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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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흑
작품등록일 :
2024.05.16 21:01
최근연재일 :
2024.09.20 21:00
연재수 :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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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285

작성
24.07.0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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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DUMMY

령희를 만난 이후 저의 맘 속엔 민들레 한 송이가 자리 잡게 되었어요.

처음 만난 건 령희가 무녀 후보 발표회 날이었습니다.


그날은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처럼 흐린 날이었죠.

"... 윽!"

하얀은 여자 3에 의해 밀쳐져 그만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뿔도 없는 게 무녀가 되겠다니.. 정말 수준 떨어져."

"그러니까 무슨 자신감으로 무녀 후보 발표회에 온 거야?"


"풋.. 설마 너 같은 게 후보로 뽑힐 것 같았어? 하핫!"

"너 같은 애들 때문에 다른 도깨비들까지 같은 취급 받는 거야."


'... 그놈에 뿔.. 그게 뭐라고..!'

"그럼 너희는..? 뿔이 없는 나보다 떨어지는 주제에.."


"뭐?"

"차라리 그 뿔 나한테 줘, 너희보다 내가 더 자격 있어 보이는데."


"하! 얘가 미쳤나!!"

'아, 얼굴은 안되는데.. 이번엔 뭐라 둘러대지...'


여자 3에게 자신의 뺨을 내어줄 위기에 처한 그 순간.

"아무리 그래도 얼굴을 때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니?"


'...응? 이 목소리..'

"려.. 령희? 방해하지 말고 네 갈 길 가시지?"


"흠.. 괜찮겠어? 지금 같은 시기엔 소문 하나하나가 치명적일 텐데.."

"하! ... 여전히 재수 없어. 가자!"


"흥! 여기서 제일 재수 없는 게 누군데?"

"자, 내 손 잡아."


성년이 된 도깨비들은 뿔이 나는 게 정상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제겐 뿔이 안 났어요.

전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있긴 했지만 이 사실을 안 아이들은 더 심하게 괴롭히기 시작했죠.


하지만 그 괴롭힘 덕에 령희와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었어요.

그날 절 구해준 령희의 검은 머리칼은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 같았고,

자신의 손을 건네며 웃는 그 모습은 마치 '태양' 같았어요.


시간이 지나 령희는 무녀가 되었고,

그런 령희를 축하하기 위해 몰래 훔친 술로 밤을 보냈어요.


"령희야! 무녀가 된 거 축하해!"


"하얀아.."

"야야.. 왜 울고 그래..!"


"너도.. 되고 싶어 했잖아.. 흑.. 근데... 흐끅.."

'뭐... 되고 싶긴 했지만..'


하얀은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령희의 얼굴은 두 손으로 들어 올리며 말했다.

"난 오히려 네가 되어서 기뻐, 그러니까 웃어줘.. 응?"


'너의 옥빛으로 빛나는 눈을 이리 가까이 보는 게 마지막일 수도 있다니..'

'왠지 슬픈걸..'


"흑.. 응.. 그럴게.."

"... 근데 하얀이 너 술은 어디서 구해온 거야?"


"으.. 응? 누, 누가 흘리고 갔어(?)"

"정말이야?"


"그렇다니까! 자자, 짠 하자 짠!"

-짠


'어머니가 무녀였다니.. 그렇다면 왜..'

".. 어머닌 왜 마을 밖에서 절 키우며 살았던 거죠?"


'그러게.. 마을엔 무녀가 없으면 안 되는 것 같은데..'

"그건 .."


-벌컥


"뭐야, 무슨 얘기 중이었어?"

들레가 마실 걸 가지고 방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헉.. 하필 중요한 순간에..!'

"들레야, 미안하지만.. 잠시 자리 좀 비켜줄 수 있겠니?"


"엄마! 나 방금 들어왔는데.."

"미안해.. 오늘 저녁은 네가 좋아하는 걸로 해줄게."


"...알았어! 마실 건 여기 두고 갈게."


-끼익..

그렇게 들레는 마실 거 보다 못한 분량을 채우고 나갔다.


들레가 나가고 잠깐의 정적이 흐르더니 하얀은 다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 두 분은 무녀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


"음.. 무녀가 없으면 안 되는 것과 무녀가 되려면 조건이 필요하다는 정도.."

".. 이하 동문."


"그렇군요.. 무녀가 된 순간 지켜야 할 규칙이 생겨요."


첫 번째는 마을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것.

두 번째로는 괴물 버스의 관리를 소홀히 하지 말 것.

마지막으로 사랑할 수 없다는 것.


"규칙을 지키지 못하면.. 어떻게.."


"규칙을 어길 시 무녀 자격이 박탈되고 죽음에 이르게 돼요."

"령희는 규칙을 어겨서도 맞지만.."


"마을 밖으로 나간 진짜 이유는 바로 나일 당신이에요."

"나라고?"


"네."

"저..! 그 이야기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그럼요."

저와 령희는 그날 이후 서신을 주고 받으며 서로의 소식을 들으며 지냈어요.


그러다 령희가 어둑한 한밤중 절 찾아와서는

대뜸 제 손을 이끌고 도깨비들의 발걸음이 끊긴 깊고 어둑한 숲으로 향했어요.


"령희야.. 어디 가는 거야?"

"하얀아."


"응?"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 잘 들어."


령희가 들려준 이야기는 그때의 저에게 큰 충격을 주었어요.


괴물 버스는 타닌에서 관리하고 있는 버스 형태의 도깨비인

그 버스를 관리하고 있는 령희는 사실 괴물 버스가 인간들을 운반하던 도구였고,


그렇게 다이어니아에 발을 들인 인간을

괴물들이 잡아먹거나 경매에 팔고 있단 사실을 말해주었죠.


"그게.. 정말이야?"

'이 사실을 내가 알아도 되는 건가?'


"응.. 그리고 너에게 이 말을 전하려고 온 것도 있지만 소개해 줄 사람이 있어서.."

'누구길래 저리 망설이는 거지.'


그곳을 10분쯤 걸었을 때 낡은 오두막 하나가 보였다.

그리고 그곳엔...


-끼익


"아 왔어.. 요?"

"옆에 계신 분은 누구.."


오두막 안에 들어서고 그를 보자마자 단번에 알 수 있었어요.


"령희야, 잠깐 나가서 얘기할 수 있을까?"

전 오두막에서 좀 떨어진 후 조심스럽게 입을 뗐습니다.


"저거 인간.. 맞지?"

"대체 왜 인간을 데리고 있는 거야?"


"이러면 너도 그렇고 저 사람도 위험해! 너도 잘 알잖아."


"...."


'언제부터일까.. 언제부터 인간이랑..'

"뭐라고 말 좀 해봐.."


하얀은 아무 말 없는 령희의 양 팔을 잡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이렇게 가슴이 답답하지..'

"령희 너.. 설마 그 인간을..."

'아니지? 아니라고 말해줘.'


"... 나 저 사람 사랑해."

"뭐?"


그 말을 들은 하얀은 무언가 쿵-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우리 도망갈 거야."


"잠, 깐 그게 무슨 말이야.."

"저 사람을 더 이상 이곳에 두면 안 된다 생각했어."


"그러니 이곳에서 도망가 인간계로 돌아갈 방법을 찾을 거야."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없다면.. 방법을 만들어서라도 돌아갈 거야."

"저 사람뿐만 아냐 이 아일 위해서라도 반드시.."


배를 감싸며 말하는 령희의 모습을 본 하얀은 아까부터 드는 답답함의 원인을 깨달았다.

자신은 령희를 동경하던 게 아니라 사랑했었음을..


'뭘까.. 분명 축하해 줘야 할 텐데.. 그래야 하는데.'

"이걸.. 내게 알려준 이유가 뭐야."


"우리가 도망가는 걸 도와줄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어둠이 하얀을 까맣게 물들였다.


"하..!"


'그냥 지금 저 인간.. 죽일까?'

'미움받긴 하겠지만..'라고 생각하며 령희의 얼굴을 보았다.


'령희는 내 곁에 있어.'

"하얀아..?"


하지만 그 모든 생각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달콤한 목소리에 사르르 없어졌다.

'아.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 도와줄게."

"근데 이건 저 인간을 위해서가 아닌 널 위해서란 걸 알아둬."


"고마워.. 하얀아."


눈가가 촉촉해진 채 날 향해 웃는 령희의 모습과 함께

하얀은 자신의 민들레가 홀씨가 되어

분분히 흩어지는 것을 느꼈고, 동시에 이별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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