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재벌은 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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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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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6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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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2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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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뤄보지 못한 꿈

DUMMY

박 기정의 말을 곧이곧대로 해석할 수는 없다. 그러니 언제나 정의를 위한 재정의를 수립할 필요가 있었다. 상황에 따라, 지금 이 분위기의 밀도에 따라.

그러나 어딜 봐도 박 기장의 얼굴에는 사심이 짙게 깔려 있었다.

저건, 그러니까 순수한 욕망이다.


“어차피 이번 최종 계약은 끝난 것이라고 봐야 하고 다시 도장 찍을 일은 없을 테니 더 솔직하게 말하는 거야. 네 덕분에 우리가 한 해 매출 면에서 당장의 실질로 들어가 보면 오연테크 부럽지 않은 형세를 갖추게 될 구심이 생겼다.”

“···.”

“너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만 이번 AVT와의 계약, 만만한 일이 아니었어. 모든 사람의 노력과 근심 위에 세워진 초석이 곧 산실이 될 결과물로 나타나게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겠냐?”

“그렇겠죠. 그래서 더 대단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개입한 이유를 배제하고도 말이죠.”

“아니, 그런 뜻이 아니야.”


박 기장은 내 말에 조금 더 다른 반론을 펼쳤다.


“내가 너한테 예전에 우스갯소리로 했던 말, 혹시 기억하냐?”

“어떤 말씀입니까?”

“너 뭐 잘못 먹었냐고.”

“아···.”


확실히 박 기장에게 그런 말을 듣기는 했었다. 그게 호된 꾸지람으로 전가된 자리에서의 표현이었다는 걸 기억 못 할 리가 없다.

눈을 다시 맞췄을 때에 언뜻 박 기장의 눈빛에 강렬함이 도사리고 있는 걸 깨닫게 되었다.


“진지하게 다시 한 번 물어보자. 너, 뭐 정말 잘못 먹은 거냐?”

“···예?”

“아니, 왜 그렇잖아. 모든 게 그렇게 이뤄질 거라는 걸 알고 있다는 듯, 순리대로 움직이는 네 말에 융통성이나 변별력이 모두 다 포함된 말들이 드라마 대사처럼 맞아 떨어지니까. 솔직한 말로다가, 아니라면 왜 근 반년이나 뻣뻣하던 AVT가 주리를 틀고 나오겠냐고. 그것도 밴딩 업체에 한수 접고서 말이야.”

“···.”

“나도, 기정님도. 공장장님이나 사장님도 요즘 꼴이 말이 아니다. 다들 잠도 못 자서 힘들어하고 있어. 기정님은 얼마 전부터 수면제도 복용한다더라.”


안 그래도 박 기장과 노 기장을 포함해 기정과 기성 라인, 그리고 아버지까지 얼굴빛이 영 피로해보이기는 했었다.


“무슨 근심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좋아서.”

“···!”

“좋아서 지금 다들 잠도 못 자고 있는 거라고. 설레서.”


박 기장은 들고 있던 젓가락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과 함께.

그러고 나서 소주병을 은근히 눈짓으로 가리킨다.


“죄송합니다.”


그 순간 박 기장의 술잔이 비어있음을 뒤늦게 깨닫고 얼른 소주를 따라드렸다.


“줘. 따라줄 테니까.”

“아닙···.”

“달라고.”

“예.”


오늘 처음으로 박 기장이 내게 소주를 따라주는 걸 목도했다.

박 기장은 옅게 웃으면서 내게 말없이 병을 내려놓고 소주잔을 내밀었다.


팅-


맑게 튕기는 잔을 들어 식도로 넘긴다. 술은 시원했지만 물이라도 탄 것처럼 묽은 맛이 났다.


“이번 계약이 단발성 계약이라고 해도, 우리가 줄 수 있는 결과물에 따라서 꼭 네가 영입제안을 거절했다고 하더라도 그 동력원이 사라지는 건 아니야.”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박 기장이 구워진 돼지고기 특수부위를 막장에 찍어 먹으며 스스럼없이 말했다.


“AVT와의 활로를 뚫었다는 말은 곧 주변 공단에서도, 국내 컨트롤 업체에서도. 기업체는 물론 미국 업체들에게도 강력한 한 가지 신호를 주는 거니까. 만약 네가 대기업 영업부 팀장이야. 그런데 네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수확을 얻었네, 그것도 대박으로? 그럼 그 대기업의 위상이 올라가기도 하지만 헤드헌팅 쪽에서나 그 외 모든 상대 기업체들이 전체성과를 올린 기업과 팀만을 주목할까? 그게 아니야.”


박 기장의 얼굴이 다시 진지해졌다.


“그 계약의 판을 뒤집은 서우 팀장이라는 사람을 예의주시하게 된다고. 왜 굳이 직장 잘 다니는 사람에게 어떻게 알고 접근해서 스카우트 제의를 하겠어? 네가 그만한 이력을 남기게 되었으니 우리 기업에 데리고만 오면 그 자체만으로 맨파워가 형성된다는 걸 다들 알고 있는 거야. 그래서 AVT와 하나 케미칼과의 단발성 계약이 끝이 난다고 해도 업계에서는 이제 하나 케미칼을 인정해줄 거라고. 인정을 받는다는 게 뭐야? 나름대로 유구하게 버틴 역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참신한 라이선스 몇 개 없이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던 하나 케미칼에게, 그렇다고 누군들 수주를 안주고 싶겠어? 아시아 채널도 아니고 자그마치 미국 채널인데.”


그가 이어서 말했다.


“하나 케미칼은 아마 이번을 계기로 초고속으로 성장할 거다. 사출성형 벤딩 제조업체라는 명징을 벗어던질 때가 된 거라고. 연구 개발 활동이며 기술교육원과 테크니컬 센터 운영 관련한 얘기도 이제 슬슬 나오고 있더라. 사업본부도 자리 잡을 거고, 조금 더 체계를 갖추게 될 거야. 언제까지고 버티기만 하는 근속 업체가 아닌, 이제 후발주자를 벗어던질 수 있는 파워를 갖게 된 거지. 그런데 한편으로는 개인적인 사심으로나마 너라는 사람에게 사심이 가는 거야.”


박 기장은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얼굴이었다.


“우리보다 훨씬 완성되고 발전한 사출성형기 종합기업인 AVT의 제안을 거절할 만큼, 모르기는 몰라도 성과급 합쳐 연봉을 최소 10배는 받아갈 수 있는 스카우트를 일부러 흘려보낸다? 너 제정신이냐?”


하긴.

박 기장이 보는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내가 지금 무얼 이루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것들을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니 이런 말을 하는 걸 테다.

이해가 간다. 그러나 그 부족한 이해도에 알맞은 빈 구멍을 채워주기보다는 그저 물처럼 흘려보내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내렸다.


“아니면 믿는 구석이 있는 거냐? 주재원 중에서도 총괄 디렉터야. 내가 아무리 마누라가 있고 자식들이 있다지만, 오히려 나 같은 입장에서도 거길 가고 말 거야. 그런데 넌 아직 혼자잖아. 책임질 사람도 없고. 뭐가 문제여서 여기에 남겠다는 건데?”

“명분은 없지만 실리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뭐?”


박 기장의 어이없다는 웃음이 입가에 그어졌다. 나는 한일자로 다물린 박 기장의 입가 위로 슬며시 시선을 들어올렸다.


“기장님이 말씀하시는 그 믿는 구석, 예.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뻗대고 있을 수 있는 거겠죠.”

“난 도대체가···.”

“실리는 그 사람이 가진 목표에 따라 얼마든 재정립될 수 있다고 봅니다. 네, 그 자리에 불려가서 나왔던 말처럼 좁아터진 우물보다 더 큰 강에서 놀 수 있겠죠. 그 강줄기를 따라가면 더 큰 바다가 있다는 것도 압니다. 그런데 제게 바다는 이미 여기 하나 케미칼에 있습니다.”


박 기장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꼭 현실적인 문제가 아니더라도 AVT가 제게 바다는 아니라는 겁니다. 기장님도 숱하게 더 좋은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도 하나 케미칼을 떠나지 않으신 걸로 압니다. 왜 그러셨나요? 그리고 그 이유를 제가 한 번 더 여쭤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 전에 기장님 스스로도 이미 그 이유를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서 팀장아.”

“저는 제가 있는 곳이 바다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곳이요. 역전의 동력을 굳이 생판 모르는 남의 터전으로 가서 헤엄치기 전에, 그곳에 있을지 모르는 어떤 상어 같은 포식자를 만나기 전에 제가 겁쟁이라고 불릴 지라도 전 지금이 더 좋습니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게 아닙니다. 제가 그 변화를 일으켜내고 싶습니다. 천천히 언젠가 하나 케미칼이든 제 인생이든 또 다른 제가 되어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어쨌든 변화된 저도, 그 이전의 저도 저인 건 똑같으니까요. 그래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기장님은 현대자동차는 물론 SK 계열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도 안 가셨지 않습니까.”


말하고 나서 곧장 빈 잔에 다시 소주를 따라드렸다.

고기는 이미 익힌 지 오래다. 가스불은 꺼져있고, 타지 않는 구석 속 상추 위에 남긴 고기들을 응시하고 있던 박 기장이 나를 향해 고개를 올린 건 찰나였다.


“아들놈이 하나 있었어. 오토바이를 타다가 당시에 사고로 전신마비가 왔는데, 그게 뭐가 잘못 됐는지 몇 주간 그나마 숨이라도 쉬던 놈이 의식불명에 빠지게 된 거야. 식물인간이라고 하지.”

“···.”

“내가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을 때에는 현대차도, SK 쪽도 전부 다 해외 공장 파견직이었다. 물론 연봉도 훨씬 더 쳐주고 잘 먹고 잘 살게 해주는 조건도 여기와 비할 바가 없었지. 그런데 난 아들 곁을 지켜야 했어.”


박 기장의 근심이 녹아나 있었다. 아버지만이 가질 수 있는 가장의 무게가 아마 난 오늘 박 기장으로부터 가장 생생하게 느껴봤던 거 같다.


“그리고 부모보다도 먼저 하늘나라로 가버렸지. 못난 놈이었어.”

“···.”

“그런데 내가 더 못난 아비였던 거다. 그러니까 자식 놈을 그리 만들지.”

“죄송합니다. 그런 사연이 있으실 줄은···.”


말꼬리를 흐렸지만 명명백백해졌다.

박 기장은 도리 없이 아들을 보냈다. 오토바이를 타다가 발생한 사고. 그리고 중태. 이후로···.

그러나 내 입장에서도 어떻게 보면 박 기장과 다를 게 없다.

몇 년 후 일어날 아버지에 대한 예견된 참사로 인해 지금 새로운 생을 살고 있음에도 난 요즘 들어 언제나 악몽을 꾸고 있었다.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무뎌질 거라고 다짐하지만 내가 이곳에 남아 조금 더 아버지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을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깟 연봉, 아시아 총괄 디렉터? 뭐가 중요한데.

내게 중요한 건 가족의 개념이었다. 이뤄보지 못한 나의 꿈, 나의 미래. 나의 목적. 나의 포부.

나를 지키고 가족을 지키고, 또 생겨날 가족을 책임져보고 싶었다.

그래서 박 기장의 가장의 무게가 주는 묵직함이 두려우면서도, 내가 뚫고 나가야 할 하나의 큰 벽이라는 사실임에는 달리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어차피 인생은 위기의 연속이 아닌가.

예전의 나는 아니었지만 지금의 난 이제 그 위기가 좋다. 그리고, 그 위기에 맞서려 한다.


박 기장이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우리는 다시 술잔을 나눴다.

그리고 잔을 탁 내려놓자마자 박 기장에게 시선을 던졌다.


“기장님 밑에서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더 발전해 보고 싶습니다.”


그제야 터져 나오는 박 기장의 웃음이 좌중을 갈랐다.


“새끼가. 넌 지금 그 하는 말이 멋있다고 생각하고서 하는 거지? 네가 보는 바다하고 내가 보는 바다는 달라, 인마. 그러니까 잔말하지 말고 술이나 한잔 더 따라.”


난 봤다. 그의 동공 주변 시신경이 새빨개져 있다는 사실을.

울음을 참기 위한 말이라는 것을. 아들을 그리워하는 아버지라는 것을.

내 아버지도, 박 기장과 같은 사람일까.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말없이 잔을 따랐다.


그리고 그날 밤 내 생각보다도 더 심한 과음을 했다.

다만 비겁한 건.

다음 날 출근하는 난 머리가 깨져 죽을 거 같은데 박 기장은 연차를 썼다는 사실이었다. 몸살 났다고.


“이런 씨바···.”


배신자, 박 기장.

어제 날 더러 오늘부로 씩씩하게 힘내서 새 출발 하자고 하더니···.


작가의말

소중한 추천 감사드립니다.

장맛비가 장대비처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우천 조심하시고 건강 관리 특히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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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업계의 공룡들 +3 24.06.26 2,815 47 14쪽
68 저랑 내기 한 번 하시죠 +3 24.06.25 2,833 56 11쪽
67 2차 전지의 장외전 +3 24.06.24 3,121 54 13쪽
66 이제부터 전초전이다 +3 24.06.23 3,337 60 13쪽
» 이뤄보지 못한 꿈 +4 24.06.22 3,392 65 12쪽
64 처음으로 네가 부러워졌다 +4 24.06.21 3,581 65 12쪽
63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5 24.06.20 3,521 67 12쪽
62 사업계획서 +3 24.06.19 3,648 64 13쪽
61 AIE +5 24.06.18 3,753 70 12쪽
60 영업의 섭리 +9 24.06.17 3,796 66 12쪽
59 나비 +5 24.06.16 3,803 69 13쪽
58 더 좋은 전망이 되어줄 겁니다 +4 24.06.15 3,877 70 15쪽
57 고정매출액이 아니라 잠정 산출액입니다 +3 24.06.14 3,952 69 13쪽
56 편견의 불식 +4 24.06.13 4,059 79 12쪽
55 계약전문내용 +3 24.06.12 4,171 77 14쪽
54 살점까지 발라서 +4 24.06.11 4,298 76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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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성공한 모습으로 +3 24.06.07 4,556 82 12쪽
50 전원 소집한다 +2 24.06.06 4,554 7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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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겁니까? +4 24.05.31 5,616 8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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