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기사가 잡았던 나의 왼쪽 손목에는 이상한 눈 모양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뭐 아프진 않으니까...'
"괜히 신이 주신 운명이니 뭐니 나대지말걸 하.. 신 같네.."
"근데 여기 마을 맞나?"
버스 기사가 내동댕이 쳐 준 이곳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 버스 기사 잘못 내려 준거 아냐?!'
‘윽.. 뭐야! 눈부셔..’
그 순간 갑자기 마치 내 앞에 섬광탄이라도
터진 듯 알 수 없는 빛이 시야를 가렸다.
잠시 후.
빛이 사그라들고 눈을 조심스레 떴을 때 그 앞엔 엄청난 환상이 펼쳐져 있었다.
책에서만 보던 온갖 괴물들이 돌아다니고 붉은색의 물이 흐르는 분수와
수많은 건물들 그리고 그 건물에서 나오는 환한 빛들이 나를 반겼다.
그뿐만 아니라 곳곳에 심어진 꽃나무에서 떨어진 꽃잎들이 춤을 추듯 흩날렸다.
‘이, 이곳이 괴물 마을인가?’
‘와... 저거 진짜 도깨비야?! 헐... 우와’
"근데 왜 이렇게 괴물들이 날 더럽다는 듯이 보고 있지?"
'기분탓인가..'
나는 우선 분수대 앞 표지판 앞으로 갔다.
그 표지판에는 이 마을의 지도로 보이는 그림이 있었다.
붉은색 물이 흐르는 큰 분수를 기준으로 동서남북 방향으로 네 갈래의 큰길이 있었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은 게임에 나오는 메인 광장 같은 곳이려나..’
“솔직히 아무 괴물 붙잡고 이곳에 대해 물어보고 싶지만...”
‘아까 그 기사가 한 얘기가 신경 쓰인단 말이야!’
'게다가 섣불리 움직였다간 내가 인간인 걸 들킬 수도 있어.'
나는 고민 끝에 우선 북쪽 방향으로 가보기로 했다.
이유는 딱히 없었고 그냥 가고 싶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빛은 점점 사라지고 어둠이 드리웠다.
"점점 어두워지는데 이거 괜찮은 건가... 아 맞다!"
나는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휴대용 플래시를 주섬주섬 꺼내들었다.
“으... 다행이다.. 담력시험 때 쓴 플래시 주머니에 넣어두길 잘했네!“
그렇게 걸은 지 10분쯤 지났을 때 내 앞에 두 갈래의 길이 나왔다.
오른쪽 길은 넓으면서 잘 포장되어 있는 길이었지만 그에 비해 왼쪽은 좁은 샛길이었다.
”왼쪽은 누가 봐도 가지 말라는데..“
‘하지만 이런 건 원래 아닌 것 같은 길이 맞는 거야.’
”왼쪽으로 가야지! “
‘괜찮겠지, 누가 봐도 난 주인공이잖아!’
나는 해맑게 웃으며 왼쪽 샛길로 들어갔지만
클리셰를 세운 나는 이때 일을 1시간 뒤 후회하게 된다.
”하... 대체 여기가 어디야!!”
“엄청 걸은 것 같은데 아무것도 안 나오는 게 말이 돼?”
“플래시도 배터리 다 돼서 꺼지고, 아까부터 이상한 소리 들리고..”
‘게다가 계속 들리는 이 소리 뭔가.. 좀비 같은.. 잠깐만!’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역시... 기분 탓이 아냐! 아까보다 가까워지지 않았어?”
“헐.. 어떻게.. 이러다 진짜 좀비 만나면 어떡하지?!”
'안돼! 그것만큼은 절대 안 되지만.. 돌아가긴 글렀고 일단 계속 갈 수밖에 없는데..’
"에라이, 모르겠다!"
나는 다시 돌아갈까 생각했지만 이미 늦은 걸 깨닫고
다시 걷기 시작했을 때 무언가와 부딪쳤다.
“앗! 죄송합... 니다?”
내가 부딪친 것에 정체는 다름 아닌 영화에서만 보던 좀비였다.
그 좀비는 엄청 심하게 부패되어 보였고 어떻게 죽었는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여기저기 훼손되어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좀비들이 내 주변에 깔려있다는 게 나의 인생 최대 위기였다.
“아.. 하.. 하하 이거 참.. 이번엔 죽으라고 신이 판을 깔았나..”
‘나는 이렇게 될 때까지 왜 눈치를 못 챘을까..’
'하지만.. 여기서 죽을 내가 아니지! 저 아직 인생 하차하기 싫어요!'
"후.."
‘아직 날 모르는 것 같지?’
'거리를 조금 벌린 다음 전속력으로 도망간다.'
나는 내 옆에 있는 좀비가 나와 거리가 좀 벌어질 때까지 숨 죽이며 기다렸다.
그리고 '이 정도면 많이 벌어졌겠지?'라는 생각이 들 만큼 거리가 벌어지고 한 걸음 뗀 순간.
‘... 지금이야!’
-우지끈!
"헉..!"
하필이면 걸음을 뗀 곳에 나뭇가지가 놓여있었고,
그 소리를 들은 주변의 좀비들이 순식간에 나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런 젠장!!'
나는 죽지 않기 위해 젖 먹던 힘을 쥐어 짜내 달렸다.
좀비들과 거리가 얼마나 벌어졌는지 고개를 돌려 확인했다.
‘우, 우와! 왜, 왜 이렇게 빨라!!’
하지만 전방주시태만으로 인해 나는 앞에 있는
돌부리를 보지 못해 걸려 가녀린 소녀마냥 넘어지고 말았다.
“앗! 이런...! “
”하, 하하.. 아하하! “
넘어진 나는 뒤로 조금씩 물러나며 조금이라도 내 수명을 늘렸다.
"사.. 살려줄 사람!"
어떻게든 하차하지 않기 위해 마지막 목소리를 내보았다.
'역시.. 있을리가 없지..'
'아, 죽겠..'
그때였다.
나의 가냘픈 마지막 목소리가 닿았는지
검은색 로브를 입은 왕자님(?)이 내 앞에 등장해주셨다.
"어..? 당신인가요.. 날 살려줄 사람?"
”뭐라는 거야! 얼른 일어나서 뛰어! “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를 중성적인 목소리가 귀에 박혔다.
우어어어어-
달리는 우리의 뒤로 좀비들의 소리가 들렸지만 이내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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