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영웅들의 라이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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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5.0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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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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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청천vs홍사덕, 누구의 길을 따를것인가.

DUMMY

북방의 시월은 거의 겨울이나 다름이없다.

새벽에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지도 벌써 며칠됐다.


평양도 꽤 추운 동네지만 이곳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순영이 누벼준 솜털 군복을 입어야 할 정도로 쌀쌀하다.


진선생 집, 앞마당.


얇은 석판위에 돼지가 지글거리는 소리를 내며 익어간다.

석판아래 모닥불이 거세게 타오른 덕분이다.


머리 한쪽이 찌그러진 사내, 홍씨가 다리를 질질끌며 장작을 부지런히 가져다 놓는다.

불씨가 조금이라도 약해지면 큰일날 것처럼 장작을 과하게 밀어넣고 있다.

불길을 바라보는 얼굴의 기다란 흉터 음영이 불빛에 짙어져 보인다.


석판으로 구우면, 냄새보다는 소리가 더 식욕을 자극하는건 왜일까.

화력이 얼마나 센지, 고기를 뒤집는 이봉선의 손놀림이 쉴 틈이없다.

이 속도면 내가 사온 돼지다리가 금방 동이날 터였다.


“정말입니까? 만주가 조선인의 뿌리라니 놀랍습니다.”


“하핫, 역시 그렇지요? 조선인의 뿌리는 옛날 고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찾습니다. 머 수천년 전의 얘기긴 합니다만, 그 나라가 있던곳이 만주였지요. 그후에도 상당기간 만주에 뿌리를 둔 나라들이 세워졌습니다.”


오늘도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반도로 옮긴 겁니까?”


“지키기 버거워서가 아닐까요? 아시다시피 만주는 허허벌판이지요. 사방팔방이 터져있어서 침략받기가 쉽거든요. 반면 반도는 삼면이 바다 아닙니까? 북쪽만 방비하면 됐으니까요. 따뜻한 남쪽에 살다보니 만주는 별 필요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생각해보면 대륙으로부터 떨어져 있어야 침략도 덜 받을것이니 만주를 그냥 완충지대로 둔 것이지요.”


“그후에 만주는 어떻게 됐습니까?”


“조선인이 빠지니까 여러민족이 서로 얽혀서 살았지요. 그러다가 한세력이 크게 일어나면 가끔 대륙도 침공하고 반도로도 진출하곤 했습니다. 그땐 조선도 곤혹스럽게 되는겁니다. 청나라가 좋은 예지요.”


병자호란을 말하고 있다.

그의 얘기를 듣고있으면 항상 새롭게 빠져든다.


“그렇지만 지금 만주는 조선인에게는 남의 땅입니다. 어차피 지배를 받아야 하는것 아닙니까? 중국이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일본은 왜 저항하는 것일까요?”


“맞습니다. 똑같은 거지요. 심지어는 조선왕조가 지배하는것도 매한가지입니다. 누가 지배하든 민초들의 삶에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항일운동이니 독립운동이니 하는것은 허무한 짓일 뿐이지요.”


그가 순순하게 내말에 동의했다.


“민족의 동질성이니 정통성이니 하는것은 먹고사는데 아무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지금 당장 사는게 곤궁한 백성에겐 무의미한 일이죠. 그냥 돈많고 배운놈들의 공허한 탁상공론일 뿐일겁니다.”


“그렇다면 무슨 까닭일까요. 지금 항거하는 자들은 말씀하신 돈많고 배운자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의 말을 들으니 더욱 모르겠다.


“홍공, 좀 더 드시게나.”


선생이 조금 떨어져 앉아서 한쪽 손으로 능숙하게 고기를 찢어먹던 절름발이에게 말한다.

그가 무슨 말인지 못알아듣자 이봉선이 고기 한덩이를 직접 가져다줬다.


맞다, 귀도 먹었지.


연신 고개를 조아리는 그의 눈은 모닥불에 꽂혀있다.

조금이라도 불이 흐려지면 당장 달려들 기세다. 여기서 밥값하는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봉선이 나에게도 고기 한점을 더 얹어준다.


그녀의 요리 솜씨를 몇번 겪은후로는 탕보다는 오늘처럼 구이를 주로 사가지고 온다.

이왕 음식다운걸 먹으려면 어쩔수 없지.


근데 그녀도 내 의도를 눈치챈것 같은데.


“볼수록 대단합니다. 저런 상처로 살수있다니.”


한쪽 머리가 찌그러진 절름발이를 보며 말했다.


“그렇지요?”


선생이 고개를 끄덕인다.


“저렇게까지 다쳤는데도 살아남은 사람을 처음봅니다. 정말 운이좋은 사람이군요.”


“글쎄요. 운이 좋은걸까요?”


선생이 그를 보며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보자.


“멀쩡했던 사람이 병상에서 일어나보니 저렇게 반신불수가 됐던겁니다. 이 세상이 저사람에게는 삽시간에 지옥으로 바뀌어 있는것이죠.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진 기분일 겁니다. 사람구실도 못하고 짐승처럼 근근이 삶을 연명하는 꼴이니까요. 한순간에 짐승처럼 살수 밖에 없다면 하루하루가 지옥 아닐까요?”


아. 운이 좋은게 아니구나.

다시 홍씨를 봤다. 언제 빨았는지도 모를 남루한 옷을 여러벌 겹쳐있고 마비된 다리를 길게 앞으로 늘인채, 한손으로 쥔 고기를 물어뜯는 모습은 짐승과 별반 다를게 없다.


저런 삶이 행복할리가 없지.

선생말대로 지옥으로 끌려와서 억지로 살고있다.


“지금 만주의 조선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흉년이 들어 배고픈것은 참을수 있어요. 천재지변이니까 체념한거지요. 하지만 짐승처럼 다뤄진다면 달라지지요. 억울하고 차별받으며 가진걸 뺏긴다면 참을수가 없는겁니다.”


“지금이 그렇다는 겁니까?”


조선인이 홍씨와 같은 처지라니 이해가 안된다.

너무 현실을 과도하게 생각하는것 아닌가.


“생각해보면 쉬운 일입니다. 예전에도 차별은 있었지요. 반상(양반, 상놈)은 있었으니까요. 상놈들은 억울하지만 참을수 있습니다. 이들에게 대대손손 내려오는 신분제는 천재지변과 다르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다른나라 사람이 들어와서 같은 상놈끼리 차별합니다. 또 그 나라에선 상놈이었던 주제에 여기 양반을 대놓고 욕보이고 있다면 이건 참을수 없는거지요. 갑자기 세상이 지옥처럼 변한셈입니다.”


“음..”


고통스런 신음을 뱉었다. 어떻게 그의 말에 반박하기가 힘들었다.


“없던 차별이 최근에 갑자기 생겼다면 순응해야 할 운명이 아닙니다. 이러니 세상이 삽시간에 지옥으로 바뀌었다고 느끼는거지요. 그래서 저항하는겁니다. 반상의 차별과는 전혀다른 문제가 된것이지요.”


그런거였나?

반상의 신분제는 수백년간 자연스럽게 녹아났기 때문에 평소에 차별이라고 느끼지 못한것인가?


“맞습니다. 유화책을 써서 서로 잘섞이면 반상의 신분제처럼 변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당장 일본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지요. 조선인을 상놈처럼 복종시켜야 지배가 쉬워지니, 오히려 이런 차별을 부추기고 있으니까요. 이게 해결되지 않으니 저항은 피할수가 없을겁니다. 일본이 그걸 모르진 않지만, 그들이라고 뾰족한 방법이 있는것 같지는 않더군요.”


“일본도 방법이 없습니까?”


“침략한지 얼마 안됐으니까요. 정세를 안정시키려면 아직은 무력에 의존해야 합니다. 더군다나 민족자체를 반상으로 나누는 일입니다. 당분간 저항은 피할수가 없겠지요.”


가슴이 답답해진다. 결국 내선일체(일본과 조선은 하나)나 일만지 블록, 대동아공영권 하는건 대외에 내세운 공허한 울림에 불과하다.

되레 차별을 이용하고있다.


“그럼 전 어떻습니까?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만주군에서 복무하는 난 배신자가 되는걸까요?”


“하하핫. 그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일본에 저항하는것만 능사겠습니까? 그안에서 힘을 키워 변화를 이끄는것도 방법이겠지요. 혹시 중위님이 육군원수가 되어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없앨지 누가 압니까? 지금 일본에 그런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하핫”


홍사익 중장을 말하는 것인가.

일본 육사를 졸업한후 순수한 야전군 지휘관으로 고위장성까지 오른 조선인이다.


가끔 군관학교 생도시절, 선배들이 지청천과 비교하는걸 들었다.


두사람은 일본육사 동기였다. 전선에서 한명은 탈출해 광복군 총사령관으로서 항일운동의 상징이 되었고, 한명은 일본육군의 중장이 됐다.


내 머리가 갈수록 복잡해졌다.

현실을 알면 알수록, 역사를 깨우치면 깨우칠수록 혼란만 가득해진다.


처음 군문에 들어올땐 그런 거창한 생각따윈 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배만 안곯으면 그만 아닌가.


민족차별 그딴것은 흔하게 있는 어쩌면 당연한 거였다.

원래 조선인의 삶이 그런것이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란다.

없던 수탈과 차별이 최근에 갑자기 생긴거라 했다.


오늘도 고민만 깊어진다.

선생이 고민하는 날 빤히 보고있다.


내가 떠난후 이봉선이 옆에서 말했다.


“백지에 그림을 그리신다더니 오늘보니 아주 요상하게 그리시군요. 육군원수가 뭐 어쩌구 어째요? 지금 일본에서 그게 가당키나 합니까?”


그녀가 힐난한다.


“그럼 어떻게 그려야 잘 그린것이오?”


“따끔하게 현실을 얘기해야지요. 일본의 만행을, 독립의 당위성을 말이에요.”


“하핫. 당신이 나에게 했던것처럼 말이오? 임자, 저 중위의 나이 이제 스물중반이오. 그 젊은나이에 벌써 얼마나 많은 독립군을 봤겠소. 또 얼마나 많이 독설을 들었을지 생각해보시오. 매국노라고 말이오. 그런 얘기가 내입에서 또 나온다면 어떻게 되겠소? 오히려 그에게 반발심만 키우는 꼴일것이오. 그건 애들이 하는 낙서지 노련한 화공이 그린 그림이 아니지.”


“그럼 그렇게 살살 찌르는 것이 방법입니까?”


“살살 찌른다? 그렇지. 그렇게해서 스스로 깨닫게 해주는게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이요. 옆에서 지켜보지 않았소? 한중위는 그동안 군인으로서의 고민이 없었소. 국가나 민족같은 거창한것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없지. 그래서 백지라는것 아니겠소. 이제 돌을 던져놨으니 얼마나 큰 파문이 일어났을지 두고 볼일이요. 그림의 완성이 얼마남지 않았소. 하핫”


진천부가 호탕하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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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사보임강 전투, 대륙을 통일하다 1 24.06.24 35 2 9쪽
59 혈맹의 시작 3 24.06.23 39 2 10쪽
58 혈맹의 시작 2 24.06.22 33 2 10쪽
57 혈맹의 시작 1 24.06.21 44 2 9쪽
56 패권전쟁, 출사하는 소년장군 24.06.20 45 2 10쪽
55 중공군의 두기둥, 팔로와 동북연군 24.06.19 40 2 10쪽
54 팔로군 총사령관 24.06.18 42 2 10쪽
53 선각자의 길 2 24.06.17 39 2 9쪽
52 선각자의 길 1 24.06.16 44 2 10쪽
51 평양에 나타난 두사람 24.06.15 48 2 10쪽
50 고당, 현준혁, 그리고 김일성 24.06.14 40 2 10쪽
49 고당 선생 24.06.13 37 2 10쪽
48 만뇌서생의 마지막 모습 2 24.06.12 35 2 12쪽
47 만뇌서생의 마지막 모습 1 +3 24.06.11 38 2 10쪽
46 화평전투, 소련군 몰락하다 5 +2 24.06.10 44 2 9쪽
45 화평전투, 소련군 몰락하다 4 +1 24.06.09 42 2 10쪽
44 화평전투, 소련군 몰락하다 3 +1 24.06.08 41 2 11쪽
43 화평전투, 소련군 몰락하다 2 +1 24.06.07 39 4 10쪽
42 화평전투, 소련군 몰락하다 1 +1 24.06.06 57 4 9쪽
41 소비에트 88여단 3 +1 24.06.05 41 4 10쪽
40 소비에트 88여단 2 +1 24.06.04 41 4 10쪽
39 소비에트 88여단 1 +1 24.06.03 52 4 9쪽
» 지청천vs홍사덕, 누구의 길을 따를것인가. +1 24.06.02 49 5 10쪽
37 뜻밖의 여인 4 +1 24.06.01 44 4 10쪽
36 뜻밖의 여인 3 +1 24.05.31 48 4 9쪽
35 뜻밖의 여인 2 +1 24.05.30 46 4 9쪽
34 뜻밖의 여인 1 +1 24.05.29 55 4 9쪽
33 어쩔수 없는 일본의 선택 2 +1 24.05.28 56 5 9쪽
32 어쩔수 없는 일본의 선택. 1 +1 24.05.28 57 4 9쪽
31 만뇌서생 드디어 만나다. 5 +2 24.05.27 51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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