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재벌은 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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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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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9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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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보르기니 (수정)

DUMMY

이곳에 모인 모두의 눈빛들이 김창우의 얼굴을 뚫어지라 주시했다. 그리고 그 눈망울들은 어느덧 하나 같이 녀석의 등 뒤로 완벽한 명화의 배경처럼 비추는 람보르기니 로드스터로 머물렀다.


나만 김창우만을 빤히 쳐다보았다.

고귀한 조각상이 된 것처럼 녀석은 내가 산 명품 슈트와는 질적으로 더 고차원에 있는 정장을 입고 나를 여유롭게 응시하고 있었다.

아주 찰나 닿았던 김창우의 눈빛이 서서히 반가움으로 물들어 간다.

그와 반대로 난 괜히 무안해졌다.

알 수 없는 희한한 감정의 연속이다.

더 이상 낡은 연립주택 지하주차장 안에서 일진들 무리와 싸우는 내 모습을 보며 아이처럼 흐느끼던 김창우가 아니었다.

공포에 질린 모습도, 손을 싹싹 비비며 살려달라는 눈빛도 아니다.

김창우는 거인이 되어 있었다.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를 밟아버릴 수 있는, 그런 거인.

신수가 훤해졌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것일까 싶었다.


“뭐해? 안 타?”


알면 알수록 더 종잡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피식 웃더니 먼저 걸음을 옮겨 운전석으로 다시 올라타는 김창우에게로 아직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토록 환한 녀석의 미소를 본 적이 있었던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결국 타기는 탔다.

내가 꿈에서나 영접할 수 있었던 람보르기니는, 분명 휘황한 보물창고가 있다면 이런 곳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생경한 감각들을 가져다주었다.

그 순간에도 어디 흠집이나 나지 않을까, 집주인에게 월세가 두 달은 밀린 사람처럼 극도로 조심하는 내 모습을 자각도 못했다.


“밥은? 안 먹었지?”

“어, 어···.”

“안 그래도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중앙동이라는 데가 있다더라. 거기 점찍어둔 데가 있는데, 괜찮아?”

“상관없어.”


서로의 영역에 발을 들이는 일은 없었는데, 한 발 걸친 느낌이 이상했다.

매듭지어졌던 관계가 풀리며, 세상에 나와서는 안 될 천지개벽을 겪는 감상이 이러하다고나 할까.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람보르기니는 분명 쇳덩이로 이루어진 차체이지만 지금은 마치 구름 위에 떠있는 것만 같았다.

차단봉이 풀리는 소리를 듣고 달려오던 차들이 람보르기니를 발견하고는 다급하게 속도를 줄이기 시작한다. 그 뒤차도, 또 다른 뒤차들도.


이런 게 부자들의 삶인가.


부우우우웅!


슈퍼 카 굴러가는 소리 하나가 뭐라고.

그제야 난 정신을 차렸다. 시트에 몸을 기대고 깊게 숨을 내쉬었다.

이 람보르기니 녀석.

정확한 모델명이 뭔지는 몰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네 주인이 되고야 만다.


***


안산 중앙동.

평일에도 그렇지만 주말만 되면 특히나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다.


시화공단, 혹은 다른 주변 공단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수만 해도 감히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다.

그 중에는 연령별로 2, 30대가 압도적으로 많은 편이었는데, 굳이 주말에 본가를 가는 게 아니라면 기숙사나 원룸에 기거를 하게 되며 일로 쌓인 스트레스를 주말에 이곳으로 와 풀었다.

클럽도 있고 각종 유흥업소도 즐비하다.

왜, 서울에서는 강남의 여러 영역이나 홍대, 명동이나 건대 같은 곳에서의 선택지가 있지 외곽의 수도권들은 딱히 택지가 없지 않나.

마실가듯 주변 술집 가는 게 아니라면 화성이나 동탄 이런 곳에서는 수원역 근방으로 몰리고, 인천에서는 부평이나 구월동이 유명한 것처럼 안산에서는 중앙동이 핫 플레이스다.


“여기가 유명하더라고.”


담백한 말이 들려왔다.


“···.”


미간에 한가득 주름을 단 채로, 눈길이 비뚤게 들어 올려졌다.


중앙동에서도 제일 비싼 참치전문점.

시가로 표기되어 알 수도 없는 가격은 차치하고서라도 난 조금 전 람보르기니가 중앙동 일대를 서행했을 때 연예인이라도 보듯 멈춰 서서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일관된 반응들을 잊지 못할 거 같다.


“좀 난잡하네. 그래도 공영주차장은 잘 돼있어서 다행이다.”


그렇게 직원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곳으로 고급스러운 실내 장식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미리 다 세팅되어 있는 가짓수만 해도 4명은 배가 터지기 직전 GG를 선언해야 할 정도로 많았다.


잠시 후.

나는 참치 요리가 이렇게나 다양할 수 있다는 걸 오늘에 와서야 처음 알게 되었다.


“미리 예약을 좀 해놨거든. 와서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먹으면 서로 편하잖아.”


딱 내가 듣기 좋아할 말만 골라 하는 김창우를 빤히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에 대한 난제의 해답만 결정하면 될 때.

갑자기 이곳 셰프라는 사람이 직접 방 안으로 들어와 정중하게 인사하며 참치눈물주와 쓸개주를 직접 잔 안에 따라주기 시작했다.

주방장이 단골에게나 내어준다는 귀한 술이라며 마셔보고 마음에 들면 또 불러달라고 한다. 아껴둔 게 있다고.


“참치에 저 빛나는 건 뭡니까?”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건가 싶어서 나도 모르게 물었더니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이 가관이다.


“금가루를 두른 겁니다.”

“···.”


할 말이 없어 그냥 어색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금가루를 먹는다고 한들 사람이 금이 되는 것도 아닐 텐데.’


예뻐 보이고 싶어서, 고급스러워 보이고 싶어서. 심미적으로 화려한 그 모든 것에 신경을 쏟는 현실 속 이 자리에서도 금가루가 수려하게 입혀 있는 참치를 보고 있으니, 새삼 김창우의 세계가 얼마나 황금색으로 빛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어쨌든.

난 김창우와 진정 마주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입각하여 이런 말을 내뱉어본다.


“날 부른 이유가 뭐냐?”


하지만 내가 묻는 말에 김창우는 들은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시치미를 뗐다.


“방금 전에 본 셰프가 제이미 올리버라고, 고든 램지와 같은 평을 받는 유명 영국 셰프 밑에서 바닥부터 일한 사람이야. 이후에 제주 신라호텔에서도 10년 정도 일하다가 여기 프랜차이즈를 세운 거고. 몰랐는데 여기가 본점이더라고? 난 역삼점인 줄 알았는데.”


그러고서 음식을 하나하나를 디테일하게 가리킨다.


“난 항상 이 프랜차이즈에 들르면 이 참치눈물주에 꼬리튀김을 먹어. 아니면 이건 빵아라고, 참치턱구이인데 이거랑 같이 먹어도 좋고.”


내가 묻는 말에 대한 해답을 아주 가뿐히 씹어 먹는 녀석이었지만, 일종의 중압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경청이 되었다.

사실 좀 압도되었던 거 같다. 비현실적인 김창우의 모습에 기분이 이상했다.

병리적인 아집 혹은 편집증적인 김창우의 모습만 떠올라서였다.

물론 그게 내가 아는 김창우의 전부는 아니다.

새로운 녀석의 진가를 알아보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지금 보이는 김창우는, 당연히 그럴 힘과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베이스가 짙게 깔려있는 얼굴이었으니까.

녀석의 손목에 달려 있는 시계만 봐도 그렇다. 롤렉스는 아닌 거 같은데 무진장 비싸 보였다. 적어도 내 단류세포 안 속 최고로 자각되어 있는 롤렉스보다도 더.

람보르기니를 타고, 이 집 메뉴판 최상단에 걸려 있는 시작을 알 수 없는 시가와도 같은 시계를 차고 있고. 누가 봐도 최고급 명품 구두와 주름 하나 가지 않은 정장을 입고 있는 김창우를 보노라면, 그때의 녀석은 아주 작은 딜레마의 그림자에 불과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그것도 이렇게 대성한 채 내게 나타나지 않았겠는가.

작은 표정, 짓고 있는 세심한 동작 하나하나마저도 전부 눈여겨보게 된다.


그러다가 불현듯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사기나 치고 다니는 놈은 아니겠구나.’


풍겨오는 아우라에서부터 기품이나 품격이 여실히 느껴져 왔다.

어느 순간에 절묘하게 나타나 혼을 쏙 빼놓은 김창우가, 적막이 가라앉은 정적 속에서 나를 향해 입꼬리를 살그머니 올렸다.


“그때는 미안했다.”

“···.”

“진심으로.”


대답이 담백해 귀에 달게 감길 뻔했다.


김창우의 미안하다는 말을 속으로 계속 곱씹어 보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고···.

분명한 건, 녀석이 자꾸만 나의 역린을 건드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침묵의 시소가 몇 번 널을 뛰고.

어느 순간 김창우가 이런 말을 해왔다.


“해명이라는 걸 하기 전에, 난 언제나 네가 부러웠던 거 같아.”

“네가 날?”


사무적으로 물어본 내 질문에 녀석이 어느새 알 수 없는 들뜬 얼굴로 역순의 보따리를 풀어놓고 있었다.


“어느 날 하교하다가 평소 가는 큰 길이 아닌, 웬일인지 조그만 길목을 통해서 가고 싶었어. 거기서 일진 형들이 담배를 자주 핀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음에도 말이야.”

“···.”

“그렇게 지나치다가 무슨 말소리가 들리더라. 잘 나가는 일진 형들의 목소리였지. 널 자기들 무리로 만들고 싶다고. 그런 대화를 어쩌다 엿듣게 된 거야.”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던 김창우가 침을 삼키며 힘겹게 덧붙였다.


“넌 바로 거절을 해버리더라. 당연히 네가 들어올 거라고 생각한 걔네들이 정색하며 왜냐고 추궁을 했을 때에도 넌 끝까지 구구절절한 이유 댈 것도 없이 싫다고만 했어. 그리고 형들에게 몇 번 맞고는 앞으로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하라는 살벌한 경고를 듣고 끝이 났었지.”

“그래. 그런데?”


고작 뱉어낸 말이 그 다섯 글자였다.

김창우는 목소리가 떨리는 걸 숨기지도 못하고 그때의 일을 회상하는지 입술을 간신히 열었다.


“거기에 무섭다는 형들. 그리고 날 괴롭히던 일진 놈들은 다 모여 있었어, 열 명이나 넘게 말이야. 무서웠을 텐데도 당당하고 오연하게 거절하는 널 보니 문득 나란 놈이 뭔가 싶더라.”

“···.”

“그리고 그 날로부터 학원에 가지 않았어. 내가 출석하지 않으니 당연히 부모님에게 연락이 갔고, 난 늘 서울의대를 가야한다고 닦달하며 내 뺨을 주먹으로 때리는 부모에게 처음으로 대들게 된 거야. 그리고 아파트 옥상에 올라갔지. 죽겠다고 결심했던 그 시점, 내가 이렇게 비참하게 짜인 각본대로 살기 싫다는 최초의 갈망을 발견하는 순간. 난 뛰어내리지 않았어. 그 시점에 거짓말처럼 네가 생각났거든.”


나도 모르게 참치눈물주가 든 잔을 들어 입속으로 털어 넣었다. 약간 비린 것도 같지만 어디에서도 먹어보지 못했던 신선함이 식도 내벽을 치고 들어왔다.

그리고 마치 내가 마시길 기대한 듯 김창우도 따라서 마신 후에 슬피 읊었다.


“네가 내게 단초가 되어준 거야. 넌 생각 안 나지?”

“뭐가?”

“어느 날 생물 시간에 불쑥 내 옆에 앉아버린 네가 날 더러 운동하라고. 원한다면 내가 다니는 체육관으로 오라고 한 적이 있었어. 다른 애들조차 날 피할 때 조금은 상냥하기까지 한 목소리로. 그때의 넌 이미 내가 우러러보는 사람이 돼있었지만, 일진들도 못 건드리는 무서운 너에게로 난 고개만 숙일 뿐이었지. 그리고 이틀 후 그 사건이 일어난 거야.”


나는 고저 없는 눈길로 반대편을 담담하게 쳐다보았다.


“학교에서 징계위원회가 열리기 직전에 난 담임한테 어떻게든 말하려고 했어. 넌 잘못이 없다고. 공부도 잘해서 전교권에서 노는 너였잖아. 그런데 그날 기습적으로 부모님이 날 아침부터 끌고 나간 거야. 뉴욕발 비행기에··· 그것도 유학을 가게 된 거지.”


이제야 최소한 내가 궁금했던 하나의 실마리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미국에서조차 한시도 널 잊어본 적이 없었어. 언젠가는 보답하리라 마음먹고 다짐하며 네 말대로 운동도 하고, 차별이 일상화 된 그곳에서 오히려 차별을 이겨내게 된 나를 깨닫고 더욱 더 분투하며 살았던 거야. 그리고 널 볼 때까지 난 지금의 나처럼 변하기로 마음먹었지.”


그때의 부담을 한가득 떠안아야 했던 건 나만이 아니었다.

김창우도, 나도 모두 난장이었던 거다.

저마다 인생이 순탄하게 흘러가는 건 아니라지만, 김창우의 말을 비추어볼 때 내가 녀석에게 어떤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던 건 분명해 보였다.


다시 바라다보는 김창우의 침전됐던 눈동자로 미묘한 활기가 감돌았다.


“서우야.”


단호한 목소리에 어안이 벙벙하다는 얼굴을 했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로 김창우가 듣고도 믿지 못할 말을 뱉어내기에 이르렀다.


“조금 전에 타고 온 람보르기니 말이야.”


녀석이 입꼬리를 선연하게 끌어당겼다.


“늦었지만 너에게 주는 내 선물이야. 이제부터, 네 차라고.”


작가의말

고맙습니다.

오늘도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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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VIP +3 24.05.26 6,352 101 12쪽
36 인연도 필연이다 +4 24.05.25 6,393 97 15쪽
35 뜻밖의 자장면 +4 24.05.25 6,374 103 13쪽
34 투자의 맛 (2) +4 24.05.24 6,479 102 15쪽
33 투자의 맛 (1) +3 24.05.24 6,506 101 13쪽
32 투자는 필연이다 +3 24.05.23 6,535 108 13쪽
31 실현수익 +4 24.05.23 6,561 109 14쪽
30 코인 협잡꾼 +4 24.05.22 6,398 107 12쪽
29 부자가 되어간다 +2 24.05.22 6,426 101 11쪽
28 피할 수 있어도 즐겨라 +2 24.05.21 6,412 110 14쪽
27 꼭 저 친구 데려와 (수정) +6 24.05.20 6,466 103 11쪽
26 쓴 약이 몸에도 좋다고 하잖습니까 +4 24.05.20 6,480 100 13쪽
25 템포와 임팩트 +5 24.05.19 6,764 95 15쪽
24 그 작자 여간내기가 아니야 +9 24.05.19 6,982 108 16쪽
23 끗발 +3 24.05.18 6,944 110 15쪽
22 공적인 곳에서는 과장님이라고 불러야지 +2 24.05.18 7,054 110 12쪽
21 못 받아먹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4 24.05.17 7,154 116 16쪽
20 하루 만에 2억이 벌린다 +6 24.05.17 7,346 123 12쪽
19 할 수 있습니다 +5 24.05.16 7,259 120 14쪽
18 우리 부서는 베타테스트 집단이 아닙니다 +6 24.05.16 7,336 109 15쪽
17 솔직히 난 배 아픕니다 +5 24.05.15 7,547 113 15쪽
16 그런 태도로 일해라 +4 24.05.15 7,679 124 14쪽
15 5부서의 지랄견 +5 24.05.14 7,833 123 12쪽
14 형수님은 아십니까? +6 24.05.14 8,076 128 11쪽
13 어긋난 규칙 +7 24.05.13 8,114 13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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