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죽이기 (Kill the Dra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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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CE
작품등록일 :
2024.01.08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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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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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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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게일포트 (3)

DUMMY

-


“...도대체 어떤 몬스터에게 물리면 몸이 이렇게까지 된다는 말인가?”

“괜찮을까요···?”


팔과 다리가 무겁다. 머리가 무겁다. 눈꺼풀이 무겁다. 무거워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몸이 마치 끓는 솥에라도 들어간 듯 펄펄 끓고 있었다.

그렇게 깜깜한 시야 너머에서 낯선 할머니와 오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댁은 마법사지?”

“어, 어떻게 아셨나요?”

“뻔하지. 비실비실한 게 무기를 다루는 검사처럼 보이지는 않고, 이렇게 부상을 입었지만 어쨌든 몬스터와 싸웠고 살아 나왔다니까 마법사겠지. 회복 마법은 좀 쓸 줄 아는가?”

“...쓸 수는 있지만 이 정도 상처는···”

“알아. 알지. 회복 마법만으로 고치라는 말을 하는 게 아닐세. 치료는 내가 하지만 결국 몸 내부의 이 정도 상처는 마법에 의지해야 하니까. 조직이 망가졌잖아. 상처에 감염도 심해서 고열이 있다만··· 그건 내가 알아서 하겠네. 재생력만 최대한으로 올려놓게. 할 수 있겠나?”

“...네. 부탁드립니다.”


응, 오멜. 넌 할 수 있어. 결계도 결국 해냈잖아. 고소공포증 때문에 벌벌 떨기는 했지만 어쨌든 너는 할 수 있는 녀석이야.

···그런데 뭘 한다는 거지? 저 할머니는 누구고? 그리고 난 왜 일어나지 못하는 걸까.


의식이 그렇게 빙글빙글 회전하다가, 난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꿈조차 꾸지 않는 깊은 잠이었다.


-


“...으응.”


분명 눈을 감고 있었지만 햇빛이 너무나 밝았다. 더 자고 싶은 기분에 눈을 더 꽉 감았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밝았다.

정말, 커튼 걷지 말라니까. 늦잠을 잘 수 없잖아.


“......”


깜빡, 깜빡.

커튼을 찾기 위해 눈을 떴으나, 나는 낯선 풍경에 한참을 바보같이 누운 채로 두리번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제서야 기억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오멜의 결계로 성벽 위로 날아 올랐고, 오멜이 무서워서 벌벌 떨었으며, 그런 오멜을 억지로 잡아서 무사히 성벽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정신이 좀 들었나?”


침대에 누워서 한참을 멀뚱히 있던 차에, 방문이 삐그덕하고 열리더니 등이 굽은 할머니 한 분이 들어오셨다.


“...여기는.”

“나는 비트리스 세이지(Beatrice Sage). 이 게일포트(Galefort)에서 제일가는 치료사지. 너랑 같이 있던 남자 마법사는 잠깐 외출했네. 곧 돌아올게야. 불안해 하지 말고 누워 있게.”


게일포트. 분명 폰더레이에서 얻었던 지도에서도 그 이름을 보았다. 그건 우리가 향하던 엘 메이아의 도시 이름이었다. 혹시나 정신을 잃은 사이에 다른 곳으로 끌려 갔다거나 하지는 않은 것 같아 일단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할머니가 치료사라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주변을 둘러보니 이런저런 소독 도구들이 보였고, 코끝에서 알싸한 약초의 냄새가 느껴졌다.

이불 아래를 보니 어느새 내 옷이 깨끗하고 편한 실내복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배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에 옷을 위로 걷어올리니 교체한지 얼마 되지 않은 듯 핏자국 없는 깔끔한 붕대가 보였다.


그때 콩, 하고 내 이마에 무언가가 가볍게 부딪혀 왔다.


“아얏···”

“부산떨지 말고 얌전하게 있으라니까. 상태가 많이 호전되긴 했지만 자네는 환자야. 통증을 아무래도 참기가 힘들었을 텐데,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버틴 걸 대단하다고 해야 할까 미련하다고 해야 할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몬스터에게 물렸다고는 했는데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아서 말이야.”

“몬스터 말이죠···”


아마도 오멜이 둘러댄 이야기일 거다. 이 나라와 전쟁 중인 젠탈리온을 배신하고 도망치다가 지방 영주와 싸움이 붙어서 창에 배가 관통되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에헤헤···”

“어물쩍 넘어가려는 속셈이구만.”


비트리스 할머니는 끌끌, 혀를 찼지만 그 이상 더 캐묻지는 않으셨다.


“저기, 혹시 제가 여기에 오고 난 후로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건가요?”

“한밤중에 이곳으로 왔으니 그 이후로 벌써 세 번째 아침이지. 열이 아주 펄펄 끓어서 혹시나 잘못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열은 일단 내렸고 의식도 돌아왔으니 거의 절반은 회복되었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는 됐네. 나야 치료하고 그 값을 받으니 장사치나 다름없으니까. 고맙다는 이야기는 자네 애인에게나 하게. 그 친구가 애써 치료 결계를 꾸준히 펴놓지 않았으면 이렇게 빠르게 회복되지 못했을 거야. 내색은 안 했지만 그도 꽤나 지쳤을 테니.”

“애, 애, 애···”


애인.

순간적으로 할머니가 누굴 말하는지 머리가 멍해졌다. 그 짧은 순간에 여러 고민을 했지만, 할머니가 착각하신 그 대상은 명확했다.


“애인 같은 건 아니에요···!”


나는 얼굴 앞으로 손을 들어 힘껏 내저었다.


“음? 그러냐?”

“그냥, 그···”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왕실 마법사와 그 전속이라는 관계는 이미 젠탈리온을 떠났으니 더 이상 써먹을 수도 없고 써먹을 필요도 없다. 비트리스 할머니의 말투를 보면 오멜 역시도 나를 자신의 전속으로 소개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잘그락. 습관처럼 목에 걸려 있던 ‘오멜 마나필드의 전속’이라는 신원 보증 문구가 새겨진 금속판을 손끝으로 만졌다. 생각해 보니 이제는 더 이상 필요 없는 물건이네.


“-동료. 입니다···”


우물쭈물. 난 세이지 할머니의 눈을 피했다.


“...뭐, 됐네. 늙은이에게는 들어 봤자 별로 재미도 없는 이야기니. 그나저나 자네들도 게이트포트(Gatefort)로 향하는 겐가?”

“게이트포트요?”

“으응? 아니냐?”


이곳이 게일포트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게이트포트라는 곳은 처음 들었다.


“요즘 워낙 시국이 시국이니까. 전쟁이다 뭐다 해서 시끄러우니··· 게이트포트도 예전에는 정말 조용한 도시였는데 이렇게 사람들이 몰리는 큰 도시가 될 줄 누가 알았겠어.”

“게이트포트면··· 이곳과 가깝나요?”

“자네들은 모험가라고 했지? 게이트포트를 모르다니, 얼마나 먼 곳에서 활동한 건가?”

“도, 도시는 자주 들리지 않아서요.”


모험가라. 아마도 오멜이 그렇게 돌러댄 모양이었다.

일단 이 도시 안에 들어온 이상 모험가라고 해도 그다지 이상할 것은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을 자신이 태어난 도시에서 머물기 때문에 다른 도시를 모른다고 하더라도 세상 물정 모르는 엘 메이아인이라고 생각될 뿐이지 젠탈리온 출신일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할 거다.


“지리는 조금 아는가?”

“잘은···”

“드래고니아 산맥이 젠탈리온과 엘 메이아의 경계를 따라서 있는 건 알지?”


다른 것은 모르더라도 그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산맥을 통해서 엘 메이아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경을 길게 맞닿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사람과 물자가 오갈 수 있는 통로는 산맥의 끝인 가장 남쪽 뿐이야. 그곳에서 마치 문과 같은 역할을 하는 엘 메이아의 도시가 바로 게이트포트다.”

“하지만 지금은 전쟁 중인 게···”

“그렇지. 원래 게이트포트는 마을에서 갓 벗어난 정도의 작은 도시였어. 워낙 젠탈리온의 수탈을 많이 받았던 도시여서 구조적으로 성장할 수가 없었지. 하지만 지금은 전쟁 중이고··· 엘 메이아가 승기를 잡고 있다는 사실은 아는가? 그 정도는 들었겠지?”


드래곤 나이트라는 강력한 기사단의 존재로 엘 메이아는 절대로 젠탈리온을 이길 수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무슨 이유에선지 엘 메이아는 몬스터 카니발이 이전의 것보다 더 클 것이라는 걸 예측하고 있었고, 적국의 영토 동쪽에서 전방위적으로 발생한 몬스터 카니발을 마치 아군 삼아 젠탈리온을 공격하고 있다고 들었다.

왕성에 있을 때에 젠탈리온이 꽤나 고전하고 있다고는 들었다. 하지만 전선 자체는 꽤나 팽팽하다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엘 메이아 입장에서도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야 하니 우위에 있다고 선전하는 듯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일방적인 공격만 당해왔던 엘 메이아 입장에서 이 정도 상황은 꽤나 긍정적인 것도 사실이긴 하다. 전선을 젠탈리온의 영토 안쪽으로 밀어 넣고 있으니까.


거기까지 생각하니까 게이트포트에 대해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전쟁 때문에 물자가 게이트포트로 몰리고 있는 거지요?”

“똑똑하구만. 그렇지. 전쟁을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게이트포트는 사람들도, 돈도 물려드는 대형 도시가 되었어. 그리고 게이트포트와 가까우면서 안전하게 산맥을 끼고 있는 게일포트에서도 그 물자를 공급하게 되며 덩달아 사람들이 불어나게 되었고.”


할머니의 말을 듣고 나니 게일포트로 진입하기 전, 서문에서 보았던 물건을 잔뜩 실은 마차 행렬이 떠올랐다.


“그래서 자네들도 게이트포트로 가는 줄 알았지. 엘 메이아의 이름 날리는 모험가들도 전부 게이트포트로 향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 용병이니 뭐니 구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돌고.”

“아··· 네. 저희도 가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좋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엘 메이아의 사람들이 한 곳으로 모인다면 그만큼 정보를 얻기도 쉬워진다. 그곳에서 올리비아를 조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거다.

다만 우선은 게일포트부터 조사해야겠지만. 이 도시도 게이트포트와 함께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는 점은 꽤나 좋은 소식이었다. 올리비아에 대한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좋겠는데.


-


“괜찮은 거 맞지···?”

“맞아. 내가 며칠 동안 침대에 누워 있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안정이라면 이미 충분히 취했어.”


몸의 회복이 우선이라는 명목으로 그렇게 나는 며칠 동안 침대에서 절대적인 안정을 취했다. 사실 말이 회복이지, 이제는 더 이상 그대로 있다가는 지루함에 정신이 망가질 것 같아서 오늘은 기어코 외출을 나오게 되었다.

비트리스 할머니의 병원(이라고 부르는 집)에서 나올 때에도 절대로 무리하지 말라는 잔소리를 귀가 아프게 들었는데 오멜은 그걸로도 부족하다 생각했는지 자꾸만 나에게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정말 오랜만의 외출- 이라고 할까, 게일포트의 도시를 내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막 성벽을 넘었을 때에는 곧장 기절하기도 했고 깜깜한 밤이었으니까 뭘 볼 틈도 없었다.


“상처도 이제는 거의 다 아물었고··· 비트리스 할머니는 정말 대단하시네.”

“고생했어, 루비. 회복 축하해. 기념으로 맛있는 거라도 먹으러 가자.”

“고생이라면 너도 했잖아. 고마워, 오멜. 계속 신경 써줘서.”


최대한 담담하게 감사를 전하려고 했는데 막상 입 밖으로 내려니까 조금 쑥스러워졌다. 나도 모르게 오멜에게서 시선을 피해 바닥을 멀뚱히 바라보며 한 마디 무심하게 툭, 던졌다.

그래서 내 말을 들은 오멜의 표정은 보지 못했다. 오멜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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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 게일포트 (3) 24.05.09 8 0 11쪽
35 #08. 게일포트 (2) 24.05.06 5 0 12쪽
34 #08. 게일포트 (1) 24.05.02 7 0 11쪽
33 #07. 산맥의 오아시스 (5) 24.04.29 7 0 14쪽
32 #07. 산맥의 오아시스 (4) 24.04.25 7 0 11쪽
31 #07. 산맥의 오아시스 (3) 24.04.22 8 0 12쪽
30 #07. 산맥의 오아시스 (2) 24.04.18 5 0 14쪽
29 #07. 산맥의 오아시스 (1) 24.04.15 9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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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06. 죽음의 꼬리를 삼키다 (4) 24.04.08 7 0 11쪽
26 #06. 죽음의 꼬리를 삼키다 (3) 24.04.04 6 0 13쪽
25 #06. 죽음의 꼬리를 삼키다 (2) 24.04.01 7 0 11쪽
24 #06. 죽음의 꼬리를 삼키다 (1) 24.03.28 6 0 13쪽
23 #05. 날개 (5) 24.03.25 9 0 14쪽
22 #05. 날개 (4) 24.03.21 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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