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재벌은 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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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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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6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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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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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모습으로

DUMMY

“그리고 예외로 서 팀장하고 이 차장도 출석해.”

“알겠습니다.”


격변이 일어날 것이다.

왜 부르는지는 대강 알고 있기에, 우리 둘은 서로 잠가 놓았던 서랍 속 열쇠를 열어 무언가를 챙겨들고 굳은 얼굴로 박 기장의 뒤를 따랐다.


***


적막이 내려앉은 묵직한 정적.


난데없는 구둣발 소리들이 점진적으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 둘, 뒤이어 나타났다.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지금부터 완전한 전사적 자리라는 걸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우스갯소리로, 정말 오늘 몇몇은 전사자가 될 것이다.


무표정한 박 기장과 제품총괄부의 노평오 기장,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아랫입술을 혀로 축이고만 있는 걸 반복적으로 고집하는 도 기장까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뒤이어 하나 케미칼의 실세들이 모두 모이기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5분도 채 되지 않았다.

이성우 기정과 박준용 공장장이 함께 나타나게 되고.

종래에는 마지막 구둣발 소리가 끊길 거라는 걸 예상할 수 있도록 제일 최상석에 아버지, 서창후 사장님이 앉았다.


냉랭한 기류와 불안한 분위기의 연속에서,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맞은편을 바라보았다.

영업부들. 그러니까 오늘부터 심판대에 오르게 될 인원들 모두 눈동자에서 불이 꺼져 있었다.

오고야 말게 왔다는 표정도 보였고, 눈알을 다급하게 굴리며 어떻게 빠져 나갈 수 있을까, 하는 머릿속 셈법이 보이는 무리들도 갈음이 가능했다.

그러나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미궁 속에서의 미로만 있을 뿐.

지금 이곳은 그물망 안이었다.


“시작해.”


아버지의 입에서 시작하라는 말이 마치 바로 사형 집행을 하라는 말처럼 들렸다.

그리고 나와 이 차장은 발언권 없음으로 종결짓는 영업부원들의 불안한 시선처리들을 묵과하며 서류들 외 빔 프로젝트로 시작되는 검은 숫자의 향연들을 가리켜 보였다.


“장비 공급처까지는 어느 정도 계약서상과 일치한다고 보지만 일부러 결함재고자산 회전율을 누락시켜 고의적 평균재고자산을 까먹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차장이 토스한 후에 내가 빈 공간을 노렸다.


“이로서 하나 케미칼이 실질은 다를지라도 영업이익률이 형편없게 되었던 주범 중 하나가 드러나게 된 겁니다. 보통 사출품은 장기 재고화를 꺼리죠. 왜냐하면 외관 품질 문제 발생 및 대개 부피가 커서 보관 장소가 부족해지게 됩니다. 보통 일주일치 안전재고를 떠안고 간다고 해서 회전율을 등락폭 없이 인가시키는 쪽으로 결론이 나지만, 문제는 의도적 결함을 마치 의도하지 않은 완성품처럼 만들어 재고처리를 해낸 검품부 결탁 측 두 명, 그리고 여기서 큐엔 몰드를 비롯한 총 세 개사와의 결탁을 조장한 심 차장님과 문 팀장. 그 외 전부 과실의 순서를 매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추가로 회전이 너무 잘돼도 문제였습니다만, CAPA 부족이나 생산 문제 발생 시 바로 고객사 결품으로 이어지게 되는데요. 아시다시피 저희 하나 케미칼은 같은 협력사 혹은 고객사이기는 해도 밴딩 업체로서 그 손해를 6대 4. 그리고 그 규모에 따라서 특약한 7대 3까지 과실을 떠안게 됩니다. 우리 결품으로 이어지는 건 곧 현금흐름과 연관이 있고, 회전율보다 중요한 미래 회전율의 추이가 앞으로도 망가져간다는 걸 뜻한다는 거죠.”


재고 회전율은 주어진 기간 동안 재고에서 얼마나 많은 품목이 판매되었는지, 혹은 생산하였는지를 나타내는 척도다. 그리고 위탁사의 또 다른 재고회전율에 따라 우리 상품군의 생산 추이도 달라지게 되는 것이었다.

즉 1년에 몇 회 재고가 회전했는지를 나타내는 게 500%라고 가정한다면 1년간 재고가 5회전 한 것을 의미하게 된다.

그러나 채워지는 속도보다 방치되어 다시 반품되는 일이 알게 모르게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바로 우리 하나 케미칼이 떠안아야 될 과실 부담금이 늘어나게 된다는 걸 의미하는 거였다.

그러니 여태 아버지의 속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거다.


“출고량과 평균재고량 제외 퍼센티지를 따져 봐도 이상하다는 걸 알 수 있지만 몇 회전 했는지도 따지고 보면 전부 파악할 수 있게 수치량을 고객사와 이번 창고업체를 모두 털어 대강의 정확도를 표시할 수 있었습니다.”


3분기에는 회전이 얼마가 되었는지 중요한 게 아니라 몇날 며칠이 공회전 된 적이 있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였다는 나의 말에 이 차장도 같이 근거를 내세워 주장해주었다.

기초와 기말 수량까지 연 단위, 혹은 분기 단위 재고량과 결함 재고량까지 따져 나누고 평균값을 구하기까지, 정말 짧은 시일 동안 종아리에 쥐가 나는 걸 몇 번이나 참았는지 모른다.


“때문에 상대측으로부터 클레임이 온 것도 수차례나 됩니다. 그 재고량 결함을 떠안게 된 것이 문제의 5부서였고요. 의도적으로 불량이 날 수밖에 없는 불량재고를 떠안게 된 5부서는 제외시키고 4부서의 고 팀장이 가담한 걸로 확실한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


재고회전률 추이에 따른 원재료와 제품 부족 현상을 초래하게 된 것이 사출 4, 5부서이기도 했다.

다만, 여기서의 5부서는 논외로 칠 수밖에 없다.

애초에 결함을 내려 작정하고 미리 미완성품이 될 수밖에 없는 불량재고를 처리하게 만든 것이다.

그렇게 해서 5부서가 고 팀장 말대로 똥통이라고 불리게 된 거지.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다.

아무리 사출 5부서에서 당시 강 팀장과 나, 모든 이들의 연쇄적으로 노력에 더해 사력을 덧칠한다고 해도 그림은 이미 미완의 대기로 남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띄었던 것이다.

애초에 도화지에 그려야 하는데 A4용지에 그리라고 하는데 어떻게 우리가 그걸 받아먹겠느냐고.

그래서인지 이 차장보다도 내가 더 분통을 터뜨렸던 거 같다.

하나 둘 모여서 한 작당모의가 아니다.

사출 5팀원들이 얼마나 많은 마음고생들을 하고 있었는지를 알고 있었기에, 지금도 현재 사태를 모르고 좋다고 다른 사출품 성형이나 맡고 있을 그들을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하등의 가치가 없는 놈들.’


속으로 훨씬 더한 욕지거리들이 떠올랐지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참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 여기 차장급까지만 있었으면 대거리하자고 달려들었을 수도 있다.


발주를 넣는 재주문점에 대해서도 잘못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혔다.

주식으로 치면 공매도나 파생옵션 놀이를 한 것과 뭐가 다른가.

회사에는 몇 배의 손해를 끼치면서 자기들은 몇 푼어치의 마진을 주머니에 채워 넣느라 바빴던 것이다.


분노로 이마에 열상이 일어나는 듯 후끈거리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속이 후련하기도 했다.

그래. 결국 너희들이 한 도박을 두고 패가망신하게 되는구나.

지금 설마 창고업체까지 털었는지는 꿈에도 몰랐던 건지 문상수 팀장 외 심 차장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아무래도 절대 모를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그때까지도 아버지의 표정은 흔들림 하나 없었다. 이 기정이나 박 기성, 즉 공장장도. 기장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동안 영업부를 두둔해왔던 도 기장만이 한탄하는 눈으로 그들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진범이 누구인지는 어차피 시시비비를 따져봐야 한다. 도 기장이 진범인지 공범인지 아직은 알 수도 없는 노릇.


무거운 적막 속에서, 아버지가 무심하게 말했다.


“여기까지 대충 7은 충족이 된 거 같으니 남은 3의 디테일은 이제 곧 올 사람들이 채워주는 걸로 하자고. 둘은 수고했고, 나가서 일 보고 있어.”

“감사합니다.”


나는 이 차장과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의자를 끌어냈다가 다시 원위치로 복구시킨 다음 대회의실을 빠져나왔다. 문을 닫기 전, 찰나에 희미한 말소리가 들려 왔다.


“최 대리 너도 지금 소회의실에서 잠깐 대기하고 있어. 앞에 소명 자료 챙기는 거 잊지 말고.”

“예!”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이중첩자 노릇을 해낸 최 대리를 원망스럽게 보는 영업부 직원들의 눈은, 이제는 눈을 둘 곳조차 없어 질끈 감기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갑자기 반 박자 빠르게 문이 열렸다.

멋들어진 정장을 입고 우리에게 약간의 고개만 숙인 후 움직이는 이들.


“딱 봐도 쟤들 우리 측 법률대리인이네. 저 화상들, 부정환수는 물론 경제사범 되겠네. 뉴스에는 안 나올까 몰라.”


이 차장의 말이 맞았다.

이들은 곧 축출될 것이다. 이후 죄의 유불리를 따져봐야 알겠지만 영업과 무관한 재고자산거래와 회사가 인지하지 못한 자금 차입 계약으로 인한 부정위험요소에 따라 엄벌을 받게 될 것이었다.


“차장님. 팀장님!”


그때 최 대리가 막 닫히려는 엘리베이터 문을 열어 거의 90도로 우리에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기는 뭐가 감사해. 모르긴 몰라도 최 대리도 벌 받게 될 텐데.”


그래봤자 벌침 정도일 거다. 한 달 정도 감봉이나 될까.

최 대리는 선처를 받게 될 것이다.

어차피 알아내고 풀 숙제였지만, 최 대리도 분명히 일조한 게 없지 않아 있었으니 경징계 정도는 스스로 감수해야만 했다.


“그래도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소명해서 기획팀 합류할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그래요.”


아마 내가 저번에 말한 것처럼 최 대리가 영업부의 마천루로 올라설 기약은 희미해지겠지만, 그래도 양심선언을 한 최상도에 대한 면책권 정도는 충분히 발동될 것이다.


그렇게.

커다란 하나의 숙제를 끝냈다고 생각하며 이 차장에게 인사를 하고 오늘 남은 오후의 시간을 자율 보장 받아 사출 5팀에 들르게 되었다.

오늘 사출 2팀이 하는 곳에서 저마다 기계를 잡고 바삐 조립을 하고 있던 그들이 하나 같이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팀장님!”

“서 팀장님 오셨다!”


살갑게 맞이하는 그들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반가운 건지 모르겠다.


‘앞으로 알게 될 지라도 당장은 모를 테니까.’


아니, 차라리 앞으로도 몰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나는 그들에게 기계 돌아가는 소리보다 조금 더 크게 말했다.


“오늘 퇴근하고 시간 되는 분, 제가 킹크랩 쏩니다.”


당연히 다들 열렬히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여기서 일하며 킹크랩 먹을 일이 무에 있을까.

나도 전생에 강윤아 덕분에 두세 번 먹어본 게 다였는데.


어쨌든 오늘은 뜻깊은 날이었다.

이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킹크랩 플렉스를 해주기로 했다.


***


하나 케미칼과 연속된 업체들은 이 일에 대해 함구하기로 한 뜻을 모았다. 알려져서 좋을 게 없을 테니까.

그러나 영원한 비밀은 없다.

알려져야 할 건 결국 알려지게 될 테니까.

우리는 보란 듯이 숙청을 감행했고, 그에 따라서 앞으로도 꾸준히 밀도를 높이며 썩은 싹을 도려내기로 그 순간만큼은 대동단결했다.


오늘 나에게로 또 다른 기회가 왔다.

바로 강윤아를 만나기로 한 주말 오후였기 때문이다.

세 벌의 정장 중 뭐가 오늘 괜찮을까를 정말 한 시간여 가까이 고민을 해본 거 같다.

어차피 모두 똑같은 브랜드였지만 테이퍼드인지 뭔지 하는 미국식, 영국식 핏이 다 다르기 때문에 행복한 고찰을 했다.

결국 고른 것은 내 몸에 딱 맞는 영국정장이었다.


목욕을 하고 간만에 머리에 한껏 힘을 주었다.

평소 웬만해서는 안 바르던 선크림까지 얼굴에 고루 펴 발랐다.

마지막에는 파텍 필립 시계가 왼쪽 팔목으로 자석처럼 감겨들었다.

그 순간 내 자신이 명품이 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의 백미.

나는 내 아파트를 나와 한쪽에 주차된 붕붕1호기를 보고, 잠깐 미안한 듯 서있다 지나쳐 어딘가로 향했다.


부우우우우.


입체적인 소리를 내는 나의 새로운 보물.

붕붕2호기로 들어섰다.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독차지하며 나아가는 흰색의 람보르기니 로드스터가 도로로 진입하는 순간이었다.


부우우우웅!


강윤아에게로 향하는 첫 발길이 이토록 설레다니.

성공한 남자의 모습으로 다가가는 게 처음인 나여서.

그래서.

얼마나 울컥하고, 또 맺혀진 한의 응어리가 지금 람보르기니의 힘찬 배기음처럼 속이 뚫리는지를 모르겠다.


작가의말

부족한 작가에게 추천과 선작, 따뜻한 댓글까지... 너무 고맙습니다. 제게는 큰 힘이 됩니다.

무더위 조심하시고 다가올 주말 시원하고 건강하게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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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사소한 조건 +1 24.06.30 2,482 46 13쪽
71 장미꽃 +2 24.06.28 2,652 53 13쪽
70 중국몽이 아닙니다 +4 24.06.27 2,761 48 15쪽
69 업계의 공룡들 +3 24.06.26 2,814 47 14쪽
68 저랑 내기 한 번 하시죠 +3 24.06.25 2,833 56 11쪽
67 2차 전지의 장외전 +3 24.06.24 3,121 54 13쪽
66 이제부터 전초전이다 +3 24.06.23 3,336 60 13쪽
65 이뤄보지 못한 꿈 +4 24.06.22 3,391 65 12쪽
64 처음으로 네가 부러워졌다 +4 24.06.21 3,580 65 12쪽
63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5 24.06.20 3,521 67 12쪽
62 사업계획서 +3 24.06.19 3,648 64 13쪽
61 AIE +5 24.06.18 3,753 70 12쪽
60 영업의 섭리 +9 24.06.17 3,796 66 12쪽
59 나비 +5 24.06.16 3,802 69 13쪽
58 더 좋은 전망이 되어줄 겁니다 +4 24.06.15 3,877 70 15쪽
57 고정매출액이 아니라 잠정 산출액입니다 +3 24.06.14 3,952 69 13쪽
56 편견의 불식 +4 24.06.13 4,059 79 12쪽
55 계약전문내용 +3 24.06.12 4,171 77 14쪽
54 살점까지 발라서 +4 24.06.11 4,298 76 15쪽
53 포장마차 +4 24.06.10 4,279 80 12쪽
52 순수한 소감 +3 24.06.08 4,385 76 12쪽
» 성공한 모습으로 +3 24.06.07 4,556 82 12쪽
50 전원 소집한다 +2 24.06.06 4,553 79 13쪽
49 뒤엎어버리죠 +4 24.06.05 4,686 78 12쪽
48 물꼬 (수정) +4 24.06.04 4,858 72 12쪽
47 역전의 용사들이 납셨네 +3 24.06.03 5,043 82 14쪽
46 제일 먼저 생각이 났습니다 +4 24.06.02 5,091 77 14쪽
45 인생에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2 24.06.01 5,469 82 13쪽
44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겁니까? +4 24.05.31 5,616 84 13쪽
43 너를 위한 한 자리가 비어 있다 +3 24.05.30 5,709 8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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