 적들은 아직까지도 반응이 없다. 말이 투레질 하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군영은 비어있다.


“아무것도 없다.”


말 몇마리가 남아있고, 경계병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은 횃불을 세워놓은 횃대에 갑옷을 입혀 놓은 것이었다. 말이 안되긴했다. 궁기병들이 대부분인 군대에 여기저기서 모은 징집병들이 어떻게 공성전을 하려고 했던 것인가?


물자도 전부 버려두고 갔다.


“이곳에 집합하게 해라.”


전령과 나팔수들에게 말한다. 그리고 나팔수는 나팔을 불고, 전령이 달려나간다. 헨리가 내게 붙어서 조언한다.


“느낌이 이상합니다.”


“나도 안다.”


수십번의 전투, 수십년 간의 전쟁. 모든 직감이 경종을 울린다. 이 곳은 뭔가 이상하다. 너무 깔끔하다. 모든 걸 놓고 갔지만, 병장기와 말은 모두 옮겼다.


그렇다고, 연금술사의 코에도 잡히지 않는 독, 기름, 함정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멀리 도망간 저들이 멀리에서 불화살로 이곳을 불붙여 죽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진영에 있는 우리들을 엿먹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뭔가?


집결할 때 흩어진 병력들을 공격하는 일이겠지.


하지만 그렇다면 지금쯤 전투의 소리가 들려야할 것이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해는 간다. 어두운 밤에 적을 확실히 확인하고 공격할 방법이 없겠지.


그러면 어떻게 되는건가?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본다. 빠른 기동성, 그리고 성에 묶인 군대, 밤사이에 사라진 군대.


예루살렘에서 벌어지는 공성전···.


“아.”


예루살렘이 위험하다.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포위를 알리는 봉화를 꺼라.”


전령과 다른 병사 두명을 붙여 다시 비밀통로를 통해 성으로 들어가 봉화를 끄게끔한다.


부디 지금 폐하께서 예루살렘의 북쪽을 장악하고 이쪽의 봉화를 보고 있다면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적의 기마병은 이미 습격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움직여야한다.


하지만 전투의 소리가 들려온다.


남쪽에 전선에 있는 내게서 북서쪽에 들려온다. 대열을 최대한 갖추고 북상한다.


횃불을 든 우리 쪽의 병사들이 최대한 적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으로 화살을 쏘고 있다. 하지만 밤에 익숙해진 내 눈에는 보인다. 화살은 그다지 제대로 된 역할을 못하고 땅에 꽂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우리가 다가오는 것을 적들이 알아챈다. 아마도 그대로 도망가겠지만 적의 수가 매우 적다.


“천명 이하인가.”


직접 보고 있는 나와, 싸우고 있는 저들과는 시선이 다르다. 저들에게는 몇명의 적이 있는지 어떻게 공격당한 것도 인식하지 못하겠지.


그래서 불빛이 바닥에 떨어지고 흩어지기 시작한다.


전투가 패색이 짙어질 때에는 이런 식이다. 한 부분의 구멍이 어느 때보다 커진다. 그리고 민감한 녀석들은 자신들이 죽는다는 둥 미래를 생각하면서 도망간다.


그리고 그런 짓은, 전염된다.


“사, 살려줘!”


우리 쪽으로 도망친 녀석의 얼굴을 본다. 두려움, 공포.


“죽여라.”


헨리가 망설임 없이 그의 목을 베고, 우리쪽까지 번진 공포가 나에대한 공포로 바뀐다.


“적은 한줌도 되지 않는다! 도망치려고 하는 자들은 내가 직접 죽이겠다!”


검을 들어올리고, 면갑을 닫는다. 투구에서 울리는 내 목소리가 내게 들려온다.


“Deus vult!”


그 구호에 어떤 힘이 있는 건지 도망치던 이들도 다시 대열을 갖추고 전투를 시작한다.


적은 충분히 교란을 하고 있었을 병력들이 갑자기 하나 되어 달려드니 도망가기 시작한다.


후퇴에도 방법이 있고 대열이 있다. 어두운 밤에도 이를 할 수 있는 군대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군대가 있다.


너무 어두운 밤이기도 하고, 저들도 당황했다느니,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저들은 이미 무너졌다. 말들이 서로에게 부딪혀 넘어지고, 천명 남짓한 기마병이지만 이미 무너진 대열에서 적들은 완전히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는 등 지옥을 보는 것 같았다.


“비켜라! 비켜!”


분명 적을 공격해야할 군대가 서로를 공격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만 움직인다. 킬리지 아르슬란이 저들을 이끌 때에는 그렇게도 빛나고,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한 빛나는 군대였던 그들이 지금은 지옥에서 튀어나온 마귀들처럼 서로를 물어뜯고 살기만을 위해서 움직인다.


검을 들고 그들을 천천히 가둬놓고, 말을 살리고 적들을 죽인다.


이 말들은 화살을 쏠 때에 자신들의 등을 움직이지 않고, 잘 지치지 않는 훌륭한 종이다. 우리가 말들을 포획한다면 많은 돈을 버는 것과 다름없다.


이미 물자들도 전부 버리고 갔으니.


이 말들을 이용해서 빠르게 움직여야한다. 이곳 저곳으로 흩어진 흔적은 적의 징집병은 단순히 구색 맞추기에 불과했고, 지금 기습하러 달려간건 기병이 대부분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말을 몇백필이라도 노획할 수 있다면 더 많은 병력을 빠르게 지원을 위해 보낼 수 있다. 20마일이라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달리는 말이 한시간 정도의 시간 내로 붙을 수 있다.


마갑을 입히기에는 시간이 없지만, 원래 말을 탈줄 아는 병사들이 타고, 내려서 싸운다면 가능하다. 기마 전투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아니면, 궁수들이 내려서 원호를 해주는 것도 가능하다.


당장 어떻게 할지는 이들을 죽이고 생각해야할듯 싶다.


결국 도망을 친 적들이 있었지만, 어쩌겠는가. 한명도 도망치지 못하게 하는 건 주께서 도우심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


남쪽으로 달려가는 패잔병들을 바라보면서 군대를 추스리게 한다.


동쪽에서 오는 병력들, 북쪽으로 갔던 병력들이 소규모 산병전을 치뤘는지, 약간은 상한 모습으로 숨을 몰아쉬면서 왔다. 모두 큰 피해는 없었지만, 500명에서 천명 정도의 적이 교란하기 위해 남아있었고, 남쪽으로 도망갔다고 한다.


노획한 말의 수가 꽤 많았지만 유의미한 수준은 아니었던 것 싶다.


“총 600필을 잡았습니다. 훈련된 군마다보니 곧장 탈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최대한 많은 수의 병력을 말에 태워서 남쪽으로 달리게 한다. 그리고 보병은 그동안 내가 자리를 비울 때마다 병력을 지휘했던 선임기사에게 맡긴다.


그는 어딘가 아쉬운 듯 뭔가 말하려 했지만, 그가 가지게 될 영지에 대해 꼭 말씀드리겠다고 하니 말을 멈췄다.


예루살렘으로 달려야한다. 시간이 없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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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후기 +2 24.04.07 54 4 2쪽
75 수도사, 종(完) +2 24.02.04 73 3 11쪽
74 예루살렘 공성전(8) 24.02.03 19 3 12쪽
73 예루살렘 공성전(7) 24.02.02 15 3 11쪽
72 예루살렘 공성전(6) 24.02.01 16 3 12쪽
71 예루살렘 공성전(5) +1 24.01.30 25 2 12쪽
70 예루살렘 공성전(4) 24.01.29 18 3 11쪽
» 예루살렘 공성전(3) 24.01.28 21 3 12쪽
68 예루살렘 공성전(2) 24.01.27 17 2 11쪽
67 예루살렘 공성전(1) +1 24.01.26 19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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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안티오키아에서 예루살렘까지(3) 24.01.23 20 3 11쪽
63 안티오키아에서 예루살렘까지(2) 24.01.22 18 3 11쪽
62 안티오키아에서 예루살렘까지(1) +1 24.01.21 24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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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안티오키아 공성전(4) 24.01.16 22 2 11쪽
56 안티오키아 공성전 (3) 24.01.15 23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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