序詩 - 그 날, 연해주
1920년 4월 6일
귀 속을 후벼파는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와 함께 수많은 사람들이 낙엽처럼 스러진다. 한밤중이었으나 하늘은 민가와 숲 속에 질러진 불로 이미 핏빛으로 물들었다. 불은 죽은 이와 사는 이를 가리지 않고 매섭게 타올랐다. 개중 이미 불 속에 던져진 이들 중에는 필경 숨이 덜 끊어진 이도 있으리라. 나무가 우거진 숲속은 선혈로 검게 변색되었고, 사람의 팔다리가 이 곳 저 곳에 걸려 휘늘어졌다. 곧이어 죽기 살기로 도망친 아이 하나가 나무 뿌리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일어나려 발버둥치다 외마디 총성에 바닥에 고개를 박고 말았다. 네 살은 되었을까 싶은 아이의 시체를 무참히 밟고 터넘어가는 황토색 군복. 그 왼쪽 가슴팍에는 지독하게도 붉은 원과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선들이 수도없이 많이 그려져 있었다. 일본군이 총을 들어올려 방아쇠를 당기자, 저 앞에서 시체를 부둥켜안고 울부짖던 사람 하나가 몸을 비틀며 쓰러졌다. 저 멀리서 더 거세게 솟아오른 불길이 새벽녘의 잔혹한 여명인지, 조선인들을 불태우는 화염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수많은 조선인들이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며 죽어나가는 이 곳 신한촌은 놀랍게도 조선의 땅도, 일본의 땅도 아니었다. 마을이 송두리째 사라지기 직전, 죽음의 소리가 울부짖으며 붉은 허공을 가득 메우는 모습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탕,
탕,
탕.
붉은 빛으로 짙어진 허공에 세 발의 총성이 울린다. 곧이어 검은 코트에 중절모를 쓴 여인이 쓰러지고, 그를 향해 일본군 장교가 성큼성큼 다가간다.
*“결국 쓰러지는군.”
*“발버둥 쳐도 소용없다. 오늘 이 곳에서 살아남는 조센징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이 년은 살려둬야지. 명색이 현상금까지 붙어 있는데, 캐낼 것이 얼마나 많겠어?”
*“맞네, 백운도 죽은 마당에 이 년까지 죽게 둘 수야 없지.”
천박하게 낄낄거리는 웃음소리는 역겹고도 거만한지라. 제 땅도 아닌 곳에 발을 들여놓고 총칼은 만져본 적도 없는 이들을 쏘아죽인 채 같잖은 승리감을 맛보느라, 여인의 눈꺼풀이 꿈틀거리는 것을 눈 앞에 두고도 보지 못하였다. 아직 분명히 굼질거리는 오른손은 천천히 왼쪽 가슴팍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이렇게 다 죽어가는 모습도 꽤나 볼만 하니, 우선 살려두자고. 혹시 알아, 이 모습을 침대에서 또 볼지? 하하하!”
세 장교의 시선이 동시에 벗어나는 눈 깜짝할 찰나, 여인이 품에서 단도를 꺼내 던졌다. 크학, 하는 비명 소리와 함께 장교 둘이 순식간에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짧은 혼란을 틈타, 여인은 손에 묶어둔 총을 남은 한 명을 향해 겨누었다.
탕-
남은 한 명까지 가볍게 저격한 여인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을 질끈 감았다. 이어 총과 손을 묶어 두었던 천의 매듭을 푸는 순간, 뒤통수에 무언가가 닿았다. 애써 보지 않아도 단박에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젠장, 허탈한 숨과 함께 나직히 끓는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은 여인은 천천히 총을 내리고 뒤를 돌아섰다.
*“이제는 전부 소용없다, 당장 항복해!”
“백운이 죽었다 했나. 죽이는 것보다야 살리는 것이 이로운 이일텐데, 멍청하게도 실수를 했나 보군.”
건조한 어투였으나, 눈빛이 살기로 번뜩였다. 짙은 분노가 온 몸을 휘감았고, 노기가 천지를 진동하게 하는 것이 느껴졌다.
*“총을 내려놓아라! 순순히 내려놓는다면 목숨은 살려줄 것이다!”
“그게 아니지. 당초부터 날 죽일 생각이 없지 않았느냐.”
허망한 한숨이 섞인 말을 읊조린 여인이 미간을 찌푸린 채 피식,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날이 선 눈빛에 걸맞지 않게 입꼬리가 그린 능선이 아름다웠다. 그리고 다음 찰나, 여인의 팔이 머리 위로 솟아올랐다. 총구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제 관자놀이였다.
“대한 독립 만세.”
-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첫 화는 프롤로그라 1화와 같은 날 업로드할 예정입니다. 차후 연재부터는 한 화씩 차례대로 업로드할 예정이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대사 앞에 * 표시가 붙은 것은 일본어입니다. 혼선을 방지하기 위함이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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