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는 이지스 전투순양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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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노트
작품등록일 :
2024.03.15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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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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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597년의 조선

DUMMY

전라우수사 이억기는 이미 죽음을 각오했다.


그의 검은 수염은 피로 물들어 끈적끈적 뻣뻣해진 상태.

그것이 적의 피인지 자신의 피인지도 모른다.


흐르는 피에 눈 한쪽이 보이지 않는다.

한 손을 들어 얼굴의 피를 닦아 낸다.


- 촤륵!


다시 돌아온 시야.

그 속으로 허리를 베어 들어오는 칼날이 선연하다.

간신히 검을 세로로 들어 튕겨 낸다.


“아아······.”


지칠 대로 지친 손목은 이미 환도를 들어 올릴 힘도 없었다.

마저 한 번을 휘둘렀다면 왜장의 목을 베었을 것이나 그에게는 그럴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통제사! 공이 계셨다면!”


이순신을 떠올린다.

그가 있었다면··· 그가 있었다면······.


“타아아앗!”


분노가 치솟아오르자 칼을 다시 휘두른다.

치받는 칼날을 칼받이까지 미끄러트리고 그대로 돌려서 목을 긋는다.


목이 절반 가까이 잘린 적장의 눈.

빛을 잃어 가는 눈 위로 피분수가 솟았다.

그것은 현실을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대로 비틀어지며 허물어졌다.


“오너라! 우리가 조선의 수군이다!”


이제는 칼을 들 힘도 없다.

이억기는 칼을 갑판에 내리쳐 박고 호랑이처럼 버티어 선 채로 외쳤다.


조정에 대한 분노가 솟구친다.

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전쟁 후를 걱정하는 왕에 대한 분노.

그 의도를 알면서도 그대로 한양으로 끌려가 버린 통제사에 대한 분노.


‘우리는 버려졌다.’


통제사 원균은 조선수군을 버렸다.

그리고 조선의 왕도 조선수군을 버렸다.


“오너라!”


울부짖듯이 외친다.

전라우수사 이억기는 오늘 이 자리에서 죽는다.

그러나 그렇기에 조선수군의 기개는 죽지 않고 여기 바다에 남을 것이다.


- 타아앙!


짧은 총성과 함께 이억기의 무릎이 마침내 꺾였다.

원하지 않는 무릎을 꿇는 것을 막으려 오른 팔에 힘을 주고 필사적으로 칼에 지탱하고 디디어 선다.


눈길을 돌리자 충청수사 최호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수십의 왜병에게 둘러싸인 채 노구를 간신히 움직이고 있었다.


죽음을 각오하나 눈물은 나지 않는다.

다만 원통할 뿐이다.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던 조선 수군의 마지막이 이렇게 허탈하게 끝난다는 것이.


이억기는 한양으로 압송된 이순신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아 그의 통제사에게 마지막 인사를 고했다.


“오너라!”


이억기는 오히려 당당하게 가슴을 편다.

그리고 눈을 부릅뜬 채로 그의 가슴에 박힐 총을 겨눈 적들을 하나하나 일견한다.

다시 칼 쥔 손에 으스러져라 힘을 준다.


- 투투투투투투!

- 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


문득 그의 머리 위로 거센 바람이 불었다.


- 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


그의 머리 위에서 불꽃이 튀기 시작한다.

그리고 사방으로 뜨거운 금속 조각들이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무··· 무슨 일인가!”


눈앞의 적병들이 마치 나무토막처럼 쓰러지고 있다.

가슴과 머리, 다리 할 것 없이 전신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진다.


그리고 양현으로 거머리처럼 달라붙었던 세키부네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순식간이었다.

그 옛날 관공이 술잔이 식기전에 화웅의 목을 땄다고 하더라도 이보다 빠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강철의 용은 유유히 그의 머리 위에서 멀어져 갔다.


- 투투투투투투!

- 투투투투투투투투!


다시 검은 하늘 위에서 불꽃이 인다.

연속해서 들려오는 폭음 소리와 굉음.

그리고 적의 대장선이 다시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 # #



간신히 돌아온 한산도.

원균은 어질어질한 정신을 추스렀다.

그는 다시 술을 한 사발 마시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돌이켜 보면 믿을 수 없는 일의 연속이었다.

수군 전체가 전멸하기 직전에 나타난 강철의 용.


‘조상님이 도운 게야. 암··· 조상님이······.’


원균은 다시 눈앞의 붓을 빠르게 놀렸다.


- 거제도 앞바다에서 기습해 온 왜선의 수가 500여 척이나 되었지만 조금도 두려움에 꺽이지 않고 죽을 힘을 다해 공격하여 왜장 고호의 수급을 베니 적들의 기세를 누를 수 있었습니다. 다시 충청수사 최호가 위기에 빠진 것을 보고 돌진하여 마침내 구하였습니다. 전라우수사가 분전하여 맹렬하게 싸우니 마침내 적선 200여 척을 깨부수고 불살랐습니다. 아군이 승리에 이르자 하늘에서 문득 용이 나타나 불을 토해 내었으니 이는 실로 나라의 홍복이라 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신은··· 경상수사 배설은··· 두려움에···


이 정도면 사실에 거의 부합한다고 할 수 있었다.

춘원포까지 도망친 것은 사실이지만 철룡이 나타나고 전세가 뒤바뀌자 원균도 뒤늦게 전투에 참가했다.


“끄으응······.”


한참을 들여다보던 원균은 잠시 망설였다.

그는 종이를 찢어 버리고 다시 고쳐쓰기 시작했다.


- 전라우수사가 분전하여 맹렬하게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위기에 처하여, 신이 직접 돌진하여 난전을 펼쳐 마침내 적선 50여 척을 깨부수고 불살랐습니다. 더불어······.


마침내 장계를 마무리한 원균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따지고 보면 이억기가 죽을 위기에 처한 것도 사실.

이 정도라면 무난할 것이었다.


그는 먹이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 한 번 더 읽어 본 후 바깥을 향해 소리쳤다.


“당장 경상수사 배설을 잡아들이라!”


전투에서 가장 먼저 꼬리를 말고 도망친 배설.

그리고 도망친 나머지 장수들에게도 벌을 내려 군법의 지엄함을 보여야 할 때였다.



# # #



지난 밤 우연한 조우로 인해 칠천량 전투에 참가.

뜻하지 않게 원균을 도운 이성계함은 해안선을 따라 칠천량에서 우회.

다시 대해로 나가고 있었다.


지금 그들은 미래인.

조선군과 일본군 모두에게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이 이유.

입장이 명확해질 때까지는 추가적인 개입은 보류한다.


“이것이 차라리 악몽이라면 좋겠군.”


최영환은 검은 바다를 향해 중얼거렸다.

21세기에 치른 중국과 일본을 상대로 한 치열한 해전.

그것을 마치고 통일한국연방을 완성하자마자 16세기의 조선에서 다시 싸우게 생겼다.


“차라리 이 기회에 일본을 아주 쓸어 버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준원의 물음에 최영환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내 나라는 한국이고 조선이 아니야. 명심하게! 우리가 지켜야 할 국민은 조선의 백성이 아니라 이성계함의 병사들이네. 추가 보급은 불가능하네. 탄약이 떨어지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네.”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

조선도 중요하지만 400년 전의 그들이 가치관과 사상이 다른 자신들을 배척할 우려가 적지 않다. 오히려 이용만 당하고 버려질 확률도 상당하다.

때문에 함부로 귀중한 탄약을 사용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해가 뜨고 있습니다.”


“철풍(鐵風) 1개 소대를 날려서 정보를 수집하도록.”


하부 엘리베이터로에서 솟아오른 격납 캐니스터로부터 24기의 드론이 솟구쳐 올랐다.


정찰특화 강철나비 철풍.

4엽의 날개 / 기동 시간 3시간.

동체에는 1억 화소 카메라와 대인용 확산탄을 탑재.

정보 수집과 대공 방어를 동시에 겸하는 멀티드론들이 육지를 향해 산개했다.


15분 후 칠천량 주위의 상황들이 실시간으로 공유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확실한 것 같습니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처참한 잔해가 눈에 들어왔다.


햇살은 파도 위에서 눈부시게 갈라지며 은빛 비늘을 토해 냈다.

하지만 바다 위는 온통 부서진 나무판자들과 떠다니는 시체들로 가득했다.


그 사이를 작은 목선들이 계속해서 떠다녔다.


“끄엉차!”


수군들은 갈고리로 왜병의 시체를 건져 올려 목을 자른 후에 다시 바다로 집어 던졌다.

바다를 떠도는 목없는 시체들은 늘어만 갔다.

그것들은 파도 위에서 떠다니며 바다를 메우고 있었다.


그것을 최영환은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것을 전투라고, 혹은 승리라고 할 수 있는가.

어젯밤 그들이 저지른 것은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제독님, 모두 모였습니다.”


갑판장이 그의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최영환은 묵묵히 함교를 걸어 내려갔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거대한 전투순양함이지만 복도는 여전히 좁다.

대신 다른 공간들이 확장되고 추가되었다.


함내에서 가장 넓은 곳은 식당.

70여 명이 동시에 식사할 수 있는 식당에는 빼곡하게 수병들이 앉아 있었다.


의자에. 복도에, 식탁에 구겨 넣듯이 앉아 있다.

불안으로 가득한 그들의 눈을 보며 최영한은 묵묵히 앞으로 걸어갔다.


“우리가 있는 곳은 1597년의 조선. 그리고 위치는 거제도 북쪽 칠천량으로 확인된다. 어제 우리는 칠천량해전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얕은 탄식과 함께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믿고 싶지 않았던 것을 제독이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어떤 이유로, 왜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돌아갈 것이다.”


최영환은 잠시 승조원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신에게 강한 어조로 약속한다.


“나는 자네들을 반드시 보호할 것이고, 고국으로 돌려보낼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일부 몇 가지 제한되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최영환의 뒤를 이어 함장 이준원이 앞으로 나섰다.


1. 개인 전자 기기의 수거

- 스마트폰은 카메라와 녹음기, 동영상 촬영까지 가능한 장비로써 지금은 핵심 전략 물자나 다름없었다. 이것은 지상작전 투입부대에게는 요긴하게 쓰일 것이었다.


2. 개인 보유 서적의 수거

- 그들이 언제까지 이곳에 있어야 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때문에 기록된 지식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공유되고 보관되어야 했다.


3. 갑판 활동의 통제

- 미래인의 여부를 밝힐 것인지 아닌지, 조선과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 정립할 것이지에 대해서 확정하기 전까지는 모든 정보를 최소한으로 노출한다.


최영환도 이준원도 아직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했다.

다만 몇 가지는 확실했다.


인간은 먹어야 생존할 수 있고, 함은 무장이 있어야 전투할 수 있다.

병사들을 계속해서 흔들리는 바다 위에 둘 수는 없었다.


함에 실린 식량은 전투식량을 포함해 3개월 분량.

다만 핵융합발전로의 무한한 전력을 이용해 전기분해로 담수만은 충분히 얻을 수 있다.


무장 역시 식량과 마찬가지.

대함 미사일이나, 대지 미사일들, 레일건은 이곳의 목조 건축물을 상대로는 오버스펙.

대형구조물을 상대하기 위한 것이지, 개별병력을 상대하는 무장이 아니다.

실제로 사용성이 높은 것은 소총과 수류탄류의 소형화기들뿐.


결론을 말하자면.

식량을 얻기 위해서든 무장을 자급하기 위해서든 조선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준원은 말을 마친 후 간부사관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공지가 끝난 후에는 각 병과 담당사관들이 사회에서의 직업과 전공들을 파악해서 보고하도록!”


시청 사거리에서 남자 100명만 모으면 군대 하나를 만든다는 말이 있다.

역으로 군인 300명이라면 다양한 기술과 지식을 가지고 있을 것이었다.


최영환은 불안해하는 장병들을 향해 농담을 던졌다.


“어쨌든 우리는 고국에 왔네. 몇백 년 전이지만 말이야. 고국에서의 휴가를 즐기도록 하라. 급양과는 오늘 특식을 준비하게. 오랜만에 온 고국이니까 말이야.”


말을 마친 제독 최영환과 장교들은 전투정보실로 향했다.

이제부터는 좀 더 본격적인 논의들을 할 차례였다.



# # #



“장하구나. 참으로 아름답도다.”


원균의 장계를 읽던 선조는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야말로 속이 통쾌한 것이다.


이순신을 파직하고 벌어진 첫 번째 대규모 전투.

그것에서 자신이 밀어붙인 원균이 그 능력을 입증한 것이다.


결국 자신의 생각은 옳았다.

기실 이순신이 아니라도 상관없는 것이었다.


지금껏 수군은 너무 한 사람에게 치우쳐 있었고 그 한 사람의 힘은 너무나 강했다.

조선의 병력 절반을 이순신이 가지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 나라를 세울 수 있을 만큼의 힘을 가졌다.


‘감히 통영에서 무과를 직접 치르게 해 달라니······.’


장수를 뽑는 것은 왕의 권한.

이순신은 오만방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왕이란 그런 것이다.

한쪽이 승하면 억누르고 한쪽이 약하면 그쪽을 부한다.

그럼으로서 중용(中庸)과 균형이 지켜지는 것이다.

일개 만호에 불과하던 이순신을 발탁하고 중용한 것은 자신.

그러므로 그를 다시 원래의 자리로 내려놓는 것도 자신이다.


“역시 전하의 안목은 탁월하시옵니다. 통제사가 이번에 나아가 한번 싸워 크게 이긴 것은 전에는 보기 힘든 것이었사옵니다.”


판중추부사 윤두수가 선조의 마음을 알고 앞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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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치외법권이라 함은... +5 24.04.04 2,368 63 12쪽
20 전술함대지 유도탄 해룡 +2 24.04.03 2,379 73 13쪽
19 전투식량 1형 +2 24.04.02 2,393 73 12쪽
18 일방적인 학살 +3 24.04.01 2,504 74 13쪽
17 살려둘수는 없겠구나. 24.03.31 2,470 64 12쪽
16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 24.03.30 2,394 74 12쪽
15 한산도의 노장(老將) +4 24.03.29 2,511 60 12쪽
14 충(忠)을 향한 걸음 +2 24.03.28 2,522 68 13쪽
13 남원성 전투 +2 24.03.27 2,613 62 12쪽
12 화폐가 없는 나라 +4 24.03.26 2,654 63 12쪽
11 독을 타다니! +5 24.03.25 2,665 68 12쪽
10 데모크라시호에 탑승을 환영하오 +4 24.03.24 2,752 76 12쪽
9 화약이나 비누부터 만들던데요? +2 24.03.23 2,856 67 13쪽
8 왜성들까지 없애주겠소. +4 24.03.22 2,905 72 13쪽
7 칼과 창. 어느 쪽으로 +1 24.03.21 2,994 66 13쪽
6 보이지 않았다. +7 24.03.20 3,092 72 12쪽
5 천조국의 사신 +4 24.03.19 3,243 71 12쪽
4 민주주의를 배달하실 겁니까? +11 24.03.18 3,496 76 12쪽
3 싸이코 핏줄 +10 24.03.17 3,760 7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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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철의 용 +19 24.03.15 5,780 9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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