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난나 케이스:프로이트가 남긴 멸망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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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ei
작품등록일 :
2024.06.03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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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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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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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예일대

DUMMY

예일대에서의 첫 특강이 끝나고, 안나는 피곤보다는 20년은 다시 젊어지는 듯한 활력이 온몸을 휘감았다. 지난 10여 년간 안나는 마치 아버지인 프로이트와 융이 경쟁했던 것처럼 끊임없이 클라인과 그녀의 추종자들과 정신분석학을 가지고 맞짱을 떠왔다. 때로는 한계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그녀의 숨겨진 멘토였던 클라인이 어떨 때는 달래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꾸짖기도 하면서 안나가 계속 자아심리학을 발전시키도록 도와주었다.

클라인은 안나의 이번 미국행을 매우 기뻐해 주었다. 하지만 안나는 최근 클라인의 건강이 안 좋아 보여서 마음이 결코 편하지는 못했다.

”미국의 얼치기들은 정신분석학을 자꾸 범죄자 분석에 사용하려고 하는 것 같더라고. 아마 너의 이론이 미국에서 인기가 있는 게 그런 이유인 것 같아.“


클라인의 견해는 정확했다. 오늘 특강이 끝나고 안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미국 정부 측 인사 중 반 이상이 교육기관과 경찰과 관련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을 소개하면서도 가끔 왜 안나를 만나러 온 이유를 농담처럼 툭툭 던지면서 이야기했다. 안나는 클라인의 충고대로 그 농담에 진지하게 대응하지 않고, 때로는 주변이 소란해서 잘 안들리는 척을 한다든지, 끈질기게 대답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다시 농담으로 돌려주었다.

하지만 그들과 어울리는 게, 두 시간 특강보다 훨씬 더 힘들었던 안나는 호텔로 돌아올 때 즈음에는 아까 고양되었던 활력들을 다 소진해버렸다. 그런데 빨리 객실로 들어가 한잠 푹 자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면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던 안나에게 누군가 인사를 건넨다.

”박사님?“

안나는 온몸에 소름이 쫙 올랐다. 그녀에게 아는 척을 한 사람은 바로 제임스 벨이었다. 그의 머리는 10여 년 보다 더 벗겨져 있었고, 뚱뚱해져서 그때보다 두 배는 더 덩치가 커진 것 같았다.

”기억하시죠? 저를요.“

안나는 이번 미국행에서 제임스를 다시 만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했었다. 그래서 그를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때처럼 그에게 휘둘리지 않게 그냥 가벼운 인사만 하고 바로 헤어지려고 했다.

”아, 네...“

제임스의 뒤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이 있었다. 안나는 그게 뭔가 했다.

”이녀석, 앞으로 나와서 프로이트 박사님에게 인사해야지?“

제임스의 등 뒤에 숨어있는 것은 열 살 정도 보이는 남자아이였다. 제임스가 앞으로 나오라고 해도 그 아이는 계속 제임스 뒤로 숨을 뿐 도통 앞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제 아인데, 이 녀석이 아직도 낮을 많이 가리네요. 이리 앞으로 나오라니까!“

제임스의 호통에 그 아이는 곧 울음을 터트릴 것은 표정으로 겨우 제임스의 다리 옆에 선다.

”인사 안 해?“

다시 터지는 제임스의 호통에 아이는 안나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다시 제임스의 등 뒤로 숨는다.

”아이를 너무 엄하게 대하시지 않는 게 좋아요. 아이들의 마음은 어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약하니까요.“

안나의 충고에 제임스의 낯빛이 잠깐 싹 바뀌었다. 하지만 안나는 거기까지는 눈치채지 못한다. 금방 웃는 얼굴로 갈아낀 제임스는 안나에게 서류철 하나를 넘긴다.

”이게 뭐죠?“

”사실 제가 런던까지 다시 찾아뵐까 했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미국 쪽으로 오신다고 해서 이렇게 급하게 찾아뵌 것입니다. 이 연구자료를 검토하시고, 제게 연락주세요. 박사님과 같은 호텔 601호에 머물고 있습니다.“

제임스는 안나가 거절할 수 없도록 부리나케 그 자리를 뜬다. 안나는 한숨을 푹 쉬고, 내일 제임스에게 바로 이 서류를 다시 건네주고 그와는 다시 만나지 않겠다고 맘 먹는다.


-쾅, 쾅, 쾅.

제임스는 누군가 객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깨어서 시계를 보았다. 시계의 시침은 3시 언저리를 지나가고 있었다. 제임스는 가운을 대충 걸치고 객실 문을 열었다. 객실 문 앞에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안나가 서 있었다.

”당신, 어떻게, 어떻게,,,“

제임스는 하품을 크게 하고는 안나에게 안으로 들어오라는 몸짓을 한다. 방에 들어온 안나는 분을 가라앉히지 못해서 객실 거실을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게리는 스낵바에 있는 위스키를 두 잔에 따라서, 그 한 잔은 자기가 마시면서 다른 잔은 안나에게 건넨다. 안나는 그의 호의를 바닥으로 던져 버린다.

”이게 아버지의 연구라고요? 그리고 이 아이, 이 아이는,,,“

제임스는 소파에 앉아서 화를 내는 안나가 서류철에서 꺼낸 사진의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프로이트 박사님의 연구가 맞는다는 증거이지요. 그 아이를 찾는데 10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아버지는 이 연구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신 적이 없어요. 그리고 이 연구자료들,,,“

안나는 서류철을 뒤지다가 바닥에 그냥 서류철을 바닥에 던져버린다.

”이 자료들을 믿을 수가 없어요. 그리고 아버지가 이런 비윤리적인 연구를 하셨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요.“

제임스는 거만한 표정을 지으면서 위스키 잔을 살살 흔들며 소파에 등을 기댄다.

”프로이트 박사가 이 연구를 맡아서 진행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으실 수 없다면 그 사람에게 확인해 보세요.“

”그게 누구,,,“

”칼 구스타브 융.“

안나는 융의 이름이 나오자, 코웃음을 친다.

”융 박사와 아버지가 결별한 것은 세상 사람이 다 알고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융 박사가 아버지의 연구를 속속들이 다 알 수가 있겠어요?“

제임스는 위스키를 음미하면서 그녀의 말을 반박한다.

”당신과 클라인도 겉으로 봐서는 세상 둘도 없는 적이지 않습니까?“

안나는 제임스에게서 클라인의 이름이 나오자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10여 년 전, 당신 아버지가 임종 직전에 왜 30년 가까이 의절하고 있었던 융 박사를 그렇게 만나고 싶어 했을까요?“

안나는 아버지가 죽음을 앞두고 가장 후회되는 일이 융 박사와의 의절이라고 생각해 마지막 화해를 위해서라고 믿고 살아왔다.

”프로이트 박사님은 그 연구를 융 박사에게 맡겨서 영원히 묻어두려고 했습니다.“

안나는 도저히 제임스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융 박사는 그 연구를 보자마자, 프로이트 박사의 부탁을 거절해 버렸지요. 덕분에 저희가 이 연구 노트를 회수할 수 있었죠.“

제임스는 낡은 가죽 제본의 연구 노트를 안나 앞의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안나는 바로 그 노트를 들고 펼쳐보았다. 분명히 그녀의 아버지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필체였다.

”아버지가,,,왜,,,“

제임스는 손가락으로 안나를 가리켰다.

”나요?“

”따님을 정말 사랑하셨거든요. 하지만 나치의 손아귀를 벗어나기에는 평생 책만 파고 살아온 학자의 힘으로는 절대 딸을 구할 수 없었으니까요.“

”저 때문에 이 연구를 시작하셨다는 것에요?“

제임스는 소파에서 일어나 위스키를 홀짝거리면서 안나의 주위를 뱅뱅 돌았다.

”이 연구를 제안한 것은 저희가 아니라, 바로 프로이트 박사였습니다. 처음에는 독일에 잠입한 영국 스파이에게 제안하셨죠. 자신과 가족의 망명을요. 하지만 처칠 수상은 말도 안 되는 연구라고 그 제안을 거절했죠.“

제임스는 다시 소파에 앉아 거의 울기 직전의 안나 얼굴을 재밌다는 표정으로 살피면서 이야기를 이어 간다.

”하지만 루즈벨트 대통령은 생각이 달랐습니다. 사실 그때 우리 정부는 그 당시로는 실현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획기적인 연구들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엄청난 돈을 투자하고 있었죠. 그중 하나가 바로 맨해튼 프로젝트였습니다.“

제임스는 위스키 잔이 비워지자, 다시 잔을 채우고 마시기 시작한다.

”그런데 프로이트 박사의 연구 제안은 본인 혼자서 알아서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돈 들어가는 연구가 아니었지요. 그냥 박사를 독일에서 데려 나오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신 가족은 무사히 영국으로 망명할 수 있었죠.“

안나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하지만 프로이트 박사는 런던으로 온 이후, 병을 핑계로 계속 연구가 진행되지 못했다는 말만 계속 반복했죠. 그래서 제가 프로이트 박사의 담당이 된 거죠. 저희 정부는 투자한 것은 반드시 회수하니까요.“

그때, 침실 문이 빼꼼히 열리면서 아까 전 보았던 제임스의 아이가 얼굴을 내밀었다. 안나는 문고리를 잡은 아이의 손목에 멍 자국을 보았다.

”이 자식, 어서 뭘 훔쳐보는 거야?“

제임스는 아이 쪽으로 마시고 있던 술잔을 던져버린다. 다행히 아이가 술잔을 얻어맞기 전에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대신 유리잔은 문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버린다.

”저런 병신새끼가 어떻게 내 아들로 태어난 건지,,,“

제임스는 깨진 유리잔 대신 안나에게 건넸던 위스키 잔을 들고서 벌컥벌컥 다 마셔 버렸다.

”당신의 아버지는 무슨 이상한 약들을 계속 구하는 거야. 처음에는 박사가 약에 중독이 되었나 했지. 그런데 정말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약들을 전 세계에서 계속 구해오는 것이야.“

제임스는 갑자기 손가락을 튕겼다.

”아, 뭔가가 있다. 그래서 철저하게 당신 집 주변에 감시를 붙였어. 그러다가 갑자기 당신 아버지가 융 박사를 부르는 거야.“

제임스는 소파에 털썩 앉더니 양팔을 벌려서 소파 등받이를 잡았다.

”그래서 당신 집에 융 박사가 찾아가기 전에 먼저 그를 만나 낚싯밥을 던져 놓았지. 그런데 융 박사는 전혀 그 연구에 대해서는 모르는 눈치였어. 그래도 당신 아버지가 부른 이유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그날 다짜고짜로 당신의 집을 찾아간 거야.“

제임스는 손으로 모으더니 양손으로 비비면서 얼굴을 안나에게 더 가까이 디밀었다.

”하늘이 도와주셨다고 생각했어. 그날 바로 당신 아버지가 숨을 거둔 거야. 당신과 융 박사는 당신 아버지를 병원으로 데려가느라고 정신이 없었지. 하지만 반대편 건물에서 도청하던 우리는 당신 아버지가 몰염치하게 그 연구를 완성해 놓고, 여태껏 숨겨왔다는 사실을 드디어 알게 된 거야.“

”그럼 집을 비운 그때,,,“

제임스는 아직도 안나의 손에 들려있는 노트를 빼앗아 테이블 위에 다시 올려놓고는 희희낙락한 표정을 짓는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안나는 크게 숨을 쉬면서 뛰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알겠어. 그런데 왜 나에게 이 연구자료들을 보여주는 거지? 이 아이를 찾았다면 이 연구는 이제 거의 다 끝난 것일텐데,“

제임스는 실실거리면서 위스키 잔을 살살 돌리면서 그녀에게 대답해 준다.

”당신도 아버지와 같은 정신분석학자잖아? 아버지의 연구 성과가 궁금하지 않아?“

안나는 제임스에게서 시선을 떼서, 아까 전 아이가 나온 객실 문을 바라보았다.

”그게 아니겠지. 이 아이, 컨트롤이 안되지? 그러니까 내 도움이 필요한 것이겠지.“

안나는 계속 아이의 손목에 있는 멍이 마음에 걸렸다. 분명히 저 아이는 제임스에게 학대받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이 연구가 아니라고 안나는 생각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안나는 그 아이의 눈에 서린 증오를 분명히 보았다. 이대로 두면,,,

제임스는 안나의 이야기에 대답하지 않고 침묵을 선택했다.

”이 아이가 어떻게 자라는지,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싶어.“

제임스는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면서 잔에 남은 마지막 위스키를 모조리 마셔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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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난나 케이스:프로이트가 남긴 멸망의 유산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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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발경 NEW 4시간 전 0 0 15쪽
37 흡혈 24.09.13 1 0 13쪽
36 이대도강 24.09.06 5 0 13쪽
35 천년협객 24.08.30 4 0 20쪽
34 사투 24.08.23 5 0 15쪽
33 접촉 24.08.16 5 0 15쪽
32 재회 24.08.09 6 0 14쪽
31 탈출 24.08.02 7 0 12쪽
30 1971년, 런던 24.07.26 7 0 14쪽
29 한청검 24.07.19 7 0 15쪽
28 1969년, 취리히 24.07.12 6 0 20쪽
27 원수 24.07.05 8 0 10쪽
26 1967년, 데스밸리 24.06.28 9 0 14쪽
25 시험 24.06.21 8 0 16쪽
24 1965년, 네바다. 24.06.16 12 0 11쪽
23 반괘권 24.06.15 10 0 13쪽
» 1953년, 예일대 24.06.14 8 0 12쪽
21 복마전 24.06.14 7 0 9쪽
20 1941년, 클라인 24.06.13 11 0 16쪽
19 Gold Code 24.06.13 11 0 12쪽
18 1939년, 유혼 24.06.12 10 0 12쪽
17 통성명 24.06.12 10 0 10쪽
16 1909년, 영혼의 두드림 24.06.11 11 0 14쪽
15 탈출 24.06.11 9 0 11쪽
14 죽음의 행진 24.06.10 11 0 15쪽
13 비명 24.06.09 11 0 12쪽
12 격돌 24.06.08 14 0 13쪽
11 첫 만남 24.06.07 12 0 15쪽
10 맥도날드 24.06.07 10 0 19쪽
9 피지 않은 벚나무 24.06.06 10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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