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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너드
작품등록일 :
2024.05.09 09:35
최근연재일 :
2024.09.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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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7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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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DUMMY

소부진은 고개를 끄덕인다.

반장은 소부진이 금괴를 준 사람들에게 사실을 알렸는데도 박고등을 왜 가만히 뒀을까, 의문이 든다.


_침입한 사람을 특정했나?

_얼마 전에 날 찾아왔던 형사.

_이름이?

_박고등, 완곡서.


뻔히 예상하면서도 박고등에게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반장은 머리가 복잡해진다.


_다시 물을게요. 이정구가 자살했다고 생각합니까?

_아니요.

_그럼 사인이 뭡니까?

_나도 잘 모르겠어요. 머리에 알 수 없는 상처가 있었지만, 직접적인 사인이라고 보긴 어려웠습니다.

_머리의 상처는 왜 생긴 거라고, 생각합니까?

_뭔가에 눌린 자국 같아 보였어요. 그리고 그 가운데 아주 미세한 열린 상처가 있었고요.

_열린 상처? 그럼 찢었다고?

_일부러 그렇게 미세한 상처를 내긴 쉽지 않아요. 칼끝보다 작은 상처라 육안으로 확인도 불가능했어요. 제 생각에는 뭔가 삽입되면서 생긴 상처 같았습니다.

_삽입? 뇌에?

_네.


대답하는 소부진의 눈빛이 흔들린다.

순간적으로 위험을 직감한 반장이 뒤돌아서려는데 누군가 끈으로 반장의 목을 감더니 강하게 조인다.


_으으으으으.


소부진은 충혈된 눈에 혀를 빼고 있는 반장의 얼굴을 보며 뒷걸음친다.

반장은 벗어나 보려고 버둥거리지만 강한 힘에 압도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_으으으으으.


바닥에 주저앉는 반장.

몸에서 힘이 점점 빠져나간다.


_으어으어으어.


정신이 혼미해진다.

반장의 몸이 축 늘어지더니 턱, 바닥에 쓰러진다.

뒷걸음치던 소부진이 허둥대며 풀숲을 빠져나간다.


**


경기 날이 되었지만, 고등의 아작난 뼈는 제대로 붙지 않았다.

여전히 뒤뚱거리며 걷고 팔을 굽히는 건 불가능하다.

그나마 회복한 부위는 어깨.

테니스 채를 휘두르는 정도는 할 수 있는 정도?!

숙소 소파에 앉아있는 영춘은 뒤뚱거리며 펭귄처럼 걷는 고등에게 말한다.


_펭귄처럼 뛰어다닐래, 휠체어를 탈래?

_펭귄이 뛸 수 있어요?

_죽기 싫을 때 날 수 없는 날개까지 퍼덕거리며 필사적으로 달리지.

_아하. 근데 경기에 나가란 말씀이시죠? 이 꼴로?

_당연하지. 뭐, 네가 경기에 못 나가고 결과적으로 그랜드슬램에 진출 못 한다면 내가 어떻게 한다고 했나?

_주.... 죽인다....고요.


고등은 한숨을 내쉬며 차마 입에 담고 싶지 않은 말을 내뱉는다.


_기억 잘하고 있네. 이 숙소에 있는 애들 전부 살아서 돌아갈 일이 없을 거야. 둘 중에 골라.

_네?

_펭귄, 휠체어.


고등은 머릿속으로 뒤뚱거리며 달려가 공을 치려다 넘어지는 제 모습을 상상하다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고, 휠체어를 타고 경기하는 제 모습을 떠올린다.


_휠체어요.


고등은 휠체어를 타고 경기장에 들어선다.

깁스를 풀지 못한 탓에 양쪽 팔은 굽히지도 못하고 통나무처럼 쭉 뻗어있다.

객석에서는 고등의 모습을 보고 놀란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_What's that? (저게 뭐야?)

_Can he play? (경기 가능?)

_It doesn't make sense. (말이 안 돼.)


방송이 흘러나온다.


_Bonjour. Les organisateurs nous informent. Le joueur sud-coréen Park Go-deung s'est blessé dans un accident, mais il a annoncé qu'il ne pouvait pas abandonner le match. Applaudissez-le pour sa décision de se battre jusqu'au bout même s'il perd. (안녕하세요. 주최 측에서 알려드립니다. 한국의 박고등 선수는 사고로 부상을 당했지만, 차마 경기를 포기할 수 없다고 알려왔습니다. 지더라도 끝까지 싸우겠다는 그의 결정에 박수를 보내주십시오.)


아픈 몸을 이끌고 경기를 포기하지 않은 박고등의 결단에 관객들은 감동하며 환호와 박수를 보낸다.


_He's a great guy. (그는 대단한 사람이야.)

_It's an honor to see a historic match. (역사적인 경기를 보게 되어 영광이야.)

_He'll win. (그가 승리할 거야.)

_Bravo. Bravo. (브라보. 브라보.)

_아, 놔. 나는 나오기 싫었다고... 이렇게 경기를 어떻게 하냐고.... 차라리 펭귄이 나았으려나?!


고등이 투덜거리며 휠체어를 코트에 멈춰 세운다.

도대체 관중들이 왜 박수치고 환호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고등과 경기할 상대는 미국에서 온 아프리카계 흑인 타리크다.

길쭉한 팔다리에 흑인 특유의 탄력을 자랑하며 10대에 세계 랭킹에 오른 인물이다.

30대 중반까지 랭킹에서 내려오지 않던 그가 성추문에 휩싸이면서 2년의 공백기를 거쳐야 했고 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나고 복귀를 시도하는 참이다.

쉬는 동안 갖은 루머에 시달리느라 운동은 뒷전이었던 탓에 예전의 기량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는 없지만 그럼에도 워낙 기량이 뛰어났던 선수라 복귀전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집중되어있다.


_아니, 경기하는 놈들마다 잘했던 놈이래. ITF에는 이제 막 시작해서 나랑 기량이 비슷한 애들이 나온다더니, 걸리는 놈마다 탑백, 아니 탑텐에 들었던 놈이라니. 이게 말이 돼?


고등은 투덜거리며 혼잣말하다 흠칫한다.


_또 영춘 코치가 판을 짰구나. 그러지 않고서야 센 놈만 걸릴 이유가 없잖아. 하아. 어쩌라고. 휠체어 타고. 미치겠네. 진짜.


그랬다.

영춘은 ITF에 수억을 상납하고 고등의 경기를 이슈화 시킬 상대만 골라 대진을 잡았다.


고등은 눈앞이 캄캄하다.

휠체어로 이동하는 것조차 맘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깁스한 팔로 경기라니....

어떻게 이긴단 말인가....?

하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나...

나는 그렇다 치고 애들은 어쩌나....

아니 내가 죽으면 엄마는....

근데 비행기에서 봤던 총으로 죽이려나...?

하아....


타리크가 길쭉한 팔을 들어 올려 서브를 넣는다.


_어깨는 가만히 있고 손목만 쓰네. 그럼 공이 짧게 오겠군. 앞으로 가야겠다.


고등은 공이 네트 근처에 떨어질 것을 예상하고 휠체어를 움직여 앞으로 다가간다.


_어?? 공이?? 높잖아. 멀리 떨어지겠네. 왜 저러지?


고등의 예상과 달리 공이 높이 뜬다.


_아, 놔.


고등은 깁스한 팔로 겨우 휠체어 바퀴를 굴려 뒤로 빠꾸하는데, 그 사이 느닷없이 공이 방향을 바꾸더니 바닥을 향해 떨어진다.


_헐. 뭐야.


당황한 고등은 휠체어 바퀴를 다시 앞으로 굴리지만, 옷자락이 바큇살에 꼈는지 꿈쩍도 하지 않는다.


_아, 놔. 좇됐다.


고등은 하강하는 공을 흘깃 보고 최선을 다해 팔을 쑥 내밀어 보지만 공은 라켓을 비켜 바닥에 떨어지고 만다.


_퍽, 퉁, 퉁.


고등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심판에게 다가간다.


_아이 원트 브레이크 타임!!

_You want to take a break from the game? (경기를 쉬고 싶다고?)

_예스. 예스. 아야. 아야.


고등은 고통스런 표정을 지으며 눈을 까뒤집고 비명을 지른다.


_It's not an injury during the game. (경기 중 부상이 아니잖아.)

_왓? 아니야. 나 아파. 아프다고. 기절해. 기절한다고.


고등이 기절하는 척 눈을 감고 몸을 축 늘어뜨린다.

휠체어에서 떨어져 몸을 데굴데굴 굴린다.

심판이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_Get up. We're gonna start the game. (일어나. 경기 시작할 거야.)

_노. 노. 경기 못 해. 기절했어.


고등이 바닥에서 꿈쩍도 하지 않자 심판은 일단 10분 휴정을 선언한다.

타리크는 심판에게 불만을 토로하다가 심판이 들은 척도 하지 않자 투덜거리며 벤치로 돌아간다.


_What the hell is he up to? (저 새끼, 무슨 꿍꿍이야?)


고등은 휠체어에 올라타더니 왼손으로 바퀴를 굴리다 오른손으로 바퀴를 굴리며 좀 더 빠른 자세를 찾는다.

하아. 아파....

그래도 왼손이 빠르네.


고등은 왼손을 휠체어 바퀴에 올리고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가더니 갑자기 좌우로 방향을 틀 며 브레이크 거는 감각을 손에 익히려고 반복 학습한다.

손에 힘이 약하니까, 방향을 바꿔서 급브레이크를 걸어야 해....


고등의 움직임을 따라 클레이 코트 바닥에 휠체어 바퀴 자국이 어지럽게 남는다.


_Will he practice wheelchairs now? (지금 휠체어 연습한다고 될까?)

_I don't think I can... (안될 것 같은데....)

_But he's moving better in a wheelchair than the first time. (처음보다는 잘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고...)


관중들과 대회 관계자들은 고등이 휠체어 타는 모습을 경기보다 더 집중해서, 숨죽인 채 바라보고 있다.

휠체어를 어떻게 타느냐에 따라 경기의 향방이 결정될 텐데, 그간 고등의 예상치 못한 승리에 감동했던 관중들은 가능하다면 고등의 휠체어 운전 능력이 급격히 향상되기를 바라는 바다.


고등은 반복할수록 휠체어에 속력이 붙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고통을 참고 이를 악물며 깁스한 팔로 휠체어를 움직인다.


_10분간 쉰댔지. 그 정도면 속도를 올릴 수 있을 것 같아.


고등의 회색 셔츠가 땀에 흠뻑 젖어간다.


_으으으으아아아악.


실시간으로 휠체어 운전 솜씨가 업그레이드되는 상황을 보며 관중석에서 감탄하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_Il ne l'a pas fait au début, mais maintenant il s'en sort bien. (저 사람 처음에 못 하더니 지금은 잘하고 있어.)

_Ses capacités d'acquisition sont incroyables. (습득 능력이 어마어마해.)

_I can't believe I'm watching this in real time. (실시간으로 이 장면을 보다니.)


고등은 급기야 휠체어를 타고 빠르게 달리더니 제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객석에서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온다.


_Wow!

_Hah, hah, hah.

_I can't believe my eyes. (내 눈을 믿을 수 없어.)


고등은 휠체어를 기울이더니 바퀴 하나로 중심을 잡고 회전한다.

환호와 함성이 객석을 채운다.


_Bravo.

_How could he do that when he couldn't move? (못 움직이던 사람이 저럴 수 있어?)


심판도 관계자도 영춘도 타리크도 자리에서 일어나 엄청난 속도로 돌고 있는 고등의 휠체어를 입을 떡 벌리고 바라본다.


_He's crazy. (미쳤어.)


고등이 휠체어를 자리에 멈춘다.


_이제 경기 좀 되겠네.


고등이 관중석을 향해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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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와일드카드 24.07.02 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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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A cup of coffee, please 24.06.30 10 0 12쪽
53 마카롱 24.06.28 8 0 13쪽
52 날아오르다 24.06.27 10 0 11쪽
51 서브 24.06.26 8 0 12쪽
50 악동 24.06.25 8 0 14쪽
49 테니스 스타 24.06.25 8 0 12쪽
48 랠리 24.06.21 8 0 13쪽
47 매치 24.06.20 7 0 11쪽
46 출전 24.06.20 6 0 11쪽
45 꼴등 24.06.19 8 0 11쪽
44 후계 24.06.19 6 0 12쪽
43 스포츠맨? 24.06.18 6 0 12쪽
42 인기인 24.06.18 6 0 11쪽
41 내부의 적 24.06.16 8 0 12쪽
40 마스크맨 잡혔는데요?! 24.06.16 7 0 11쪽
39 코치 24.06.14 7 0 12쪽
38 채무 24.06.14 8 0 12쪽
37 빠루 24.06.13 6 0 13쪽
36 함정 24.06.13 5 0 12쪽
35 첫 시합 24.06.12 8 0 13쪽
34 테니스 24.06.12 5 0 14쪽
33 진가 24.06.11 6 0 14쪽
32 칼빵 24.06.11 3 0 14쪽
31 행방 24.06.08 7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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