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만능 수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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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공장성소
작품등록일 :
2023.11.30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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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7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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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3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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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공성전(5)

DUMMY

킬리지 아르슬란을 두고 천막 밖으로 나와서 폐하와 말을 나눈다.


“가둬두었다는 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 그대로지. 부상자를 돌봐야 한다면서 눈이 충혈되고, 손을 벌벌 떨면서 한숨도 자지 않고 계속해서 ‘수술’을 하고 있었네. 그러다가 떨리는 손에 실수를 하려하면 나무로 만든 고정장치로 멈춰세워서 수술을 계속하더군.”


처절하기 그지 없는 헌신에 분명 기뻐해야 할일이지만, 어느샌가 나는 그런 헌신에 대한 경건한 기쁨보다는 허리춤에서 조금 큰 여자아이가 죽을 듯이 고생하는 것에 대한 걱정이 들었다.


“혹시 자책하지는 않덥니까?”


“그러지는 않았네. 다만, 눈 앞에 있는 환자를 둘 수 없다고 말을 하던데.”


말을 잠시 멈추고 폐하가 나와 마주보고 묻는다.


“솔직히 말해주게. 혹시 내게 숨기는 일이 있는가?”


폐하도 눈치챌 때가 됐는가.


“있습니다. 있습니다만, 폐하를 위함이고, 폐하의 손녀를 위함입니다. 그럼에도 듣고 싶습니까?”


잠시 생각하던 폐하가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저 혼자만의 판단으로 폐하께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잠시 올리버를 가둬 뒀다는 곳에 갔다와도 되겠습니까?”


그 말에 폐하가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잘 지켜봐주라는 말을 아주 열심히 이행하고 있군 그래. 그래. 내 손녀이고, 자네의 딸이기도 하니.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해 준다면 나도 안심이지. 붉은 십자 깃발을 천막 중앙에 걸어둔 천막에 있네. 말이 가둬둔 것이지. 아마 편하게 있을 걸세.”


폐하께 인사를 드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확실히 녀석은 잠에 들어있다. 하지만 어딘가 불편한지 얼굴을 찌푸리고 있다. 오랜만에도 보는 얼굴이다 싶어, 잠시 이마를 짚어보니 녀석이 귀신이라도 만난 듯이 눈을 뜬다.


“헉!”


“왜 그러냐.”


“마취를 시키려고 술하고 양귀비, 그리고 정신이 몽롱해지는 대마초를 태우게 하다보니 저도 조금 들이 마신 것 같아요. 봐요. 눈도 붉죠?”


단순하게 죽을 듯이 일을 해서 그런게 아니었단 말인가?


“으으, 손도 막 떨려요. 이런 중독은 혹시 연금술로 어떻게 못하나요?”


굳이 말은 하지 않고, 항상 왼쪽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주의 축복을 녀석의 머리에 부어주고 먹였다.


“조금 몸이 개운해진 것 같기는 하네요.”


“마취라?”


내가 되묻는 말에 녀석이 잉글랜드 말인 것 같은 말을 반복해서 말한다.


“네. 마취요. 마취.”


“그런 단어는 없다. 영리하게 꾸민 말이기는 하다만.”


단언할 수 있다. 감각의 부정이라? 무슨 뜻인지는 알겠다. 사용한 약재를 보면 알 수 있다. 로마시절 십자가에 매달리던 죄수들이 사용하던 만드라고라와 비슷한 효능을 가진 약재들이다보니까.


“아, 그러게요. 보통은 몸을 헤집어야 살릴 수 있으면 술을 진탕 먹이고 하죠.”


“그래. 거기에 어떤 조치를 취한다 한들 그 강도가 높지 못하고···. 강도가 높은 것을 하면 계속해서 그것을 찾게 된단다. 내 연금술 정리에도 적힌 일이지.”


그건 몰랐다는 듯이 잠시 녀석이 말을 멈추고 나를 올려다본다.


“그랬나요?”


저서를 제대로 읽지도 않았다는 생각에 주먹이 우는 듯했지만, 굳이 주먹을 뻗지는 않았다. 녀석이 중독이 심한 약 때문인지, 아니면 이어지는 과로 때문인지 모를 증상을 보이지만, 어느 쪽이든 충격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았지만, 폐하가 너가 미래에서 온 사람이라는 걸 모르는 건 알고 있더냐?”


“네. 그야 비밀이잖아요?”


“그런데 폐하가 미래에서 오신 분인 건 알더냐?”


잠시간 적막이 흐른다. 내가 말을 했던 건지 기억도 나지 않고, 녀석도 처음 듣는 소식 같은지 텅빈 동공으로 나를 바라본다.


“알···죠? 아닌가? 그래서요?”


“그래서 너의 별난 행동에 아마도 폐하가 알게 된 것 같다. 그래서 말인데, 폐하께 네 비밀을 말해도 되겠느냐?”


이번에야말로 약간 불안한지 안절부절 못하는 녀석이 어떻게 할지 모르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어쩌죠!”


의문인지, 아니면 화를 내는 건지 모를 말투로 내게 물어본다. 가장에게 의견을 묻는 건지 아니면 왜 미리 경고해주지 않았냐는 듯한 말을 하는 것 같아 녀석에게 말한다.


“그런 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폐하도 예순이 넘었고, 나도 쉰에 가깝다. 얼마나 더 살지는 모르지만···.”


내가 늙지 않고 있다는 감각은 충분히 알아차리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내가 언제까지 죽음을 허락받지 않은 상태로 이 땅에서 머물지는 모르는 일이니.


“네가 잠시나마 너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고, 그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물론 요즘의 폐하는 어딘가 불안해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예루살렘을 자신의 아들에게 물려주기로 결정한 뒤의 폐하는 달랐다.


내 생각에는 믿어도 될듯 싶었다.


“설마, 아버지가 그러는 것처럼 평생 부려먹혀지고, 죽을 때까지 책만 적는 건 아니겠죠?”


그건 모르겠다.


“내가 그건 힘써보마.”


내 자식이 나와 같은 인생을 살아야한다면 그건 막고 싶다. 차라리 상단을 꾸리게 하겠다. 여자가 상단을 꾸리면 얼마나 오래갈지 모른다 한들, 확실한 파멸적인 인생을 보내지는 않지 않겠는가?


“믿어도 되는 거에요?”


눈을 가늘게 뜬 녀석에게 조금 열이 받아 쏘아붙인다.


“네 악필은 어디 수도원에서도 받아주지 않을 만큼 심각한데, 손재주가 좋은 편이라고 해서 네가 어딘가에서 중용될 것 같더냐? 헛소리하지 말고, 잘 쉬었으면 폐하께 말씀드리러 가자꾸나.”


“옙.”


내가 화가 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녀석이 조용히 답하고, 천막 밖으로 나온다. 앞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 가로막으려 했지만, 폐하의 명령이라고 하니 병사들이 그제야 가만히 있는다. 그런데 조금 열이 받아서 내 얼굴도 모르냐고 하니 병사가 쩔쩔 맨다.


“죄, 죄송합니다. 베드로님. 제가···.”


그러고 있자니 속세의 지위를 남용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말을 멈춘다.


“주께서 자네와 함께 하길.”


그렇게 말하고 성호를 그으니 병사가 미친놈을 보는 듯한 눈빛을 가졌다가 다시 굽실대면서 성호를 마주 긋는다.


눈빛을 가지고 뭐라 하려다가 소매를 당기는 올리버를 따라간다. 그래. 이러고 있을 시간이 어디 있던가?


“폐하. 올리버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래. 하고 싶은 말을 하거라.”


“이 녀석도 폐하처럼 미래에서 온 녀석입니다.”


그게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는 듯 나를 바라본다.


“아니, 나는 자네가 나와 함께 과거로 온 인공지능이라고 생각했다만···.”


나는 그게 무슨 단어냐는 듯이 올려다보니, 폐하가 올리버를 바라보고, 옛날에 혼잣말을 할때 사용하시던 잉글랜드 어를 사용하신다.


미리 미리 해독을 해두어서 알아들을 수 있었다.


“어디서 살던 이더냐?”


“저, 저는 런던에서 살던 외과 의사입니다.”


“몇년도?”


“2010년도에 죽었습니다.”


“할머니로구만?”


그 말에 올리버가 말문이 막히고 얼굴이 붉어졌다.


“죽을 때는 28살이었습니다.”


“나는 2130년에 죽었네. 노르망디에서 핵폭탄을 맞아 죽었지.”


“저는 제가 처음으로 임종을 지킨 환자의 유족에게 칼을 맞고 죽었어요.”


그런 기구한 사연은 처음 들어 헛숨을 들이켜니, 두명이 눈을 크게뜨고 나를 바라본다.


“이해했는가? 전부?”


“미래에서 온 거 아니에요?”


잠시간 쏟아지는 질문을 받아내고, 대답한다.


“지식은 알게됐습니다. 죽을 뻔할 때에 주께서 보여주신 지식의 편린이 제 영혼에 오더군요. 그리고, 이 미래의 잉글랜드 어는 몇번이고 말씀하실 때에 계속해서 듣고 해독했지요. 작년 즈음에 전부 이해했습니다.”


성전 중에 수도사들이 책을 쓰고, 연대기를 적고, 그림을 그리고 조각상을 만들고, 온갖 헛짓거리를 하는 와중에 나 역시도 그런 시간을 가졌다.


“올리버에게 계속해서 들었으니, 자료는 더욱 많지요.”


“그러면 핵폭탄, 이런 것도 알고 있나?”


“주께서 보여주신 빛중에 있었습니다. 눈이 멀 듯한 빛, 그곳에서 태어나는 이들은 제대로 된 아이를 잉태하지 못하고, 그곳에 있는 모두가 타죽는 사악한 무기임을 알고 있습니다.”


잠시간 침묵이 흐른다. 그리고 폐하의 부관이 적어둔 작전 계획서를 들고 나는 천막을 나선다.


“이야기를 계속하십시오. 저는 공성전이 있으니.”


북쪽과 남쪽을 둘러싸는 양면전선을 만들었다. 그리고 적이 반격하기 위해 달려나온 것 때문에라도 적의 병력은 많이 줄었다. 그 만큼 우리의 병력도 많이 죽었지만, 충분하다.


도망간 이들과 죽거나 다친 이들을 제외하더라도 5만명이 넘는 병력이 있고, 적들은 그 반도 되지 않는 병력을 가지고 있다.


성보다는 도시에 가깝게 지어진 이 성은, 투석기로 적의 공성무기를 조금 두드리고, 기다리면 적의 물자는 금방 떨어진다.


몇번의 공세를 계획한다.


공성탑을 건설하게 한다. 자파에 항구에 들어온 배를 해체해서라도 공성탑, 공성추를 만든다.


공성추가 지어지면 성문을 향해 공세를 한다. 적의 망루는 무시한다.


그리고 그렇게 공격하고 있으면 비잔틴 제국의 지원군도 올 수 있다. 만약 그들이 온다면 곧바로 공세를 시작하고, 오지 않는다면, 거대한 도시는 계속해서 들어오는 물자 없이는 오랫동안 살아남기 힘들다.


그러니, 한달간을 기다린다.


적의 병력은 적고, 우리의 병력은 많다. 원래는 도시로 들어갔을 물자를 우리가 흡수하고 있다. 거기에 만약에 공격받아서 후퇴해애 한다한들, 동서남북으로 지어진 성전군의 성이 있다.


할 수 있다.


이제는 정말로 성지를 탈환할 수 있다.


북쪽 중 동쪽의 병력을 지휘하는 고드프리 경의 군영으로 간다.


“오랜만이오, 베드로 수사. 헝가리인들이 만든 성채에서 포위 당했다는 소식이 마지막이었다만, 정정해 보이니 다행이오.”


어딘가 불편해보이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사실 오히려 행정업무를 할때보다도 기분이 좋아보이는군 그래. 그대의 헌신을 존경하오.”


그렇게 말하는 그에게 감사를 표하고 말한다.


“저는 각하를 존경합니다.”


어딘지 뜬금없어 보이는 말에 그가 되묻는다.


“그게 무슨 말인가?”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루살렘의 왕이 누가 될지는 이미 분명히 보이실 것이라고···.”


불편한 말을 들은 고드프리가 내게 쏘아붙인다.


“이미 자네가 한말 아닌가? 어쩌라는 말인가?”


내가 그런 말실수를 했던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영광이 그렇게 넘어가는 일에도 담대한 기상을 보여주시고 성전군을 지원해주시니, 저는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제게는 생각이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가?”


“이제 동쪽으로 이어질 교역로를 정리할 전쟁이 벌어질 것입니다. 이미 많은 병력을 잃은 셀주크 튀르크를 멸망은 가깝지요. 그렇다면 비단길을 이을수 있는 기회입니다.”


점령하고 유지하는 것은 모르겠지만, 침공하지 않는 대가로 교역로를 받을 수는 있다.


“그렇지.”


“이를 잇는 동쪽의 성채와 땅을 모두 얻을 수 있는 기회는 어떻습니까? 제게 도움을 받은 모든 귀족들에게 지원을 요청해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그 말에, 고드프리는 고심한다. 만약 성공한다면 새로운 왕국을 만들 수 있다. 그것도 예루살렘 왕국에게 물심양면으로 지원받으면서 교역으로 엄청난 보화까지 얻을 수 있고, 마치 샤를마뉴가 그러했던 것처럼, 이슬람을 몰아낸 영웅이 될 수도 있다.


“좋은 말이군.”


웃음을 만면에 지으면서 내 손을 맞잡는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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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후기 +2 24.04.07 54 4 2쪽
75 수도사, 종(完) +2 24.02.04 73 3 11쪽
74 예루살렘 공성전(8) 24.02.03 19 3 12쪽
73 예루살렘 공성전(7) 24.02.02 15 3 11쪽
72 예루살렘 공성전(6) 24.02.01 16 3 12쪽
» 예루살렘 공성전(5) +1 24.01.30 26 2 12쪽
70 예루살렘 공성전(4) 24.01.29 18 3 11쪽
69 예루살렘 공성전(3) 24.01.28 21 3 12쪽
68 예루살렘 공성전(2) 24.01.27 17 2 11쪽
67 예루살렘 공성전(1) +1 24.01.26 19 3 11쪽
66 안티오키아에서 예루살렘까지(5) 24.01.25 19 2 11쪽
65 안티오키아에서 예루살렘까지(4) 24.01.24 17 3 11쪽
64 안티오키아에서 예루살렘까지(3) 24.01.23 20 3 11쪽
63 안티오키아에서 예루살렘까지(2) 24.01.22 18 3 11쪽
62 안티오키아에서 예루살렘까지(1) +1 24.01.21 24 3 11쪽
61 안티오크 공작 24.01.20 23 3 11쪽
60 안티오키아 공성전(7) 24.01.19 23 3 12쪽
59 안티오키아 공성전(6) 24.01.18 23 3 11쪽
58 안티오키아 공성전(5) 24.01.17 23 3 11쪽
57 안티오키아 공성전(4) 24.01.16 22 2 11쪽
56 안티오키아 공성전 (3) 24.01.15 23 3 12쪽
55 안티오키아 공성전(2) 24.01.14 23 3 12쪽
54 안티오키아 공성전(1) 24.01.13 30 3 11쪽
53 소아시아 행군(3) +1 24.01.12 31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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