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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너드
작품등록일 :
2024.05.09 09:35
최근연재일 :
2024.09.19 18:00
연재수 :
9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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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80,732

작성
24.06.14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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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채무

DUMMY

_월월월월. 워워워워. 어어어어어어.


목소리가 갈라지도록 짖고 있는 강아지가 바라보는 곳으로 반려인의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인다.

빠루를 지지대 삼아 몸을 한껏 뒤로 튕겼다가 연구실의 창틀을 향해 몸을 날린 고등은 허공으로 몸이 기운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다급하게 반쯤 열린 창문을 붙잡는다.

그리고 잽싸게 사무실 안으로 기어들어 간다.

강아지의 반려인은 사무실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고등의 다리를 스치듯 보고 만다.


_뭐야? 저거? 뭐가 휙, 했는데?!


고등은 연구실 바닥에 납작하게 몸을 숙인다.

강아지 반려인은 휴대전화로 카메라를 확대해 소부진 연구실의 창을 살핀다.


_창이 열렸네. 새가 안으로 들어갔나? 종종아, 너 새 봐서 그러구나?? 저기 방충망이 없어서 새가 안으로 들어갔나 봐. 무사히 나와야 할 텐데. 나쁜 사람 만나면 죽을 수도 있어. 우리 빨리 나오라고 새한테 얘기해 주자. 빨리 나와. 새야. 거기 위험해.


반려인은 강아지의 발을 붙잡고 소부진의 연구실을 향해 손을 앞뒤로 흔든다.

고등은 창밖을 살짝 내다본다.

반려인과 강아지가 고등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_뭐야. 빨리 나오라고? 본 거야? 좆됐네. 빨리 뒤지고 나가자.


고등은 소부진의 컴퓨터를 부팅시키고 책상을 먼저 뒤진다.

참고하는 논문들이나 해외 부검 사례들에 대한 자료가 책상 위에 두서없이 펼쳐져 있다.

서랍에는 개인정보가 담긴 서류들과 날짜가 지난 다이어리가 몇 권 쌓여있다.

고등은 다이어리를 펼쳐보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정구 사건이 있었던 1년 전의 기록을 뒤적인다.

이정구에 대한 기록이 있지만 전달받았던 부검 기록과 다르지 않은 형식적인 내용이 전부다.


_아... 뭐가 있을 것 같은데....



컴퓨터는 비번이 있어야 로그인할 수 있게 되어있다.

소부진의 연구실 번호나, 전화번호 등 노출된 개인정보를 여러 개 입력해 보지만 맞는 게 없다.


_하아.... 이거 맞추고 있다간 망한다. 컴퓨터를 들고 나갈까? 아니야. 들킨 것 같은데.... 죄가 커진다. 마약에 무단 침입에.... 절도까지....? 인생 꼬인다. 어차피 꼬였나?! 오똑해?!!!


고등은 컴퓨터는 꺼버리고 책장으로 다가간다.

의학, 법학을 망라하는 책들이 벽 한 면을 가득 채워 빼곡하게 꽂혀있다.

이리저리 살피던 고등은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다.

뭐가 이상하지?

특별할 것도 없고... 그냥 책이 꽂혀 있는데....

뭔가 어색하단 말이지.....

자세히 보니 교묘하게 책이 앞으로 살짝 돌출되어있는 칸이 있다.

다른 칸과 큰 차이가 없어 얼핏 보면 발견하기 어렵다.

고등은 몸을 숙이고 앉아 그 칸의 책을 모조리 꺼낸다.

책 뒤에는 아무것도 숨겨진 것이 없다.

이상하다. 근데 왜 앞으로 균일하게 밀려 나와 있었지?

고등은 책장을 이리저리 더듬거리다 툭, 하고 건드리니 뭔가 살짝 어긋나는 느낌을 받는다.

고개를 밀어 넣어 책장 안을 자세히 보니 뒤판을 분리했던 흔적이 남아있다.


_손을 댔는데?!


책장 뒤판을 뺐다가 다시 조립하는 과정에서 앞으로 조금 밀린 상황인 것 같다.

고등은 책장 모서리 부분을 툭 쳐서 나무로 된 뒤판을 넘어뜨린다.


_책장 뒤에다 뭘 했나??


그리고 책장 뒤로 손을 집어넣어 더듬으니 비닐에 싸인 종이와 차가운 알 수 없는 물체가 손에 닿는다.

비닐을 잡아당겨 뜯고 단단하게 고정된 차가운 물체도 조심스레 책장에서 분리해 꺼낸다.


_하아. 이거 뭐야.


이정구의 새로운 부검 기록과 금괴다.

고등은 동영상 촬영 모드를 켠 상태로 휴대전화를 책장 뒤로 밀어 넣어 촬영한다.

책장 뒤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금괴의 모습이 촬영된다.


_이야... 졸라 많아. 이게 다 얼마야. 이 많은 게 어디서....?


고등은 이정구의 부검 기록을 사진으로 찍은 후 책장 뒤에 다시 붙인다.

금괴도 제자리에 둔 다음 빼낸 책장 뒤판을 끼워 넣고 책도 원래대로 꽂아둔다.


_워워워워워워. 월월월월월월. 어어어어어어.

_나간다. 나가. 그만 짖어.


원상 복구를 마친 고등은 창을 통해 연구실을 빠져나간다.

창틀에서 선 고등은 건너편 빌라를 먼저 살핀다.

다행히 강아지와 반려인은 사라진 뒤다.


_휴.... 들어갔네. 살았다.


고등이 빠루에 손을 뻗으려다, 흠칫한다.

빠루는 하나밖에 남지 않았고 연구실은 5층이다.


_죽으려나.....? 어떻게 살아서 내려가지?


살아서 내려가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빠루를 뽑고 추락하다가 그 빠루를 어딘가에 다시 박아서 추락을 멈춰야 한다.

만약..... 빠루를 다시 못 박으면....

추락사다.

뭐, 5층 정도면 숨이 붙어있을 수도 있겠지만 뇌손상이나 신체 영구 손상 정도는 각오해야 겠지... 음.....

온몸이 갈기갈기 분해되어 응급실로 실려 가는 자신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고등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_노노. 그래... 살고 싶으면 빠루를 박겠지......


고등은 빠루 하나에 의지해 허공에 매달린다.

침을 꿀꺽 삼키며 ‘뽑자’고 생각하지만, 손이 덜덜 떨린다.

고개를 숙여 바닥을 보니 까마득하다.


_아이씨. 5층 맞아? 뭔 5층이 이렇게 높아?! 무셔..... 하아... 오케이!! 오케이!!! 간다!!


고등은 눈을 질끈 감고 두 손으로 빠루를 잡아당겨 벽에서 뽑아낸다.

몸이 허공을 세로로 가로지르며 추락하기 시작한다.

머리털이 하늘을 향해 솟구치고 셔츠 깃이 바람에 펄럭인다.

바람의 저항에 눈을 뜰 수도 없다.


_정신 차려. 박아야 돼!!! 박고등!!!


고등은 눈을 감은 채 빠루로 있는 힘껏 벽을 내려친다.


_쓱쓱쓱쓱.


빠루는 떨어지는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벽만 긁을 뿐이다.


_안 돼. 아직 죽으면 안 돼. 엄마도 봐야 하고 이석이한테 못한 말도 있어....


고등은 다시 한번 힘껏 빠루로 벽을 친다.


_턱.

_털컹.


고등의 몸이 추락을 멈춘다.


_하아....


고등이 조심스레 눈을 뜨고 고개를 숙인다.


_헐.


고등의 발이 바닥에서 10센치 쯤 위에 떠 있다.


_살았다.


**


고등은 채무의 원룸 현관 앞에서 망설임 없이 비번을 누르고 안으로 들어간다.

완곡서 근처에서 혼자 자취를 하는 채무의 집에 고등은 수시로 들락거렸었다.

야근을 한 날이면 그의 집에 들러 샤워하고 빤쓰까지 함께 돌려 입었....

던 건 좀 너무했다는 생각도 든다.


고등은 그간 비번이 바뀌지 않은 걸로 봐서 채무가 인호의 집에 침입한 남자의 지갑을 자신의 집에 두었을까, 하는 의문에 어깨를 으쓱한다.

채무의 지갑이야 오랫동안 봐왔으니까, 조각만 봐도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채무의 방은 단출하다.

행거에 옷이 걸렸고 작은 서랍장 한 개와 접히는 밥상, 그리고 고등의 키보다 작은 냉장고가 방안의 풍경 전부다.

고등은 서랍을 모두 뒤지고 옷 주머니까지 하나하나 살피지만, 남자의 지갑은 찾지 못한다.

경찰서에 두지도 않았을텐데....

어디 숨겼을까....

이미 다른 사람에게 전달했거나 버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고등은 생각한다.

채무의 집에는 숨길 곳이 없다.


고등은 채무의 집을 나서다 종이 쓰레기를 모아둔 상자를 무심코 내려다본다.

지저분한 종이들 사이에 라면 국물이 흘렀는지, 주황색으로 변한 종이가 눈에 들어온다.

뭔가 글씨가 남아있는 것 같아 허리를 숙여보니 희미하게 안인호의 이름과 주소가 적혀있다.


_하아.... 채무야.... 아니길 바랬는데.... 진짜 뭔가 연관이 있는 거냐? 진짜야? 아니라고 해줘. 새끼야.


고등은 넋두리라도 하듯 낮게 중얼거린다.

그러다 뭔가 놓쳤다는 사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_하아. 왜 생각을 못 했지?


고등은 운동화를 구겨 신고 서둘러 밖으로 뛰쳐나간다.


**


고등은 우주고 체육관에서 라켓을 휘두르는 연습을 하면서도 한 손에 휴대전화를 꼭 쥐고 있다.

국과수에서, 아니 소부진에게서, 아니 경찰서에서 언제 연락이 올지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빌라의 남자가 분명히 자신을 봤다.

강아지까지 함께.

손을 흔들며 빨리 나오라고 사인까지 주지 않았나??

근데 굳이 도둑한테 왜 나오라고 한 거지?

신고하면 그만이지....

인품이 훌륭한 사람인가....?


아무튼 철물점에 다녀와 화단으로 향하는 모습이 CCTV에 찍혔을 테니, 내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으랴.

영장도 없이 창문으로...

아, 나는 경찰이 아니지....

그냥 무단 침입이다....

하지만 감추고 싶은 게 있는 소부진이 일을 크게 키우고 싶진 않을 테니....

솟아날 구멍이 있으려나....?


천진학과의 경기 이후 테니스부의 분위기는 많이 바뀌었다.

테니스 코트는 고등의 연습을 위해서만 쓰인다.

고등은 똥 씹은 얼굴로 공을 넘겨주는 유혁의 눈치를 살피며 라켓을 휘두르느라 마음이 편치 않다.


우주고 테니스부 선수들은 나이 먹고 뒤늦게 운동을 선택했지만 모두 대단한 성과를 보여줬다.

세마는 전국 대회에서 랭킹 5위까지 올라갔고 한빈은 12위, 홍석은 15위 정도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뭐... 유혁은 50위 언저리를 맴도는 정도...

다른 선수들에 비해 순위가 낮지만, 유혁 역시 6개월 만에 얻은 결과치고는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단기간에 이룬 대단한 결과가 이후에도 변함이 없다는 사실이다.

선수들은 제각각 마약, 폭력, 사기 등의 이슈에 휩싸이며 운동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전반적으로 실력이 정체되는 분위기가 엿보였다.

영춘은 선수들에 대한 실망감을 폭력으로 표현하며 흐름을 바꿔보려고 했지만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선수들의 몸에 감추어진 상처만 늘어갔을 뿐....

그러던 어느 날, 느닷없이 박고등이 체육관에 나타났고 천진학과의 경기로 이슈몰이뿐 아니라 기존의 선수들과는 확연히 다른 가능성까지 보여줬다.


천진학과 경기 이후 영춘은 선수들은 모아놓고 말했다.


_내가 천진학과 박고등의 경기를 밀어붙인 이유는 박고등의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틀리지 않거든.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박고등은 앞으로 나머지 4명과 다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하여, 앞으로 우리 테니스부의 연습은 박고등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나머지 4명은 박고등을 위해 연습하면 된다.


다들 할 말을 잃고 영춘을 바라봤다.

박고등을 위해 연습하라니?

이게 뭔 소린가....?

고등은 충격을 받은 얼굴로 저도 모르게 손을 번쩍 들었다.


_할 말 있나?

_코치님. 다른 친구들도 충분히 잘 하고있는 상황이고.... 연습을 통해 선수들이 더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코치님의 의무이자 일이 아닙니까?

_히히히. 잘해? 누가?

_네??

_여기서 잘하는 사람은, 잘할 수 있는 사람은 박고등 외에 없다. 내가 돈을 수천을 썼는데 병신 새끼들만 키웠다는 거지. 그게 팩트야.

_아닙니다.... 코치님.... 다들 운동 기간에 비해 월등히 좋은 성적을 냈고 앞으로 더 잘할 겁니다.

_아, 내가 말 안 했나? 나는 1주일 해서 잘하는 놈을 원한다. 너처럼. 나머지는 다 쓰레기다. 쓰레기는 버려야지. 히히히히.


영춘의 차가운 눈빛에 주눅이 든 선수들은 몸을 움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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