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최근연재일 :
2024.09.21 02:35
연재수 :
154 회
조회수 :
7,983
추천수 :
72
글자수 :
836,950

작성
24.08.03 18:01
조회
13
추천
0
글자
13쪽

133화. 가출 청소년

DUMMY

무조건 전진이라.

어린아이가 미아가 됐을 때 흔히 하는 행동이다.

어쩌면 그와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른다.

어떤 경찰관이 말했지, 공부만 잘하는 바보라고.


“여긴···.”


하얗게 마른 입술로 조용히 중얼댔다.

마침 산책하는 노인이 옆을 지나간다.

그랬다, 이곳은 공원이었다.


아이는 뒤늦게 퍼뜩 정신을 차렸다.

홀로 교복을 입고 멀뚱히 서 있는 중이라, 묘하게 힐끗대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러자 도망이라도 치듯이 구석으로 움직인다.

마침 괜찮은 장소도 보인다.


“화장실.”


당장 숨고 싶을 때 좋은 곳이다.

안으로 들어가 세면대 앞으로 섰다.

잠시 한숨을 돌리고 거울을 보았다.

얼굴은 지친 기색이 가득했다.


세수라도 할까 싶은지 수도꼭지를 튼다.

그러다 손아귀에 담긴 물웅덩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맑게 찰랑이는 액체가 끊임없이도 나온다.


“···후웁.”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셨다.

오늘 처음으로 목구멍으로 넘기는 것이다.

아침부터 느껴졌던 갈증이어서인지, 다급히도 물을 마셔댔다.


그렇게 세 모금 정도 비웠을까?

뒤에서 여자 한 명이 들어왔다.

그 얼굴에는 다소 의아한 감이 서렸다.


“응? 오늘이 일요일이었나?”


교복을 입은 모습을 보고서 내뱉은 이야기.

아이는 죄라도 지은 듯, 얼른 밖으로 빠져나왔다.

다만, 그러면서도 아쉬운 듯이 세면대에 눈을 흘겼다.


터덜터덜 걸었다.

물 몇 모금이 기운을 줄 리 없었다.

결국, 벤치에 앉아 힘없이 몸을 기댔다.

눈을 감고 기절하듯이 잠에 빠졌다.


“······.”


아이가 눈을 떴다.

하늘이 제법 어두워졌다.

당장 몸을 일으키려고 하다가 다시 주저앉았다.

그리고 신발을 벗어 발을 주물렀다.


스마트폰을 꺼냈다.

배터리가 많진 않았다.

그래도 당장 연락하자면···,


“엄마.”

아이가 의지할 곳은 부모밖에 없었다.

단축 번호를 누르자 번호가 떠올랐다.

원래라면 수신이 가야 할 테지.


“···어? 엄마?”


하지만 바로 끊어지고 말았다.

이럴 경우 보통 두 가지로 추려진다.

걸려오자마자 통화를 껐거나. 아예 수신 거부를 했거나.


“아아···. 아아아아···.”


몇 번이나 다시 전화를 걸어댄다.

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어머니는 이제 그 어떤 통화도 받지 않았다.

기계처럼 바로 끊어질 뿐이다.


이제 누구에게 전화해야 할까?

어둑한 밤인데, 잠은 어디서 자야 할까?

여기서?

봄이라서 기온은 제법 괜찮았지만···.


“야, 비켜.”


그때, 한 노숙자가 나타나 손을 휘저었다.


“네?”

“거기 내 자리니까 비키라고.”

“아니, 아···.”


너절한 차림으로 비집듯 걸어오더니, 벤치 밑으로 들어간다.

굉장히 익숙한 동작이다.


“저기···.”

“왜?”

“왜 벤치 밑에서 자요?”


아이는 겁도 없이 말을 걸어댔다.


“그럼 어디서 자는데?”

“위에서 자도 되잖아요, 침대처럼.”

“노숙하는 주제에 뭔 놈의···. 그리고 밤 되면 짭새가 지X을 해대거든. 미친 것들이 그냥 길바닥에 자는 건데도 잡아가잖아, 짜증나게.”

“아아.”

“이것도 은근히 편안해. 갇힌 것 같아서 안심되거든. 죽으면 이럴까 싶기도 하고.”


멍하니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공감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저 놓아버리면 편하겠다고.


“왜? 너도 이 옆으로 올래?”

“네? 아, 아니요!”


노숙자가 희롱하자, 다급히도 자리에서 벗어났다.

등 뒤에서는 아쉬운 투덜거림이 들려왔다.

정말로 같이 자기를 바랐는지도 몰랐다.


“이제 어떡하지?”


이곳에서 잘 수는 없었다.

그러기엔 밤은 너무나 위험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럴 때 가장 만만한 것이 휴대폰이다.

얼른 채팅창부터 뒤졌다.

금세 같이 다니던 친구들 이름을 찾아냈다.

그리고 음성 통화를 건다.


“어, 바로 받았네?”


다행히 화면에는 통화 중이 떠올랐다.


-응, 무슨 일이야? 아, 오늘 결석한 거 때문에?

“아, 응.”

-수업 자료는 딱히 더 받은 거 없어. 선택 과목은 모르겠다. 너랑 달라서.


아이가 잠시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건너편에는 자신이 무슨 상황을 겪고 있는지 모르는 탓이다.

하지만 이내 결심을 굳힌 얼굴로 말을 이었다.


“오늘 나 재워줄 수 있어?”


조심스러운 부탁이다.

동시에 수화기에서도 잠시 침묵이 돌았다.


-혹시 가출했어?

“어? 아니, 그···. 어···.”

-그래···. 근데 나도 힘들 것 같은데. 우리 집도 같이 무너졌는데 널 어떻게 초대해? 네 얼굴 보자마자 방화 사건을 떠올릴 텐데.


맞는 이야기다.

그랬다간 자신 때문에 같이 쫓겨나는 수가 있었다.


“응, 미안. 확실히 안 되겠다. 만약 너희 부모님이 우리 엄마한테 전화라도 하면···.”

-뭐라고?

“아냐. 내가 잘못 생각했다고.”


그렇게 말하고서 통화를 종료했다.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혹시나 싶은 가능성 때문에 함부로 부탁하기가 힘들다.


“이제 어떻게···.”


의미도 없이 친구 목록을 내렸다.

‘테이’와 ‘테이네 삼촌’에서 잠깐 멈췄지만, 이내 고개를 젓고선 빠르게 이름을 흘렸다.

의지할 만한, 그리고 그럴 염치가 있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얼굴에 절망이 드리울 무렵.

다른 곳으로 시선이 간다.

오픈 채팅, 수많은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곳이다.

무엇보다 당장 어른이 많았다.


‘고등학생인데요, 도와주세요.’


얼마나 볼까?

조마조마한 얼굴로 목록을 살폈다.

서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채팅방을 팠을지 생각하면, 당연한 걱정이다.

더군다나 오늘 남은 시간이 많지도 않을 테니.


-남자, 여자????


그런데 메시지 하나가 빠르게 나타났다.

프로필 사진은 작은 강아지다.

귀여운 외형에, 절로 안심이 갈 만했다.


-여자예요

-내가 도와줄게요 어디에 있어요????


상대는 적극적으로 나섰다.

아이도 한숨을 내쉬고서는 자신의 위치를 입력했다.

그리고 공원 입구를 향해 발길을 옮겼다.

얼굴에는 잠시 숨통이 트인 기색이다.


잠시 후, 낡은 외제차가 공원 앞에 도착했다.

40대 정도 됐을까?

한 남성이 내리며 아이에게 다가섰다.


“학생 맞죠? 도와달라고 했던?”

“네. 그런데···.”

“타요, 재워줄게요.”


남자가 얇은 손목을 잡고서는 조수석으로 끌고 갔다.

친절히 문을 열어주고서 미소도 지어 보였다.

이렇게까지 하는 탓에, 아이도 거절하기 난감했다.

일부러 찾아온 사람이기도 했고 또, 보내기엔 뒤의 일이 갑갑했으니까.


떠미는 대로 조수석에 앉았다.

남자 역시도 싱글벙글 웃으면서 운전석에 자리했다.

외제차는 곧 빠르게 공원과 멀어진다.


“가출은? 왜 했어요?”

“아, 그게···. 엄마랑 싸워서···.”

“왜? 평소에도 사이가 안 좋아요?”

“그건 아닌데요, 최근에 조금···.”

“다른 연락할 친구나 어른은 없었나 봐요?”

“네에.”


여러 가지 질문이 뒤늦게 이어졌다.

대부분 지금 상황과 인간관계를 묻는 내용이다.

시답잖게 들리는 이야기가 지나갔다.

잠시후, 외제차는 골목길에서 멈춰 선다.


“여기는···.”

“내가 사는 동네. 이사 가려고 하는데, 적당한 매물이 없어서요.”

“그건 그런데, 집들이 다 작아 보여서요.”


원룸촌.

남자가 아이를 데려온 곳이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면 제법 넓어서. 뭐, 들어와요.”


그러면서 훌쩍 문을 열고 들어온다.

여타 다른 집과 같이, 공간 하나만 덜렁 존재했다.


“여기 방도 없는데···.”

“밤이 늦었어요. 갈 데도 없잖아요.”

“······.”

“아니면 다시 공원으로 돌아갈래요?”


어쩔 수 없다.

밖을 견디기엔 너무나 지쳤다.

원룸은 곧 두 사람을 집어삼키고 눈을 깜빡였다.

밤은 그렇게 흘렀다.


시간이 지났다.

하늘도 눈을 뜨고서 캄캄한 벽에 빛을 드리웠다.

작은 집은 남자를 먼저 뱉어냈다.


아이도 부스스한 얼굴로 화장실로 들어갔다.

멍하니 거울을 한참 바라본다.

그러다 곧 일그러진 표정으로 세수를 시작했다.

비누조차도 만지기 싫어하면서, 손톱으로 입술과 목 주위를 벅벅 긁었다.


“하아, 끄윽···.”


작게 흐느낌을 내뱉었다.

발갛게 달아오른 물기로 번들거렸다.

동공은 검고도 탁했다.


발을 옮긴다.

수건으로 얼굴을 닦지도, 문고리를 잡지 않고 열린 문틈을 비집듯이 나간다.

원룸은 그렇게 남은 아이마저도 뱉어냈다.


“······.”


어디를 가야 할까?

목적지는 없었다.

그저 멍하니 앞으로 향할 뿐이다.


수많은 사람을 스쳐 지나갔고, 웃음소리에 휩쓸려 발길을 옮겼다.

목적지를 정한 건 아닐 터였다.

그렇지만 도착지는 우습게도 공원이었다.

하긴, 남들을 따라서 들어갈 만한 곳은 애당초 많지 않았으니.


“자, 오늘도 열심히 해봐요!”

“거기 의자 좀 주세요!”

“오늘 메뉴가 뭐였죠?”


눈앞에는 푸드 트럭과 바쁜 사람들이 보였다.

현수막은 활기차게 ‘무료 급식’이라고 쓰인 글자를 띄웠다.


“···예현 교회?”


단체로 봉사하러 온 모양이다.

독거노인, 노숙자 같은 사회 약자층에게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서다.

가출 청소년도 여기 포함되겠지.


아이가 눈을 빛냈다.

이내 부지런히 움직이는 아주머니 옆에 붙는다.

거들기라도 할 듯, 같이 테이블을 들었다.


“어머? 학생?”

“힘드실 것 같아서요.”

“어디서 온 거야?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 아니야?”


그 말에 어색하게 웃는다.


“그냥 사정이 있어서요.”

“개교기념일이라도 돼?”

“아니요, 그게···. 아!”


삐끗하며 제자리에서 넘어졌다.

대답하랴, 같이 옮기랴 정신이 없었던 모양이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겠지.


“어머? 괜찮아요?”

“네, 헤헤.”

“괜찮기는, 지금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는데.”


아예 일어서지도 못했다.

체력 자체가 없었다는 뜻이다.


“이거 좀 대신 들어줘요! 나 이 학생 데리고 휴게실 가 있을게!”


아주머니도 당장 주위를 향해 목소리를 돋웠다.

그리고 아이를 일으켜서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곳엔 트럭 두 대와 캠핑카 한 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잠깐만 걸어봐요, 저쪽에 약 있어요.”

“괜찮아요. 다친 건 아니에요.”

“그럼요?”


두 사람은 곧 캠핑카 안으로 들어갔다.

휴게실이란, 아마 이곳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그게, 밥을 못 먹어서요.”


아주머니는 우선 아이를 의자에 앉혔다.

이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더니, 얼른 신발 먼저 벗겼다.


“아니, 이러시지 않아도!”

“아유, 발이 퉁퉁 부었네. 한참 걸었나 봐요?”

“···네.”

“계속 책상에만 앉아있다가 갑자기 움직여서 그래요. 아마 사흘 동안 근육통 때문에 제대로 걷지도 못할 걸요?”


주름진 손이 정성스럽게 발과 종아리를 주물렀다.

그때마다 아이는 작은 신음을 토해냈다.


“밥을 못 먹었어요? 얼마나요?”

“어제···.”

“어제 언제 먹었어요?”

“못 먹었어요.”

“아유, 그런데 도와주겠다고 나선 거예요? 힘도 없으면서?”

“도와줘야 밥을 달라고 할 수 있으니까···.”


그 말에 아주머니가 웃어 보였다.

그리고 뒤이어 나오는 대화에, 아이는 차마 얼굴을 들지 못했다.


“참 착하네. 그냥도 밥은 주는데, 도와주려고 하고.”

“아닌데···. 나 친구도 괴롭히고, 막···.”

“정말 나쁜 사람은 자기가 잘못한 줄도 몰라요. 그래서 정도도 없이 일을 저지르고 다니고요.”


염치란, 기묘한 구석이 존재했다.

언젠가 테이를 괴롭혔던 순간은 무심했겠지.

그래도 괜찮았다.

인간은 자신을 볼 수 없기에, 스스로 한없이 관대하다.


하지만 타인에게 양해를 구하는 순간은 다르다.

자연스럽게 눈치를 보며 자세를 낮춘다.

상식적이고 공손하다.

특히나, 아이가 어른을 대할 때 더욱 그랬다.


“···그랬어요. 옆에서 말려주기 전까진, 저도 그랬어요.”


작가의말

웬만하면 짧게 끝내려고 했는데, 얘 분량이 길어지네요.



추후 전개에 필요한 장면

+)교회 확장 속도를 보여주기

+)화두: 어른이 지원을 끊으면 아이는 무력해진다

+)화두: 공권력이 처벌에 초점을 맞추면 정작 피해자가 보호를 위해 찾기 힘들어질 수 있다

+)화두: 인간의 다면성과 그 이유



이런 이야기를 다 섞다 보니 복잡해지기도 합니다.

한 장면에 생각해야 할 목적이 많아서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필독] 저는 엄벌주의가 싫습니다.(feat. 웹툰 작가의 특수교사 고소 사건) 24.02.22 138 0 -
공지 [필독] 입산 주의 표지판 +3 24.01.03 125 0 -
154 154화. 법치가 말하는 선의 24.09.21 7 0 12쪽
153 153화. 보복 24.09.19 7 0 12쪽
152 152화. 관찰과 통찰의 싸움(2) 24.09.16 8 0 13쪽
151 151화. 관찰과 통찰의 싸움(1) 24.09.14 11 0 12쪽
150 150화. 맞는 오답, 틀린 정답 24.09.12 10 0 12쪽
149 149화. 재연 24.09.10 8 0 13쪽
148 148화. 반격 24.09.07 9 0 14쪽
147 147화. 단 한 명 24.09.05 11 0 12쪽
146 146화. 그리움 24.09.02 9 0 12쪽
145 145화. 녹호의 존댓말 24.08.31 9 0 11쪽
144 144화. 자격 24.08.29 7 0 12쪽
143 143화. 3인칭 주인공 시점 24.08.26 8 0 12쪽
142 142화. 후원 24.08.24 11 0 12쪽
141 141화. 손해 24.08.22 10 0 12쪽
140 140화. 이런 취미 24.08.20 10 0 12쪽
139 139화. 질투 24.08.17 10 0 12쪽
138 138화. 방탕함 24.08.15 12 0 12쪽
137 137화. 웹 드라마 24.08.13 11 0 13쪽
136 136화. 녹음실 24.08.11 9 0 12쪽
135 135화. 인간의 단면 24.08.08 11 0 12쪽
134 134화. 무료 배식 24.08.06 9 0 12쪽
» 133화. 가출 청소년 24.08.03 14 0 13쪽
132 132화. 카드 24.08.01 10 0 12쪽
131 131화. 포기 24.07.30 10 0 12쪽
130 130화. 접대 24.07.27 9 0 12쪽
129 129화. 도련 24.07.20 8 0 12쪽
128 128화. 1조 24.07.18 15 0 13쪽
127 127화. 주인님 24.07.16 12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