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렇게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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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문가비
작품등록일 :
2024.07.19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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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31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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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3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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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선택 [Two of Swords]

DUMMY



도윤은 침대에 누워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을 해보다가 잠시 화장실에 갔다. 다시 할아버지의 방으로 가려는 찰나에 연서의 방에서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도윤이 모르는 친구일 수도 있고 연서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건 아니니 누군가와 통화라도 하나 싶었다.

 그런데 밤 11시가 넘은 이 시간에 통화라.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 걸까? 아니면 악령과의 대화일까? 혹시나 하는 걱정에 도윤은 연서의 방에 노크를 하려고 다가갔다.


방문에 가까이 갈수록 연서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 가고 있었다.

대화에 집중한 것인지, 아니면 도윤이 잠들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인지 몰라도 연서는 의사 전달을 확실히 하는 강한 어조의 대화를 이어가고 있던 것이다.


내기, 계약, 두 달··· 내 몸, 내 목숨.


‘뭐?? 이게 무슨 상황이야??’



*****



“방금 내가 들은 거 무슨 말인지 설명해 봐. 당장.”


도윤은 몹시도 화가 나 있는 표정이었다. 연서는 도윤이 어디까지 들은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몇 초간 도윤을 바라보았지만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도윤의 팔을 잡고 소파로 가서 앉았다. 연서는 도윤을 바라보고 앉아서 물었다.


“어디까지 들었어?”


도윤은 화를 가라앉히고 차분히 얘기하려는 듯 잠시 뜸을 들였다.


“네가 방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 같아서 지나치려다가 목소리가 점점 커져서 모른 척할 수가 없었어. 네가 언제부터 대화하고 있었던 건지 몰라서 어디까지라고 확실히 말해주긴 어려워. 엿들은 건 미안해. 의도적인 건 아니었어. 어쨌든 악령과 계약을 했다는 건 정확히 들었으니까 설명을 해봐.”



연서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망설이다가. 최근의 일들이 겹치면서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말을 이어갔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는 왜 내가 오늘 악령과 그런 대화를 한 것인지.. 너에게 설명해 줄 필요가 있고, 또··· 혼자 쌓아 두었던 것을 털어놓고 싶어서.. 천천히 설명해 줄게. 끝까지 들어주길 바래. 화를 내더라도 다 듣고.. 그리고 화냈으면 해.. ”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도윤은 화가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다.



“아까 설명했다시피 일주일 정도 사이에 악령은 점점 급하게 나를 코너로 몰고 갔어. 그리고 카드에 수작을 부렸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나를 몰아가기 위해서. 나는 마치 내가 어디에 있든 저격수가 노리고 있는 기분이 들었어. 숨을 수도 없고 도망칠 수도 없는 그런 상황인 셈이지.“


연서는 24시간 저격수의 조준경 안에 잡혀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그것에 매몰되면 한순간에 무너질 것이라는 걸 알기에 악령에게 오히려 담담한 모습을 보여줘야 했었고 그것이 더 힘들고 괴로웠었다.


“며칠 전 빙의가 되고 나서 내 몸을 노린다는 걸 알고 난.. 나는.. 화도 났지만 솔직히... 포기하고 싶어졌었어. 지금까지 미치지 않고 버틴 것도 할아버지가 옆에서 힘이 되어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였기도 했는데..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금..

나는 누군가가 전쟁터 한가운데에 떨어뜨려 놓은 길 잃은 어린아이 같은 기분이야. 하지만 다시 꿋꿋하게 악령을 상대하며 살아가 보자고 생각도 했지.. 그게 나 다운 거니까.”


도윤은 연서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내면에 담아 두었던 깊은 마음들을 조금씩 드러내 보이는 연서에게 어떤 말도 해줄 수 없었기에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런데 도윤아.. 나다운 게 뭘까···? 난 지난 시간 동안 그저 악령에게 휩쓸리지 않는 것만 생각하며 살았어. 보통의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처럼 나다운 거. 그게 뭔지 모르겠어.

이렇게 계속 악다구니를 쓰면서 살아가는 게··· 과연 나다운 게 맞는 걸까? 이렇게 족쇄에 매여서 끌려가며 사는 게 맞는 걸까? 더 이상 이렇게 살기 싫어 도윤아··· 이렇게 사느니 그냥 죽고 말지 싶어...”


“아.. 연서야.. ”


악령은 카드를 조작하고 함정을 만들고 연서가 판단한 모든 것들을 잘못된 판단으로 만들어 버렸다. 악령의 능력이 도대체 어디까지 작용할 수 있을지 알 수도 없었다. 그 때문에 더욱더 죽음의 공포가 연서의 주변을 맴돌았던 요즘이었다.


“어차피 이 악령이 나에게 지금까지 준 정보는 비슷한 내용의 반복이었어. 엄마의 결혼 이후의 일들. 그리고 내가 태어난 것까지. 그 이상 다른 정보는 주지 않아. 더 많은 정확한 정보가 필요했어.”


“하··· ”

도윤은 가슴이 아려왔다. 무력한 자신의 모습이 한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이렇게까지 각오하고 있는 연서에게 어떤 도움이 되어줄 수 있을지.. 이야기를 들을수록 연서가 감내해 왔던 고통의 시간들이 어땠을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난 최악의 방법을 선택했어.”

“최악의 방법이라면.. 어떤 방법..?”


“정해진 기한 내에 악령에게 정보를 계속 받고 그걸로 악령을 소멸하는 것. 내가 실패할 경우 바로 내 몸을 악령에게 주는 것으로 승부수를 던졌어. 기한은 두 달이야.”


당황스러운 도윤은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연서가 바로 다음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는 네가 한국에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기 때문에.. 사실 네가 알면 반대할 건 자명한 일이기도 하고··· 그래서 그전에 악령과의 내기를 제안한 거야.”


이후 악령과의 계약과 조건에 대한 설명을 해주고 기한은 이미 12시가 지난 지금부터 시작이 되었다는 것도 말해줬다.


“대신 악령은 나에게 꾸준히 정확한 정보만 전달해야 해. 의도적인 거짓 정보로 방해를 했다가는 모든 계약은 없던 일이 되고··· 난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을 할 거라고 경고했어.”


“마지막 선택?”

 “응.”


“그게 어떤 거야?”

“내 몸을 내어주느니 스스로 내 몸을 버리는 것···”


 “뭐??? 하.. 연서야! 그건 절대 안 돼!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마!” 


“악령은 내 몸이 필요해. 지금이라도 내 몸이 쓸모가 없어진다면 악령이 기다려왔던 모든 것들이 물거품이 되니까. 사실 악령에게 가장 큰 위협과 협박은 내 몸이야. 이 말은 두 달 동안은 안전하다는 뜻이야.” 



도윤은 넋이 나간 듯  연서만 바라보며 눈을 꿈뻑거렸다.


“그러니까.. 두 달의 내기에 네 목숨을 걸었다고? 그리고 네 목숨으로 협박? 연서야! 너! 목숨 여러 개 아니야. 하나야! 이건 너무 위험하잖아.“


 연서의 말에 도윤은 상당히 격양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연서는 말을 이어갔다.

  

“며칠 전 악령의 빙의는 시작일 뿐이야. 이제 점점 더 내 몸을 차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겠지. 그렇게 살면, 결국 그렇게 당하면 어차피 나는 없어져.

다만 시기가 언제일지 모르는 것뿐이라···나는 조마조마하게 매일을 보내게 될 거야. 이미 악령이 언젠가는 나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결말을 알고서 불안불안하게 살아갈 내 삶이.. 난 너무 서럽고 무섭고.. 억울해..”


당장이라도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릴 것 같은 눈을 하고서도 끝까지 담담하게 얘기하려는 연서의 모습에 도윤은 한없이 애처로웠다.


도윤은 더 이상 화도 나지 않았다. 그저 아프고 슬펐다. 혼자 감당하며 여기까지 온 연서를 이제는 꼭 지키고 말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하나 더 알게 된 게 있어.”

“그래? 어떤 거야?”

   

[Page of Wands, Ace of  Cups,  Two of Swords]

(페이지 완즈, 에이스 컵스. 2소드)

 오늘 뽑았던 카드야.


“분명 좋은 소식이 있을 건데 2소드가 나의 기쁨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고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카드였지. 당연히 페이지 완즈와 에이스 컵스는 도윤이 네가 오는 기쁜 소식과 감정인 거고 그럼에도 나는 오늘의 선택이 남아 있는 하루였던 거야.


도윤은 설명을 들으며 생각했다.

‘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내가 오는 좋은 소식 뭐 대충 이런거고..’


2소드의 상황 자체가 내가 선택하고 만든 상황이라 물러설 수 없는 데다가 내가 어떤 선택을 한다 해도 돌이킬 수 없는 것이고 그건 곧 악령과 관련된 일이었어. 내기. 계약.”


“하.. 그런 거구나..”


‘뭔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뭐 아무튼 연서 말이 확실하다는 말인 거고..’  

도윤은 타로카드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연서가 그렇게 해석을 했다면 그것이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악령에 관해서도 뽑아봤었어. 전부 나를 혼란스럽게 속이고 현실과 같은 환상으로 나를 극도의 불안과 공포로 몰아가려는 작전이 숨어 있었어. 내가 제안했던 내기를 포기하게 만들려고 했던 거지.”


“그런데 그 카드 안에 악령의 조급함이 강하게 보였어. 왜 조급해 할까.. 왜.. 언제든 계획적으로 나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갈 수 있는 놈인데.. 왜 오늘 이렇게 급하게 움직이려고 할까.. 서둘러서 오늘 당장 나를 흔들고 내기를 포기하게 할 만큼의 목적이 뭘까..”


“그래.. 분명한 목적이 있어 보이네.. 그래서 어떤 걸 알아낸 거야?”


“아까 병원에서 정신을 차리고 알게 됐어. 악령이 왜 불안정하게 조급했는지를. 너. 도윤이 네가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야. 우리가 함께 악령을 추적하게 되면 우리의 힘이 더 강해지고 악령에 대한 것들을 더 많이 밝혀내게 될 거야.”


“그래서 네가 타로 샵에 도착하기 전에 악령은 내가 질려서, 무서워서, 무력해서 모든 걸 포기하기를 바라고 잡귀들로 내 멘탈에 충격을 주려고 했던 거야. 그런 상황은 여태껏 겪은 적이 없으니까.“


도윤은 연서의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감정에 빠져있을 시간이 없다. 연서는 이미 목숨을 걸었고 시간은 속절없이 지나가게 될 테니. 


그렇다면 도윤의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연서를 지키는 것. 연서의 계획에 최대한 도움을 주는 것.

그것이 도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다.


도윤은 물끄러미 연서를 바라보다가 가까이 다가가 연서를 안아주었다.

“고생했어 연서야.. 혼자 너무 많은 짐을 지고 버텼어. 이제 같이 덜어가자. 내가 꼭 옆에 있을게. 할아버지 몫까지 내가 지켜줄게.”


도윤은 마음을 굳게 먹고 한 번 더 다짐했다.

‘이제부터 제대로 시작이야. 절대로 연서를 잃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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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엄마의 손거울 24.08.12 17 0 10쪽
24 붉은 실 2 24.08.11 21 0 11쪽
23 붉은 실 1 24.08.10 21 0 11쪽
22 가족의 비밀 [Page of Wands] 24.08.09 22 0 13쪽
21 나의 영웅들 +1 24.08.05 25 0 12쪽
20 박수무당의 VIP 24.08.01 28 1 12쪽
19 할아버지의 보물 상자 24.07.31 31 1 13쪽
18 선명한 손자국 [Four of Pentacles] 24.07.31 31 1 13쪽
17 별의 빛을 따라서 [The Star] 24.07.30 34 1 15쪽
16 어느 노신사의 이야기 2 +1 24.07.29 38 1 13쪽
15 어느 노신사의 이야기 1 +1 24.07.26 37 1 15쪽
14 정체불명의 그것 [The Moon] +1 24.07.24 37 1 14쪽
13 그 여자의 이름은 [Judgement] +1 24.07.24 26 1 12쪽
12 불확실한 날들의 시작 [The Emperor] +1 24.07.24 30 1 12쪽
11 회복될 세계의 열쇠 [The Sun] +1 24.07.23 33 1 14쪽
» 돌이킬 수 없는 선택 [Two of Swords] +1 24.07.23 32 2 11쪽
9 악령과의 계약 [King of Cups] +1 24.07.23 40 2 13쪽
8 혼란 속의 빛 [Seven of Cups] +1 24.07.23 32 2 13쪽
7 악령과의 내기 [The Devil] +1 24.07.23 35 2 11쪽
6 빙의 [Eight of Swords] +1 24.07.23 37 2 10쪽
5 화요일의 그 손님 [King of Wands] +1 24.07.23 45 2 10쪽
4 '검'의 주인 [Ace of Swords] 24.07.23 49 2 12쪽
3 연꽃 연 蓮 , 펼칠 서 敍 [Two of Pentacles]] +1 24.07.23 53 2 13쪽
2 나는 그렇게 태어났다. +1 24.07.23 70 2 15쪽
1 악령의 수레바퀴 +2 24.07.19 162 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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