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
064화 - 방주
설마 설마 했는데, 트럼프가 사고를 치고 말았다.
무식하고 미련한 인간이 성공의 단맛에 취한 채로, 힘을 가지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없다.
더 위험한 것은 그런 인간이 한 권의 책이나 엉뚱한 신념에 경도되는 일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런 인간이 정치권에 좀 더 많은 것 같았고, 선거로 당당하게 정권을 잡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장관님 아니 어떻게 미국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겁니다. 아무리 대통령이 지시했다지만···.”
“그러게 말입니다. 트럼프는 평소 김정은이 부럽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 그럼, 미국이 독재로 빠질 수도 있다는 말입니까?”
“그게. 요즘 언론들은 그걸 선거독재라고 부른답니다.”
“선거독재요?”
“네. 선거란 민주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잡았지만, 그 과정도 이후에도 갖가지 사술과 편법 그리고 속임수를 써서 독재하는 것을 지칭합니다.”
“아···.”
“그걸 대놓고 하는 게 푸틴이고, 한국도 비슷한 경험이 있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미국처럼 시스템이 갖춰진 국가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역설적으로 그 시스템 때문에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하아~ 당장에 큰일은 없겠지만···. 아무튼 트럼프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렸군요. 그 늙은이가···.”
“네. 이제, 우주 전쟁의 길을 열어버린 셈이 된 것 같습니다. 이제 전쟁이 시작되면 상대국의 위성부터 파괴하는 시대가 온 것 같습니다.”
...
중국이 시작했고, 미국이 화답하면서 암묵적인 규칙이 깨져버린 것이다.
멍청한 트럼프는 그로기 상태에 빠진 중국에 막타 펀치를 한 방 먹인 것 정도로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싸움의 금도를 깬 것이다.
길거리에서 주먹 싸움을 하다가, 자동차를 끌고 와서 들이받은 것과 같았다.
그 자동차를 미국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러시아 여전히 건재했다. 영구동토층을 파헤쳐 나온 천연가스와 석유가 넘쳐났고, 발트 3국까지 점령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더 두려운 사실은 장님이 주먹을 마구 휘두르듯, 위성 전쟁 그다음 수순이 바로 핵전쟁이란 것이다.
상대가 한번 강한 수단을 쓰고 나면 그 다음 수단을 고민하기 마련이고, 그렇기에 공멸의 수단을 쓰지 않는 금기를 중국과 미국이 깨버린 것이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지구와 인류가 서로 경쟁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구가 인류를 멸하는 것과 인류가 지구를 망치는 것을 경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케슬러 신드롬만 문제가 아니었다. 그 혹독했던 화산 겨울을 지나자, 그 반작용으로 지구의 온실효과로 극지방의 빙하가 녹고 있었다.
이제 또 얼마나 큰 재앙이 기다리고 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GEMA를 맡은 김범준 박사에게 종합보고를 준비해 달라고 지시했다.
...
GEMA의 재난 영향평가 보고는 단독을 받기로 했다. 너무 많은 의견이 모이면 되레 판단이 힘들 것이란 생각이었다.
또, 나쁜 상황을 상정한 내용이니 자칫 엉뚱한 불안 심리를 증폭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김범준 박사가 그간 수집된 자료와 연구결과를 보고하기 시작했다.
“총통님 보고드리겠습니다.”
“네. 시작해 주세요.”
“먼저, 지구와 인류 전체에 미치는 가장 큰 위협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그것은 바로 복합재난의 빈도가 높아졌고, 그것이 임계점에 달하면 국가적 역량의 한계점이 올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국가적 역량이라 함은?”
“말 그대로 국가적 역량을 동원해도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한 국가가 어렵다면, 다른 국가에서 도와줄 수도 있을 것 아닙니까?”
“네.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런 재난이 중첩되면 인류적 역량을 넘어선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잘 이해가 안 됩니다.”
“비유를 좀 들어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이해하기 쉽게 말씀해 주세요.”
“지난 100년간 있었던 재난을 사람에 비유해보겠습니다.”
“...”
“재난을 사람의 질병과 사고로 본다면, 감기몸살, 변비, 소화불량, 암까지 다양한 병에 걸려왔습니다만 모두 자연치유 되었습니다.”
“자연치유요?”
“네. 사람들은 재난을 인류가 극복했다고 하지만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인류는 그것을 극복한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동안 멸종되지 않은 것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구 자연 치유하였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
“그런데, 최근 들어 그 자연치유의 속도를 점점 넘어서 재난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 ···.”
“즉, 소화불량과 변비가 있는 상황에서 감기몸살에 걸리고, 대장암 판결을 받은 상황에서 교통사고가 나 다리가 부러지고···. 부러진 다리로 먹을 걸 찾아 나서야 하는 그런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아직은 아니라는 말이죠?”
“그렇긴 합니다만, 그런 일이 당장 벌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연구결과입니다.”
“아 ···.”
“게다가 가장 큰 문제는 다른 데 있습니다.”
“다른? 어떤?”
“케슬러 신드롬 말입니다.”
“그거야 우주개발을 포기하고, 조금 퇴보된 문명으로 살아가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게 그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네?”
“그렇지 않아도 스타링크 때문에 지상에서 우주 관측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런데 인공위성을 못 쓰게 된다는 것은, 허블망원경 같은 우주 망원경을 못 쓰는 것은 물론이고 지상관측에도 큰 장애를 가져올 것입니다.”
“...”
“그것은 혜성과 소행성의 궤도를 측정하고 대비하는 게 심대한 차질을 빚습니다.”
“아···. 그렇네요. 정말, 새로운 소행성이나 혜성은 대부분 아마추어 천문가들이 발견하는데, 천체관측에 장애가 생기게 되면···.”
“아, 총통님도 아마추어 천체관측을 하셨으니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그 관점에서 생각하니, 케슬러 신드롬은 인류가 우주로 향한 눈을 가려버리는 것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만약 지구로 향하는 천체가 있더라도, 그것을 미리 발견해서 대처할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
“또, 있습니까?”
“하나하나 열거하면 끝이 없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
나는 마른침을 한번 삼켜야만 했다.
“현재 해수면 상승은 기정사실이 되고 있습니다. 5년 안에 다 녹을지 30년이 걸릴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
“그런데 더 큰 문제는 해수의 온도와 염도가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측하지 못하는 다른 재난을 불러올 것입니다.”
“...”
“해수면 상승으로 해안가 도시가 침수된 가운데, 대기가 불안정해서 사이클론과 태풍은 더 자주 발생할 것이며, 수년 전 미국 대지진 같은 지진의 빈도도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또, 해수의 압력이 높아진 탓인지 알 수는 없지만, 화산활동도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
“겨울엔 빙하기, 봄과 가을엔 산불과 화산, 여름엔 홍수와 태풍으로 쉴 틈 없는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소행성이나 대형 운석이라도 근접하면 ···.”
“아 ··· 그래서 뭘, 어떻게 해야 합니까?”
김범준 박사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선뜻 대답하지 않고 있었다.
“솔직히,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
“...”
“할 게 없습니다.”
“네?”
“인류가 그동안 해온 것은 일단 발생한 재난을 복구하는 것뿐입니다. 그런 재난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도 뭔가 할게 ···.”
“총통님은 편집증에 가까울 정도로 모든 사안에 대해 준비와 대비를 강조해오셨습니다. 이미 물자든 인력이든 차고 넘칩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런 대형 재난을 막을 순 없습니다.”
“알고는 있지만 ··· 박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왠지 서운한 기분이 듭니다.”
“죄송합니다. 좀 더 현실적인 답을 드리려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다만,”
“?”
“마리테라가 모든 재난에 대해 가장 현실적인 대비책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야 ···.”
“해수면 상승이야 아무 영향이 없고, 지진대, 태풍 발생 지역도 피해서 다니고 있고, 또, 빙하기가 온다고 해도 지구 전역이 얼음에 휩싸이는 것이 아니니.”
“...”
“거의 모든 재난에 대해 가장 현실적인 해답이 되는 것 같습니다. 소행성이나 핵폭탄을 정통을 맞지 않는 이상 가장 안전한 수단입니다.”
“그래서 만든 거긴 하지만 ··· 그렇다면!”
“???”
“마리테라 같은 것을 여러 개 만들면?”
“총통님! 총통님이 인류 전체를 구제할 순 없습니다. 마리테라에 20만 명 이상 수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게 10척이 있어도 겨우 200만 명일 뿐입니다.”
“그렇죠. 압니다. 그저 1척이라도 더 있으면, 1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렇습니다.”
“하긴, 하나쯤 더 있는 것도 좋을 것 같긴 합니다. 마리테라에 너무 많은 것이 몰려있기는 합니다.”
“그렇긴 하지만 맥이 좀 빠지네요.”
“총통님!”
“네. 박사님.”
“만약 인류의 역량을 넘어서는 재난이 닥치게 되면 ···.”
“되면 ···?”
“인류는 재난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종을 보전하는 것이 목표가 될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마리테라가 바로 방주가 될 것입니다.”
“아, 그렇다면 ··· 단지 사람들만 태울 게 아니라.”
“네. 그렇습니다. 각종 식물의 씨앗, 동물의 유전자 정보를 보전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10년 후가 될지 1,000년 후가 될지 모르는 순간을 위해 말입니다.”
“아, 알겠습니다.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은 얼마든지 지원할 것이니 준비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다른 나라들은 이런 위험에 대처를 안 합니까?”
“저도 GEMA를 맡으면서, 조사를 해보았는데. 참담할 정도입니다.”
“네?”
“민주주의의 한계처럼 느껴집니다. 전 지구적 재앙에 대해 경고를 하는 세력, 그리고 그것을 한낱 음모론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소모적 정치논쟁으로 빠진 국가가 대부분입니다.”
“하아 ~”
“북한, 중국, 러시아 같은 권위주의 국가들은 소수 권력층만 살 방도를 만들어둔 상황이고요.”
“아 ···.”
“가장 앞장서야 할 미국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바람에 관련 예산을 모두 끊어버린 상황입니다.”
“아니, 트럼프는 지구적 위기를 모른답니까?”
“지구 환경 위기를 음모론을 몰아간 가장 큰 주체가 바로 트럼프입니다.”
“아니, 내가 알기론 위기 상황에 미 대통령 피신할 벙커, 비행기, 배가 모두 갖춰진 거로 아는데 ···.”
“어쩌면 트럼프가 단지 무식해서 음모론을 퍼트린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시쳇말로 ‘어차피 죽을 놈은 죽을 것’이니 돈 쓸 필요 없다고 생각하였는지도 모르죠.”
“...”
마리테라 내부에 있는 GSGA 저장소.
OSSA GSGA (Global Seed and Genome Ark)
.
지구에 근접한 소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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