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심점
034화 - 구심점
만주 지역에 새로운 나라를 독립시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단순히 우리가 그 땅을 점령했다고 해서, 국가를 세우고 존속시키기엔 너무나 다양한 색깔의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한반도의 8배나 되는 땅을 직접 통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연유로 OSSIA에 중국의 동북 3성 주민이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가지고 새로운 나라로 독립할 가능성을 따져보라고 지시했었다.
그것을 종합한 이 부장의 보고로는.
중국 공산당은 오랫동안 동북공정을 통해서, 고구려와 발해 등 우리의 상고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하는 작업을 해왔다.
단순히 학문적 역사를 왜곡하는 것을 넘어, 만주 지역 주민들과 소수 민족에게 그들의 상고사가 중국 역사의 일부란 것을 지속해서 세뇌에 가깝도록 교육해온 것이었다.
“아 ··· 그러니까 현지인들에겐 고구려, 발해에 대한 거부감이 없겠군요.”
“그렇습니다. 다시 말해 중국의 역사는 수없이 많은 국가가 명멸해왔고, 지금의 중국 공산당도 그 물결의 하나일 뿐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습니다.”
“...”
“그런 인식은 금나라나 청나라처럼, 동북 3성이 독립하는 것이 당연하고, 또 동북의 신생국이 중국 본토를 통일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란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음 ···.”
“가장 최근의 청나라조차 만주족이 일어나 본토를 통일한 것이니까요. 게다가 최근 중국 공산당의 권위주의 공포통치에 동북 3성에 대한 차별까지 맞물린 데다가 ···.”
“...”
“우리와의 전쟁에서 연전연패하고 만주에서 전쟁이 일어나자 ‘천하의 주인이 바뀔 때가 되었다.’란 풍문이 돌고 있을 정도입니다.”
“혹시 그게, 소수민족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닙니까?”
“아닙니다. 동북 3성의 조선족, 만주족 등 소수민족의 수가 수백만이 되긴 하지만 한족의 숫자에 비하면 여전히 소수입니다.”
“...”
“세상이 뒤집히길 바라는 한족 아니 동북 3성 주민들의 민심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동북 3성은 독립국으로 독립시키려면 또 무엇이 필요합니까?”
“문제는 구심점입니다.”
“아무래도 그게 가장 힘들겠네요.”
“더 어려운 점은 마땅한 인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역 중심으로 독립을 추진하면 그렇지 않아도 말이 많은 동네인데 아무것도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게요. 혹시 후보가 될만한 사람은 찾았습니까?”
“정보부 내에서 그 문제 때문에 엄청난 고민과 조사를 했습니다만 쉽지 않았습니다.”
“아 ··· 아쉽네요.”
“하지만, 단 한 사람 강력한 후보가 있습니다.”
“오! 그게 누군가요?”
“...... 바로!”
“...”
“원수님입니다.”
“네?”
“동북 3성은 아직도 주민의 의식이 전근대적인 부분이 많습니다. 그들에겐 영웅이 필요합니다.”
“그래도 그건 ······.”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원수님은 동방의 나라에서 온 영웅입니다. 그들이 적대감을 가진 미국도 함부로 못 하고, 러시아도 결딴낸 전쟁영웅입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 좀 ···.”
“원수님만큼 광범위하게 알려져 있고, 호감을 사는 인물도 없습니다. 그리고”
“...”
“청나라에서 편찬한 만주원류고의 내용을 계속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 동방의 나라 즉 한반도에서 만주를 거쳐온 세력의 후손이 중국을 통일한 셈이 됩니다.”
“그건 좀 비약이 ···.”
“비약이 아닙니다. 알에서 깨어나고, 용을 때려잡는 이야기가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
“그것을 공식적으로 선전할 내용은 아닙니다만, 그런 정서를 충분히 이용할 수 있고. 그런 지점에서 원수님만큼 적합한 인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
“동방의 나라에서 온 후손이 세계를 아우르고, 동북의 만주에서 일어나 천하를 통일한다 ···. 뭐 이런 이야기를 몇몇 호사가들이 자발적으로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벌써요?”
“네, 그렇습니다. 우리가 중국과 전쟁을 시작하기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네? 언제부터요?”
“조사해보니, 우리가 베트남전쟁에서 승전하고, 윈난 연방을 독립하도록 만든 시점부터 시작되어 2차 대만 전쟁에 승리한 이후 점점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거, 참 신기하네요.”
“다만, 그동안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가. 중국인 점술가로 몇 가지 예언을 하면서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그저 흔한 음모론이나 ‘아니면 말고’ 식의 전망 정도로 여겨졌습니다.”
“...”
“그런데, 하필 점술가가 동방의 별(영웅)이 중국의 큰 섬 2개가 해방될 것이란 예언을 했고, 그것이 들어맞게 된 겁니다. 바로 대만과 우리가 군정통치 중인 하이난성이 그 두 개의 섬이 된 것이죠.”
“그런 예언은 나도 하겠네요.”
“아이고, 원수님! 우리야 내부에서 모든 사정을 알고 있으니, 그리 신기한 것이 아니지만.”
“...”
“일반인이 어떻게 중국이 하이난성을 뺏기고 대만이 해방되는 걸 예측 하겠습니까? 그것도 단 한 사람의 의지로 말이죠.”
“...”
“아무튼, 그때부터 ‘동방의 별’이란 그 예언이 점점 주목받게 되었고, 비슷한 아류의 이론들이 그럴듯하게 퍼져나가게 된 것입니다.”
“아이고 이런 ···.”
“그런 상황에서 만주에서 전쟁이 터졌고. 원수님의 지시로 중국의 부상병과 전사자를 수습하고 민간인을 구출한 것이 알려지면서 ···. 원수님은 해방자인 동방의 별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거참, 하여간 ···.”
“원수님 그리 넘기실 일이 아닙니다. 우리에겐 정말 때마침 필요한 중요한 소스입니다. 아니 마지막 간을 맞출 소금이 절로 들어온 일입니다.”
“네, 네. ······ 근데, 그 점쟁이가 한 예언의 끝은 뭡니까? 궁금하네. 하하.”
“예언의 대강은 ‘바다에서 일어난 여섯 번째 동방의 큰 별이 되고, 그 빛이 중원을 뒤덮는다.’이고 ‘붉은 별 다섯 개는 구분할 수 없게 된다.’입니다.”
“거, 너무 싱겁네. 다섯 개의 붉은 별은 오성홍기(五星红旗)를 말하는 것 같고, 구분할 수 없다는 가장 큰 별인 공산당이 노동자, 농민과 같아진다는 것이네요. 이거 너무 쉽잖아요. 그건 좀 ···.”
“쉬우므로 중국의 민중들에게 회자되는 겁니다. 원수님···.”
“아, 알겠습니다. 선무공작(宣撫工作)을 위한 것이라면 부장님이 알아서 잘 써보세요. 하지만 내가 겉으로 드러나는 일은 최대한 자제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원수님이 직접 나서는 일은 최대한 자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사실 지금까지 유지해오신 신비주의가 여러모로 유리한 상황을 만들고 있습니다. 하하.”
“신비주의요? 에이~ 그냥 나서는 거 귀찮아서 그런 것인지. 하하.”
“오히려 원수님의 그런 모습이 대중들에겐 선 굵은 리더십으로 비치고 있습니다.”
“...”
이 부장이 전해준 이야기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이야기였다.
자고로 늘 상, 셀 수 없는 수의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예언과 전망을 내놓고 있었고, 항상 그것이 들어맞은 경우에만 그 일이 회자 마련이었다.
동방의 별이니 뭐니 하는 것이 낯간지럽고 민망한 일이었지만, 그것이 전쟁에 도움이 된다면 참을만한 아니 참아야 하는 일이었다.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에 보안 단말기로 곧 첫 교전이 시작된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걸음을 재촉해 작전상황실로 향했다.
작전장교를 불러세워 물었다.
“첫 교전 지역은 어디입니까?”
“다롄 시 동부 80km 지점과 잉커우 시 남쪽 10km 지점입니다.”
“잉커우시면 우리 강습전단의 상륙이 완료된 겁니까?”
“아직 전단 본대의 상륙이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항공강습을 통해 상당수의 북방군 특전대가 교두보를 장악한 상태입니다.”
“음, 그쪽이 걱정이군요. 아래, 위로 끼인 위치라 ···.”
“자주포전함과 드론 모함이 강습전단에 포함되었으니 그리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럼 랴오둥반도 두 곳에서 동시 교전이 일어나는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위에서 막고 옆으로 밀고 들어가는 형국입니다.”
작전상황 패널의 지도위엔, 북한의 서해 수역을 공유하는 랴오둥반도 아래쪽 해안 도로를 따라 진격하는 우리 군과 랴오둥만 안쪽으로 상륙한 북방군 특전대의 모습이 각각 표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진격지점과 상륙지점에 나란한 바다 위엔 강습전단의 함선들을 표시하는 점들이 빼곡히 반짝이고 있었다. 2척의 자주포전함과 각종 순양함, 구축함이었다.
제해권과 제공권이 완전장악된 상태라 승전을 확신하고 있었지만, 전쟁의 속성이 수많은 돌발상황과 예외변수가 있기에 안심할 수는 없었다.
SCS 화면에 바다 위의 자주포전함이 비치었다. 전함 위엔 108문의 K9-A3 자주포가 방열을 마치고 있었고, 갑판 엘리베이터로 K10 탄약 보급 장갑차가 올라오는 모습도 보였다.
1개의 자주포대대가 18문의 자주포를 운영하고, 포병연대가 4개의 대대로 이루어지는 것에 비추어 보면. 자주포전함 2대면 여단급 포병전력이 동시에 바다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을 의미했다.
만약 그 정도 포병전력이 지상으로 이동해서 진지를 점령하고 방열을 해야 한다면, 포격 지원에 상당한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주포전함은 진지점령과 방열의 과정 없이 이동과 동시에 포격할 수 있으니, 지상군의 전술 운용에 엄청난 유연성을 제공해주고 있었다.
물론, 제해권과 제공권이 장악되어야만 가능한 이야기이긴 하다.
그런 자주포전함에 대해 뿌듯한 마음을 느끼는 것도 잠시.
자주포전함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 쿠쿵 ...... 쿠콰카카카카콰쾅.. 구구구구구구
스피커를 통해 전해오는 현장음은 포격 소리가 아니라 마치 천지를 메운 기마대가 달려가는 소리처럼 들렸다.
K9-A3 자주포는 급속 사격 시 15초간 4발의 포탄을 발사할 수 있었다.
자주포전함에 108문의 자주포가 있었고, 기준포 한 발을 발사하고는 동시에 모든 자주포가 연속적으로 155mm 포탄을 날리고 있었다.
15초면 432발의 포탄을 발사했고, 5분이면 자주포에 탑재된 5,184발의 포탄을 모두 쏟아부을 수 있었다.
무서운 광경이었지만. 화면은 마치, 거함 거포 전함의 시대를 재현한 듯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 화면과 폭음을 듣고는 누군가 나지막이 말했다.
- 워어 ~ 낭만적이다.
- 아 ···. 가슴이 웅장해진다.
그 포탄에 희생될 생명을 생각하면 잔혹한 일이지만, 전함이 사라진 시대에 전함의 불을 뿜는 모습은 밀덕에겐 분명 낭만적인 상황이었다.
포탄이 탄착점을 확인하는 것도 관측반의 목이 아니었다. 그 역할은 드론이 대신하고 있었다.
정확한 목표를 지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기준포의 탄착을 확인하고 좌표를 수정하는 것까지 드론이 모든 일을 대신에 했다.
관측반이 산을 타고 올라가 쌍안경으로 정찰하고, 탄착점을 확인하는 일은 이제 추억 속의 일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우리의 자주포전함 2척은 적의 남은 포병과 기갑전력을 청소하고 있었고, 산개해서 포격을 피하는 중국군의 전차와 장갑차는 바이락타르-TB3 와 MQ-9B STOL 드론이 맡았다.
미사일에 맞은 중국 전차는 뚜껑이 날아가고 장갑차는 화염에 휩싸이고 있었다.
...
동방의 별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는 동북 3성 시민.
새롭게 나타난 6번째 별이 오성홍기의 모든 별을 앞도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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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사격중인 자주포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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