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
.
사다리를 타고 내려온 지하엔 사방이 이름 모를 책으로 가득 쌓여있었고,
가운데에 놓여있는 책상 위에는 언제 읽었는지 모를 책이 펼쳐져 있는 상태였다.
'음.. 이 책 나일이 읽고 있었던걸까? 어떤 내용이지..'
"헉.. 이거..!"
'환각 꽃에 대한 거잖아! 어디보자.. 나일이 왜 이렇게 부끄러워 했는지 봐야겠어!'
그 책의 내용은 이러했다.
환각 꽃은 향을 맡는 순간 기분 좋은 환각을 보여주고 향을 맡은 자의 영혼을 먹어버리는 위험한 꽃.
이 꽃은 환각을 보기 전 대처가 중요한데 그 방법은...
"향을 맡은 자와.... 타, 타인의 타액...이 섞이는 것.."
'그.. 그렇다는건... 나랑.. 나일이.. 키, 킷..'
책에 온 정신을 집중한 나에게 나일이 가까이 다가왔다.
"오윤."
....!
"깜, 깜짝이야! 왜 뒤에서 나타나는 건데..!"
"뭘 보고 있는 거야?"
나일의 시선이 내가 들고 있는 책으로 향했다.
'잘 물어봤다 이 자식아!'
"나일!! 너 이거 뭐야!"
나는 나일의 얼굴 가까이 책을 들이밀며 말했다.
"너.. 어떻게 나의 첫 키스를 뺏어갈 수 있어!(?)"
"키스가 뭔데?"
'이걸.. 어떻게 설명해.. 으, 음..'
"그,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서로 입.. 맞추고.."
"막, 막.. 그러는 거 있어!!"
"... 줘 봐."
나일을 내 손에 들린 책을 가져가 천천히 읽더니
이내 얼굴이 살짝 불그스름 해지더니 황급히 책을 덮었다.
'여.. 역시.. 했나 봐..'
"아니거든! 키스 안 했어!"
"너가 아니면 대체 누군데!"
"... 정말 괜찮겠어?"
"어, 어 괜찮으니까 말해."
'대체 뭐길래 저러는 거야..'
나일은 잠시 고민하더니 결심한 듯 말했다.
"후.. 그, 그거"
'솔직히 첫 키스를 이렇게 뺏긴 게 그렇긴 하지만..'
'상대가 쟤라면.. 뭐.. 용, 용서 해줄지도..'
"고블린의 타액을.. 먹인 거야.."
"그래, 그럴 줄.. 알았.. 뭐?"
"사실대로 말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안 한 건데.."
"진짜?"
"응, 진짜."
"고, 고블린의 타액이.. 내, 내 입에.."
내 머릿속에선 나일의 말과 함께 수백 마리의 고블린의 모습이
스쳐 지나가며 역겨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우욱-
참기 힘든 역겨움에 모든 걸 게워내기 직전
나일은 책상 옆에 있던 작은 통을 내 입 가까이 대주었다.
'하필.. 읽고 안 치운 책이 환각 꽃에 대한 거일 줄이야..'
나일은 "그, 걸.. 키스라 하는구나.." 라며 작게 중얼거렸다.
"으... 뭐라고?"
-움찔!
"아, 괘.. 괜찮냐고.."
"으.. 응.."
'하.. 난 왜 물어봤을까..'
"나일.. 계속 고블린 생각나서 그런데 이상한 얘기라도 좋으니까 뭐라도 말해 봐."
나일은 잠시 고민하더니 엄청난 얘기를 시작했다.
“...지금의 너는 인간세계로 못 돌아가.”
"어..? 이런 얘기라곤 안 했잖아.."
"그럼 다른 얘기를.."
"아냐아냐! 계, 계속해"
“알았어. 원래라면 넌 괴물들에게 먹히거나 경매에 올라올 처지였어.”
"경매?"
"응. 인간은 가끔씩 올라오지만 거의 대부분의 비싼 상품들이 사고 팔리는 곳이야."
“너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괴물들은 너가 인간인 걸 눈치채지 못했어."
"그 덕분에 여기에 살아서 있을 수 있는 거겠지."
"대체 뭘 어떻게 한 거야?"
'음.. 어떻게 했냐니.. 난 뭘 한 게 없는데.. 아!'
나는 옷 소매를 걷어 왼쪽 손목을 나일에게 보여주었다.
"여기 도착하고 나서 버스 기사로 보이는 그림자 같은 게
내 손목을 세게 잡았었는데 버스를 내리고 보니 이상한 문신이 새겨져 있었어."
"아무것도 없는데?"
아무것도 없다는 나일의 말에 왼쪽 손목을 보았다.
"어, 정말이네?"
'이상하다.. 분명 있었는데..'
"으음... 아, 됐어!"
"나일! 아까 못 돌아간다는 얘기 말이야. 이곳에서 나가는 방법은 없다는 거야?"
"아니. 알고 있긴 해."
“뭐?! 나가는 방법이 뭔데?”
'처음부터 그리 말하면 어디가 덧나나..'
“나가는 방법 말고도 네가 알아야 할 것들 지금부터 설명해 줄 테니 잘 들어.”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