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죽이기 (Kill the Dra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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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CE
작품등록일 :
2024.01.08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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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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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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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흠이 없는 검정 (5)

DUMMY

“어려운 질문이군요.”


그 남자는 입을 열었다.


“마물이라는 것이 본래 그런 것이지요. 그런 것까지 책임을 물으시려 들면 곤란할 뿐입니다.”

“...똑바로 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이 녀석을 돌려드릴 수는 없겠습니다.”

“하아.”


물러서지 않는 오멜의 말을 들은 남자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려운 길을 택하시는군요. 싸운다 하더라도 그쪽의 상태는 너무나 뻔합니다. 내상을 입은 마법사와 크게 부상을 입은 전사 하나··· 그리고 센스는 있어 보이지만 어중간한 여검사 하나. 퀸은 간신히 쓰러뜨린 것 같지만 또 싸울 기력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스스로의 고집이 파티의 전멸로 이어져도 괜찮다는 겁니까.”


예상대로 그는 우리가 퀸과 싸우기 시작할 때부터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 전부터, 우리가 이 숲에서 들어와서 툼스크림과 싸우기 시작할 때부터 지켜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오멜이 마법적 내상을 입은 것과 페리스가 왼팔을 꿰뚫린 것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스스로의 고집. 그 말을 들은 오멜의 시선이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그게 이 녀석의 고집이라고 멋대로 말하지 말아 줄래? 나도 똑같은 생각이니까.”

“저도 여기까지 왔는데 이런 결말이라면 조금 싫어지는 걸요. 거기에 오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그런 냄새가 나요.”

“...루비, 펠리스.”


아무리 동물계라고 하더라도 그런 냄새가 난다는 것은 펠리스의 허풍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저 펠리스도 오멜의 분노를 보았던 거다. 정말로 눈치가 빠른 애다.


나와 펠리스를 돌아보는 오멜의 눈에 슬픈 기색이 잠깐 스쳐 지나갔다.


“...뭐, 좋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결말에 후회는 없으시길.”


그 남자는 옆으로 메고 있던 가방에 손을 올렸다.

무슨 꿍꿍이인지 알 수가 없어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우리는 잔뜩 긴장한 채로 그를 노려보았다.

마법인가? 아니면 퀸과 같은 또 다른 몬스터를 부르려는 건가? 아니면 무기를 꺼내어 드는 건가?


하지만 그 예상과는 다르게 그가 그곳에서 꺼내어 든 것은 주먹만한 구슬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투명했으나 보랏빛이 은은하게 돌고 있었다.

순간 그것이 마법이 새겨진 마법석일까 하여 경계했지만, 그는 입을 크게 벌리더니 그 구슬을 자신의 입안으로 주저 없이 밀어넣 었다.


“우욱···”


구슬은 삼키기에는 꽤나 커다란 것이었다. 그것을 삼키기 힘든지 그는 여러 번 헛구역질을 했다.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 같은 그 기행을 우리는 멍하니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기괴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헛구역질이 멎었을 때, 그의 눈이 우리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우극, 우그극.”

“좋지 않아요. 좋지 않아요··· 오멜!”

“으, 응?”

“쏘세요! 지금 그냥 쏴버려요!”


순식간에 그 남자의 형체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무언가가 피부 안에서 뚫고 뛰쳐나오려는 듯, 그의 피부가 마구 요동쳤다.

사색이 된 펠리스의 외침을 따라 오멜이 겨누고 있던 지팡이 끝에서 붉은 마법진이 그려졌다. 거대하고 날카로운 바위 조각이 모이더니 남자를 향해 순식간에 쏘아졌다.


“크에엑! 크아악!”


그 공격은 남자를 성공적으로 꿰뚫었다. 아니, 그건 더 이상 “남자”가 아니었다. 그건 그 남자를 뚫고 순식간에 자라난 대형 몬스터였다.

그 몬스터는 오멜이 쏘아낸 바위 조각에 꿰뚫린 채로 고통스럽다는 듯 굉음을 질렀다.


“말도 안 되는···”

“사람이 몬스터로 변한 거야? 아니면 몬스터가 사람인 척을 했던 건가···?”

“아뇨. 둘 다 아닐 거예요. 에본윙··· 이름만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이걸 보니까 떠올랐어요. 그 이름을 들은 건 사람을 양분으로 기생하는 몬스터와 관련된 정보 수집 의뢰였어요. 당시에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지는 않았지만요.”

“기생? 그렇다면 아까 저 녀석이 먹은 건···”

“그 기생형 몬스터의 알··· 같은 게 아닐까요? 아니면 몬스터를 봉인해 놓은 무언가 일수도 있고요.”


여전히 의문은 풀리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키의 몇 배는 되는 대형 몬스터였다. 푸르스름하고 거친 피부가 온몸을 뒤덮고 있었고, 크게 찢어진 입 사이로 날카로운 이빨이 보였다. 다만 특이하게도 다리는 보이지 않았는데, 마치 나무와도 같이 그 자리에 뿌리라도 박은 듯 고정되어 있었고 다리를 대신하는 거대한 촉수 네 개가 하반신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제 뒤를 봐주세요!”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펠리스였다. 오른손의 클로를 빼내어 들고 빠르게 녀석에게로 달려들었다. 사고 가속은 초근접전에서 압도적인 장점을 준다. 펠리스도 그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주저 없이 파고든 것이었다.

하지만 몬스터의 촉수의 움직임이 생각보다 특이하다는 것을 느꼈다. 마치 펠리스의 움직임을 이미 꿰뚫고 있다는 듯, 사고 가속으로도 쉽사리 피할 수 없는 공격이 연달아 이어졌다.

거기에 펠리스의 왼팔은 붕대로 단단히 고정되어 쓸 수 없는 상태다. 단지 한쪽 팔을 쓸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한 팔의 부상은 몸 전체의 밸런스를 무너뜨린다.

그녀도 스스로 원하는 대로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지 어느 순간부터 얼굴을 찌푸리며 사방에서 쏟아지는 몬스터의 촉수를 피하기에 급급했다.


“오멜, 어디까지 마법을 쓸 수 있겠어?”


오멜도 펠리스의 진입에 맞추어 마법으로 호응을 해주고는 있었지만 번번이 촉수에 막힐 뿐이었다. 오멜이 처음에 날린 바위 조각이 몬스터를 꿰뚫은 것으로 보아 본체의 방어력은 그렇게 높지는 않는 것이 분명했다. 다만 촉수가 마법에 어느정도 저항력이 있어 까다로웠다.


“내상때문에 마나 정제가 잘 안돼··· 고레벨의 마법은 아직 무리야.”


사실 오멜 정도의 마법사이기 때문에 마나 브레이크를 겪고도 어느 정도의 마법을 계속해서 쓸 수 있었다. 웬만한 마법사라면 즉시 전장 이탈이었겠지.


“내가 쓸게. 견제해줘.”


사실 내 마법에 대해서는 끝까지 숨기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어서야 그럴 수는 없다. 펠리스가 조금이나마 근접에서 견제를 할 수 있을 때에 일격을 날려야 한다.

그리고, 한때는 남자였던 저 몬스터는 분명히 지능을 가지고 있다. 무슨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생각은 사람과 동일하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맹점이 있다. 저 녀석은 내가 마법을 쓴다는 사실을 모른다. 나를 그저 평범한 검사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다.


‘일격에 가주지.’


나는 숨을 깊게 내쉬었다. 온몸의 피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마나가 천천히 정렬되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녀석의 세 개의 촉수는 펠리스를 향해, 하나의 촉수는 오멜을 견제하고 있었다. 멀리서 우두커니 서있는 검사는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그러나 정교하게 마나를 끌어모았다. 기회는 단 한 번이었다. 나는 쓸 수 있는 모든 마나를 끌어당겼다. 주변의 마나가 내 호흡을 따라 점점 더 모여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복잡한 문양의 마법진이 내 손 앞으로 떠올랐다. 그 마법진을 따라 또 다른 마법진이 몬스터를 둘러싸듯 그 아래에 순식간에 전개되기 시작했다.


“펠리스! 곧 물러나야 해!”


내 뇌의 모든 자원을 마법진을 전개하는 데에 쏟아 붙고 있어서 차마 무어라 말조차 할 겨를이 없었다. 내 마법이 곧 발동된다는 것을 눈치챈 오멜이 펠리스를 향해 대신 외쳤다.

그제서야 나를 눈치챈 몬스터가 후위에 서있는 나에게 전력으로 촉수를 휘두르는 것 같았지만, 내 앞을 막아선 오멜과 펠리스를 뚫지는 못했다.


“해버려요!”


마법진의 마지막 문양이 그려지고, 번쩍이는 섬광이 눈을 때렸다. 섬광에 이어 주먹이라도 휘두르는 것 같은 후폭풍과 열기에 몸이 뒤로 나가떨어질 무렵, 그제서야 휘몰아치는 화염 기둥의 굉음이 고막을 때렸다.


-쿠구구궁···


아. 몸이 안 움직인다. 피곤해 죽을 것만 같다.

몇 초간 귀를 마비시킬 듯 몰아치는 굉음에 간신히 잡고 있던 정신이 깜빡, 하고 끊어졌다가 이어지기를 반복한다.


“......”


간신히 마법의 울림이 가시고, 바닥에 엎어져 있던 나의 코끝으로 매캐한 연기 냄새가 났다. 걱정했던 몬스터의 살점이 타는 냄새 같은 건 생각보다 그다지 나지 않았다. 워낙 화력이 강했기 때문일까, 살점이 탈 틈도 없었던 것 같았다.


“...와우···”


흐르는 침묵 사이로 펠리스의 감탄사가 들렸다. 뭐, 감탄은 내려 두라구. 천만의 말씀.


“...괜찮아?”

“...조금 피곤하긴 한데··· 마나가 바닥났어.”

“다친 건 아니지?”

“그건 아니야. 몸은 괜찮아. 배도··· 괜찮은 것 같네.”


바닥에 엎어진 상태로 더듬더듬, 배를 만졌다. 아물었던 상처가 터지거나 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오멜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나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야말로 몬스터는 잿더미가 됐다. 화염이 몰아친 흔적과 함께 멀리 흩어진 타다 남은 촉수 조각들이 그 자리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나타낼 뿐이었다.

그리고 근처에 있었던 툼스크림 퀸도 일부분 휘말려 잿더미가 됐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등에 빼곡히 솟아 있었던 검은 마법석으로 이루어진 가시들은 불에 타지 않고 멀쩡히 남아있었다.


“루비도 엄청난 마법사였네요···”

“...속인 건 미안해.”

“아뇨, 그런 의도로 말한 건 아니었어요. 단지 정말로 굉장하다고 생각해서···”

“펠리스야말로 굉장한걸. 네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마법을 쓸 기회도 없었을 거야.”

“냐하하··· 고마워요.”


여전히 얼떨떨해 보이는 펠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 듯 머리 위로 뾰족 솟은 귀가 움찔거렸다.


“루비랑 오멜에게 파티를 제안한 건 그야말로 제 안목이 뛰어났다는 거라고 생각해요.”

“틀린 말은··· 아니네.”


얼떨떨함이 가시자 점점 텐션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펠리스는 밝은 표정으로 공터를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너무 엄청난 일이 있어서 조금 정리가 필요할 것 같기는 한데··· 그 전에 저 동굴 마저 보지 않을래?”


걱정 없이 발랄한 표정의 펠리스와는 달리 복잡한 표정을 한 오멜은 공터 뒤로 높게 솟아 있는 절벽에 나있는 작은 틈새를 가리켰다.

나야말로 정말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결계가 그려진 툼스크림 퀸, 그리고 그 결계를 그린 수상한 남자, 그리고 이 숲에 들어오면서 줄곧 느껴지던 이상한 기분. 저 동굴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아니, 무언가가 없다면 더 이상하다.


우리는 서서히 작은 동굴로 다가갔다. 또다시 몬스터가 우리를 습격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우와.”

“...굉장한데. 마법석으로 이루어진 동공이야. 이 정도 규모라니···”


동굴은 그렇게 깊지 않았다. 오히려 들어가자마자 끝을 볼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동굴이었다.

그곳은 몬스터의 숨겨진 서식지나 그런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동굴로 들어가자마자 나는 서둘러 품을 뒤적여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던 마법석 파편을 꺼내 들고 오멜을 불렀다.


“오멜. 이거 봐봐.”


일반적인 마법석과는 다른 새까만 색깔에, 단검으로 쓸 수 있을 정도로 이상하리만큼 단단한 강도. 거기에 파편화 되었음에도 마나가 흐르는 마법석. 그 동굴은 그 마법석과 똑같은 검은 마법석으로 이루어져 있는 동굴이었다.

이루어져 있다고 할까, 아마 이 절벽 전체가 이 마법석 광맥으로 보였다. 이 동굴은 그 광맥의 틈에 있었다.


작가의말

폭발은 예술입니다.

감사합니다. 목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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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11. 잊혀진 이들 (The Unremembered) (7) 24.08.08 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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