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더지와 페이퍼클립
018화 – 두더지와 페이퍼클립
오랜만에 바스티온의 비행갑판 위를 뛰었다. 부관과 수행원 몇몇이 함께한 조깅이었다.
본래 비행갑판에선 뛰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같은 것이었다.
거대한 항공모함의 갑판 외곽을 따라, 한 바퀴를 돌면 대략 3.5km 거리가 나왔다. 살짝 몸을 덥히기에 좋은 코스였다.
잠수함 ARK호를 타고 다닐 때는 좁은 통로 사이로 뛰곤 했다. 그것도 나름대로?의 운치가 있었지만, 항공모함 갑판에서 뛰는 것은 그것과는 다른 상쾌한 기분을 주기에 충분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대해의 수평선을 마주하고 달리는 것은 나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속으로 ‘뭐, 수백조 원을 태울 만하군’ 하며 시답지 않은 유치한 기분을 만끽하는 것도 좋았다.
달리기를 끝마칠 즈음 MV-280 수직이착륙기 한 대가 바스티온에 접근하고 있었다.
내가 조깅을 할 때는 모든 항공기의 이착륙이 중지되었기에 이례적인 일이었다.
부관에게 물었다.
“누가 오는 겁니까?”
“아마도 OSSIA 이 부장이 탄 것 같습니다.”
“아! 그렇지.”
이 부장이 오랜만에 얼굴을 보고 싶다고 해서 오라고 한 터였다. 아마도 뭔가 할 이야기가 있는 듯싶었다.
숙소로 돌아와 땀을 씻고, 이 부장을 집무실로 불렀다.
“원수님. 인사드립니다.”
“아이고, 부장님까지 ···.”
“김준명 이사와 함께 원수님에 대한 호칭을 통일하기로 했습니다.”
“굳이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저는 대표라 불리는 게 더 좋습니다.”
“그게 ... 몇몇 사람만 대표로 부르는 게 조직 내에 위화감을 주는 것 같습니다.”
“?”
“마치, 측근이란 걸 티 내는 듯한 느낌을 주는가 봅니다.”
“아 ···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아쉽긴 합니다.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아서 ······.”
“원수님과 저희가 멀어질 일이 있나요? 몸만 멀어질 뿐이지 마음은 항상 이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항상 부장님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감사는 제가 드려야죠. 과거를 용서해주시고, 이렇게 중용해주시니 충성을 다할 뿐입니다.”
“이런, 그 이야긴 또 ···. 아무튼, 오랜만에 얼굴 보니 좋습니다. 하하.”
이 부장은 본래 국정원 현장 요원이었다.
차장이라 불렸지만 실제로 차장은 아니었고, 국정원 고인물 현장 요원으로 차장 대우를 해주었던 것이었다.
그와 나의 악연은 그가 날 비공식 블랙 요원으로 쓰면서 시작되었고, OSS를 설립하고 잠수함을 만들면서도 이어졌다.
어찌 보면 이회영함으로 국정원의 비밀작전을 수행한 것이 우리의 첫 작전이었다.
그때 북에서 탈출한 핵 과학자의 가족을 제3국의 영해에서 잠수함으로 탈출시킨 것이 우리의 인연을 이어가게 만들었다.
그 후, 이 부장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우리에게 중요한 정보를 전해주면서, 해외 정보자산(우크라이나 정보국 SBU)과의 연결을 도왔다.
당시, 이 차장이었던 이 부장 덕분에 러시아가 동결한 ARK호와 구금되었던 우리 사람을 구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일이 국정원 내부에 퍼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이 부장은 국정원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 우리 사람으로 만들어 우리 정보국 OSSIA를 창설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부장님이 단지 얼굴만 보자고 오신 것 같지는 않은데 ··· ?”
“네. 그렇습니다. 조용히 드릴 말씀드리고 결심 받을 일이 많이 생겼습니다.”
“?”
“원수님 표정과 목소리를 직접 들어야 제가 그 심중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요. 어서 말씀해 보세요.”
“먼저, 이렇게 온 가장 큰 이유는 조직 내 중국산 두더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음 ··· 그리 놀랄 일은 아니군요. 단기간 내에 조직이 너무 커져 버려서 ···.”
“네. 그런 부분도 분명 있습니다만. 대만 전쟁을 치르면서 흘러들어온 것 같습니다.”
“대만 전쟁 중이라면 기껏해야 하부조직일 텐데. 그게 그렇게 심각합니까?”
“평상시 같으면 심각한 문제도 아니고 내부적으로 조용히 처리할 수도 있습니다.”
“하긴, 지금 중국과 대치 중이니 ···.”
“홍콩의 민주화 세력이 군대를 만들고 싶어 하는데 만약 그 일을 추진하려면, 대만국군과 OSS 대만군의 역할이 절대적입니다.”
“아, 그렇겠네요.”
“홍콩 민주화 세력들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중국의 간섭과 압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홍콩의 좁은 땅덩이에서 중국의 감시를 피해 어떻게 군대를 만듭니까?”
“그들이 병력자원을 홍콩에서 탈출시키고, OSS에서 훈련받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홍콩이 자력으로 중국을 밀어내진 못할 텐데 ···.”
“그들도 돌아가는 국제정세를 보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벌어진 전쟁에 기대어 우리 OSS의 힘을 빌리고 싶은 거죠.”
“음 ···.”
“대중국 전략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서, 원수님의 결심이 필요한 사안입니다.”
“...”
“또 그래서 대만 스테이션(정보국 지역지부)에 침투한 두더지를 하루속히 처리해야 할 이유도 됩니다.”
“일단, 두더지는 어떻게 처리한 계획입니까?”
“제가 떠나오기 전에 의심이 가는 세포마다 다른 역정보를 흘려두었습니다. 지켜보면 특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리고 홍콩군으로 지원하는 자원은 얼마나 예상합니까?”
“최소 1만에서 3만까지 예상하더군요.”
“사단 하나는 구성할 병력이긴 한데, 다들 총 한번 만져보지 못한 인원일 거 아닙니까?”
“그렇긴 합니다.”
“적어도 1년은 훈련을 시켜야 할 텐데. 바로 투입되긴 힘들겠네요.”
“그게 좀 애매하긴 합니다. 레지스탕스야 이미 활동 중이고, 사단 병력을 침투시켜봐야 금세 녹아버릴 것 같긴 합니다.”
“음 ··· 그래도 의미가 있긴 할 것 같습니다.”
“?”
“일이 어찌 돌아갈진 모르지만, 전후 홍콩을 장악하는 데는 유리한 옵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홍콩을 장악하게 된다면 외국 군대보다는 좋은 점이 많겠지요.”
“그럼 추진을 결심하시는 겁니까?”
“네. 조심스럽게 작전을 수행하되, 그들에게 어떤 약속도 해줄 수 없다는 것을 꼭 주지시켜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
“그들이 훈련을 마치고 나서. OSS의 허가 없이 독자적으로 작전에 나서지 못하도록 할, 장치가 필요할 듯싶습니다.”
“그건 그리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지원하는 것에 대한 협정과 약속이 있겠지만, 그들이 맨몸으로 무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서로 마음 상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아,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훈련지는 어디가 좋겠습니까?”
“음 ···. 거리나 조건이나 하이난성이 좋겠네요. 또 그곳은 최정예인 OSS 북방군이 주둔하고 있으니 훈련조건도 좋을 듯합니다.”
“저도 원수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그런데. 수만 명에 달하는 인원을 한꺼번에 빼 오는 것이 힘들 텐데 ···.”
“그 부분 김준명 이사, 최은석 사령관과 상의했습니다.”
“... ?”
“잠수함과 위장된 민간선박으로 조금씩 은밀히 빼오는 작전을 시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세심히 살펴서 추진해보세요.”
“네. 그리고 몇 가지 더 있습니다.”
“?”
“한국 국정원이 북 정찰총국에 대한 정보를 요청해왔습니다.”
“아 ··· 그건 안됩니다. 부장님도 아시다시피 그쪽도 업자 간의 신의란 게 있지 않습니까? 한번 깨지면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알겠습니다. 적당히 둘러대도록 하겠습니다.”
“한국 정치권은 어떻습니까?”
“그게 ···.”
“극우세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트럼프가 날뛰니 보조를 맞추는 모양새입니다.”
“음 ···.”
“최근 OSS로 인해 북한과 협력하는 모양새가 된 것이 못마땅한가 봅니다.”
“하아~ 멍청하긴 ···. 아니 북한이 있으니까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경제고 뭐고 돌아가는 것인데 ···.”
“...”
“그리고 내가 김정은이랑 담판 지어서 휴전선의 병력도 다 빼고, NLL의 해안포까지 다 철거하게 만들었는데. 지들이 그동안 뭘 했다고 ···.”
다소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맹목적인 혐오주의로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는 존재는 늘 있었지만. 대한민국의 극우세력은 네오나치보다 더 위험한 존재였다.
그들은 겉으로는 멀쩡한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네오나치처럼 스킨헤드에 나치식 경례를 하면 코스프레쯤으로 웃어넘길 수 있었지만.
한국의 극우주의자들은 유튜브에, 방송에, 신문에 버젓이 얼굴을 드러내고 몇몇은 국회의원이 되어 배지까지 달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세력과 기득권을 위해, 미국과 일본의 비위를 맞춰왔다. 굴욕적인 외교를 지속했고 그것을 감추기에 안보 이슈는 손쉬운 선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OSS의 압력으로 휴전선의 북한군과 NLL 해안포까지도 철수하게 된 마당에, 더는 그들의 정치적 기득권을 지킬 이슈가 사라지자. 더 교묘하고 더 악독하게 국민을 오도하고 있었다.
“원수님이 화내실 만합니다 ···. 원수님!”
“네. 말씀해 보세요.”
“페이퍼클립을 조금 푸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런 우리가 한국 정치에 개입하는 꼴이 됩니다. 일단 보류해 두세요.”
“원수님. 일이 다 터진 후에는 풀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또 전쟁 중엔 풀 수도 없고요. 그것을 감당한 사회적 여력이 있을 때 해야 합니다.”
“...”
“우리가 사회 유력인사의 비리를 모두 알고 있는데 함구하는 것 역시 온당치 못합니다.”
“부장님이 그리 말씀하시니 ...”
“또, 우리에게 정치적 이득이 없는 시점에 터트리는 것이 옳습니다. 이 문제만큼은 원수님과 다른 의견을 말씀드려야만 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부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저도 생각은 같습니다. 그래도 사회적 파장이 너무 걱정되네요 ···.”
“만약 한 번에 동시 공개를 한다면, 정말 대한민국이 뒤죽박죽되겠죠.”
“그렇겠죠.”
“아주 정밀하고 세심한 계획이 필요합니다. 언론과 사회가 감당할 만큼 전략적으로 하나씩, 암 수술하듯! 정보를 풀어야 할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부장님이 OSSIA 내 팀을 꾸려서 정밀하게 한번 계획해보세요.”
“감사합니다. 원수님.”
...
*페이퍼클립 : 본래 2차대전 종전 당시 미국이 나치의 과학자와 기술정보를 빼 오기 위한 작전명이었다. 전작과 본작에선 국정원의 사찰 관련 데이터베이스를 OSSIA가 입수하고 그것을 보완한 자료를 말한다.
...
바스티온의 비행갑판에서 조깅하는 이시언과 일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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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영함으로 탈북한 핵과학자를 탈출시키는 장면 - 동남아시아의 어느 공해상.
국정원이 의뢰한 OSS의 첫번째 작전이다. (장잠탑 에피소드)
이회영함 6,900t. 98.5m의 재래식 잠수함이나 오버홀을 통해 원자력화가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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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활동가들 점점 지하 세력화 되어 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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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과격 지하 운동가의 아지트 - 이들은 무력투쟁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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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퍼클립을 열람하고 있는 OSSIA 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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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어딘가에 있는 OSSIA 스테이션과 현지 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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