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티온 (Bastion)
006화 – 바스티온 (Bastion)
혹자는 소빙하기라고도 했던, 지난 5년 동안의 겨울은 혹독했었다.
중국이 국토의 사막화를 막겠다며 실시한 인공강우 프로젝트로 성층권에 이상한 물질을 뿌려대고, 아이슬란드의 라카기가르가 2번째 대폭발을 일으키며 화산 겨울이 왔던 것이었다.
매년 겨울마다. 서울이 영하 40도, 50도로 내려가고, 필리핀에서 동사자가 속출한 겨울은 인간과 국가의 이성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했었다.
게다가, 미국은 대지진이 겹쳐서 미 서부 일대가 약탈의 경쟁지가 되는 일이 있었다.
그런 극도로 혼란한 상황을 미국은 버텨내기 위해, 주 방위군을 총출동시키고 부분적 계엄령을 선포하고 나서야 그것을 겨우 진정시킬 수 있었다.
미국은 만인이 만인을 향한 투쟁. 아포칼립스에 가까운 상황을 겨우 버텨낸 것이었다.
날씨가 풀리면 국가 간에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겨울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약탈자로 변해갔었다.
생존을 위해 갱단과 마피아, 약탈단이 들끓었다.
하지만, 남북한과 일본 그리고 극동 공화국 등 동아시아 국가는 비교적 조용하게 버텨낼 수 있었다.
그 원동력이 극동 공화국의 독립이었고, 그 배후에 OSS가 있었다.
그런 와중에 북한에 극동 공화국의 석탄을 지원해주는 대가로 정치범을 10만 명을 집단이주시키는 대역사를 이루어 내기도 했다.
...
길이 679m, 넓이 157m 그리고 4대의 원자로를 가진, 거대한 항공모함 에테리얼 바스티온 (Ethereal Bastion).
이것을 만들기 위해 태평양 한가운데 키리바시에 OSS-LAND 기지를 세우고, 조선소와 제철소를 따로 만들었다.
부족한 노동력을 수급하기 위해, 김정은과 협상해서 북한의 정치범 10만 명을 빼내 오기도 했었다.
바스티온 호 위에 즐비하게 늘어선 전투기 사이로 MV-280 벨러가 착륙했다.
마중 나온 장교들 사이로 혜인이 보였다.
그녀와 결혼하면서 ‘어딜 가든 함께 하겠다’라는 약속 때문에 지금은 바스티온 호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장교들이 경례하는 사이를 뚫고 그녀가 뛰어왔다. 하얀색 원피스 자락이 해풍에 흔들거렸다.
와락! 껴안을 듯 뛰어왔다가 내 앞에서 멈춰서고는 눈을 맞추고 있었다.
“대표님. 수고하셨어요.”
“어, 그래요.”
단둘이 있을 땐 오빠라고 불렀지만, 공식적인 장소에서는 대표나 의장이라고 불렀다.
그녀는 아내이기도 했지만, 웰페어 디렉터로(Welfare Director) 복지와 복리후생을 담당하는 이사이기도 했다.
혜인을 뒤따라온 재정담당 이신영 이사가 특유의 경쾌한 톤으로 인사말을 건네었다.
“대표니임~ 방송 잘 봤어요, 화면으로도 멋지시던데요.”
“하하. 감사합니다.”
...
세계 곳곳에 집과 별장이 있었지만, 항공모함 바스티온이 취역한 이후로 이곳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주요 임원과 참모들까지 나를 따라 거처를 옮기게 되었고, 바스티온 호는 떠다니는 군사기지이자 사옥의 역할을 함께 하게 되었다.
일행들과 함 내 셔틀을 타고 바스티온의 마스트로 향했다.
내 전용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해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무실로 올라갔다.
바스티온의 내 집무실은 비행갑판의 반대쪽 먼바다가 보이는 곳에 만들어져 있다. 큰 통창에 발코니까지 있어서, 안에 있으면 마치 전망 좋은 해변의 맨션 같은 편안함을 주었다.
수년 동안 수시로 잠수함 이회영함과 ARK호에서 생활했던 터라, 바스티온 호에서만큼은 호사를 누리고 싶었다.
이 배를 설계하고 시공한 한화오션 한규동 사장에게 특별히 거주성에 신경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내 취향과 의도를 너무나 잘 아는 한규동 사장은 편안함과 고급스러움을 넘어서, 내가 좋아할 만한 각종 편의장치를 설치해두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전용 엘리베이터였다. 설계할 때부터 비행갑판은 물론 수영장, 식당, 체력단련실 그리고 CDC, TFCC까지 직통으로 통하도록 만들어진 엘리베이터였다.
* CDC (combat Direction Center) : 전투 통제실, 감시 및 지휘시스템 – 항모전단 지휘
* TFCC (Tactical Flag Communications Center) - 전술 통신센터 / 기함의 역할을 수행, 외부기관과 정보 공유 네트워크 연결.
- 팅 ~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혜인과 함께 집무실을 거쳐 숙소에 들어서자. 그녀는 살짝 뛰어오르면서 매달리듯 나를 안았다.
“캭~ 오빠!”
“하하하. 그리 좋아?”
“네에~ 헤헤.”
“좋다니, 나도 좋네. 하하하. 그런데 뭐가 좀 바뀐 것 같은데?”
“아 참! 오빠 나가 있는 동안 내부 공사를 좀 했어요.”
“어, 그래. 확실히 좀 달라진 거 같긴 하네.”
“신영 언니가 금 보관할 장소가 부족하다고 해서, 오빠 집무실이랑 숙소 바닥에 금괴를 깔고 다시 덮는 작업을 했어요.”
혜인은 침실 한쪽으로 가서 카펫을 들어 보였다.
“여기, 아래에 금괴를 깔고 조립식 마루를 덮었어요. 뭐랄까 돈방석도 아니고 돈마루 위에서 자는 셈이 이어요. 호호호.”
“그렇네. 하하. 여기에 얼마나 둔 거야?”
“신영 언니 말로는···. 뭐였더라······?”
“400 트로이온스(12.44kg) 짜리?”
“아, 맞아요. 그걸로 150t (약 12조 원)이라고 하더라고요.”
* 온스(28.34g)와 트로이온스(31.10g)는 규격이 다르다.
* 400트로이온스 골드바는 각국의 중앙은행과 업체들이 쓰는 순도 99.5% 표준 (Good Delivery) 금괴를 말한다. 이것은 70평 정도의 넓이로 깔면 150t이 된다.
“생각보다. 얼마 안 되네?.”
“에궁, 신영 언니가 걱정이 많던데···.”
“무슨?”
“오빠가 ‘중국보다 금 보유량이 더 많아야 한다.’라고 했다면서요?”
“응, 그랬지.”
“몇백 톤 관리하는 것도, 이렇게 골머리가 썩는데 수천 톤이 들어오면 얼마나 머리가 아프겠어요. 무슨 쌀도 아니고 말이어요.”
“아니, 대충 창고 같은데 쌓아두고 자물쇠 걸어두면 되는 거 아녀?”
“아~ 우리 오빠 순진한 건지, 능청스러운 건지. 금이잖아요. 금!”
“...”
“사람들 시험하는 것도 아니고 그걸 아무 데나 둘 수가 있겠어요? 때때로 확인도 해야 하고···.”
“아···. 그렇긴, 하겠네.”
“근데, 금엔 왜 이렇게 집착하는 거예요? 오빠!”
“달러, 아니 화폐가 무너졌을 때를 대비해서···.”
“아이고~ 하긴, 울 오빠는 지구멸망도 대비하는 사람이니···.”
“...”
그녀는 살짝 고개를 돌리면서 눈을 흘겼다. 그리고는 와락! 달려들어 날 끌어안았다.
“몰라 몰라. 난 오빠만 있음, 아무래도 좋아!”
그렇게 시끄러운 세상은 잠시 잊고, 혜인과 둘만의 시간을 보내었다.
...
다음 날 아침.
집무실 창으로 태평양의 선명한 햇살이 들이쳤다. 눈을 뜨자 혜인의 맑은 눈이 보였다.
마치 집사가 일어나기를 고양이처럼 혜인은 침대 머리맡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오구구~ 오빠 일어났네.”
“어, 응.”
“커피?”
“좋지!”
그녀는 쟁반 위에 갓 뽑은 에스프레소와 담배를 담아 가져왔다.
“오! 담배까지···.”
“어차피 피울 거 기분 좋게 피우라고요. 대신 내가 챙겨주는 거만 피우면 좋겠는데···.”
“하하하. 알았어. 그럼 이제부터, 혜인에게 하나씩 받아서만 피울게.”
“웬일로 순순히···. 울 오빠 이쁘게 말하네. 호호호”
커피 향을 음미하면서 한 모금 입술에 적셨다. 맛이 좋았다. 루왁보다 나은 것 같았다.
“오, 이거 좋은데?”
“김완준 이사님이 보내왔어요. 파나마 보케테 지역의 구아바 나무 그늘에서 나는 거래요.”
“이름이 뭐야?”
“길던데···. 음, 여기. ‘파나마 하시엔다 라 에스메랄다’라고 쓰여 있네요.”
커피와 담배를 가지고 발코니로 나갔다. 담배에 불을 붙였고, 깊게 한 모금 빨아들였다. 입안에 남은 커피 향이 더해져 유난히 맛있다고 느꼈다.
- 흐읍, 후우 ~~~~~
담배 연기를 하늘과 태평양 바다가 만나는 수평선을 향해 길게 내뿜었다.
그리고 하늘을 보며 기지개를 켰고, 머리 위로는 간간히 흘러가면서 태양 빛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구름이 미소짓고 있었다.
기분 좋은 현기증을 느꼈다. 사소하지만 완벽한 순간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한 깊은 숙면, 그리고 커피 한잔과 담배 한 개비. 따스한 해풍이 코끝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 똑, 똑, 똑
혜인이 발코니 창문을 두드렸다. 그녀의 손에는 함 내 비화 통신을 위한 터미널이 들려져 있었다. 누군가 날 찾는 것이었다. 그렇게 짧은 평화의 순간이 깨졌다.
누구냐는 듯한 내 표정에 그녀는 입 모양으로 ‘이 부장님’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네. 부장님.”
“대표님. 모든 OSL 직원의 신병을 확보했습니다.”
“오. 잘되었습니다.”
“이제 ······.”
“그냥 넘어가면, 안되지요. 바브 엘 만데브 해협에 우리의 군사거점을 만들어야겠습니다.”
“해협 위치에 말입니까? 아덴항이나 모카 항구를 점령하는 게 활용도 면에서 좋지 않을까요?”
“물론 그렇긴 하지만, 민간인도 많고 해협의 군사적 요충지인 메윤(Mayyun) 섬이 좋겠습니다. 손이일 제독에게도 작전을 입안하라고 일러두었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OSSIA에서 후티 반군과 예멘 정부를 향한 성명서를 준비해주세요. 명분은 따질 것 없고.”
“...”
“예멘 정부가 후티 반군의 일방적인 군사행동을 막지 못하기에, OSS가 불가피하게 예멘 땅을 점령하겠다는 정도면 되겠습니다.”
...
* V-280 기체에서 바스티온을 바라본 모습
* 바스티온에 착함 중인 틸트로터기
* 바스티온과 호위전단
바시티오 함내 이시언의 숙소 일부
이시언의 함내 집무실
바스티온의 전술통신 및 작전상황실 (TF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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