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재벌은 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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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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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8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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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인 곳에서는 과장님이라고 불러야지

DUMMY

대기업의 인사 채용 시즌은 보통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뉘게 된다. 그게 정석적이었고, 간혹 신사업 부문에 대해 분기별 특별 채용을 적용하기도 한다.


하나 케미칼은 다른 기업의 정기 취업 시즌을 닮지 않는다. 아마 대부분의 공장들이 하나 케미칼과 비슷한 채용 구조 정책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 같은 일종의 영세공장들은 대기업을 닮으려고 해야 닮을 수가 없다. 그들의 두둑한 연봉과 복지는 해마다 눈을 의심케 하는 추세고, 그런 선순환구조가 반복이 되니 좁게는 연봉과 승진에 대한 갈망으로. 넓게는 이곳에서 인사이트를 길러 나중에 성공할 만한 자신의 길을 닦아 어느 정도 보장된 성공 스토리를 쌓아 나가게 된다. 사업체를 꾸린다거나 VC의 투자를 받을 만한 혁신적인 스타트업을 차린다거나 하는 식으로.


나 같은 2차 벤더 생산맨들은 다르다.


멋들어진 슈트를 입고 출근을 해 성과를 내고, 그에 괄목할만한 성장을 해 윗선의 인정을 받아내는 건 드라마 속 이야기다.

물론 공장도 뻔한 틀에서 보자면 다른 기업체들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팀장급 이상이 아니고서야 결국 윗선에서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는 생산맨들의 한계는 명확하게 규정지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부품이다.

사회적으로 더 명확한 부품들이 공장에서 또 다른 부품을 생산해 내고 조립해내는 것이다.

세일즈맨이나 기술직. 대기업 정규직들에 비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직종이다.

다만 구조상 그들에 비해 안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고, 정년 이후에도 일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퇴직자들은 대부분 더 좋은 직장이라기보다는 결국 거기서 거기일 뿐인 공장의 문을 두드린다. 월급이 1, 20만 원이라도 더 높거나, 업무 강도가 내가 근무했던 공장에 비해 조금이라도 낮거나 하는 곳들.

그렇다고 적을 옮긴 다른 공장에서의 생활이 마냥 그들에게 맞춤형이라는 게 아니었다. 월급이 조금 더 높으면 높을수록 그만한 리스크가 생기게 마련이니까.

그래서 간혹 이탈자 중에는 다시 이전 공장에 돌아오기도 한다.

공장 입장에서도 다시 받아주는 모양새가 그리 좋지는 않다. 제 집 싫다고 나간 주제에 다시 들어오는 염치는 무엇인가?

괘씸하게 짝이 없지.

그러나 어느 기업체가 그러하듯 공장에게도 그 공장만이 갖고 있는 규율이 있다.

신입이 업무를 습득하기 위해서는 최소 해당 업무가 익숙해지기까지의 시간이 필요하기 마련인데, 그 기간이 통상적으로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이 걸리게 된다.

그러다 보니 한편으로는 최악으로 마무리 짓고서 나간 하차자만 아니라면 다시 받아주는 기묘한 관례가 생겼다.


하나 케미칼에서는 이번 달에도 결원이 생겼다. 그리고 그 결원을 채워줄 이는, 내게는 모를 수가 없는 인간이었다.


“서우야. 오랜만이다. 나 없는 동안 심심했지?”


서두필이 내 앞에서 건치를 드러내며 뻔뻔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서두필은 신입이 아니다. 하나 케미칼 경력직이다. 거기다 결정적으로 나의 육촌 친척이다.

조부모가 다르고 증조부가 같은, 즉 내재종형제였다.

아버지의 사촌의 자식으로서, 결국 혈연에 의한 항렬만 나누어질 뿐 나와는 연례로만 따져도 별로 볼 일도 없는 먼 친가 일족.

결국 좋게 말해서 일족일 뿐이지 남남이나 다름이 없다.

아마 이렇게 보지 않았더라면 서로 친척인 것도 모를 것이다.


서두필과는 인간적인 교류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친가 쪽의 육촌은 그래도 나랑 같은 집안에 같은 성씨를 공유하는 사람들이니 살다 보면 집안 경조사 등의 일로 언젠가는 한 번쯤 마주친다는데. 알다시피 내 부모는 트러블 메이커들이었다.

그리고 친척들도 내 부모는 물론 그들에게서 태어난 나까지 손가락질하는 입장이었으니 굳이 이들과 교류를 할 기회가 없었다.

내 입장에서도 태어난 김에 사는 운명이었던 어린 나를 두고 삿대질까지 하는데 뭐 하러 인사를 하나. 연락도 안 하고 안 뵙고 말지.


그래도 피 한 방울이라도 섞여있을 서두필은, 적어도 내게는 체할 것만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지.’


바로 공장 사람들에게 내가 ‘사기꾼 부모의 새끼’라고 공공연하게 떠벌리고 다녔다는 점이다.


아마 내가 지금의 인생을 살기 전, 그러니까 회귀하기 이전 내가 일하던 하나 케미칼에 서두필이 입사한 적이 있었다. 그것도 대학 후배 하나와 같이.


공교롭게도 서두필은 내 대학 선배였다.

내가 당시 다녔던 지방 전문대는 돈만 주면 수포자라고 할지라도 웬만해서는 거저 갈 수 있을 정도로 자동문인 대학이었다.

내가 다녔던 전문대에서도 충분히 사회에서 성공을 거머쥐어 한자리를 차지했다거나,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편입을 준비. 혹은 반수를 해서 명문대에 진학한 경우도 드물기는 하지만 더러 있었다.

그러나 사회에서 성공을 했다는 케이스도 내가 다니던 대학에서는 아주 드물 뿐 아니라, 성공하고 나서도 으레 모이는 대학 동기모임에는 절대 나타나지 않는 편이었다.

참석해 봐야 뭐하겠는가. 남는 건 결국 시기 어린 눈빛들과 어떻게든 빌붙으려고 하는 거머리들을 쳐내는 일 밖에 없을 거다.

부정이 만연한 곳이어서 교수에게 몰래 돈만 조금 찔러주면 학점도 만점을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니 부모 등골 빼먹으며 원룸 구해 연애만 하는 녀석들이 천지였다.


서두필은 그런 부류였다. 졸부 부모 둔 덕에 K5도 대학 다닐 때부터 타고, 뺀질뺀질 여후배들 원룸에 불러들이고.

나중에는 당숙부가 땅 투기 한 번 잘못하려다가 쫄딱 망해버려 서두필이 부모의 골프클럽까지 팔아 유흥비를 마련했다는 사실을, 난 알고 있다.

그래도 난 부모에게 당한 피해자들에게 피해 금액을 회복하기 위해 강의가 끝나고 아버지 공장에 파트타이머로 일을 하면서도 자격증이라도 몇 개 따는 삶을 살았다.


미적지근한 눈빛에 열기라도 있는 양 나를 쳐다보는 서두필에게로 담담하게 말했다.


“오랜만이네요. 당숙부와 당숙모는 잘 계시죠?”


의례적으로 하는 안부. 영양가 한 톨 없는 눈인사다.

자신으로 인해 그나마 마음 다잡고 일하려던 내 공장 생활이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는 걸 알고 있었을 텐데도 서두필은 만면에 웃음을 다 지었다.


“그래. 부모님 잘 계시지. 넌 피해자들 원금 회복 좀 해줬고? 아니, 아직도 많이 남았지? 진짜 너도 부모 잘못 만나가지고 이게 뭐냐.”


날 위한다는 척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잘도 떠벌리고 있었다.


“아직 몇 억 남았지? 따지고 보면 네가 제일 피해자잖아. 네 부모는 어딜 가서는 아직도 그렇게 안 오신대. 아들이 이렇게 공장에서 이팔청춘 헛되이 축내게 만들고 말이야.”

‘축나고 있는 건 네 부모겠지.’


서두필이 졸부였을 시절 당숙부에게서 빼먹은 돈이 몇 억쯤 된다는 건 아마 친인척들 중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통칭 과학5호기로 불리는 K5를 대학 입학 선물이라고 당숙부를 졸라 풀옵션으로 사지를 않나. 원룸도 근방에서 제일 비싼 곳으로 잡아다가 매번 여자 불러들이는 건 고사하고 클럽에 간다며 명품을 사기 위해 용돈 좀 더 달라고 쉰 소리를 해대는, 실없는 놈이 바로 서두필이었다.

문제는 졸부 감투를 벗어던진 당숙부에게 아직도 돈을 요구하는 녀석의 심보가 고약하기 짝이 없다는 거다.


‘도박에 수억이나 날려 먹고 집문서까지 건드리는 놈이었고.’


전공 강의를 듣다가도 핸드폰으로 몰래 홀짝을 해대는 녀석이었다.

가끔 내게 수백만 원을 땄다고 치킨 한 마리를 사주던 서두필의 모습이 눈에 훤했다.

그리고 며칠 후면 으레 그렇듯이 용돈을 전부 탕진하고 내게 돈 좀 있냐고 물었다.


그래서 뭘 잃고 뭐가 남았는가.


천문학적인 대출금이 남고 서두필은 인생을 잃었다.

집문서까지 들고 가 당시 졸업한 선배가 운영하는 공인중개소와 교묘하게 위작하여 당숙부가 그나마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고 있던, 즉 서두필이 결혼할 때를 대비해 구매해둔 중소형 아파트를 처분하려 했던 것이다.

다행히 당숙부가 매도인 자격으로 되어있던 지라 오랜 소송 끝에 다시 아파트를 되찾게 되었다고.


그런 서두필이 다시 하나 케미칼에 재입사했다.


왜 아버지가 이런 놈을 받아준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당숙부가 제발 한 번만 구제불능이었던 자기 아들이 인간 구실 좀 하게 해달라고 애원을 했을 것이다.

취업 생각은 뒷전이었던 녀석이 당시 나타났으니 그때의 내 입장에서는 당연히 싫을 수밖에.


역시나 서두필은 입사하자마자 끈덕지게 나를 물고 늘어졌었다.


“서 과장. 얘가 여기서 지랄견이라고 불리게 된 게 다 이유가 있어서야.”

“뭔데요?”

“뭐긴 뭐겠어? 못 들었어? 서 과장 진짜 부모가 투자자들 돈 수억이나 등쳐먹고 해외로 도피한 악질들이잖아. 그래서 서 과장이 보육원에 버려지기까지 했었다고.”

“와. 서 과장님 성격 더러운 게 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어요? 그래도 불쌍하다. 투자자들 등쳐먹은 게 서 과장님 탓은 아니잖아요. 부모 탓이지.”

“씨발. 서 과장 죄 없는 거면 내가 지금 이런 말이나 하고 있겠냐? 그뿐이 아니야. 어릴 때 학교 다니다가 죄 없는 애들 잡아다 턱이며 팔다리 부러뜨려서 지 입양해준 현재 우리 사장님 돈 수천이나 날려 먹게 만든 장본인이야. 구제불능이었다고. 내가 얘랑 육촌인 게 가끔은 원망스러워진다니까.”

“헐. 대박.”

“너한테만 말해주는 거니까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오케이?”

“너한테만, 하는 소리 나오자마자 벌써 자물쇠 입에 채웠습니다.”


당시 공장 내 편의점에 가려다가 정말 의도치 않게 이런 뒷담을 전해 들었다.

말하지 말라며 입 가벼운 녀석들만을 골라 내 뒷담을 하고 다녔다.

경고를 했음에도 소용없었다. 이런 부류들에게는 가끔 법의 테두리 밖 구경을 하게 해줘야 하는데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육촌이지를 않나.

내가 마음을 다잡고 일만 하려고 해도 놔두질 않으니, 어쩔 수가 없이 눈 닫고 귀 닫으며 내 부모가 저지른 만행에 대한 회복을 위해 돈만 벌고 살았다.

어차피 다른 공장으로 간다고 하더라도 그 바닥이 그 바닥인지라 소문이 다 나기 때문이어서 갈 생각도 못했었다. 거기다 자율 의지대로 야근을 할 수 있는 곳은 하나 케미칼이 전부였다.


아랫입술을 짓씹는 서두필의 오만무도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랑곳없이 녀석이 입꼬리를 올렸다.


예전 같으면 발끈해서 뭐라고 했을 텐데.

이제는 아니다.

어쩌나. 너와 나의 위치가 이제 막, 그것도 아주 많이 변하고 있는데 말이지.


“피해 회복 전부 다 해드렸습니다.”


비아냥대려고 입술이 휘던 서두필이 놀라는 얼굴을 했다.


“뭐? 무슨 돈이 있어서 몇 억을 단숨에 해결해줘? 너 뭐 코인이라도 했어?”


서두필이 안쓰러울 만큼 작아져 보였다. 나 하나 곯려대는 게 인생의 작은 즐거움이라고 생각하던 녀석이 이 순간만큼은 한없이 작아보였다.


“네. 코인해서 돈 좀 벌었습니다.”


어느새 눈꼬리가 11시와 1시 사이로 치켜드는 걸 보니 심보가 뒤틀린 모양이다.

난 그 이유를 안다.


‘너도 이때 코인을 하고 있었지.’


그리고 역시나.


“코인? 나도 코인으로 재미 좀 봤는데. 너 뭐에 들어가 있냐? 이더로 먹은 거야? 퀀텀?”


억지로 안면 근육을 부드럽게 푸는 서두필을 못 본 체하다, 픽 웃으며 아래를 보았다가 다시 턱을 치켜들었다.


“그런데 그 전에 다른 직원들도 다 있는 곳이고.”

“뭐?”

“아무리 경력직이더라도 입사한 새 직원이나 마찬가진데.”


난 당혹스러워하는 서두필에게로 차분하게 입술 끝만 올려 지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공적인 곳에서는 과장님이라고 불러야지. 안 그래요?”

“···!”


작가의말

요즘 낮의 날씨는 열이 많은 저로서는 슬슬 찜 쪄먹는 찜통을 연상케 하네요...

그래도 작품을 위해서라면 체력을 길러야 하기에, 오늘도 전 계단 오르기를 하러 밖으로 나가봅니다...


감사한 댓글과 추천, 선작 보면서 늘 작품을 쓴다는 보람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더위 조심하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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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뜻밖의 자장면 +4 24.05.25 6,373 103 13쪽
34 투자의 맛 (2) +4 24.05.24 6,479 102 15쪽
33 투자의 맛 (1) +3 24.05.24 6,506 101 13쪽
32 투자는 필연이다 +3 24.05.23 6,535 108 13쪽
31 실현수익 +4 24.05.23 6,560 109 14쪽
30 코인 협잡꾼 +4 24.05.22 6,398 107 12쪽
29 부자가 되어간다 +2 24.05.22 6,426 101 11쪽
28 피할 수 있어도 즐겨라 +2 24.05.21 6,412 110 14쪽
27 꼭 저 친구 데려와 (수정) +6 24.05.20 6,466 103 11쪽
26 쓴 약이 몸에도 좋다고 하잖습니까 +4 24.05.20 6,480 100 13쪽
25 템포와 임팩트 +5 24.05.19 6,764 95 15쪽
24 그 작자 여간내기가 아니야 +9 24.05.19 6,982 108 16쪽
23 끗발 +3 24.05.18 6,944 110 15쪽
» 공적인 곳에서는 과장님이라고 불러야지 +2 24.05.18 7,053 110 12쪽
21 못 받아먹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4 24.05.17 7,153 116 16쪽
20 하루 만에 2억이 벌린다 +6 24.05.17 7,346 123 12쪽
19 할 수 있습니다 +5 24.05.16 7,259 120 14쪽
18 우리 부서는 베타테스트 집단이 아닙니다 +6 24.05.16 7,336 109 15쪽
17 솔직히 난 배 아픕니다 +5 24.05.15 7,547 113 15쪽
16 그런 태도로 일해라 +4 24.05.15 7,679 124 14쪽
15 5부서의 지랄견 +5 24.05.14 7,833 123 12쪽
14 형수님은 아십니까? +6 24.05.14 8,076 128 11쪽
13 어긋난 규칙 +7 24.05.13 8,114 13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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