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재벌은 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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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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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6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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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30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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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위한 한 자리가 비어 있다

DUMMY

마음먹고 빚은 듯한 짜임새 있는 목소리가 내 머릿속을 관통했다.

그 사이에 녀석이 차키를 내 앞으로 부드럽게 올려놓는다.


“서류만 처리하면 돼. 올 현금으로 샀으니까 네가 부담해야 할 건 기름 값밖에 없을 거야. 만약 이래도 차량 유지가 부담스럽다면 되팔아도 돼. 어차피 신차거든, 오늘 출고한.”

“···!”

“그리고 이것도.”


김창우가 더듬더듬 말하더니 선뜻 식별이 어려운 뭔가를 아래에서부터 꺼내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다.

여기 들어오기 직전부터 작은 쇼핑백을 들고 오더라니, 그게 나에게 줄 거였나 보다.


고급스러운 장방형의 케이스에서 예상치 못했던 물건이 나오기 시작했다.

시계였다.

그리고 그 시계는 김창우의 팔목에 채워져 있던 브랜드와 같은 것이라는 게 한눈으로 보일 만큼 화려해보였다.


“파텍 필립이야. 몇 억 하는 건데 내거보다 더 비싼 모델을 사주고 싶었는데 하필 귀국 전에 내가 구하려던 매물이 팔렸더라고. 그래도 고가 라인이니까 네가 이 시계의 주인이 되어줬으면 해. 나름 한정판이라 소장만 해도 가치가 올라갈 거야.”


나는 시계를 슬쩍 바라보다가 김창우의 얼굴에 시선을 다시 고정했다.


“난 그때 너에게 뭘 바라고 한 행동이 아니었어. 마음만 받을게.”


나에게로 내민 시계를 케이스에 도로 집어넣은 다음 람보르기니 차키도 같이 김창우의 앞으로 돌려놓았다.

그러자 김창우는 더 짙어진 눈동자로 거침없이 말을 쏟아냈다.


“내가 너에게 최소한의 선물이라며 주고 있는 이 모든 게 네가 생각한 그 정도로 내 양심의 가책에 대한 죗값을 대신하고 있는 건 맞아. 그런데 양심의 가책이든, 네가 원하지 않던 뭐든 이건 내 진심이야. 그리고 일부분일 거고.”


김창우가 두 손을 모아서 그걸 다시 내 앞으로 놓았다.


“이걸 네가 받아주지 않는다면 난 앞으로도 떳떳하게 살아갈 수 없을 거 같아. 넌 내게 은인이고, 처음으로 용기를 내게 해준 사람이었어. 그러니 염치없지만 은혜를 갚는 거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저런 집요함이 김창우에게 숨어있었던가?


그나저나 람보르기니에 파텍 필립이라니.

로또 1등에 한 번 더 당첨이 되어야 이런 걸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다.

그때의 일을 유감으로 표현하는 나도, 김창우도 현재는 없다.

다만 양심과 은혜를 거론하는 녀석만이 있을 뿐이다.

나를 낳아주기만 했던 부모에게 당했던 사기피해자들이 이러한 마음이었을까?

궤가 다르고 결이 달라 뭐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만, 난 분명히 김창우에게 과분한 선물을 받고 있는 게 맞다.


“하나만 묻자.”

“말해. 뭐든 답해줄게.”

“하나 케미칼과 AVT의 교섭 말이야. 섀넌 리치를 우리 쪽으로 돌아서게 한 결정적인 원인이 결국 네가 다니엘레 루가니에게 하나 케미칼을 단 한 번 언급한 것 덕분에 이뤄졌다는 거지?”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이번에 말문이 막힌 건 김창우였다.


“꼭 그렇지만은 않아. 단지 약간의 구실 정도는 만들어줬지. 그게 다야.”


불과 몇 초간의 정적 끝에서 마침내 혼돈이 정연되었다.

사업 미팅에서의 판도를 뒤집을 수 있는 근거를 내가 마련해주었다고는 해도, 어쨌든 김창우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을 거라는 건 틀림이 없었다고.

물론 김창우가 나서지 않았더라도 AVT는 하나 케미칼과의 계약에 조금 더 공을 들여 주었을 것이다.

어차피 공장의 외형만 갖추고 짜인 역할대로만 수출입을 하는 곳에 불과할 뿐, TX의 여 대표는 FOB쪽으로만 집착하던, 전신이 브로커였던 인간에 불과했으니까.

AVT도 그걸 모르지 않는다.

그러니 약간의 마진놀이보다는 오히려 중장기적, 그러니까 스윙 관점으로도 조금 더 안정적인 우릴 선택한 거겠지.

그럼에도 김창우는 김창우다.

녀석이 나서주었다는 건 변함이 없는 사실요소다.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의 문제.

난 풀리지 않던 수수께끼를 풀어보기로 작정하고서 입을 열었다.


“너 말이야.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야?”


못 미덥다는 듯 쳐다보며 묻는 내 질문에 김창우가 잠시 고민하더니 결정을 내린 듯 입을 열었다.


“스타트업이라고 하지.”

“스타트업?”


되묻는다는 게 내가 진짜 스타트업을 몰라서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게 아니라는 걸 김창우는 알 거다.

처음 녀석에게서 전화가 왔을 때만 해도 머리에 물음표가 떠올랐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사기꾼이라면 내게 현금으로 산 람보르기니 차키를 건넨다거나 보증서가 들어찬 파텍 필립을 건네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장맨인 나에게 무얼 얻어먹을 게 있다고 동문인 김창우가 사기를 치러 왔겠는가.

이 정도 스케일이면 차라리 시답지 않은 토큰 하나 따와서 신사업을 벌이는 척 대규모로 투자자들을 집합해 등쳐먹기나 했겠지. 그것도 아니라면 주식으로 경제사범 짓이나 벌인다든가.

역시나 김창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흔쾌히 말했다.


“아까 말했듯이 난 미국에서 정말 치열하게 살아왔어. 내 부모님은 내가 스탠포드를 들어간 걸 평생의 자랑거리로 곱씹으시지만 난 오히려 스탠포드를 다니다 중퇴했어. 사실 어찌 보면 해서는 안 될, 내 부모에게 향한 복수의 길이었던 셈이지.”


김창우도 참 김창우답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니 이 놈. 어쩌면 나보다 더 독한 놈이 아닐까 하는 유추를 해본다.


“그렇게 부모님하고 사이는 멀어지고, 난 나만의 길을 가게 된 거야. 재미있게도 스탠포드를 그만 둔 사연이 하나 있는데. 그게 내가 스타트업을 차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어.”

“무슨 계기?”


미국에서도 명문 중 명문이라고 치는 스탠포드를 중퇴할 만큼의 반면확률이 과연 스타트업으로 뭔가를 이룰 수 있는 근본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원흉은 아니고?

의문에 사로잡혔다.


“스타트업에도 인베스트먼트 라운드라고 하지. 투자 관련 뉴스를 보면 보통 시드나 시리즈 같은 용어가 나올 거야.”


회귀하고서 나도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공부를 하다 보니 대충 이런 용어들이 파생하게 된 역사적 변천사들을 알고 있었다.

이때 한참 국내에서 스타트업 붐이 일어나기 시작하던 시기였으니까.


“스탠포드를 다닐 때 나는 한인 타운에서 수많은 꿈나무들의 과외를 도맡았었어. 어쩌면 이후의 스타트업을 미래에 상정하고 했었던 목돈 모으기였는지도 몰라. 네가 아까 물었지? 다니엘레 루가니가 내 고객이 될 수 있었던 이유.”


김창우가 숨을 잠깐 고르더니 이어서 말했다.


“한국에도 주식시장이 온갖 식으로 편법이 난무한 활황이니 대부분은 알 텐데. 주식판이나 코인판에도 MM이라고, 마켓메이커들이 주가 되는 시장이 있지. 블록딜이라고 들어봤지?”


주식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블록딜이라는 단어를 모를 수 없다.

대량의 주식을 보유한 매도자가 사전에 매수자를 구해 주식을 거래하는 행위를 의미하는데, 보통 대주주가 가진 주식을 대량으로 내놓기에 종가보다 다소 싸게 주식을 넘기는 방법이었다.

일종의 대량 구매에 대한 프라이빗 세일인 셈인데 거래의 판도 자체에 혼선을 주지 않기 위해 주식에서는 장외거래를 주로 해서 현금 유동성을 높일 수 있게 된다.


고개만 끄덕이자 김창우가 참치 한 점을 집어먹으며 유유하게 말했다.


“대량 거래인만큼 미리 매수자를 구해놓아야 하니 증권사나 그 외 매각처가 각종 네트워크를 활용해 블록딜 대상을 섭외하게 돼. 장 시작 전에 흔들기로 유명한 집단 위주로 돈놀이를 하는 세력들이 있는데, MM중에 에디 차라는 화교가 있어.”

“···.”

“그리고 에디 차가 속한 곳이 PEF고.”


PEF란 곧 경영참여형 사모집합투자기구의 약자를 뜻한다.

즉, 사모펀드라는 거였다.


“에디 차가 대표로 있는 곳이 EVO라는 곳인데 변칙형 자산운용사야. 보통 자산운용사는 투자자에게서 자본을 출자 받아 기업이나 채권, 부동산에 투자해 수익을 보는 펀드잖아?”

“그렇지. 그런데 변칙형이라니?”

“레버리지 바이아웃을 통해서 회사를 사 스윙을 통해 이익을 보는 구조로 흘러가던 EVO가 어느 순간 스타트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거야. PEF는 펀드 자체를 의미하지만 PE는 사모펀드를 운영하는 회사 전체를 통틀어서 나오게 된 건데, 이 PE 중 관리 참여형 그룹 집단이 따로 있어. 예컨대 대학교로 치면 경영학과가 있고 경제학과가 있는 것처럼 주요 출자원들이 각자마자 다른 식으로 출자를 하게 되는 방법이지. 처음에는 퀀트들을 걸러내느라 고생을 했었는데, 에디 차가 이 부분을 아예 시스템을 바꾸기로 하고서 중장기 이상의 형태로 VC를 겸하게 해서 해당 출자 고리 범주에 있는 스타트업들을 키우기 시작한 거야. 그 중에는 본인들이 직접 전도유망한 스타트업을 생성해내고 점유한 경우도 있지만 내가 만든 쓸 만한 스타트업 자체를 사들이는 일도 많지.”


무슨 말인지 전부 알아내기는 어렵지만 결국 김창우의 말대로라면 녀석은 국제적으로 노는 인물이 되시겠다, 이 정도로 해석하면 된다는 거였다.


“조지 소로스처럼 세계의 거대 정세를 이용해 국가에게조차 압박을 넣어 이득을 보는 글로벌 매크로 전략이 아닌 이상 어차피 EVO가 현재 추구하는 방향은 명확해. 난 지금 인공지능, 즉 오토봇의 장점을 이용한 AI의 심화를 구현하게 되면서 우리 AIE의 인수와 동시에 전략적 파트너가 된 EVO의 투자를 받고 있는 중이야. 물론 독자적으로 굴러가기에 투자 유치의 개념은 우리가 7:3으로 가져간다고 볼 수 있는데. 이 중 플로우 매트릭도 우리의 주주이자 협력자인 거지. 네가 궁금해 하는 루가니? 루가니는 EVO의 창립멤버야. 현재 꽤 큰 제약사의 COO이기도 하고.”

“···!”


김창우가 설핏 웃었다.


“말했듯이 내가 만든 스타트업의 이름은 AIE라는 곳이야. EVO는 재정에만 약간의 간섭을 할 뿐, 우리가 속한 개성대로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에 마케팅 측면에서만 개입을 해주는 편이고. 현재는 시리즈 C단계를 거치며 스케일 업하게 되었어. 우리의 진가를 알아본 EVO로 인해 IPO는 할 필요도 없는 다음 단계가 거저 기다리고 있는 과정이지. 현재는 사업 관련 확장 중이야.”

“···!”


나는 조금, 아니 적잖이 놀랐다.

김창우가 이토록 많은 발전을 이루게 된 줄 이제야 알겠다.

그리고 다음으로 들려오는 김창우의 말에 난 내 귀를 의심해야만 했다.


“자, 이제 두 번째 선물이야. 결정은 네 몫이지만 시간은 유한하다는 걸 잊지 마.”

“그게 무슨 말이야?”


김창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AIE안에 너를 위한 한 자리가 비어 있다, 서우야.”


***


김창우는 결정할 시간이 유한하다는 말로 내 결정을 보류할 수 없게끔 옥죄어왔지만, 장난이라고 웃어넘겼다.

다만 널 기다릴 것이라고 확고하게 선을 그어놓았다.

언제든 네가 오면 우리는 너를 반겨줄 것이고, 너를 위한 근사한 사무실 하나를 통째로 내어줄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올해든 내년이든 언제든 결정해도 좋다고.

대신 은인이자 친구로서의 명분도 확실하게 가져가고 싶다고 말하는 김창우였다.


술자리는 제법 빨리 끝이 났다.

녀석도 나도 많이 마시지 않았다. 즐비한 참치 요리들 중 손이 간 건 몇 번 되지도 않았고.


난 생각했다.

김창우가 하는 말이 사실이라면, 난 분명 천군만마를 얻어낸 거라고.

그 결과로.


“대양아파트 2동으로 부탁드립니다.”

“최선을 다해 조심히 몰겠습니다.”


김창우의 논지를 받아낸 근거가 지금 내 손목에 있었다.


파텍 필립.

그리고 내가 탄 람보르기니까지도.


난 오늘 현실로의 또 다른 꿈을 꾸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 힘든 람보르기니가 진정 내 차가 되다니.


아마 오늘 밤은 잠을 편히 이루기 어려울 거 같다.


작가의말

댓글과 선작, 추천 모두 감사합니다!

부족한지라 늘 재미있게 쓸 수는 없겠지만, 언제나 최우선으로 재미를 추구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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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사소한 조건 +1 24.06.30 2,482 46 13쪽
71 장미꽃 +2 24.06.28 2,652 53 13쪽
70 중국몽이 아닙니다 +4 24.06.27 2,761 48 15쪽
69 업계의 공룡들 +3 24.06.26 2,815 47 14쪽
68 저랑 내기 한 번 하시죠 +3 24.06.25 2,833 56 11쪽
67 2차 전지의 장외전 +3 24.06.24 3,121 54 13쪽
66 이제부터 전초전이다 +3 24.06.23 3,337 60 13쪽
65 이뤄보지 못한 꿈 +4 24.06.22 3,392 65 12쪽
64 처음으로 네가 부러워졌다 +4 24.06.21 3,581 65 12쪽
63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5 24.06.20 3,521 67 12쪽
62 사업계획서 +3 24.06.19 3,648 64 13쪽
61 AIE +5 24.06.18 3,753 70 12쪽
60 영업의 섭리 +9 24.06.17 3,796 66 12쪽
59 나비 +5 24.06.16 3,803 69 13쪽
58 더 좋은 전망이 되어줄 겁니다 +4 24.06.15 3,877 70 15쪽
57 고정매출액이 아니라 잠정 산출액입니다 +3 24.06.14 3,952 69 13쪽
56 편견의 불식 +4 24.06.13 4,059 79 12쪽
55 계약전문내용 +3 24.06.12 4,171 77 14쪽
54 살점까지 발라서 +4 24.06.11 4,298 76 15쪽
53 포장마차 +4 24.06.10 4,279 80 12쪽
52 순수한 소감 +3 24.06.08 4,386 76 12쪽
51 성공한 모습으로 +3 24.06.07 4,557 82 12쪽
50 전원 소집한다 +2 24.06.06 4,554 79 13쪽
49 뒤엎어버리죠 +4 24.06.05 4,687 78 12쪽
48 물꼬 (수정) +4 24.06.04 4,858 72 12쪽
47 역전의 용사들이 납셨네 +3 24.06.03 5,044 82 14쪽
46 제일 먼저 생각이 났습니다 +4 24.06.02 5,091 77 14쪽
45 인생에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2 24.06.01 5,469 82 13쪽
44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겁니까? +4 24.05.31 5,616 84 13쪽
» 너를 위한 한 자리가 비어 있다 +3 24.05.30 5,711 8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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