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어둑한 밤을 비춰주던 달이 지고 환한 태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간은 지나 금방 오후가 되었다.
나와 나일은 점심을 배부르게 먹고 나란히 마루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하.."
'어색해.. 불편해..!'
'그.. 꿈 이후로 나일 얼굴 보기가 엄청! 부끄러워!!'
"오윤, 무슨 일 있어?"
나일의 얼굴이 나의 시야에 불쑥 튀어나왔다.
"깜, 깜짝이야.."
'가까워..'
나는 앉은 자세를 고치는 척 나일과 살짝 떨어졌다.
"괜찮아.."
'나 얼굴 빨개지지 않았겠지..?'
"오윤."
"왜?"
"저기."
나일이 가리킨 저 멀리 익숙한 실루엣에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어.. 저 도포..'
'틀림없다. 그 남자다.'
"온유! 와줬구나!"
난 벌떡 일어나 온유에게 손을 흔들었다.
"온유?"
처음 들어보는 이름에 나일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뭐?! 온유라고?"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던 들레가 튀어나와 말했다.
"앗.."
"기어코 여길 오다니...!"
"방금 씻은 칼이었는데.. 하하 어쩔 수 없네.."
소름 돋는 이야길 중얼거리기 시작한 들레였다.
'안되겠다. 우선 데리고 튀자.'
"나일, 가자!"
"응? 어딜.."
"우리가 할 일을 잊은 거 아니지?"
큰일이 일어나기 전에
나일과 난 온유와 함께 마을로 가면서 얘기하기로 하였다.
"... 그래서 나와 거래할 게 무엇이지?"
"제가 이 사태를 해결해드리겠습니다."
"... 내게 원하는 건?"
"영주님께서 보관하고 계시는 페어리스 조각을 주세요."
"페어리스라.. 좋아."
"정말요?!"
'이렇게 쉽게 준다고?'
"그래. 그런 고물보단 이 마을이 더 중요해."
'페어리스에 대해 모르는 건가..'
'영주도 모르는 사실을 나일의 어머니는 어떻게..'
"근데 이걸 저 자도 들어도 되는 건지.."
"걱정마세요. 나일은 저와 함께 다니고 있는 동료에요."
나일은 온유를 보고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렇다면 뭐.. 아 이제 도착했군."
'벌써?'
우리가 도착한 곳은 마을의 중앙이었다.
곳곳에 지어져 있는 한옥과 초가집은 해져있고,
다 망한 상가들, 굶어 죽어가는 도깨비들은 마을의 처참함을 더욱 부각시켰다.
'어제 도착했을 때 잠깐 둘러보긴 했었지만..'
"한시라도 빨리 해결해야겠네."
"오윤, 오윤.. 이거 좀 봐."
"응? 이게 뭔데.."
"허억!"
'이게 왜 여기도..!'
나일이 나에게 준 건 광장에 붙어있던 수배지였다.
"나일.. 이거 어디 붙어 있었어?"
"옆 담벽에."
'온유가 안 봐서 다행이네.'
"빨리 처리를.."
"아 혹시 너도 현상금을 노리고 있나?"
"어! 어.. 그, 그게.."
'망했다.. 이제 다 끝이야..'
"그건 이번 일을 다 해결한 다음 하는 게 좋아 보여."
'음? 날 못 알아보네?'
'생각해 보면 들레와 만났을 때도 들키지 않았어'
'설마..'
난 왼쪽 소매를 걷어 손목을 확인했다.
없어진 것 같았던 눈 모양의 문신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없어진 줄 알았는데.."
'그럼 광장에선 왜.. 온 오프 스위치라도 있는 건가.'
"손목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
"나일 이거 봐.."
"역시 이거 때문에 안 들켰던 거구나."
"거기 둘 빨리 와."
"아 네!"
.
.
"다행히 안 늦었네."
"여긴.."
"영주성 앞."
"무슨 공연이라도 하나요?"
"카도교가 여기서 중대발표를 한다고 들었거든."
"때마침 오는군."
'저 사람이.. 교주인가?'
낡은 단상 위로 40대로 보이는 남자 도깨비가 올라섰다.
'기분 탓인가.. 뭔가 이질감이..'
그러자 그 앞에 모인 많은 도깨비들이 박수를 치며 교주를 반겼다.
'분위기가 학예회 발표 온 것 같네.'
'근데 영주 집 앞에서 저리 해도 되는 건가.'
"커흠."
중년의 남성은 목을 가다듬고 이야길 시작했다.
"저는 긴 얘기를 별로 안 좋아하니 본론을 바로 말해드리죠."
"드디어.. 우리 마을을! 도깨비들을! 멸망으로
몰아가려 했던 악의 씨앗들의 원인을 잡았습니다!"
'원인이라고?'
"우와아아아아아아!"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오늘 밤 보름달이 다 떠올랐을 때 여기 이 자리에서
처형식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한창 분위기가 고조되었을 때.
"이봐."
'엇.. 나일?'
".. 흠 궁금한 것이라도 있나요?"
"악의 씨앗이 대체 누구지?"
"아 그렇군요! 저도 찾느라 정말 힘들었습니다.."
"우리 마을에 유난히도 민들레가 많이 피던 들판이 있는 걸 아십니까?"
'거긴..!!'
"그곳에.. 뿔이 없는 자들이 집을 짓고 살고 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교주의 게슴츠레한 눈이 온유를 바라보고는 이내 말했다.
"하나는 잘 처리하고.., 하나는 제가.. 잘~ 가둬두었으니까요."
그런 교주의 말에 다른 도깨비들은 교주의 이름을 부르며 찬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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