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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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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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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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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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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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화. 맞는 오답, 틀린 정답

DUMMY

***


회의실.

중앙에는 카메라가 꼿꼿이 서서는, 렌즈로 힐끗 검은 옷을 담았다.

단 한 명만 대기하고 있다는 듯한 연출이다.

뒤에 다른 스태프 몇 명이 멀뚱히 서 있지만 말이다.


이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음울한 봄바람이 들어왔다.

천선이었다.

특유의 미모는 여전했지만, 다소 초췌한 기운이 흐른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천선 씨. 안색이 많이 안 좋네요. 잠 못 잤어요?”

“하하, 조금···.”

“힘드시죠?”


느릿하게 고개를 숙이며 자리에 앉았다.

미리 준비라도 된 듯, 얼굴은 화면 가운데에 들어찼다.


“컨셉은 들으셨죠? 대본 없이 진솔한 느낌으로. 화장도 창백하게 먹었네요.”

“지금 하는 이야기는 편집되나요?”

“그럼요. 혹시 요청사항 생기시면 미리 이야기해주세요.”

“알아서 잘해주실 거라고 믿어요. 아, 형이 광고를 넣었다고 들었는데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로고가 잘 드러나도록 해드릴게요.”


창백한 얼굴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침울해졌다.

방송국 PD 역시 조심스러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실례인 건 알지만, 계속 질문을 드릴게요.”


흔히 편집점이라고 부르는 부분이다.


“오늘 찾아오신 이유는 한 케이블 방송 때문이죠?”

“네.”

“조금 의아한 부분이 있는데요, 지금껏 가벼운 가십 정도는 참고 넘어가지 않았나요? 왜 이번에는 이렇게 힘들어하시는 거죠?”


대중 중에도 존재하겠지.

왜 이렇게 괴로워하냐며,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이.


“이건 한 번으로 끝날 일이 아닐 테니까요.”


여기에 천선은 이유를 덧붙였다.


“귀이개에 적힌 말, ‘도플갱어와 아버지’였어요. 그리고 이번 내용에는 부자 관계가 안 나와 있었죠.”

“그렇다면···.”

“네. 여러 번 방송할 생각이에요. 다음에도, 그 다음번에도 계속 이야기해대겠죠.”


당연한 염려였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정말 괴로웠겠지.

거짓을 퍼뜨리는 방송사와 홀로 맞서 싸워야 한다.


“아, 그럼···.”

“오해를 풀고 싶네요. 다만,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번에 눈앞에서 음식도 먹지 않았나요?”


답답하다는 반응이다.

맥락을 고려했을 때, 당연한 행동이기도 했다.

도플갱어가 하는 거짓말은 증명되지 않았다.

몇몇을 제외하고선,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는 뜻이다.


“아니라고 외치면 ‘거짓말하지 마라’, 증명하면 ‘속임수를 썼을 거다’···. 여기서 제가 뭘 더 어떻게 해야 하죠?”

“다들 뭘 원할까요?”

“하···.”


불확실한 일에 손가락질하는 일.

우리는 이를 모함이라고 부른다.


“그 사람들은 타인에게 진실을 요구하는 게 아니에요.”


도플갱어는 대중의 인지 내에서 감정을 호소했다.


“그저 헐뜯고 상처 입히길 원하죠. 이 외에는 명분일 뿐이에요.”

“정말 그럴까요?”

“네. 언제나 벌을 주는 게 목적이죠. 깨끗한 세상은 뒤이어 따라와야 할 뿐이에요.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동할 뿐이면서, 현실이 그에 맞춰주기를 바라죠.”


어쩌면 진심일지도 모른다.

장막 뒤를 모르면서, 이렇게 손가락질해도 되는가?

확인해서 참이면 선이고 아니면 악인가?

행동은 이미 해버렸는데 옳고 그름은 나중에 정해진다니, 이런 생떼가 어디 있는가?


“다른 시청자분들은 상황을 모를 수 있겠죠. 그래서 댓글을 준비했습니다.”

“······.”

“괜찮을까요?”


천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송국 PD는 가져온 댓글을 공개했다.


-와 감쪽같이 속였네ㅋㅋㅋㅋㅋ

-확실히 쎄 하긴 했음

-촉이 오긴 하더라

-저게 사실이면 묶어두고 골수 뽑으면 안 됨???

-ㄴ그게 세상에 더 도움 될 듯

-ㄴㄴ차라리 비밀 실험실 같은 데에 보내자


편집 영상에는 캡처한 부분을 넣어두겠지.

대중이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벌써 재판까지 마치셨네요.”


답답한 숨이 추욱 새어 나왔다.

울컥하기라도 한 듯이 입가를 가렸다.

그건 약자의 무력함과 같았다.

PD도 감정에 몰입했는지, 조심스레 질문을 이었다.


“그럼에도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혹시 저희가 여기서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요?”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의혹을 어떻게 해소할지, 도플갱어에게 의견을 물었다.

가려진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가 흘렀다.

카메라는 담지도 못할 테지.


“저를 그토록 싫어하는 분들과 조율이 필요하겠죠. 원하는 바를 듣고, 저도 최소 조건을 정할게요.”


상황을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살아날 구멍 정도는 뚫을 생각이겠지.

최소 조건이라는 명목으로 말이다.



***


레저 피노키오.

그 앞에는 트럭 두 대가 자리를 잡았다.


‘장천선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하나는 케이블 방송을 보고서 보낸 차량이겠지.

증거를 내놓으라고 소리친다.

여기에 대고 천선이 이야기했지.

엄벌이 목적이고, 현실은 뒤이어 따라오길 바랄 뿐이라고.


다만, 트럭은 역시나 두 대였지.

옆에는 전혀 다른 문구가 당당히 자리하고 있다.


‘천선 오빠 힘내세요! 저희가 있잖아요!’


도플갱어를 응원하는 쪽이다.

든든한 지원군이기도 하다.

인영은 높다란 건물에서 이들을 내려다보았다.

이내 재밌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참 애매한 문제긴 해? 분명 우리가 사기 치는 건 맞거든? 근데 너무 그럴듯해서, 이쪽을 믿는 게 합리적이잖아?”


고개를 갸웃하면서 시선을 한 군데로 돌렸다.

그곳엔 녹호가 소파에 등을 대고 있었다.


“어이, 한량! 넌 어떻게 생각해?”

“뭐가?”

“과정은 합리적인데 틀리는 쪽이랑, 어쨌든 답은 맞는데 이유 없이 우겨댈 뿐인 쪽이랑.”


도플갱어는 교활할 방식으로 대중을 속였지.

녹호로는 무관심했고, 천선으로는 완벽히 반증했다.

예현으로는 오히려 사실이라며 사이비 목사로서 입지를 굳혔다.


이외에도 속임수는 많았다.

사용하는 휴대폰도 특색이 달랐고, 물건 결제 같은 사소한 습관도 차별화했다.

상식적으로 세 사람이 동일 인물이라 보기 힘들었다.

다들 워낙 개성적이기도 하고.


“당연한 일을 뭘 비교해? 열 개 중에 하나 틀리는 놈이랑 열 개 중에 열한 개 틀리는 놈이랑.”


녹호가 퉁명스레 이야기했다.

대충 무엇이 뭘 가리키는지 보인다.

합리적인 사람은 열 개 중에 하나를 틀리겠지.

그런데 다른 쪽은···.


“하나 맞추고 있잖아? 너 도플갱어인 거.”

“잘못된 방법으로 맞추면 그게 더 문제지. 이번 한 번을 근거로, 계속 똑같은 잘못을 저지를 거잖아?”

“흠, 그럴까?”

“확실하지. 하루 두 번 맞는 벽시계, 시간 확인도 안 하고 걸어대는 꼴을 보면 말이야.”


언젠가 테이에게 그런 말을 했었지.

아이한테 책임지게 해서 어떤 문제가 해결될 수 있냐고.

그렇게 상황을 넘기면, 그게 무슨 의미겠냐고.

다시 일이 터졌을 때, 또 애한테 총대 메게 할 것 아니냐고.


“잘못된 방식으로 맞추느니, 옳은 방식으로 틀리는 편이 훨씬 나아.”


도플갱어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럴 수도 있겠네. 아, 근데 누구 온다고 하지 않았어?”

“맞아. 곧 만나기로 했지.”

“나도 찍히나? 예쁘게 보여야 해?”

“안 찍혀. 못생겨도 돼.”

“······.”

“그래, 지금처럼. 마음 편하게 못생긴 채로 있어.”


인영이 배설물 씹은 표정을 지었다.

손찌검하러 갈까, 고민하는지도 몰랐다.


“아, 오는 모양이네.”


유리문 너머로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천선일 때 대화했던, 방송국 PD였다.

여전히 능글맞은 얼굴로 안으로 들어선다.

손에는 작은 카메라가 들려 있다.


“아이고, 들어오기 참 힘드네요.”

“보안에 신경 쓰는 편이라. 나도 영 귀찮아 죽겠어.”

“유독 귀한 장소인가 봅니다?”

“그렇지. 회사 기밀이고 뭐고 다 쌓인 곳이니까.”


그 말에 PD는 눈동자에 이채를 띠었다.

직업 특성일지도 모른다.

소재가 될 만하다면, 어쨌든 머릿속에 담고 보는.


“염탐하려고 부른 건 아닌데.”


녹호는 이에 은근히 눈치를 주었다.


“아, 예. 카메라 설치 금방 끝납니다.”


그 말대로 척척 세우더니, 촬영 준비를 끝냈다.

렌즈는 녹호만을 온전히 담아냈다.

거대한 몸은 그림자가 지도록 자세를 낮췄다.


“그럼 이제부터 질문해도 괜찮겠습니까?”

“그래.”


여전히 거만하고 사나운 태도.

하지만 PD도 딱히 제지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독특한 태도라면, 오히려 시선을 끌기 좋겠지.


“천선 씨의 의형제인 피녹호 씨 맞으시죠?”

“보다시피.”

“최근 케이블에서 촬영한 모 방송에 대해 불만이 있으시다고 들었습니다. 하실 말이 있으신지요?”


녹호는 그 말에 씨익 웃어 보였다.


“그래, 방송국 나리들. 정신이 나갔나 봐?”


대놓고 적대감을 드러냈다.

예의를 재는 일 따위, 이 얼굴에 어울리지 않았다.


“도플갱어인가 아닌가, 의혹 제기? 내 동생이 친히 반증까지 끝낸 일을?”

“연이은 방송에서는 대조군이 모자라다고 답변했습니다. 알다시피 도플갱어의 규칙은 천동죽 씨 증언으로만 증명되지 않았습니까?”

“그래, 변신 방법이 다른 유형일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속임수를 썼을 수도 있고?”

“대략 그렇다고···”

“그따위 변명도 합격이면, 개나 소나 도플갱어겠지. 이 덜떨어진 인간들아.”


사납게 합리성을 읊었다.

눈앞에 있다면 당장이라도 내려칠 듯했다.


“하아···.”


스산한 숨결을 내뱉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는 듯했다.

하지만 꾸역꾸역 참는 모습을 보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증명. 해줘야겠지, 너희들이 참 좋아하는 증명 말이야.”

“정말입니까?”

“그 대신 조건은 들어야지.”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 요량이다.

살아날 구멍.

어떻게 뚫을 작정일까?


“일단 난 너희 딴따라 짓거리에 어울릴 생각 없어. 그럼 끝까지 기어오를 걸 알거든.”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정말 상종도 하지 않고 싶다는 기색이다.


“다만, 천선이는 어쩔 수 없이 부대껴야겠지.”


여기까지 나오자, 무슨 이야기인지 짐작이 간다.

녹호는 제대로 방송에 나올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제시한 증명 방법 중 두 가지만 받아들일 거야.”

“사진 보고 음식 먹기, 유전자 검사 말입니까?”

“그래.”


도플갱어는 한 명이다.

당연히 두 사람은 동시에 나타날 수는 없었다.

오직 천선으로만 나타날 작정으로, 이렇게 명분을 만들어냈다.


“여기서 음식은 시리얼류. 완제품을 바로 개봉해야 해. 충분한 혼합이 필요하고, 너희가 준비한 인간이 먼저 먹어봐야지. 죽나 안 죽나.”

“그건 좀···.”

“난 그렇게 해서 죽었으면 좋겠는데. 저번에도 반쯤 그랬거든.”


흉흉한 눈빛으로 읊조렸다.

은근한 언급이기도 했다.

‘천선은 과거 누군가가 준 음식을 먹고 큰 탈이 난 적 있다.’

트라우마가 될 정도로 심각한 범죄에 얽혔으리라···, 이렇게 추측하게 만들었다.


“그 뜻 알겠습니다. 저쪽에 전달해보겠습니다.”


과보호하는 형님 행세.

도플갱어가 취한 자세였다.

여기서 얻는 결과물이라.

아무래도 가장 난처한 증명은 제외해낸 거겠지.


“흐음···.”


다만, 인영은 이를 찝찝하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도플갱어라면 뭔가가 더 있지 않은가 싶은지.


작가의말

계획해서 쓰다 보면 뒷부분에 소재 키워드만 써둔 경우가 가끔 나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촘촘하게 떠올리지 못하니까요.


예, 지금입니다.

짜둔 걸 바꿀 때도 머리가 아프지만, 이렇게 몇 가지만 있어도 난감하긴 합니다.

다만, 전체적인 짜임새를 생각했을 때 잘 풀리긴 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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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154화. 법치가 말하는 선의 24.09.21 7 0 12쪽
153 153화. 보복 24.09.19 7 0 12쪽
152 152화. 관찰과 통찰의 싸움(2) 24.09.16 8 0 13쪽
151 151화. 관찰과 통찰의 싸움(1) 24.09.14 11 0 12쪽
» 150화. 맞는 오답, 틀린 정답 24.09.12 11 0 12쪽
149 149화. 재연 24.09.10 8 0 13쪽
148 148화. 반격 24.09.07 9 0 14쪽
147 147화. 단 한 명 24.09.05 12 0 12쪽
146 146화. 그리움 24.09.02 9 0 12쪽
145 145화. 녹호의 존댓말 24.08.31 9 0 11쪽
144 144화. 자격 24.08.29 7 0 12쪽
143 143화. 3인칭 주인공 시점 24.08.26 8 0 12쪽
142 142화. 후원 24.08.24 11 0 12쪽
141 141화. 손해 24.08.22 10 0 12쪽
140 140화. 이런 취미 24.08.20 10 0 12쪽
139 139화. 질투 24.08.17 10 0 12쪽
138 138화. 방탕함 24.08.15 12 0 12쪽
137 137화. 웹 드라마 24.08.13 11 0 13쪽
136 136화. 녹음실 24.08.11 9 0 12쪽
135 135화. 인간의 단면 24.08.08 11 0 12쪽
134 134화. 무료 배식 24.08.06 9 0 12쪽
133 133화. 가출 청소년 24.08.03 14 0 13쪽
132 132화. 카드 24.08.01 10 0 12쪽
131 131화. 포기 24.07.30 10 0 12쪽
130 130화. 접대 24.07.27 9 0 12쪽
129 129화. 도련 24.07.20 8 0 12쪽
128 128화. 1조 24.07.18 15 0 13쪽
127 127화. 주인님 24.07.16 1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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