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재벌은 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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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8
최근연재일 :
2024.08.26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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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4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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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형수님은 아십니까?

DUMMY

강윤아가 주고 간 여운은 과연, 대단했다.

그러나 난 내가 사는 층의 엘리베이터가 입을 열어주는 것조차 제대로 자각하지 못한 채, 옅게 중얼거렸다.


“뭐가 감사하다는 거지. 그런데 또 이사 왜 안 갔냐고 못 물어봤네.”


의문을 남기며.

닫힌 승강기 안 열림 버튼을 눌러 앞으로 쑥 빠져나왔다.


곧 엘리베이터가 닫혔다.


***


해야 될 게 많았다.

그 중 하나는 단연 지능의 확장이다.

여태껏 되는대로 살아와 볕 하나 들 길이 없었던 내 머릿속에는 항상 부유물 같은 것이 끼어 들어와 있었다.

그래서 다시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게 참으로 어려웠다.


“서우야. 너 전교 25등까지 했었던 거 맞냐?”


처음에는 책상에서 단 10분도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습관처럼 밀려오는 졸음을 참기는 더더욱 힘들었고.

습관이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한다고. 정말 그런 거 같았다.

지금은 그래도 책상에 다이렉트로 세 시간이나 앉아있는 게 가능해졌다.


얼마 전 리플에 5억 7천만 원어치를 투입하고서 남은 가용 잔여금은 불과 300여만 원.

이 중 50만 원이라는 거금을 중고 장터를 통해 노트북을 샀다.

보급형이기는 해도 최신식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지금 인강을 보는데 버퍼링 같은 건 전혀 없다.


[자, 명사와 관사는 어떻게 통용이 될까요? 자, 일반적으로 보통 관사는 명사와 같이 사용되죠? 관사라는 말은 명사 앞에 쓰이면서 성질을 표현해주는 역할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미 특정되어 있는 고유 명사에는 대부분 관사를 붙이지 않고 보통 명사에 관사를 주로 붙이곤 합니다. 예시를 한 번 봐볼게요.]

[관사 종류에는 또 크게 두 가지가 있어요. 부정 관사와 정관사로 나뉘는데요. definite article, indefinite article. 각 a와 an. the로 표현이 되는 방식이에요. 부정관사는 즉, 부정하다. 정해지지 않고 불특정함을 특해요. a staff. a building. a man···.]

[영어 학습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뭘까요? 그렇죠. 핵심은 독해겠죠? 하지만 우리는 왜 독해에서 대부분 실패하고, 더 나아가 영어가 싫어지는 사이클 속에서 영어 학습의 대부분을 소비하고 있을까요? 저, 이영 강사가 구문을 파악하는 것에 대한 핵심을 가르쳐드릴 거예요. 자 이제부터 봐보실까요?]

[어휘와 문장 습득을 따로 나누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한 철칙이에요. 영어 원서를 통해 심화독해에 우리 더 접근해 보기로 해요.]


영어를 배우며 차근차근 내 시간을 다져 나간다.

어렵고, 분명히 지지부진한 과정이었다.

그러나 이미 시작된 변화는 내 삶을 차분히 흔들고 있었다.

더 이상 되는 대로 살아가며 나를 허비하기 싫다. 내 소중한 시간을, 내 소중한 인생을.


누가 그랬던가. 배우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그렇다. 난 배워야만 한다.

알고 해당 목표에 접근하는 것과 모르고 접근하는 건 하늘과 땅 차이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플라스틱 제품의 90% 이상은 금형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양산의 압도적인 방식을 차지하고 있는 사출의 핵심은 틀을 이용한다는 것인데요. 아주 복잡한 형상을 굉장히 빠른 시간 내에 적은 인력과 노력으로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사출은 크게 다섯 단계로 나누어지죠? 사출 설계부터 금형 설계. 제작과 시사출. 그리고 금형 수정까지. 최종 제품 구조와 형태, 그에 반응해야 하는 재질과 관련해 우리 한 번 심화과정으로 들어가 봅시다.]


이미 투자의 향방은 결정되었다.

6년 전으로 되돌아온 지금 시점으로의 미래 투자 종목은 이미 대강 머리에 심어두고 있다.


6년이라는 시간은 길다. 긴 시간이 남았다는 건 곧 내 머리의 부유물들을 싹 걷어내고 이제까지의 버려진 선순환을 되찾아오는 데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한계인가. 졸리네.”


슬슬 배불리 식사를 하고 포만감에 배를 땅땅 두드리며 자고 싶은 충동이 한 가득이다.


‘안 돼.’


그러나 안 된다는 걸 알고 고개를 털었다.

굵직한 사건들을 이미 대강 도표로 그려놓았기에 앞으로도 투자로는 배가 부를 테지만, 내 배움의 배가 아직도 움푹 꺼져 있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할지는 나도 모른다.

돈은 결국 내가 무엇을 하는 데에 있어 수단으로만 제공될 것이었다.


승부처.

그걸 가를 내 인생의 종목은 무엇이 있을까.


“내게 제일 익숙한 건 사출의 영역이겠지만.”


금형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은 무수하게 널리고도 널렸다.

그러나 어떨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해답은 아직 도출되지 않았다.

다만 그 널린 일들 중 내가 쥘 수 있는 토대를 차근차근 내 것으로 만들어 나가기로 했다.


***


기회의 영역이 쥐어졌다고 해서 마냥 내 일이 잘 풀린다고 한다면 크나큰 오산이었다.

이 좁은 대한민국의 땅덩어리. 그 중에서도 더 좁은 안산 시화공단의 하나 케미칼이라는 공장에서는 나를 싫어하는 적들도 있게 마련이다.


“오랜만에 보는 거 같다?”


4부서의 고영우 팀장은 그 중 나를 눈엣가시로 생각하는, 하나케미칼에서도 제일 대표 주자였다.

사사건건 내가 무엇을 할 때마다 태클을 걸려고 했다.

나로서는 월급루팡을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해왔던 것인데. 열심히 일하는 내 모습조차도 싫어했으니 뭐 어쩌겠는가.


오래 전 그날에도. 지금에도 사이가 안 좋은 건 매한가지다.


“안녕하십니까. 교대하시러 가나 봐요.”


1부서부터 4부서까지는 주야 2교대로 굴러가는 식이었다. 12시간씩 교대를 하는 건 아니고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9시간씩. 그리고 남는 시간 동안 노는 기계를 갖고 서로 돈을 더 벌 사람은 선발인원을 차출해 야근을 하라는 식이다.


몇 달 전 새로 신설된 5부서는 독자적인 사출 기계를 다루고 있었는데, 추가 부서 증설 계획이 없었으므로 기존 부서에서 더 시간 외 수당을 받아 가기 위해 따로 선발한 인원이 5부서에서 야근을 하는 식이었다.


“그래. 너 곧 이제 과장 단다며. 어쩌냐. 똥통들 데려다가 하려니 힘에 부치겠다. 신입도 개판에다 또 그만뒀다고? 너네 부서 이러다가 없어지는 거 아니냐?”


노골적인 비아냥거림이었다.

그때에도 그렇지만 지금에 와서도 대놓고 나를 적대시하는 고영우 팀장은, 친절함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가 없다.

사람의 내실을 들여다볼 수 없는 사람인 건 차치하고서라도 고영우는 잔꾀를 굴릴 줄 아는 인간이다.

팀장이라고 해서 어차피 사원보다 수십만 원 더 받는 위치에 지나지 않지만, 적어도 고 팀장은 나보다도 입사 연차가 1년 반이 늦는데도 불구하고 팀장직을 달았다.


고영우는 잔꾀가 많다.

윗선에게는 대가리를 굴릴 줄 알고, 조금이라도 경쟁자의 싹이 보일 법한 아랫사람은 찍어 누르는 게 녀석의 특성이다.

이때의 나도 공장 내에서 적이 많았지만 고영우도 그에 못지않게 많았을 것이다.


‘내가 당시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걸 알고 더 안하무인이었지.’


당시에 난 고 팀장과 대립각을 세우며 더 팀원들을 굴렸었다. 적어도 4부서보다 불량은 더 안 나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성과가 다인 세상이다.

노력한다고 해서 될 거였으면 애초에 노력한 인간들은 다 성공했을 것이다.

다만 노력의 범주에는 꼼꼼함이 기본으로서 배양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적어도 4부서보다는 불량률이 안 나게끔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과거의 내 열정이 나쁜 방식으로 표출이 되어 팀 전체로 사단이 난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과연 고영우는 알까.

예전의 나였더라면 이런 무례한 발언에 발끈하고 달려들었겠지만, 현재는 아니라는 걸.


그리고.

내가 이제 녀석을 구워삶을 수 있는 변화의 목전에 있다는 걸 말이다.


난 내 발끈하려는 반응을 기대하고 있는, 웃는 고영우에게로 팔짱을 낀 채 넌지시 웃으며 말했다.


“누군가 그러던데요. 똥통 머리에서는 똥통밖에 생각 못 한다고.”


듣던 고 팀장의 표정이 미묘하게 뒤틀렸다.


예전에는 시비를 걸듯이 반응을 하였다고 한다면, 지금은 나도 한껏 여유롭게 너스레를 떨 수 있는 입장이었다.

물론 팀장이기에 직접적으로 녀석이 똥통이라는 표현은 삼가기로 한다. 즉, 주어는 없다.


“와. 우리 서우 많이 컸네. 강수양이 부처여서 네가 지금 여기서 나한테 설설 기어오르고 있는 거지. 그렇지?”


고 팀장이 한껏 으르렁댔다. 그러나 난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원래부터 고 팀장님보다 컸습니다. 키도, 그 무엇도 말이죠.”

“사장 아들이라고 유세 떨기는. 그래봤자 너도 똥통이야.”

“글쎄요. 수개월 후에도 이 똥통에 팀장님과 제가 같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미묘한 신경전.

듣던 고 팀장의 눈가가 마침내 한껏 찌푸려졌다.


“뭔 시답잖은 농담이야. 만년 꼴찌인 너네 불량이나 들여다보고서···.”

“검품부. 나서인.”

“뭐?”

“형수님은 아십니까? 야근을 한다고 속이고서 나서인 씨와 기회가 날 때마다 중앙동에 어느 조용한 건물로 들어가는 거.”


공공연하지 않은 사실이었다.

수개 월, 혹은 그 이상일지 모르는 불륜관계였던 나서인과 고영우가 안산 중앙동에 있는 어느 모텔로 들어서려는 걸, 내가 뼈해장국을 포장하다가 나오며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인생 1화차 때 이미 갖고 있는 기억이었다.


그때의 난 어땠던가.

차장으로까지 올라선 고영우에 대한 악소문을 그대로 공장 안에 퍼뜨렸다. 증거를 갖고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필요조차 없다. 이걸 캐내기 위해 또 나서는 것도 오지랖이고. 내가 알기로 형수님도 문제가 많다고 들었었으니까.

좁은 공장에서 뒷담은 정말 무수하게도 많아서, 차라리 주목을 받으려는 고영우보다 조용하게 중간만 할 줄 아는 구해영처럼 사는 게 더 맞나 싶기도 하다.


결국 내 말을 듣던 고영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씨발. 네가 봤어? 내가 나서인하고 그렇고 그런 걸 네가 중앙동에서 봤냐고. 증거나 가져오고 그딴 소릴 해. 어디서 사람 매도질을···.”

“증거는 내가 아니라 평화 모텔 사장에게 있겠죠.”

“!”


난 입을 부르르 떠는 고영우의 앞으로 가 속삭이듯이 말했다.


“뭘 그렇게 불안을 느끼고 초조해하십니까. 참, 고 팀장님. 여기 공장일 뿐입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시려고 그렇게 윗선에게 아양을 떠는지는 모르겠는데. 남을 똥통이라고 칭하기 전에 똥만 가득 찬 대가리부터 굴리지 말고 본인 가정이나 지키는 게 어떠십니까?”


난 녀석을 지나치기 직전 한 마디를 더했다.


“아. 듣는 똥통 기분 나쁠라나?”


그리고 지나쳤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이상 들려오는 욕설이나 상스러운 말은 없었다.

고영우에게 침묵을 가져다 준, 내 인생 최초의 순간이었다.


위닝 멘탈리티.

난 그 영역에 이제야 첫발을 들이고 있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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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뜻밖의 자장면 +4 24.05.25 6,373 10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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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투자의 맛 (1) +3 24.05.24 6,506 101 13쪽
32 투자는 필연이다 +3 24.05.23 6,534 108 13쪽
31 실현수익 +4 24.05.23 6,560 109 14쪽
30 코인 협잡꾼 +4 24.05.22 6,398 10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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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우리 부서는 베타테스트 집단이 아닙니다 +6 24.05.16 7,336 109 15쪽
17 솔직히 난 배 아픕니다 +5 24.05.15 7,546 11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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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5부서의 지랄견 +5 24.05.14 7,833 123 12쪽
» 형수님은 아십니까? +6 24.05.14 8,076 128 11쪽
13 어긋난 규칙 +7 24.05.13 8,114 13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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